
추천받은 덴마크 영화 <Speak no evil>을 재밌게 봤다. 2026년은 그렇게 처참한 풍자극으로 시작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알게 된 네덜란드 부부와 덴마크 부부가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 대충 내용을 듣고 봐서 보는 내내 잔혹한 결말을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지만 결국 결말에 다다랐을 때의 공포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영화 초반부터 가장 신기했던 것은 덴마크 부부가 선택한 여행의 방식이었다. 이들은 아마도 이탈리아 가정식 한두 끼가 포함된 토스카나의 리조트 패키지 상품을 산 것 같다. 이탈리아 문화도 자연스레 접하고 친구도 사귀고 뭐 그러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외국까지 가족여행을 가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자발적으로 스몰토크를 하며 아침 먹고 싶을까. 내 개인 성향 탓이겠지만 이 부분부터 이미 이들이 자기 주도적이지 않고 가족 간에도 서로 할 말이 없어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은 적당히 편리하게 세팅된 상태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일종의 모험으로 여기는 사람들 같고 그런 성향은 사냥꾼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초반부터 네덜란드 아빠 패트릭과 덴마크 아빠 비욘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사실 말이 신경전이지 그냥 패트릭이 비욘을 파악하는 과정이자 앞으로 돌입할 심리전의 워밍업 단계이다.

수영장에서 썬베드를 빌려달라고 하는 패트릭. 떨떠름함을 무릅쓰고 딸의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며 썬베드를 내어주는 비욘. 딸의 애착인형을 찾아서 돌아오는 비욘을 '영웅적'이라고 치켜세우는 호방한 패트릭, 전직 라테파파였던 비욘은 자신의 거세된 남성성을 보란 듯이 환기시켜 주는 사람 앞에서 순식간에 자존감을 회복하며 패트릭에 대한 경계심을 걷어내기 시작한다.
여행 후 패트릭 부부는 엽서를 보내 비욘 가족을 네덜란드로 초대한다. 얼굴에 그늘 한점 없고 이탈리아 여행 다닐 돈도 있고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당당하게 집으로 초대할 정도면 풍족하고 접대에 능한 현지인 집에서 네덜란드 문화를 뼛속까지 체험하고 올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비욘은 과감하게 잘 알지도 못하는 지인의 집을 향한다.
비욘 가족은 마녀의 집을 찾아가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무성한 숲을 지나 외져도 너무 외진 패트릭의 집에 도착한다. 이들이 배정받는 방과 침대는 너무나 좁고 협소하고 딸은 패트릭의 아들 방에서 함께 지내게 되는데 이 아들이 밤만 되면 괴성을 지르는 등 암울함 투성이다.

이제 불쾌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진다. 채식을 하는 루이스는 멧돼지 고기를 강제시식 당하고 게스트를 위한 욕실 따위는 없으므로 루이스는 샤워부스에서 벌거벗은 채 외간 남자의 3분 양치질 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어른들이 외출할 동안 애들을 봐줄 베이비시터라고 온 사람은 <레이디 멕베스>의 돌쇠와 <겟아웃>의 흑인 정원사를 섞어 놓은 듯한 쎄한 느낌을 풍긴다. 오래간만에 아이들 없이 편하게 거한 저녁을 먹지만 당연히 패트릭이 낼 거라고 기대했던 저녁값을 비욘이 지불하고 레스토랑에서 패트릭 부부가 연출한 끈적한 분위기에 영감을 받은 부부는 오래간만에 딸이 끼어들지 않은 침대에서 잠자리를 가지는데 뒤늦게 딸을 찾으러 갔더니 딸은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패트릭 옆에서 잠을 자고 있고.
대접받는 게스트가 되겠다는 환상이 연달아 깨지며 찝찝한 느낌을 거둘 수 없었지만 그런대로 극복해 왔던 덴마크 부부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고 주인 몰래 허겁지겁 짐을 싼다. 그들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애착인형을 두고 온 걸 알고 다시 차를 돌린다. 이즈음 우리는 인형의 기사 비욘을 영웅이라 칭송하던 패트릭을 자동적으로 떠올리며 인형을 숨긴 이들이 드디어 적극적으로 덴마크 가족을 옭아매고 유린할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인형은 차 안에 있었고 패트릭 부부는 이들을 잡아두기 위해 어떤 분명한 폭력도 음모도 행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을 실토하기라도 하듯 구구절절 왜 떠나려고 했는지를 설명하는 이들에게 섭섭함을 내비치는 패트릭 부부를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덴마크 부부는 다시 자발적으로 그 집에 남는다.
우연히 창고로 들어간 비욘은 네덜란드 부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이들은 여행지에서 알게 된 낯선 가족을 초대해서 부부를 죽이고 아이의 혀를 잘라내고 그의 새로운 부모가 되어 여행지에서 새 범행대상을 물색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아이를 기른다는 공통분모를 가진 부부를 타깃으로 삼고 아이덕에 그럭저럭 느슨하게 유지되는 부부관계의 빈틈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의식 있는 지성인처럼 행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중심을 못 잡고 예의를 차리는데 급급한 사람들을 조소한다. 자기감정과 원칙을 좀 더 우선순위에 두고 세간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에 얽매이려 하지 않는 패트릭 부부가 좀 더 재밌고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신적으로 비욘 부부의 우위에 있는 듯 행동하며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행동 역시 거북하기는 매한가지. 보는 사람도 찝찝하다. 사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누구나 조금씩은 비욘과 패트릭처럼 행동할때가 있지 않으려나.

만약 비욘이 초대받은 곳이 5분 안에 콜택시를 불러서 떠날 수 있는 동창네 집이었다면 아마 이들은 그 정도의 예의와 인내를 감행하는데 크게 애쓰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멀리 떠나왔다는 것, 아주 외딴곳에서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쉽게 떠나지 못하게 한다. 이들과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함께 지내야 해서 신뢰를 쌓아야 하는 관계도 아닌데 영영 남이 될 사람들 앞에서 상식적으로 행동하고 예의를 지키느라 나 자신과 가족의 안전과 안락한 감정 따위는 묵살하는 오류를 범한다. 거부하면 예의가 아닐 것이다, 우릴 이렇게 까지 생각해서 초대했는데 그들이 아무에게나 그런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선택된 사람들일 수도 있다, 난 저 강인한 남자의 인정을 받았다, 내 눈에나 이상해 보이지 저 사람들의 문화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인지도 모른다. 등등에서 기인한 잘못된 판단들은 점차 상대가 선을 넘는 것을 무기력하게 허용하고 갈등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좀 더 올바르고 그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은 거라 주입된 생각은 이들을 철저하게 배신한다.
이들은 다시 집을 나오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잡히고 말며 차 안에서 아이가 혀를 잘리고 부모와 분리되는 잔혹한 장면 뒤로 우리는 이 어른들이 결과와는 상관없이 마지막으로 최소한의 의미 있는 반항을 하길 기대하지만 이들은 온순함의 정점을 찍으며 채석장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날아오는 돌을 맞는다. 이것은 언젠가 돌산 낭떠러지에서 몸소 몸을 던지던 하지 축제 참가자들을 떠올릴 만큼 거의 자발적인 죽음에 가까워 보이지만 과연 그들이 도망을 가거나 반항을 하는 용기를 내는 것이 생각만큼 쉬웠을까도 생각해 본다. 꾸리라는 짐을 꾸러 강제 이송 열차를 타고 수용소를 향하던 많은 온순한 사람들의 선택이 어리석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손쉬운 것처럼.
그런데 한편으로 네덜란드 부부가 정말 적극적으로 범행하지 않았고 늘 희생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줬다면 이들의 집에서 빠져나가는데 성공한 사람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패트릭의 기분 나쁜 질문이나 오만한 소통 방식에 말려들지 않고 솔직하게 마음에 안 드는 걸 말하고 자신의 약점을 유쾌하게 인정하고 틀릴지언정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하고 역으로 파트릭을 파악하면서 뒤끝 없이 놀다가 그냥 예정된 시간을 잘 채워서 이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왠지 순순히 그냥 보내줬을 것도 같다. 비욘은 이상한 지점에서 늘 예의를 차리느라 애를 썼지만 결정적으로 파트릭은 이래도 저래도 야반도주만은 허용할 수 없는 예절 바른 네덜란드인이었을지도.

애초에 덴마크 원작은 범죄 스릴러라고 장르 구분을 하기 이전에 일종의 풍자극이자 우화이기에 이 결말을 딱히 새드 엔딩이라고 하기에도 좀 껄끄럽다. 헐리우드 리메이크작에서는 전개가 다소 달라진다. 언제나 그렇듯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원작을 보며 현실적인 관객이 답답해했을 요소들을 하나하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첨삭 수정한다. 파트릭이 저렇게 된 이유, 탈출 의욕을 보이는 똑똑한 소년, 의외로 어린아이들을 신뢰하는 어른들,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적극적인 범죄 행각, 결국 아빠에게는 애착 인형을 찾아주는 행위를 넘어서 남성성을 만회할 기회를 주고, 남자에게 전적으로 기대지 않는 여성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원작에서 부부가 돌에 맞아 죽어가는 대신 리메이크작에서는 혀가 잘린 소년이 자신의 가족을 파괴한 남자를 굉장히 폭력적으로 돌로 내려치며 죽인다. 2탄을 예고하는 건지 그의 서늘한 표정을 보여 주며 끝난다. 아이는 분명 피해자이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런 폭력을 경험한 아이가 과연 정상적으로 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헐리우드 리메이크작을 보면서는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많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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