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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The Runner (1984)

 

 
 
아미르 나데리의 영화 <러너>는 이란 혁명 이후에 선보인 가장 초기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저 독보적이고 이 정도의 에너지와 스피드로 충만한 이란 영화는 없는것 같다. 감독 아미르 나데리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는 복원된 좋은 화질로 봐서 인지 80년대 이란의 바닷가 도시를 완벽하게 고증해 낸 요즘 영화라고 해도 믿어질만큼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하다. 주인공 아미로는 이란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뜀박질하고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란 아이들의 가장 원시적이고도 생명력 넘치는 원형일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아이들의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땀으로 뒤범벅된 남자들의 영화에 가깝다. 지금은 아마도 반백살이 되었을 마드지드 니로만드(Madjid Niroumand)의 연기는 탁월하다. 아미로의 유년시절이라는 인생의 한 단계를 봤다기보다는 성장해 가는 그를 지탱하는 이미 완성된 심지와 척추를 훔쳐본 것 같다. 꼼수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아닌 것을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그는 순수하게 거칠고 완전히 날것이다. 
 
아미로는 버려진 선박의 갑판 위에서 혼자 살아가는 고아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나오는 다른 이란 영화처럼 이곳엔 아미로를 꾸짖는 부모가 없다. 금붕어를 사달라고 조를 수 있는 엄마도 없고 학교 자체를 못 다니기 때문에 친구의 공책을 실수로 가져올 일도 없고 신발이 없는 동생을 위해 달리기 대회에 나갈 일도 없다. 다행히 그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하다. 그는 철저히 혼자이고 또래들과 달리고 또 달리며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 나간다. 
 
 
 

 
 
아미로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고물을 주워다 판다. 그곳엔 아미로 같은 아이들이 많다. 아이들은 친구이지만 좋은 물건을 두고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그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는지, 부모가 있다면 왜 어릴 적부터 돈을 벌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아미로의 돈벌이 수단은 계속 진화한다. 크루즈 관광객들이 바다에 버리는 빈병들은 이들에게 꽤 괜찮은 돈벌이가 된다. 어느 날도 빈병을 수거하러 바다에 뛰어든 이들을 멀리서부터 상어 한 마리가 휘감고 다가온다. 그날 시내에서 다리 한쪽을 잃은 사람을 본 것을 계기로 아미로는 직업을 바꾼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깎아내리는 사람들의 잔소리를 이 어린아이는 꽤나 이성적이고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자신을 연민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것은 자기에게 적합한 삶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연스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아미로는 커다란 얼음을 채운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얼음물을 팔기 시작한다. 물을 마시고도 돈을 내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사람을 끝까지 쫓아가서 넘어뜨린다. 카페에 앉아 있는 관광객들의 구두를 닦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돈 좀 있어 보이는 관광객 사이에서 구두를 닦으니 때론 도둑으로 몰리는 일도 생긴다. 그런 때에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쫓아가서 결백을 증명한다. 
 
 

 
 
아미로는 활주로로 날아드는 비행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선박들, 정박한 배에서 내려 망중한을 즐기는 풍족한 이방인들도 아미로의 관심을 끈다. 그는 경험해보지 못한 삶과 세상에 끌린다. 일을 하지 않을 때면 항공 잡지를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책방 청년은 비싼 외국 잡지보다 페르시아어로 쓰인 잡지를 권하지만 글을 읽을 수 없는 아미르에게는 그마저도 소용없다. 그는 홀연히 학교를 향한다. 하지만 이미 취학연령이 지난 아미로를 학교는 받아주지 않고 그는 결국 글만 가르치는 오후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그는 달릴 때에도 바닷속에서도 있는 힘껏 알파벳을 읊는다. 
 
 

 
 
아미로는 친구들과 달리기 경주를 한다. 함께 빈병을 줍거나 고물을 주웠던 아이들, 돈벌이가 될 정보를 교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쟁하는 아이들. 이들은 선로에서 다 같이 기차를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기차를 따라잡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무너져내리는 자갈 언덕을 먼저 오르기 위해 먼지를 뒤집어쓰며  서로 밀치고 넘어지며 잡아끌고 결승선에 가까워질수록 제대로 달리는 것은 불가능한 육탄전에 가까운 일상적인 달리기 시합에 처절한 승부욕으로 임한다. 아이들에게 응당 주어져야 할 양육과 관심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된 채 완전히 야생에 내던져진 아이를 보면 화가 나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야 할지 모르지만 아미로의 삶을 방해하는 많은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묘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아미로는 이곳이 그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영화는 탈출을 이상화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것을 알지만 그들이 뜀박질의 끝에서 얻는 것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체로 형체가 없고 아무런 결과물도 없기에 완전히 맹목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완전히 압축되고 또 압축된 황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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