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기 이란 영화를 보는 것은 창사 특집 단막극을 보는 느낌이다. 영화라기보단 드라마 같고 매일 보는 드라마라고 하기엔 또 연속성이 없다. 재밌게 보고 나면 과연 다시 볼 기회가 있을까 싶어 아쉽고 명절은 항상 저물어가니 끝나고 나면 특유의 울적함이 남는다. 그리고 그 작품들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단막극 속 주인공들은 왠지 서로 알고 지낼 것처럼 친숙해 보인다. <햇살나무>와 <흙꼭두장군>의 주인공들이 시골 뒷산에서 만나서 뛰어놀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이란 영화를 보고 나면 가끔 헷갈린다. 금붕어를 사고 싶어 하던 그 아이는 할머니와 쌀을 나르던 그 아이였나. 말을 더듬는 누나를 위해 동화책을 구하러 다니던 그 아이는 그림이 그리고 싶었던 그 아이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 <체리향기> 등의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은 확실히 아마드와 네마짜데가 나오는 영화와는 느낌이 다르다. 오히려 아마드의 발걸음은 자파르 파나히의 <하얀 풍선>에 이르러서야 다른 아이들의 걸음을 통해 다시 이어진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각본을 쓴 이 영화는 키아로스타미의 조감독 경험이 있는 자파르 파나히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를 키아로스타미의 아류작으로 폄하하면 자파르 파나히는 아마 억울할 거다. 그러니 최대한 키아로스타미의 그늘을 걷어내며 파나히만이 가진 뭔가를 찾아내겠다는 자세로 보면 좀 달리 보인다. 정겨운 시골이 아닌 복잡한 도시로 옮겨갔고 혼잡한 새해를 앞두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얽히고설키는 전개 속에서 이민자와 여성에게 쏟는 감독의 시선도 포착할 수 있다.

영화는 새해를 한 시간 반 남겨둔 번잡한 시장에서 시작된다. 풍선 꾸러미를 들고 다니는 소년,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 이발소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연주자들, 군용 차량에서 내려 시장을 배회하는 군인, 양손 가득 음식 꾸러미를 들고 누군가를 찾는 여성, 모두 새해를 앞두고 비슷하게 들떠있다. 그 복잡한 대열에서 빠져나와 엄마는 잠시 눈앞에서 사라졌던 어린 딸과 만난다. 하얀 상의에 빨간 치마를 입은 어린 소녀 라지에(Aida Mohammadkhani)는 파랑 풍선을 들고 집까지 가는 동안 쉬지 않고 금붕어를 사달라고 엄마를 조른다.
테헤란의 골목 어디든 좁고 긴 도랑들이 이어진다. 물살은 의외로 세다. 물은 어디서든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안정감을 준다. 그 물길을 따라 구불구불 골목을 돌아 문을 열면 여러 이웃이 함께 사용하는 중정에 수도꼭지가 딸린 작은 연못이 나온다. 이란 사람들은 그 연못 주변에서 빨래도 하고 채소도 씻는다. 아이들은 연못 근처에서 부모가 시킨 일을 꾸역꾸역 하면서도 집념을 가지고 딴생각을 한다. 외부자의 시선과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폐쇄된 둥그런 중정 한가운데의 연못엔 하늘이 그대로 고이고 그 작은 세상은 그런대로 바깥세상과 연결된다. 이것은 이란 사람들의 일상이겠지만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그 도랑 곁을 달려 늘 연못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서사가 정말 좋다. 그리고 그 연못에 그들은 때로 금붕어를 풀어놓는다.
7세 소녀 라지에는 연못에 사는 자기네 금붕어가 너무 마르고 볼품없다며 가게에서 본 통통한 금붕어를 사달라고 조른다. 엄마는 명절 준비로 돈 나갈 곳을 생각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고 아빠는 온종일 샤워를 하며 호통을 치고 오빠는 엄마 아빠가 시키는 일들을 그런대로 하나씩 처리하면서 기특하게도 금붕어 노래를 부르는 여동생의 마음까지 헤아린다. 그 순간 이웃 남자아이가 어항과 끌채를 들고 라지네 마당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연못에서 금붕어 한 마리를 건져서 담아간다. 엄마는 것 보라며 우리 집 금붕어가 마음에 들어 일부러 와서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며 의기양양해지지만 큰 지느러미를 흔들며 우아하게 헤엄치는 새 금붕어에 대한 라지에의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오빠는 금붕어 사는 걸 도와주는 대가로 풍선을 달라고 한다. 소녀는 결국 엄마에게서 500 토만 짜리 지폐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금붕어는 이란 영화에서 거의 조연급이다. 마지드 마지디의 <참새들의 합창 Songs of Sparrows>에서도 아이들은 동네의 버려진 수조를 청소하고 금붕어를 풀어놓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난리법석을 떤다. 이란 아이들은 왜 금붕어가 그렇게 좋은 걸까.

새해라고 하면 추운 겨울을 떠올리지만 페르시아의 새해인 노루즈는 3월 20일 21 즈음의 춘분을 기준으로 한다. 그리고 노루즈에 이란에서는 하프트씬이라고 하는 전통상을 차린다. 씬은 페르시아어의 알파벳 중 하나인데 S 발음에 해당하는 그 알파벳 씬으로 시작하는 7개의 물건들을 상에 올리는 것이다. 식초, 마늘, 사과, 새싹, 향신료, 푸딩, 야생 올리브 열매가 들어가는데 그 외에도 거울이나 금붕어, 시집 같은 것들을 추가하기도 한다. 하프트씬에 관한 귀여운 설명이 있어서 덧붙여 놓는다. 이 일러스트를 그냥 보고 있어도 명절상 위의 어항 속에서 왔다 갔다 헤엄치는 금붕어를 포기하기 힘든 아이들이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이 영화는 한 시간 반정도 분량이지만 아이가 금붕어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서자마자 벌어지는 일들은 체감상 한 다섯 시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엄마한테 돈만 받아내면 일사천리라고 생각했으나 생각지 못한 난관의 연속이다. 그렇게 금붕어 타령을 했지만 아이는 집을 나오자마자 뱀을 부리는 장면에 한눈이 팔리고 만다. 지폐를 들고 서있다가 뱀장수들에게 지폐를 엉겁결에 갈취당하지만 눈물을 쏟는 소녀에게 아저씨들은 돈을 고스란히 돌려준다. 정신을 차리고 금붕어 가게에 다다르지만 지폐는 또 사라지고 만다. 친절한 중년 여성은 라지에를 데리고 길을 되돌아가서 지하창 덮개에 떨어져 있는 지폐를 발견하지만 그 순간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바람에 결국 돈은 아래로 떨어진다. 돈이 떨어진 상점은 이미 문을 닫았고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모두들 저마다 바빠서 아이들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한다. 소녀는 군것질을 권하며 말을 걸어오는 군인을 경계하면서도 버스값이 없어서 고향에 갈 수 없다는 군인을 조금은 동정한다. 기다란 꼬챙이를 집어넣고 아무리 휘저어봐도 돈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결국 풍선 장수 이민자 소년이 가져온 껌을 씹어 장대에 붙여서 지폐를 꺼내는 데 성공한다. 돈을 꺼내자마자 아이들은 금붕어를 향해 달려간다.

금붕어를 쉽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안 했지만 아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집요하다 느껴질 즈음 라지에는 금붕어를 손에 넣는다. 금붕어가 담긴 어항을 집까지 잘 가져갔는지 명절상에 잘 올려놨는지까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그 녹록지 않은 과정 속에서 라지에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흩어지는 사람들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그 사람들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었던 것과 하지 않은 것들을 두고 누가 나쁘다 좋다 성급하게 판단하는 대신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도움을 주려 했던 사람들의 선의와 그것을 아이가 받아들이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금붕어를 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라지에 본인의 집념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처한 어려움을 애써 부각하지 않고 단념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훌륭하다. 라지에로 하여금 해결에 필요한 침착함을 유지하게 했던 것은 결국 그들이다. 아이들이 배회하는 도시는 완벽하게 안전하고 사려 깊진 않지만 개개인이 실현하고자하는 최소한의 인간성들이 모여 균형을 유지하는 그런대로 바람직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큰돈을 들고 집밖으로 나온 아이의 여정은 짧게나마 소녀가 혼자 세상을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 말아야 할 것, 대신해 주는 게 차라리 나은 것들을 그런대로 경험하게 내버려 두는 데에도 사실 용기가 필요하다. 엄마는 아이 손을 잡고 다시 시장을 향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폐 한 장을 쥐어주는 것으로 아이를 믿고 지지한다.
한편으로는 금붕어를 사고 싶어 하는 아이 마음이 애처롭게도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 물고기 한 마리가 지상의 목표가 되지만 지나고 나서 그게 뭐라고 그렇게 가지고 싶었을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매달려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거다. 그것은 꼭 이뤄야 하는 소망도 아니고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는 많은 소망 중 하나이지만 결국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건강하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갈구하게 놔두는 수밖에 없다.
라지에의 금붕어 구입 미션에 치중하자면 이 영화의 제목은 하얀 금붕어인 것이 맞겠지만 제목은 하얀 풍선이다.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손안에 넣는 것이 영화의 주제처럼 보이지만 아이는 오히려 희망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투쟁하고 주변 사람들은 아이의 그 바람이 손을 벗어나지 않게 하기위해 같이 붙들어 준다. 영화 초반부터 시장에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 풍선 소년도 라지에의 어린 오빠도 라지에가 지폐를 찾고 금붕어를 꿈꾸고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내내 갈등 없이 연대한다. 소년은 형형색색의 풍선이 매달린 장대를 들고 시장을 배회한다. 그냥 놓아버리면 어디든 훨훨 날아가 버릴 테니 한 동안은 꼭 쥐고 있어야 하고 때가 되면 잘 놓아줘야 한다. 거래되는 것은 욕망일 뿐 희망은 소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층 한산해진 거리,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과 함께 마지막 남은 하얀 풍선을 들고 발을 옮기는 소년의 움직임을 포착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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