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987)

 



아이들이 나온 이란 영화들을 차례차례 감상하며 그 궤적을 따라가니 그 끝에는 결국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있었다. 이 영화는 아마도 많은 한국인들이 본 최초의 이란 영화가 아닐까 싶은데 적어도 내겐 그랬다. 당시 예술영화들을 주로 상영하는 작은 극장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나 마지드 마지디의 어떤 작품들을 보았고 그런 극장들을 채우고 있던 영화 포스터들은 시적이고 아름다웠다. 찾아낸 영화 포스터 몇 개를 보니 그 모습은 역시나 정적이고 평화롭지만 온 동네를 절박하게 뛰어다니던 아이를 다시 만나고 나니 저 장면들은 오히려 퍽이나 동적으로 다가온다.




오래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 무엇을 느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보아왔던 것과는 너무 다른 풍경에 우선 집중했을 것 같고 한 가지만이 중요했던 소년의 마음이 가상하고 아름답다 느꼈을 거라 예측해 볼 뿐이다.

그래서 그 소년은 어쩌다 친구 공책을 가져왔을까. 결국 친구의 집을 찾아냈나.라는 단도직입적인 물음을 안고 40년 전의 이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소년이 그 한 나절의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소년과 어른의 대화, 해가 넘어가며 어둑어둑해지던 동네 구석구석의 정취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 영화 이전의 (아이들이 나오는)이란 영화들을 웹상에서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기에 이 영화를 그런대로 그 이후 이란 영화의 큰 흐름을 결정지은 하나의 효시로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나오는 이란 영화들에 반복되는 패턴들을 나름 정리하는 게 가능해진다.

선생님은 엄격하다. 아이들의 작은 실수와 지각에도 학교에서 쫓아내겠다는 말로 엄포를 놓는다. 부모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많은 집안일을 시킨다. 아이들은 자기 인생에서 그 순간의 너무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어른들에게 털어놓지만 그것들은 어른들의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난다. 영화를 보다보면 아이들이 조금만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부모에게 얘기할 줄 알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 답답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이 묻지 않는 이상 굳이 많은 설명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 다른 이에겐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거라 인식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그 자신 안에선 확고하기 때문이다.  모든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은 결국 어떤 결과에 도달한다. 그 여정에는 어떤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완벽하게 낯선 사람, 길에서 사귄 또래 아이,  버스 안의 승객들, 이웃. 어쩌면 아이이거나 아이의 원형을 최대치로 간직한 어떤 어른이다. 영화를 보면서 윤가은 감독의 데뷔작 <콩나물> (https://ashland.tistory.com/1016)
이 많이 생각났다.




네마짜데는 매번 숙제를 공책에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꾸지람을 듣는다. 어떤 아이는 집이 너무 멀어서 늘 지각을 하고 어떤 아이는 부모가 매번 힘든 일을 시키니 어깨가 아파서 책상 앞에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한다. 잔뜩 혼난 친구를 위로하는 것은 오로지 덜 혼난 아이들의 몫이다. 아마드는 네마짜데의 공책을 실수로 집에 가져온다. 공책이 전부 똑같기 때문이다. 또 숙제를 공책에 할 수 없어 내일도 혼날 네마짜데를 생각하니 아마드의 마음은 급해진다.




친구가 공책에 숙제를 하고 내일은 그가 혼나는 모습을 보지 않는 것, 그래서 그가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는 것. 그것이 그날 아마드의 인생 목표이다. 나무 몇 그루를 지나고 굽이진 골목을 걸어 사라진 공책 때문에 하루 종일 걱정했을 네마짜데를 만나 그의 잃어버린 하루를 돌려주는 것만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친구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하고 그것이 진정한 우정이며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분명한 개념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간절하고 타협의 지점을 찾느라 애쓰지 않으며 그 여정을 방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어떤 섭섭함도 끼어들 틈이 없다.


 
 
안타깝게도 건너마을에 사는 네마짜데의 집을 찾는 여정은 쉽지 않다. 중간에 만나자는 약속도 집주소를 묻는 전화도 걸 수 없다. 아마드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부지런히 나아간다. 마을에는 오래된 문짝을 현대식으로 바꾸라고 종용하는 젊은 업자와 별생각 없는 할아버지 세대 간의 설전이 오간다. 아마드는 문 파는 아저씨를 따라가면 네마짜데의 집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나귀를 탄 그를 따라서 방금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만 그곳은 네마짜데의 집이 아니다.

아마드는 오래된 문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아쉬워하는 문 만드는 장인 할아버지도 만난다. 마음이 급하지만 할아버지의 어두운 공방에서 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는다. 빨리 걸을 수도 없고 눈도 어둡지만 할아버지 역시 아마드의 얘기를 듣고 그를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결국 할아버지가 데려다준 곳도 네마짜데의 집은 아니었지만 어둠 속에서 그가 건네준 작은 꽃 한 송이와 결국 돌려주지 못한 공책을 들고 아마드는 집으로 돌아온다.
 
 

 
 
아마드와 할아버지가 걷는 밤거리는 오래된 창문의 정교한 문양을 뚫고 나온 빛들이 만들어낸 풍경들으로 채워진다. 아주 간혹이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아마드가 끝내 수행하지 못한 임무조차도 그 완전한 풍경을 방해하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전통문을 만들어내는 오래된 공구들을 집어넣고 단단하고 실용적인 문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의 문에 대한 고집과 공책을 돌려주겠다는 아마드의 책임감은 언덕을 지키는 나무 한 그루처럼, 오래도록 책갈피로 남을 꽃 한 송이처럼 최소한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완전히 지켜진 가치로 남는다.
 
 
할아버지를 따라 어둑어둑해진 골목을 걷는 아마드의 꽁무니를 뒤쫒으며 언젠가 어른들의 시간을 지체시키며 내가 흠뻑 젖어들었을 풍경과 그 순간 내 마음속을 완전히 차지했던 생각들이 무엇이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내게 그때 가장 중요했던것은 무엇일까. 지금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대로 일치할까. 내 마음이 어떤 중요한 것에 계속 물을 줘서 저 언덕의 나무 한 그루처럼 그것이 나도 모르게 자라나 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다면 나는 과연 그 나무를 알아볼 수나 있을까.    
 

반응형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Runner (1984)  (3) 2025.12.20
Armand (2024)  (3) 2025.12.19
The White Ballon (1995)  (5) 2025.12.16
Baran (2001)  (8) 2025.11.29
Le passe (2013)  (0) 2025.10.14
A Seperation (2011)  (0) 2025.09.22
About Elly (2009)  (0) 2025.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