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은 늘 함께 영화를 만들던 사프디 형제가 드디어 각자 새 영화로 돌아온 해. <언컷 젬스> 이후 바로 후속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상당히 천천히 돌아왔다. 조쉬 사프디의 <마티 슈프림>은 아직 못 봤고 베니 사프디의 <더 스매싱 머신>만 우선 봤다.
형 조쉬 사프디가 만든 <마티 슈프림>은 사프디 형제 영화의 시나리오에 늘 참여했던 로널드 브론스타인이 여전히 함께 각본에 이름을 올렸다. 공동 각본이라고 하면 사실 늘 드는 의문은 어느 정도 동등하게 기여해야 공동이라고 하는 걸까. 네가 먼저 반 쓰면 내가 반쓸게 하고 서명하는 것은 절대 아닐 테고 이것은 정말 함께 만들어간다는 끈끈한 신뢰 없이는 안될 것 같다.
그래서 사실 베니 사프디 단독 각본의 <더 스매싱 머신>보다는 로널드 브론스타인이 참여한 <마티 슈프림>에 이전의 사프디 형제 스타일이 더 남아있지 않을까 해서 좀 더 기대를 한다. 로널드 브론스테인과도 작별하는 것이 이전 작업 스타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라면 한편으론 사프디 형제라는 타이틀에서 진정으로 벗어난 사람은 베니 사프디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들의 필모그래피에는 로널드 브론스테인이 사프디 형제 이상의 웃긴 놈일거라는 예측을 가능케 하는 영화가 있다. 이 형제의 광기와 똘기는 어쩌면 로널드 브론스테인을 만나 확장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했기에.

사프디 형제의 초기작이자 그들의 어린 시절에 관한 자전적 영화 <Daddy longlegs>는 이들의 동반자 로날드 브론스테인이 각본에 참여했음은 물론 사프디 형제의 아빠 역을 맡아 연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나오니깐 우선 친근하고, 아이보다 더 철없는 어른이 나와서 아이를 기르는 모습을 보며 공감되고, 35밀리로 찍은 화면은 졸업 작품처럼 자유분방하면서도 아련하고, 초기 짐 자무쉬나 구스 반 산트의 독립 영화 느낌도 좀 난다. (실제로 영화 속 로널드 브론스테인은 구스 반 산트 영화 속의 맷 딜런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겉보기엔 그저 우스꽝스럽고 유쾌하지만 함께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형제의 애잔한 우정, 영화광이었던 어떤 젊은이의 초상이자 영원히 철없는 상태로 남고 싶은 어떤 어른의 혼잣말이 담긴 영화라고 해도 좋겠다.
아마도 사프디 형제가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언젠가 이들 중 누군가 수상소감에서 드라마틱하게 거론할 것만 같은 그들의 아빠이자 어린 자신들을 돌보며 좌충우돌했던 어떤 젊은 남자에게 헌정하고 한편으로는 아빠 그 자신의 회상일지도 모를 영화.

영화는 재혼한 엄마와 함께 사는 바가지 머리의 두 형제가 이혼한 싱글 대디와 함께 보내는 며칠의 여정을 따라간다. 90년대 뉴욕이 배경이라는 것, 아버지가 작은 극장의 영사기사라는 것 등등의 요소들 때문에 보고 있으면 결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로 자라난 형제의 삶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고 그들이 만든 영화 속 뉴욕 풍경이 드문드문 떠오르기도 한다.
로널드 브론스테인이 연기한 아빠는 마치 영화 속 두 아이의 실제 아빠 같기도 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프디 형제의 아빠, 그 자신이라 생각될 정도로 생생하다. 출연한 아이들은 길거리 캐스팅이고 그들의 실제 엄마도 덩달아 같이 엄마 역으로 출연했는데 분량은 아주 적지만 이 엄마가 전남편과 말다툼하는 연기도 꽤나 리얼하다. 나중에야 이들이 소닉 유스 기타리스트의 아이들이자 아내로 밝혀졌다고 한다. 뉴욕은 정말 그런 동네인가 보다.
아직은 더 놀고 싶은 나이에 생긴 두 아이, 이혼을 했으니 연애도 해야 하고 여자 친구와도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친구들이랑 야밤에 돌아다니며 뉴욕 벼름박에 그래피티도 그리고 싶고 가끔 구류도 살아야 하는 아직까지는 그 순간을 만끽하며 살고 싶은 보헤미안 아빠이자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도록 법적으로 할당된 소중한 시간을 내치지 않고 어떻게든 재밌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아빠를 로널드 브론스테인이 기막히게 연기한다.

영화는 유년시절의 여러 에피소드들도 꽉 채워져 있다. 아빠는 다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콘을 손가락에 끼고 아이들 생각에 행복해져 학교를 향하고 말썽피운 아이들을 두둔하며 교사와 언쟁한다. 아이들 픽업시간에 맞춰 영사기를 틀자마자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미친 듯이 뛰어서 학교를 향하고 아이들은 아빠가 일하는 동안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프린터 설정 1000장 상태에서 직접 그린 만화를 실수로 복사한다. (이 일로 직장에서 상사가 노발대발하는 장면에 조쉬 사프디가 동료역으로 나와서 노심초사하는데 정말 절묘하다.) 아빠는 어제 알게 된 여자가 다른 남자랑 요트 여행을 가는데 애들까지 데리고 꼽사리에 끼는 눈치 없는 (척하는) 남자, 박물관에도 가고 스쿼시도 하며 미국 코스모폴리탄 이혼 영화에 나오는 '바람직한 가장의 루틴'을 충실히 수행하는 남자이다. 이따금 창피한 행동을 하지만 우리의 영원한 방패막, 우리들의 수퍼맨. 아마 그는 아들들의 영화에 진정한 팬이되었겠지. (실제 헤븐 노우즈 왓 버스씬에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사프디 형제 아빠는 창문도 없는 옷장 같은 곳에 애들을 넣어두고 오랜 시간 밖에 나가기도 했단다. 그 장롱 속에는 카메라며 만화책이며 뭐가 많아서 심심하진 않았다고. 일은 해야 하는데 돌봐줄 사람을 결국 구하지 못해 애들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장면도 나오는데 영화 속에서 이들은 며칠 동안 잠을 잔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면 정말 살아남았기에 회상할 수 있는 무책임하고도 치명적인 부분일 테고 한편으론 비극으로 끝난 세상의 많은 일들도 그 의도는 나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을 거라 추측하게 된다. 그러니 세상의 작은 오류들과 자잘한 잘못된 판단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몸성히 살아남은 우리 모두 일단은 운 좋은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그렇게 아빠 집에서 질풍노도의 며칠을 보낸 아이들은 넓은 응접실에서 피아노도 치고 학교 과제도 성실히 봐주는, 재혼 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얻은 엄마와의 나름 각 잡힌 삶 속으로 돌아온다. 아마도 그들이 옮겨 다니며 살았다는 뉴욕 퀸즈와 맨해튼의 차이처럼 이 형제는 함께 자라는 동안 오랜 시간의 대화와 회상을 통해서 두 가지 상반된 환경에서 보낸 유년시절이 좋든 나쁘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고 결론을 내리고 받아들인 것 같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부모가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노력을 하는지 그것이 결과적으로 옳고 그른가 와는 상관없이 그 동기에 서린 일말의 진심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 적어도 영화에선 그런 부모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어른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 영화는 지금 우리가 익히 아는 그들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의 실험적인 영화이니 어릴 때 함께 만화를 그리고 아빠의 비디오카메라를 만지고 놀던 형제가 좀 더 값비싸고 좋은 기계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만든 영화라는 느낌으로 충만하다. 워낙에 초창기 독립 영화라 '우리는 앞으로 정말 끝장나는 영화를 만들 사람이다'라는 암시처럼 다가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거다.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들던 순간부터 언컷 젬스까지 이들은 영화광이었던 자신의 아빠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잠가놓고 간 그 장롱 속에서처럼 꽁냥꽁냥했던 것일지도.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앞으로의 그들을 응원하고 운 좋게도 두 배나 많은 샤프디 형제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서 한편으론 좋다.

언제 다시 뭉칠지 알 수 없는... 사프디 형제 전작들.
언컷 젬스 (https://ashland.tistory.com/895)
굿타임 (https://ashland.tistory.com/559006)
헤븐 노우즈 왓 (https://ashland.tistory.com/559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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