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혹 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출연자가 행복한 표정으로 아보카도 식물 화분을 보여줬다. 씨를 발아시켜서 심은 것이 성공적으로 자란 것이다. 아보카도 열매까지는 불가능하겠지만 줄기가 나오고 잎사귀가 매달리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을 거다. 아보카도 씨를 발아시키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렵진 않다. 적신 휴지에 잘 감싸서 그릇에 넣고 랩으로 덮어놓으면 대략 20여 일 후면 싹이 나온다. 그러니 가장 큰 '업적'은 인내. 하지만 그 기다림 후에도 모든 씨앗이 발아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분무를 한두 번 더 하느냐 마냐의 차이로 흉하게 짓무르기도 하고 바짝 마르기도 하고 궁금해서 랩을 걷고 촐싹맞게 들춰보다 치명적인 손독에 감염되는지도 모르고... 아보카도를 많이 먹어서 여러 씨앗으로 동시에 발아 시도를 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한두 개 정도 성공해서 수경재배나 흙 위에 놓는 과정까지 간다고 해도 물론 모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 여성도 언젠가의 나처럼 몇 번의 시도 끝에 그 식물 한 그루를 얻었을 거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얻은 식물인데 새싹이 나오자마자 기르는 애완견이 파헤쳐서 먹는다던가 엎어진 화분을 다시 손수 밟기까지 해서 뭉개지던가 하면 그것은 누구 잘못일까. 그리고 그건 어떤 기분일까. 그걸 과연 '기분'이라는 하나의 상태로 쉽게 규정할 수 있을까.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의 <피시스 오브 어 우먼>. 마르타(바네사 커비)는 가정분만을 시도하고 거의 성공적으로 분만을 했지만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본지 몇 분 만에 죽고 만다. 출산 후의 하혈 때문에 여전히 패드를 착용한 채 출근하고 직장 동료들은 그녀를 편히 대하지 못하며 모유로 가슴은 불어나지만 아이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마르타는 분만을 도운 조산사와 지루한 법정공방을 이어가고 남편과의 사이는 멀어진다.
남편 숀(샤이어 러버프)은 다리를 건설한다. 다리가 완성되면 꼭 딸과 함께 건널거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의 진통이 시작되고 조산사가 올 때까지 농담을 주고받으며 힘든 아내옆을 지키며 조산사를 기다린다. 이 장면이 꽤 길게 이어지고 리얼하다. 가정분만을 하려는 사람들의 용기와 신념 그리고 그 과정과 장단점, 그 최악의 결과 등에 대해서 생각하고 의문을 던지다 보면 마르타에게 위기가 닥치고 비극이 일어난다. 그렇게 '마르타의 일부'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원하는 조산사 대신 다른 조산사가 왔다는 것부터 이미 불길하다. 하지만 사실 그런 요소들이 아이의 죽음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진 못한다. 위험이 따르는 가정분만을 자기 의지로 선택한 것, 모든 응급조치를 취했고 합법적인 조산사지만 결국 성공적인 분만을 하고도 아이가 죽어버린 것, 이제 와서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는 것은 마르타에게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어떤 결과여도 아이가 없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잘 싸워서 이겨서 어떤 금전적 보상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원칙적이고도 강압적인 엄마와 확증 편향의 광적인 여론은 조산사를 살인자로 몰고 가고 마르타의 마음은 사실 그렇게 편하지 않다.
마르타는 출산 당시 사진을 찍던 남편을 떠올리고 재판도중 쉬는 시간에 필름을 현상하러 간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만났던 아이의 얼굴을 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것, 그리고 아주 잠시 품에 안았던 순간의 향기를 기억한다.

출산을 하고 마르타는 사과에 집착한다. 그걸보며 나는 '이가 약해져서 딱딱하고 신 사과가 참 좋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의아했었다. 마르타는 발아에 관련된 책을 산다. 계속해서 사과를 먹으며 씨를 모으고 적신 솜 위에 올려 냉장고에 넣는다. 부엌은 밀린 설거지로 엉망이고 그의 삶은 출산 당일에 멈춰버렸지만 사과씨는 계속 늘어난다. 법정에서 상대편 변호사는 출산 당일 아이의 상태와 모습에 대한 잔혹한 질문들을 마사에게 던진다. 마르타는 아기에게서 사과 향기가 났었다고 말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향기는 그녀에게 남았다. 마르타는 조산사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정공방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조산사는 눈물을 흘리고 마르타와 숀은 헤어지고 마르타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보카도 식물을 보고 웃음짓는 여성을 보고 마르타의 사과나무가 생각났다. 임신이 되는 것도 임신 과정을 유지하는 것도 출산도 그리고 아이가 이젠 정말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하는 데에도 많은 세월이 걸리고 그 이후에도 사실상 인간의 삶은 확정된 것이 전혀 없다. 엄연히 타자의 삶이지만 내 것처럼 소중한 것은 그것은 어찌 됐든 나로부터의 조각이자 일부이기에.

이 영화는 헝가리인 극작가 카타 베베르의 극본으로 바르샤바에서 연극으로 처음 공연됐다. 이 연극을 빌니우스에서도 구 러시아 극장에서 몇년째 하고 있지만 한 단어도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폴란드어이기 때문에 자막이 있다고 해도 아직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카타 베베르와 남편이자 감독인 코르넬 문드루초의 실제 경험이 반영된 극본이고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부부의 공동작업이다.
사실 영화는 단지 출산으로 아이를 잃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써 아마도 배상금을 통해 부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옛 유태인 세대와 그 자식 세대 간의 갈등과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기 것이 될수있다면 어찌 됐든 절대 놓치지 않고 지키려는 본능으로 충만한 옛 세대를 대표하는 엄격하고 강박적인 엄마(엘렌버스틴) 밑에서 마르타는 행복하지 않다. 심지어 형부는 장모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벌벌 떤다. 늘 뼈 있는 말을 하고 사람을 능력으로만 판단하고 돈이면 다 될 것이라 생각하며 완벽을 요구하는 엄마 주위에서 모두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엄마는 아무리 아이를 잃는 고통을 겪었다고 해도 딸이 좀 이겨내고(아마도 우리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고통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을지도) 씩씩하게 자기 몫을 차지하길 원하지만 마르타가 대표하는 젊은 세대는 자기 몫을 위한 투쟁보다는 용서를 택한다.

6년 전 영화이긴 하지만 오랜기간 폴란드계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영화 소재로 많이 쓰였던걸 생각하면 요새 헝가리계 유대인들의 얘기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 같고 헝가리 출신의 예술가들도 전보다 훨씬 주목받는 것 같다. 중심은 늘 옮겨가니깐. 벨라 타르는 레전드로 남긴했으나 타계했고 국제적으로 헝가리 영화가 더 부상한다면 아마 이 부부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작품들도 꽤 볼만하기 때문에.
마르타의 형부역으로는 베니 사프디가 출연한다. 자동차 세일즈맨이자 장모 앞에서 벌벌떠는 유태인 남자이다. 사프디 형제가 더 이상 공동작업을 하지 않는 것도 베니 사프디가 연기자로서의 커리어도 쌓고 있기 때문이란 소리가 많았다. 근데 <굿타임>에서도 그랬지만 분량이 많지 않아도 이분이 연기를 잘한다. 아마도 베니 사프디는 본인이 출연하고 감독하는 영화를 만들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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