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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The Mirror (1997)

 
 
자파르 파나히의 두 번째 작품 <미러>.  <하얀 풍선> https://ashland.tistory.com/559049 에서 금붕어가 사고 싶었던 라지에를 연기한 아이다 모하마드 카니 (Aida Mohammad khani)의 실제 여동생 미나 모하마드 카니(Mina Mohammad Khani)가 극 중 '미나'로 등장한다. 보는 동안 같은 아이라고 생각해서 <하얀 풍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인가 보다 생각했지만 영화 중반부터 반전이 있다. 두 아이의 생김새가 비슷하고 그 사이 자란 느낌이 있어서 재밌게 이입할 수 있다.
 
학교가 끝나고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미나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를 포기하고 혼자서 집에 가기로 결정한다. 깁스를 해서 불편한 팔에 몸의 반은 차지하는 책가방을 들고 겁도 없이 야무지게 길을 나선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히잡은 언제나 거추장스러워 보이고 운동화는 몇 발짝 걸어가면 벗겨질 것 같다. 미나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다른 이란 영화 속의 많은 어린 소녀들에게 늘 그런 일이 벌어지곤 했으니깐.
 
늘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가던 길이었으니 식은죽먹기라 생각했겠지만 엄마 없이 혼자 가자니 그 여정이 간단하지 않다. 이곳은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무섭게 질주하는 대도시이고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길을 묻는 것도 쉽지 않은 복잡한 도시이다. 실수로 다른 방향에서라도 버스를 타면 끝장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으로 분주하다. 아이혼자 신호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부터 쉽지 않다. 미나는 모르는 여성의 차도르를 뒤에서 붙잡고 횡단보도를 간신히 건넌다. 서서  울거나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마치 자기를 보고 있는 관객들을 안심시키겠다는 듯이 터벅터벅 걸어 나간다. 
 
 

 
 
미나는 낯선이들에게 자기가 기억하는 주요 장소들을 설명하고 그 장소를 목표로 조금씩 이동하는 작전을 쓴다. 필요이상의 친절은 사양하고 가능한한 자기힘으로 헤쳐나가려 노력한다. 한편으로 과연 미나가 어딜가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까 걱정된다. 어른들 역시 지체 없이 길을 알려주지만 과연 제대로 알려주는 건지도 의문이다. 아이가 옳을 수도 있고 어른들이 틀릴 수도 있지만 자꾸 어긋나는 행로에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애매해진다.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버스를 몇 대씩이나 갈아타고 택시를 타고 손도 닿지 않는 공중전화에서 전화도 걸고 미나는 그렇게 하루치의 여행을 떠난다. 단순히 집에가겠다는 생각이 아닌 혼자서도 가볼만하다는 자기확신이 깔려있다.  미나가 자기 집을 찾아가는 것은 아마드가 친구 집을 찾아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모르는 집을 찾아가야 했던 아마드와 아는 곳을 찾아가는 미나는 근본적으로 그 출발이 다르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결코 수월하지 않고 모른다고 해서 늘 힘든 것은 아니다. 사실 가장 힘든 것은 보는 사람이다. 왜냐면 전적으로 그 길을 모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드문드문 이란과 한국의 축구 경기 중계방송이 흐른다.  <하얀 풍선>이 곧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해서 금붕어를 사들고 뛰어가는 행복한 아이들과 함께 새해를 알리는 방송을 들려주며 끝나는 것처럼 미나가 길을 묻고 우리의 걱정이 고조되는 사이사이 잊을만하면 중계방송이 흘러나온다. 집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미나만큼 거리의 남자들은 경기 결과에 몰두해 있다. 그 옛날 한국과 이란의 이 경기는 한국이 2:6으로 대패한 충격적인 경기이다. 이란인들에게는 아마도 한국과 이탈리아전만큼의 극적인 경기였을 거다. 생동감있는 축구 중계 방송으로 인해 미나의 여행은 허구가 아닌 좀 더 실제적인 장면으로 다가오고 미나가 집을 찾고야 말 거라는 확신이 더해진다. 
 
 
 

 
 
 
미나는 여러 버스를 갈아타면서 버스 안의 폐쇄된 작은 사회를 경험한다. 그것은 탁트인 번잡한 거리를 걷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다. 여성과 남성의 공간이 버스에선 분리되어 있다. 결혼한 커플이어도 남자와 여자는 떨어져 앉아야 한다. 함께 얘기 나눌 사람이 없는 미나는 버스 승객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는데 열중한다. 여자들끼리만 타니 남자가 있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허물없이 나눈다. 손금을 봐주는 사람들, 딸이 덜 고생했으면 하는 마음을 내비치는 여자, 자식을 원망하는 할머니, 멀찌감치 떨어져서 버스 반대편에 앉은 남자 친구와 달콤한 눈빛을 주고받는 여자까지. 어린 미나는 어린아이이기 이전에 버스 뒷칸으로 밀려난 여성이 되어  버스 속의 작은 이란을 목도한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이 지나가면서 갑자기 미나는 히잡과 가짜 깁스를 벗어던지고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질질 짜는 모습을 반 친구들이 볼걸 생각하면 짜증 나고요. 하라는 대로 말하는 것도 짜증 나요.'라고 말하고 버스에서 내린다. 그리고 버스 앞쪽에는 복잡한 촬영 장비들과 함께 자파르 파나히를 비롯한 연출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부터 보는 사람은 혼란스러워지는 동시에 왜 혼란스러워지지 라는 질문도 동시에 던진다. 
 
이것조차 감독이 의도한 연출인걸까. 아니면 정말 미나의 충동이 불러온 실제 상황인 걸까. 나는 미나가 계속 연기를 해서 결국 집을 찾아내는 말랑한 결말을 보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버스 속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버스를 바꿔 타던 미나 역시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은 아니었을까. 미나는 거짓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났다기 보단 버스 승객들이 쏟아내던 현실적인 대화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건 아닐까.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급히 버스를 타려던 자신을 여성칸으로 가라며 핀잔을 주던 사람에게 화가 났고 멀리 떨어진 남자친구에게 웃음 짓는 여자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본 건 아닐까. 결혼생활의 부당함을 토로하는 택시를 탄 여자 승객과 자식을 원망하는 할머니를 통해 집으로 가는 짧은 여정 속에서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불편한 삶을 본 건 아닐까. 미나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마치 거울 속의 자신과 같아 그 당혹감에 빨리 그 실제 현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촬영이라는 허구를 부정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미나라는 아이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것보다는 좀 더 즐거웠기에 빨리 정말 집에 가고싶다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미나는 촬영을 거부하고 자파르 파나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크를 여전히 꽂은 채로 정말 자기 집을 향한다. 카메라는 여전히 미나를 따라간다. 동네 슈퍼 아저씨는 내가 너를 섭외하고 돈도 받았는데 영화를 다 안 찍고 오면 어떡하냐고 핀잔을 준다. 미나는 골목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고 영화는 끝난다. 
 
당시 이란 영화의 트렌드로써 여전히 어린 아이를 출연시킨 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부터는 확실히 이란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변하는 사회에  대한 자파르 파나히의 의문이 꽤 영리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에도 픽션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며 그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지 묻는다. 이전까지는 동정이나 연민, 반성 같은것이 끼어들 여지가 있었지만 어려서 약하고 여성이라서 피해를 입는다라는 관점에서 미나를 바라보며 동정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버린다.

영화 촬영을 거부하고 그냥 집에 가버리는 상황은 그것이 실제상황이었든 설정이었든 이 영화 이전과 그 이후에도 만들어진 일부 영화들에 보기 좋은 한방을 날린다. 약간 이런 톤이랄까. 나라가 이래저래 검열을 하니 우리가 애들을 데려다 놓고 영화를 찍으니 서방에선 너무 아름답고 순수하고 심금을 울리는 영화를 찍는다고 난린데 봐라 애들도 다 안다. 이건 허구가 아닌 현실이라는 걸. 진짜 벌어지고 있는 것을 연기인척 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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