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

Bag of Rice (1996)



 

 

작년에 꽤 많은 이란 영화를 봤고 연도순으로 기록해놓고 싶었지만 중간중간 무임승차하는 영화들과 어떤 이란 영화들에 대한 편애로 그러지 못했다. 그런대로 이 영화는 어린 소녀들의 모험을 다룬다는 것에서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선 <하얀 풍선> https://ashland.tistory.com/559049 <미러> https://ashland.tistory.com/559063와 함께 묶일 수 있을 것 같아 이어서 쓴다. 금붕어를 찾아 헤매는 라지에, 집을 찾아 헤매는 미나, 그리고 쌀을 찾아 테헤란을 누비는 소녀, 자이란.  물론 깊게 들여다보면 이 소녀의 사정은 조금은 다르다.
 
아이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와중에 마주치는 크고 작은 미션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거의 최상위 레벨이다. 이제는 저 아이를 좀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감독은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을 곳곳에 늘어놓는다. 문제는 아이 혼자가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이웃 할머니까지 동반한 여행이라는 것. 따라잡기에는 너무나 빠른 4살짜리 여자아이와 걷는 것도 불편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쌀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저 Bag 은 어느 정도의 쌀이 담긴 자루를 말하는 걸까. 가마니, 자루, 봉지, 한 소쿠리 뭐 많은데. 그 쌀이 가볍기를.   

 

 

 

아이가 부모의 시야에서 벗어나 세상에 혼자 내던져지던 지금까지의 이란 영화들은 아이들이 혼자니깐 보기에 불안했다. 하지만 아이가 이제 혼자가 아닌데도 그런 아이를 보호해야 할 책임을 떠맡은 할머니 역시 보살핌이 필요한 약자이기에 마음은 더 편치 않다. 본능에 충실한 아이는 늘 거침없이 행동하고 할머니는 그런 아이를 제대로 다룰 수 없어 불안하다. 그런 아이와 할머니를 동시에 봐야 하는 관객은 집요하게 이어지는 난관을 그저 구경하는 수밖에 없다.  
 
여느 때처럼 테헤란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의 끝에 다달아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엔 어린아이를 챙기느라 분주한 엄마, 돈 버느라 바쁜 아빠, 조금 철없는 둘째 혹은 셋째, 좀 철이든 첫째, 중정의 연못을 둘러싼 곳엔 어떤 이웃들이 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 소녀는 너무 심심하다. 언니들은 학교에 가니깐 어쨌든 자유롭고 어린 동생은 어리니깐 엄마가 놀아주지만 이 아이는 집에서 위치가 애매하다. 엄마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게 삶인 아이에게 쓸모 있음을 요구하며 잡다한 일을 시키고 아이는 그저 밖에서 뛰어놀고 싶고 공원에도 가고 싶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다. 어쨌든 아이는 놀거리를 찾아 집을 나선다.
 
이웃 할머니는 오늘이 배급 마지막 날이라 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아들에게 쌀을 받으러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들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했나 아무튼 노모를 귀찮아하고 혼내며 결국 출근을 해버린다. 할머니는 쌀을 포기할 수 없어 결국 혼자 집을 나선다. 90년대 이란에선 그런 배급이 있었나 보다. 초등학교 다닐 때 매년 불우이웃 돕기의 일환으로 쌀을 모아서 기부하는 행사가 있었다. 교실에 각양각색의 쌀봉지들이 모였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라면봉지에 쌀을 담아 고무줄로 동여맨 쌀이다. 할머니가 받으려는 쌀이 그런 라면봉지만하다면 무겁지 않을 텐데. 하지만 설마 그만큼의 쌀 때문에 그렇게 애가 탄 건 아닐 거다. 과연 혼자서 가져오는 게 가능할까. 

 

 

 

그렇게 엄마 말을 안 듣는 어린 소녀와 다 큰 자식 말을 안 듣는 할머니는 골목에서 만난다. 아이는 쌀을 가지러 가겠다는 할머니를 기어코 따라가겠다고 하고 안된다 된다 안된다 된다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두 사람은 그렇게 집을 나선다. 
 
예상대로 쌀 배급장소까지 가는 것부터 쉽지 않다. 하지만 소녀와 할머니를 곤경에 빠뜨리는 모든 문제들은 매번 적절하게 해결된다. 어떤 장애물이 생겨도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된다. 그러니 다음 장애물이 나오면 뭐 어련히 해결하겠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져야 하지만 신기하게도 긴장감은 없어지지 않는다. 기어코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아이는 급히 버스를 타다 모자를 떨어뜨린 아이를 보고 모자를 주워 위험천만한 도로를 질주해서 버스를 따라잡는다. 할머니는 당연히 따라갈 수 없고. 할머니는 쌀 배급표를 길에 떨어뜨리고. 안경도 수로에 떨어뜨리고. 힘들게 쌀을 사러 갔는데 그 배급표가 아니라고 하고.  한 자루만 가져오면 될 것을 온 김에 다음 쌀도 가져간다고 세배나 많은 쌀을 배급받고. 다행히 쌀을 버스까지 옮겨준다는 친절한 사람이 있어서 그를 따라가는데 똑같은 옷을 입은 다른 사람을 따라가기 시작하고. 쌀을 버스에 간신히 실었는데 옆사람이 오지랖을 떨어 옮겨준다고 하다가 쌀주머니가 찢어져서 쌀이 새기 시작한다. 
 
이때까지 벌어지던 일들은 물리적으로 해결이 가능해 보였지만 쌀이 새는 부분에서는 약간 멘붕이 온다. <소공녀>에서 미소는 친구집을 청소해 주고 쌀을 받아오다가 구멍이 뚫려 길에다가 다 흘린다. 쉽게 받은 쌀도 아닌데 이렇게 귀하게 생각해서 가져오는 것들은 왜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걸까. 승객이 꽉 찬 버스에서 쌀이 새기 시작하는데 버스 안에 있던 여성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봉지들을 꺼내서 쌀을 담기 시작한다. 쌀 한 자루가 쌀 열몇 봉지가 되는 기가 막힌 순간에 웃음이 나면서도 슬프고 좀 오그라들면서도 감동적이다. 쌀을 담긴 담았다만 할머니와 소녀 둘이서 다 옮길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들이 한 봉지씩 들고 옮겨준다. 장관이다. 이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하다. 

 

 

 

쌀을 늘어놓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소녀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고 할머니를 조른다.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화를 내거나 소녀를 설득하는 대신 샌드위치를 사러 간다. 할머니는 커다란 쌀자루도 산다. 그 사이에 아이는 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정류장 뒤 놀이터에 간다. 돌아왔는데 아이가 없자 할머니는 혼비백산. 그런데 아이는 공원에도 가고 싶다. 엄마가 데려가주지 않은 공원, 어쩌면 아이는 할머니와 쌀을 사러 가면 놀이터든 공원이든 놀러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고마운 아저씨가 할머니와 아이를 태워준다. 공원에서 노는 아이를 보며 할머니는 미소 짓는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쌀자루와 함께 집에 돌아온다. 이들은 아주 맛있는 쌀푸딩을 한 솥 끓여서 이웃들에게 한 사발씩 나눠준다.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직접 베풀 수는 없지만 결국 곁에 있는 가장 가까운 이들을 챙기면서 손이 닿지 않는 먼 곳까지 연대한다. 적어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녀와 할머니가 쌀을 가지러 가는 미션의 성공은 단순히 운이 따랐고 기지를 발휘했다기 보단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순간에 서로에게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모두들 그 순간에 타인이 처한 어려움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하나가 된다. 자이란이 만나는 아이들은 늘 자기가 가진 것에서 나눌 줄 안다. 그들을 공원까지 태워준 남자에게 할머니는 무엇으로 이 빚을 갚냐고 고마워한다. 그 낯선 남자는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말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반응형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Mirror (1997)  (0) 2026.02.03
Pieces of a Woman (2020)  (0) 2026.02.02
White Material (2009)  (0) 2026.02.01
Lamb (2021) - 아이슬란드 양(羊)영화 2  (0) 2026.01.30
Oslo, August 31st (2011)  (0) 2026.01.23
Bashu,the Little Stranger (1986)  (0) 2026.01.19
Daddy Longlegs (2009)  (0) 202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