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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크리스마스 이브 쿠키- 쿠치우카이 Kūčiukai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리투아니아 마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크리스마스이브 과자 '쿠치우카이' (Kūčiukai). 크리스마스이브를 뜻하는 kūčios라는 단어에 -(i) ukas라는 지소체어미를 덧붙이면 그 즉시 귀엽고 작고 소중하고 따뜻한 느낌의 단어가 된다. 그런 조그맣고 앙증맞은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므로 복수 어미를 써서 Kūčiukai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마트에 수북이 쌓인 이들을 보면 순간 그 모습이 너무 친숙하여 마치 일 년 내내 마트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미처 다 팔리지 못한 쿠치우카이들은 한편으로 밀려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사라진다. 어김없이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축제 전의 산만했던 분위기에서 한발 물러서서 또 다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리투아니아어 114_어드벤트 리스 Advento vainikas 부활절즈음해서 초콜릿 토끼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11월 중순이 되면 어드벤트 달력들과 파네토네가 담긴 둥글고 큰 틴 케이스들로 이미 리투아니아의 마트도 점령당한다. 보통은 대목을 맞이한 초콜릿 회사들이 내놓는 초콜릿 달력들이 주를 이루고 마트의 또 다른 한쪽은 붉고 푸른 성탄 장식들로 화려해진다. 꽁꽁 얼기 시작한 어두운 거리 곳곳은 크리스마스 조명들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 리투아니아의 크리스마스 공식 휴일은 24,25,26일 3일이지만 크리스마스이브부터 1월 첫째 주까지 2주간 겨울 방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12월은 크리스마스 연휴와 겨울 방학 전의 싱숭생숭한 분위기로 상당히 빠르게 정신없이 지나간다. 12월 1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드벤트 달력을 열기 시작하는 그날,..
리투아니아어 113_공증인 Notaras 동네 곳곳에 공증 사무실이 정말 많다. 간판에 보통 'Vilniaus m.10-asis notaro biuras 빌니우스시 10번째 공증 사무실' 이런 식으로 적혀있다. 오래전에 종로 구청 근처 공증 사무실에서 몇 가지 증명서를 영문 번역하여 공증을 받았었다. 그 서류들을 리투아니아어로 번역해서 다시 공증받은 후에야 효력이 생긴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내려 받을 수 있는 서류도 많고 아포스티유도 발급이 되니 전에 비하면 모든 것이 엄청 간단해진 듯 보이지만 해외에 거주하면서 신분증이나 거주 관련 문서들을 준비하고 갱신하는 것은 어쨌거나 참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늘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었으니 한편으론 고맙다. 간혹 일간지를 사서 읽는다.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고 날짜와 장소가 바뀌고 모든..
동네 식당의 라그만 2 지난 번에 라그만을 먹었던 동네식당은 중앙아시아 쪽에서 이주해 온 손님들로 요일불문하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게다가 대부분의 손님이 남성들이라서 그런지 타슈켄트나 알마티에 기사식당이 있다면 왠지 그곳과 비슷할 것 같다. 간혹 지나칠 때 카운터에 사람이 서있으면 들어가서 베이글 비슷한 중앙아시아 빵 한두 개를 사곤 한다. 그 빵을 카운터 밑에서 바로 꺼내서 비닐에 담아주기 때문이다. 그 식당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영업 중인 또 다른 중앙아시아 식당은 동네 오르막길에 태국식당, 멕시코 식당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이 동네에서 단순히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맛집으로 거듭나는 경우는 사실 없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적당히 맛있는 음식에 술을 곁들여서 도란도란 앉아있기에 아늑한 곳들이라면 보통 사람들이 모인다..
카페에서 5분. 이 카페는 정말 날씨가 지나치리만치 좋을 때 킥보드를 타고서 1년에 한 번 정도 간다. 자주 가지 않는 카페는 결코 아니다. 날씨가 그냥 자주 안 좋을 뿐. 대성당부터 베드로 성당 뒤쪽으로 이어지는 안타칼니스( antakalnis) 동네까지 네리스 강변을 따라 별다른 장애물 없이 쭉 타고 올라갈 때의 뻥 뚫리는 기분. 출퇴근 차량과 트롤리버스는 한결같은 매연을 내뿜고 있겠지만 곳곳의 과묵한 녹음들이 피톤치드를 분사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동한다기보다는 놀이기구를 타는 마음으로 혼자 몰래 불량식품 먹으러 간다는 생각으로 간다. 인터넷에서 중고책을 샀는데 만나서 전해주겠다는 장소가 바로 이 근처여서 오랜만에 이 카페에 들를 생각에 그러자고 했다. 11월인데 벌써 너무 춥다. 4시에 만나기로 했는..
적절한 시기 요리를 언제 하느냐 하면 요리책을 펼쳤는데 재료가 집에 다 있을 때.
리투아니아어 112_Tūris 함량 세상에 여러 종류의 즐거움이 있다. 꼭 해야 하는 일을 굳이 안 하는 것.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 그리고 1) 평일 2) 대낮에 3) 마트의 독주코너를 4) 말끔한 정신으로 5) 어슬렁거리다 6) 구매의 목적을 창조하고 7) 세상과 나를 설득하는 것. 이들 중 제일 까다로운 즐거움은 단연 가장 후자가 아닐까 싶은데 그것이 즐거운 행위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복잡 미묘한 즐거움을 만끽하기 시작하면 대체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질척이다 결국 모두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지도 모른다. 마치 정도를 넘겨 근본 없이 희석된 독주처럼. 꽁꽁 언 바닥에 엉겨 붙은 지난밤으로부터의 토사물처럼. 술을 선물하는것을 좋아하는데 술이든 뭐..
20세기 13시10분의 하늘 프라하에서부터 눈 덮인 선사유적지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기억 속에서 계속 연장되어 언젠가 상점 계산대 앞에서 보았던 엽서 앞까지 나를 데려다 놓는다. 엽서를 뒤집어 보았다면 빅벤의 8촌 동서 정도 되보이는 저곳이 어디쯤이었는지 알 수 있었겠지만 동상의 뒷모습이 의미심장하여 그냥 묻어 둔다. 종탑의 시곗바늘은 명명백백 오후 한 시를 넘겼고 화단 삼총사들이 뒤섞여 있었을 동상 주위의 원형 화단은 정직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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