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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11월 연극 회상 술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왜 마셨는지를 기억할 수 있을 만큼의 빈도로 마시고 싶다. 그러려면 좀 뜸하게 마셔야 하고 어처구니없는 주종이어도 명확하면 된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술을 대하는 자세와 감성은 또 그 나름대로의 진심이 담긴 채로 나와는 다르겠지만 애주가의 영혼과 체질을 가지지 못한 나로선 딱 그 정도가 좋다. 11월의 마지막 일요일, 연극보기 전에 진 한 잔을 마셨다. 술을 정말 거의 마시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생기냐면 대략 이렇다. 드라마의 새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지난 시즌의 내용을 잠깐 되짚어 줄 때 내 기억들이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재빠르게 되감겨 들어가며 수렴될 때의 느낌이 있다. 눈앞에 놓인 한 잔의 술이 바로 이전 술의 맛과 향과 추억을 마치 방금 전에 마신 것인 양 아주 명료하..
Vilnius 172_대마를 씹는 라마 여름부터 구시가에 대마 관련 제품을 파는 상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문을 열었다. 이 가게는 원래 사탕과 초콜릿을 팔던 가게였는데 문을 닫았고 1년 넘게 비어있던 점포에 풀을 뜯고 있는 건지 뱉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귀여운 라마 간판이 걸렸다. 이 근처에 채식 식당이 있다가 문 닫은 게 생각나서 이젠 비건 레스토랑이 생기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대마 관련 가게. 저렇게 축 늘어진 라마를 보고 비건 레스토랑을 떠올린 것도 웃기지만 라마가 축 늘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생각하니 더 웃기다. 중앙역 과 버스 터미널을 나와 구시가로 향하는 사람들이 배낭여행자 아인슈타인 벽화를 돌면 만날 수 있는 라마, 호기심에 들어가 보니 대마 껌부터 대마 종자유, 사탕, 젤리, 봉, 파이프, 재떨이, 쟁반 등등 만화 굿..
8월 여행 회상_쉬벤치오넬리아이 Švenčionėliai 8월 말에 빌니우스에서 한 시간 거리의 쉬벤치오넬리아이(Švenčionėliai)라는 도시로 당일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 2명과 가기로 했는데 그나마 좀 아는 사람이 고양이가 아파서 못 가는 바람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가게 됐다. 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오히려 할 말이 많아서 사실 편하다. 물 한 병과 읽을 책 한 권을 가져갔다. 물은 다 마셨고 책은 별로 읽지 못했고. 갑자기 이 여행을 회상하는 이유는 바르샤바-빌니우스 구간 기차가 12월 11일 재개통한다는 기사를 읽기도 했고 지난 주말에 연극을 보면서 백치의 므이시킨 공작이 타고 오는 기차가 아마 이 구간을 지났을 거라고 생각하며 이 사진을 찍었던 순간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기차역 1층에 위치한 카페 벽에 바르샤바 뻬쩨르부..
Praha 몇 컷. 여행 중이신 이웃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13년 전 프라하 사진첩을 뒤져보았다. 프라하는 사진들이 실수로 다른 폴더에 들어가 있는 건지 다녀온 곳 중 독보적으로 사진이 적다. 찍은 사진들은 충동적으로 입장한 어린이 대공원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친구들이랑 마구 찍은 듯한 느낌이다. 이집트 여행 때부터 많은 추억을 남겨주고 비로소 액정이 나간 쿨픽스를 다루는 게 좀 귀찮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온전한 사진 몇 장이 있어서 올려본다. 바르샤바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 며칠 그저 걷다가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베를린행 기차표를 사서 허겁지겁 떠났던 프라하. 아침이라고 하기에도 좀 이른 시간이었어서 사람이 정말 없었다. 주말이었을까. 지금이라면 여기저기 세워져 있을 전동 킥보드를 하나 집어타고 장..
Poland 13_바르샤바에서 술 한 잔 삐에로기에 진심인 폴란드에서 그 진심의 극치를 보여줬던 바르샤바의 어떤 식당. 폴란드어로는 Pierogi라고 하는데 러시아 만두 뻴메니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바르샤바의 어디에서든 Pierogarnia 간판을 볼수 있었다. 삐레오기 이외의 요기거리도 팔지만 어쨌든 삐에로기에 장소 접미사 arnia를 붙인 삐에로기가 주인공인 식당들이다. 이 식당의 종업원들은 알록달록 만두가 그려진 앞치마를 입고 있었고 벽에는 블루벨벳에 나오는 잘린 귀 같은 만두 장식이 붙어 있어서 그 귀를 잡고 암벽등반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날씨가 좀 추웠었나. 지나가다가 얼핏 봤는데 비좁은 공간에 손님들이 옹기종기 가득 앉아있는 것이 너무나 아늑해 보여 찜해놓고 더 걷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어갔다. 음식은 리투아니아 음식과 거의 ..
Poland 12_바르샤바의 코페르니쿠스 도시 속의 조각들, 동상들을 좋아한다. 빌니우스 구시가에 특히나 조형물들이 많아서 으례 익숙해진 것인지 어딜 가도 늘 몇 개는 지나치게 되는 그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추억의 좌표처럼 남는 것이 좀 감동적이라고 해야 할까. 간혹 이념 문제로 없어지고 옮겨지고 하는 것들도 종종 있지만 그 주위를 지나치고 약속을 잡고 걸터앉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책을 읽던 누군가의 기억은 강제로 끌어내 박멸하기 힘든 것들이다. 바르샤바에서 아침에 집을 나설때도 온종일 신나게 걷다가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며칠간 매일 마주쳤던 코페르니쿠스. 건물에 비친 뒷모습에서 오히려 더 생동감이 느껴진다. 비록 초상화 속의 풋풋한 얼굴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고전적이고 학구적이고 신화적 이미지여서 멈칫했지만 아마 동상 옆 바닥에 앉..
코페르니쿠스와 커피 한 잔 바르샤바에서 지냈던 숙소 근처에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쇼팽과 함께 바르샤바의 슈퍼스타였다. 근데 처음엔 코페르니쿠스가 맞나 했다. 왜냐하면 동상을 지나치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검색을 해보기 전까진 코페르니쿠스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왠지 코페르니쿠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총애한 제자였을 것만 같이 젊고 (실상은 갈릴레오보다 1세기 연상) 브뤼겔의 풍속화에서 술 마시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것처럼 구수해 보이는데 그는 폴란드에서 태어나서 폴란드에서 뼈를 묻은 학자였다. 동상때문만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속의 뮤지엄 패스 발현으로 인해 코페르니쿠스 과학 박물관에도 갔다. 그곳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온갖 체험학습을 하며 5년 치 할 운동을 다 하는 와중에 머릿속에선 계속 코..
유로 동전의 무게 리투아니아에서는 11월 1일 부터 5000 유로까지만 현금 계산이 가능하다. 리투아니아에서 여행을 하다가 현금 5001유로를 주고 일시불로 계산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으니 불법 행위를 저지를 확률도 낮은것으로. 월급도 은행 이체만 가능하다. 현금 안 받는 카페들도 많고 현금 쓸 일이 점점 없어지지만 보통 공병을 팔고 돈을 받거나 버스 시간에 임박해서 버스 안에서 기사 아저씨에게 바로 표를 사야할때 현금을 낸다거나 하면 동전이 생긴다. 그런데 이 동전들이 모이면 또 꽤 무겁다.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꺼내다가 무거운 지갑을 비울겸 동전을 넣었는데 또 이만큼의 거스름 돈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소비를 했으니 말 그대로 지갑은 가벼워졌다. 동전구에 누워계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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