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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의 더블 에스프레소 게디미나스 대로에서 중앙역을 향하는 모든 탈 것들은 한대도 빼놓지 않고 이 카페 앞에서 커브를 돌아 좌회전을 한다. 교통량이 많은 사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해 있는데 도로에 면한 카페 치고는 바깥 공간도 가장 넓다. 이 축복받은 남서향의 카페는 구시가 내에서도 단연 일조량 최고이다. 지난 1월 한 달 빌니우스 일조량이 4시간 남짓이었다는데 아마 그 4시간의 희소한 햇살을 이 카페는 일초도 남김없이 온전히 누렸을 거다. 카페 앞에 횡단보도가 있어서 사방에서 꼼짝없이 신호에 걸리는 이들을 구경하기에도 좋다. 어떤 차량은 마음이 앞서 첫 번째 허들을 넘어뜨릴 만큼 앞서 뛰쳐나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뒷주자의 경적을 듣고서야 느릿느릿 움직인다. 하지만 이 카페의 커피가 분명 맛있음에도 자주 가진 않는다. 커피가 맛있..
리투아니아어 101_Kasos juosta 감열지 오랜만에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 동생, 이런 거 뭐라고 하니 한국말로? 영수증 출력되는 거. - 빌지. 정식명칭은 감열지 지난 금요일 오후에 주말 동안 이 물건이 부족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며 동료가 문자를 보내왔다. 월요일까지 분명 충분할 것 같지만 신경 써서 알려주는 어린 동료가 기특하기도 하고 그런 예고들은 또 이상하리만치 적중할 때가 많으므로 토요일 이른 아침 가져다 놓기로 했다. 트롤리버스 안에서 무릎 위에 이들을 놓고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걸 뭐라고 하는지 정작 한국어로는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식당을 했던 동생에게 물었더니 감열지라고 했다. 빌지는 학생 때 아르바이트하고 그럴 때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는데 감열지라니 아마 이 단어를 누군가로부터 직접적으로 들었더라면 뭔지..
겨울을 사랑한다면 3월에도.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얘기를 할 것인지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어떤 향기가 나는지 심지어 소곤 될 것인지 혹은 박장대소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가고 싶은 카페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옷장의 검은 옷들이 저마다의 검음으로 망설임을 유발하고 기름 종이 한 장 차이의 구름의 채도가 고만고만한 비옷들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하듯 빌니우스의 몇 안 되는 카페들도 나에겐 그렇다. 극장 앞에 위치한 이 카페는 왜인지 겨울에만 집중적으로 가게 된다. 보통의 카페의 창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상현달처럼 보여주지만 이곳의 넓은 통유리창은 구시가를 향해 미세한 가속도가 붙어 하강하는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을 제법 완전하게 보여준다. 케이블을 붙들고 언덕을 오르는 트롤리버스의 꽁무니를 따라가다보면 소실점에 걸쳐있는 어린 로맹 가리의..
Poland 15_바르샤바 지브롤터 오브 마인드 바르샤바 가기 전에 카페 검색 했을 때 이름 때문에 기억에 남았던 유일한 카페였는데 공교롭게도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카페여서 두 번을 갔다. Stor라는 이 카페는 아마 스톨리치나야 보드카 때문에 혹은 저장의 어감 때문에 혹은 뚱뚱하다는 리투아니아 형용사 Storas의 느낌이 혼존하여 뭔가 동글동글 귀엽게 취한 듯한 인상이 있었다. 실제 카페는 여러모로 익숙했다. 빌니우스였어도 베를린이었어도 서울이었어도 자연스러웠을거다. 방문객들은 저마다의 바지통 넓이로 경쟁하고 쉬프트 알트 한 방으로 언어 변환을 하듯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정신없이 옮겨 다녔다. 주말이여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 카페에는 보통의 마키아또나 코르타도가 적혀 있어야 할 자리에 지브롤터라는 메뉴가 뾰족한 바위산처럼 자리 잡고 있었..
마키아또와 푸딩겔리스 여름이면 카페 건너편 광장에는 바닥분수가 솟구친다. 광장의 벤치도 잔디도 야외 도서관도 놀이터도 모두 트롤리버스 정거장으로부터 싱그럽게 뻗어나간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이 이미 여름으로의 입장이다. 겨울에는 대체로 광장을 등지지만 그 조차도 절반의 배반에 그친다. 그냥 앉아 있으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트롤리버스에서 굳이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카페로 온다. 창밖을 무심하게 내다보고 있는 커피가 내가 마실 커피 임에 미소 지으며 커피 한 모금에 몇 겹 너머의 광장을 덤으로 얻는 커피지런한 삶. 좋은 음악, 한 두 뼘 정도의 좋은 문장, 각자의 아침을 향해 걷는 사람들. 이른 아침부터 두 명의 바리스타가 유쾌하게 일하던 날. 주문을 착각한 남자는 의심의 여지 없는 에스프레소를 내밀고 뒤돌아 다른 커피를 주문..
Poland 14_루르끼츠카 루르끼바노바 루르끼떼 바르샤바 구시가에서 이 성당을 몇 번 지나쳤는데 성당은 자신의 어엿한 이름을 가지고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성당에 이름을 붙여줬다. 성당 파사드의 솟구치는 벽돌들이 초코하임과 더불어 지역 특산물 루르끼를 닮아서 깜찍하면서도 가냘프고 가련하게 짓는다. 성당 지기를 위해 설탕 심부름을 다녀오던 성당이 몰아치는 겨울 눈보라에 벗겨져 날아가는 스카프를 잡으러 가다 설탕을 쏟아 좌절하는 느낌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면 실제로 벽돌 성당들 파사드에는 눈들이 마치 벽돌들을 잡고 버티는 듯한 모습으로 제법 잘 엉겨붙는데 그런 겨울을 이겨내는 루르끼츠카는 아마 제법 루르끼스러울 것 같다.
에스프레소와 루르끼 지난 9월에 친구 기다리면서 바르샤바 중앙역 코스타 커피. 얘를 폴란드에서는 Rurki라고 했던 것 같다. 이 카페에 있던 모든 국제적인 녀석들 가운데 단연 국제적이지 않아서 한눈에 들어왔던 녀석. 지금 생각해 보니 이건 그나마 조금 덜 두껍고 길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먹혔던 것 같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비웃는 슬라브적 당도인데 그게 또 그냥 달기만 해서 되는 건 아니다.
2월 지나가기 전에 회상하는 연극 <아연 Cinkas> 월초에 커피와 까르토슈까(https://ashland.tistory.com/1259)로 묵직하게 당충전하고 보았던 연극 '아연 '. 화학 원소의 그 아연 맞고 리투아니아어로는 찐카스 (Сinkas)이다. 리투아니아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쉬우스의 작품이고 원작은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 소년들'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보내졌다가 주검이 되어 아연관에 담겨 돌아오던 소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벨라루스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구소련 국가인 리투아니아에서도 당연히 인기가 많다. 작년에 빌니우스 문학 페스티벌에서 한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러시아와 함께 전쟁의 원흉으로 취급되는 고국 벨라루스가 러시아에 점령당한 가장 억울한 식민지일 뿐이고 벨라루스의 대통령 역시 루카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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