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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마셔야 하는 커피 오늘Bolt 택시 이용 내역을 확인하다가 올해 들어 첫 킥보드 탔던 날의 기록을 보았다. (Bolt는 택시, 킥보드, 배달 통합앱) 4월 30일. 일요일. 오후 9시 01분-09시 09분. 1.4킬로미터. 8분 운행. 1.58유로. 이 날은 밖에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집에 있기로 한 날인데 저녁 늦게 마트 가려고 나왔다가 건물 나서자마자 현관 앞에 킥보드가 있길래 알 수 없는 포스에 이끌렸다고 생각하라는 포스에 사로잡혀 바로 올라타고 카페를 향했다. 어둑어둑해지려는 순간이었지만 흔치 않게 일요일 9시를 넘기고서도 일하는 카페가 약간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나. 8분이면 사실 꽤 긴 시간인데 정말 슝하고 순식간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주 가끔씩만 가기 위해 노력하는 카페이다. 이 집 커피..
빌니우스의 테이글라흐 구시가의 필리모 거리의 유태인 회관 건물에 겸한 베이글 카페. 직장에서 가까워서 오래전에 자주 가던 곳인데 뜸해졌다 요새 간혹 다시 간다. 예전부터 필리모 거리에 있는 폴리클리닉에서 아침 일찍 굶은 채로 피검사를 하고 나면 하나의 의식처럼 배를 채우러 가던 곳이 두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이다. 우선 병원에서 가장 가깝고, 딱히 맛있지는 않은 커피와 디저트가 있고 가정식에 가까운 음식을 파는 곳들. 이곳은 베이글 샌드위치나 샥슈카 같은 간단한 음식만 팔았었는데 오랜만에 가보니 뒷공간을 완전히 터서 꽤 전문적인 유대 음식점이 되어있었다. 이들의 간혹 얄미울 정도로 합리적이며 얄미움을 느꼈다는 것에 나름의 자책을 하게 만드는 알고 보면 딱히 잘못한 것 없이 그저 철두철미 한 것일 뿐인 그런 자기 확신에 찬 본..
과학의 날의 파블로바 몇 년 간 친구의 생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여 매번 그 주변의 날들에서 서성이며 두리뭉실 축하하다가 작년인가는 간신히 기억해 낸 그 날짜가 어딘가 익숙하여 생각해 보니 4월 21일 과학의 날이었다. 산속에 위치한 중고등학교를 다닌 관계로 과학의 날이 되면 우리들은 대학 캠퍼스의 모나지 않은 널찍한 바위들을 하나씩 전세내고 앉아 과학 상상화를 그리던가 과학 글짓기를 하던가 날아다니는 벚꽃을 잡으러 다니던가 그랬다. 이제 30세가 된 리투아니아 친구는 자신의 생일이 한국의 과학의 날로 인해 잊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고 나는 내가 리투아니아에 처음 왔을 때 그가 고작 13살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신기했다. 하지만 같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식의 어른스러운 말을 적용하기엔 우리가 영원히 철이 들..
동네 문방구 프로피테롤 구시가에 문방구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 카페 자리에는 사실 오랫동안 털실 가게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예쁜 색깔의 복슬복슬한 털실들을 사서 겉뜨기 안뜨기로만 뜬 목도리를 휘감고 다니다 풀고 뜨고 또 풀곤 했다. 털실은 그게 좋다. 망침의 업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 이곳 생활 초기에는 그 어떤 신발을 신어도 발이 시려서 아랫집 할머니에게서 털양말 뜨는 법도 배웠는데 이젠 할머니도 안 계시고 양말은 뒤꿈치 뜨는 방법을 까먹었고 이제 이 기후에 적응이 된 것인지 웬만한 신발은 다 따뜻하다. 그와 덩달아 뜨개질 인구도 줄었는지 털실 가게는 사라졌다. 그리고 4년 전에 문방구 카페가 생겼다. 늘 가는 거리에 있음에도 4년 전 뜨거운 여름에 콤부차 한 병을 먹은 이후로 가지 않다가 트롤리버스 정류장..
부활절 지나고 먹은 파스타 회상 부활절을 보내고 일정상 혼자 하루 먼저 일찍 돌아와서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를 뒤져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으며 영화 컨트롤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컨트롤은 조이 디비전의 프론트 맨이었던 이안 커티스에 관한 영화인데 결정적으로 흑백필름이고 음악이 많이 나오고 음악을 했던 사람이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명명백백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이다. 비록 실재했던 그 영화 속의 삶은 암울하기 짝이 없지만. 무슨 계기로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진 건진 한 달이 지나니 그 경과가 또렷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더 웨일에서 사만다 모튼의 피폐한 연기를 보고 이 영화가 생각난 것도 같고 지난달 한창 듣던 본즈 앤 올의 영화 음악 때문에 그랬던 것도 같다.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가장 쉬운 경로는 나..
부활절 회상 4월의 중턱에 있었던 부활절 회상. 부활절 아침 식탁에 둘러앉아 달걀을 잡고 서로의 달걀을 깨뜨리는 게임에서 깨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 달걀들은 점심쯤 지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 달걀들은 이제 광활한 대지를 굴러야 한다. 얕은 언덕에 저런 나무 막대기를 적당한 경사로 세워놓고 그 위에서 달걀을 굴려 남의 달걀을 건드리면 가져가는 게임이다. 부활절이 지나고 직장에서든 지인이든 만나면 서로 염색한 달걀을 교환하기도 하는데 그때 참 난처한 감정이 있다. 내가 계획해서 작정하고 만든 갓 삶은 반숙은 고소하고 맛있지만 금방 삶은 달걀이 아닌 며칠 지나서 교환한 타인의 달걀을 까보니 반숙인 경우 그 순간엔 달걀과도 데면데면해질 수 있구나 깨닫는다. 아주 오래전에는 저 언덕에 동네 아이들이 다 나와서 달걀을..
오스트리아 50센트 동전, 빈 분리파, 클림트 이렇게 똑같이 생겨서 심지어 태어난 해도 같은 생소한 동전들이 서로 떨어져서 굴러다니고 있으면 다른 것들을 옆으로 제쳐 두고 만나게 해주고 싶다. 이 동전은 무덤처럼 보이기도 하고 신에게 제사 지내는 곳 같기도 하고 중동의 사원 같기도 하다. 근데 막상 왕의 묘지라고 생각하면 좀 너무 뻔하다. 가령 왕은 되지 못했으나 후대에 오래도록 회자된 덕망 있는 대군의 묘지라든가 할머니 무릎 위에 올라앉은 세손을 나무라는 며느리 중전에게 괜찮다고 안심시키는 인자한 대왕대비마마처럼 왕의 주변에 머물 뿐이었지만 훌륭한 능을 가져 과연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묘처럼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싶다. 그것은 아마 동전에 새겨지는 것이 늘 가장 위대하고 가장 유명한 정점의 과거만은 아님을 ..
도서관에서 차 한 잔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다. 장갑은 확실히 안 껴도 되고 5개월을 주야장천 입었던 제일 따뜻한 패딩도 이제는 드디어 세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계속 비가 오고 있는 걸로 봐선 내일부터는 분명 또 기온이 내려갈 것이다. 오늘의 라디에이터는 여전히 따뜻하고 서머타임도 시작되어 어제의 22시는 오늘의 23시가 되었다. 며칠 후면 내가 빌니우스에 처음 발을 디딘 그 주간이다. 그때 게디미나스 언덕에는 찢은 론리플래닛을 꽂을 수 있을 정도로 녹지 않고 얼음 결정이 되어가는 단단한 눈들이 가득했었고 어떤 날은 비가 하루 종일 내려서 호스텔 접수창구(?) 아주머니에게 우산을 빌려서 돌아다녔었다. 17년 전보단 확실히 따뜻해졌지만 날씨의 패턴은 여전히 비슷하다. 대부분의 카페들이 바깥으로 테이블을 내다 놓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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