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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159_오후의 성당 그제부터 오늘까지 매일 아침과 저녁 눈 위에 모래를 뿌리는 성당지기를 스쳤다.
아는 냄새의 커피 한국에 갈 때마다 마트에서 꼭 한 두 번 정도 사서 마시게 되는 드립백 커피. 포장을 뜯고 컵 안에 걸치고 물을 붓는 내내 약간은 긴장한다. 왠지 인디언밥 과자 같은 거 너무 세게 뜯어서 산산이 흩어지는 것처럼 뜯지 말아야 할 부분을 건드려서 커피 가루가 다 쏟아지거나 물을 붓다가 포트 뚜껑이 열려서 물이 쏟아져 나와 드립백이 컵 안으로 풍덩 빠질 수도 있을 거라 상상한다. 그런 몇 가지 변수들 사이에서 내가 예상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커피 향기가 피어오르는 순간 분명 도토루 커피를 떠올릴 거라는 사실. 내 기억 속에선 다방과 카페의 공동경비구역 같은 곳쯤에 있는 카페랄까. 일부러 어려운 나라 이름만 골라서 쓴 것 같은 커피 이름들을 마주하고 내 의식이 결국 명동 성당 앞의 도토루 카페로 ..
1월의 핫초콜릿 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 중에 스모우크핫커피리필 이란 노래가 있다. '스모우크.핫.커피리필, 달이 뜨지 않고 니가 뜨는 밤'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그런데 유독 커피도 아닌 핫초콜릿을 마실 때 이 노래가 보통 떠오른다. 하루하루 가장 짙은 어둠을 향해 달려가는 12월에 온 정성을 다해 끓이는 한 잔의 핫초콜릿은 남아있는 온 겨울을 녹여줄 듯 짙고 따뜻하지. 그래서 1월만 되어도 별로 맛이 없는가 보다. 그러니 이것은 오히려 약발이 떨어진 핫초콜릿 속에 달 대신 떠오른 예쁜 마쉬멜로우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2021 년의 햇살 낮이 급격히 짧아지고 어둠이 어둠 그 이상으로 어두워져서 이 시각 이 계단에 내리쬐던 이 햇살을 보려면 해를 넘겨서도 더 많이 기다려야한다. 그 순간을 계절과 시간으로 특정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아 이 느낌이었지!' 하고 어떤 기억이 온 몸에 전류처럼 흐르는 순간에 도달하려면 사실상 딱 저 자리에 위치하는 순간과 함께 아주 까다롭고 미세한 조건들이 충족 되어야한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전선들 아래로 페인트칠이 벗겨진 벽을 따라 오래된 먼지와 담배 꽁초가 나뒹구는 계단이지만 층계참에 남쪽 건물 마당을 향해 내어진 창은 여지없이 이 햇살을 끌어와선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이와 비슷한 풍경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살아갔을법한 사람들이 등장했던 많은 이야기들. 오래 전 그들로부터도 어쩌면 크게 달라..
수집 거리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곳들. 누구나 안 보는 책들을 넣을 수 있고 또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는 일종의 도서 교환함이다. 보통 오래된 교과서들과 소설들, 표지만 딱 봐도 발행연도를 짐작케 하는 그런 책들이 대부분이다. 구시가에서 중앙역으로 가는 길목에 특히 19세기 말경에 지어진 임대용 주택들이 많이 있다. 벽난로로 난방을 하던 시기에 지어진 집들이어서 여전히 장작 태우는 집들이 많다. 이 동네의 거리 도서관에 책이 가득 채워져 있어도 돌아오는 길에 보면 텅 비어 있을 때가 많은데 그것은 누군가에게 그 책들이 땔감용으로 유용하기때문. 리투아니아의 교과서는 학생들이 사용하고 학교로 돌려주는 구조라서 돈 주고 사지 않으면 구하기가 어려워서 쓸만한 교과서는 나도 챙겨둔다. 얼마 전에 가져다 놓은 옛날 4학년..
10/11/2021 얼마 전에 산 커피 원두를 개봉하여 향기에 감탄하며 열심히 갈았는데 여과지가 없다. 그래서 며칠 전에 내려 먹고 놔둬서 바싹 마른 커피들을 툭툭 털어내고 어쩔 수 없이 헌 여과지를 통해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내리고 바람이 들어오는 창가에 서버와 드리퍼를 그대로 놔두면 컵에 지각한 커피물은 그대로 떨어진 채 증발하고 필터 속의 커피는 마르는 그 장면들에서 뭔가 커피 한 잔의 여정이 완벽이 끝났다는 담백한 느낌이 든다. 축축하고 묵직한 커피 필터를 곧 장 버릴 때 쓰레기 봉지 안에서 젖은 커피들이 미련을 가지고 질척되는 느낌과는 상당히 다른 그런 것.
서점 구시가에 검은 개가 사는 헌책방이 있고 고양이가 사는 헌책방이 있는데 이 고양이는 보통 소리 없이 다가와 신발을 핥고 있던가 책 위를 사뿐사뿐 걸어 다닌다.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결국 들어서는 순간 어디 있나 찾게 된다.
몇 권의 책 2년 전쯤인가. 문득 올해 이즈음에 뻬쩨르에 가게 된다면 참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구시가에 헌책방이 많은데 러시아어 책들이 꽤 많아서 돔끄니기 간다는 느낌으로 가끔 찾아간다. 고양이 한 마리가 온 사방 책을 누비며 기어 다니는 어떤 책방에서 지난달에 발견한 몇 권의 책들. 마치 어린이 도서관에 제일 찾기 쉽게 생긴 안데르센이나 그림 형제 동화 모음집처럼 두껍고 큰 판형의 책은 '죄와 벌'과 '가난한 사람들', '아저씨의 꿈'이 함께 수록되어있는 독특한 조합의 책이고 두 번째는 그가 보낸 서신의 일부를 모아놓은 책. 그리고 마지막은 겉표지의 일러스트가 눈에 들어왔던 '멸시받고 모욕당한 사람들'. 이 책은 오래전 리투아니아어로 꾸역꾸역 날림으로 읽고 비교적 최근에 한글로 다시 읽어서 느낌이 남달랐다. 나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