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974)
마키아또와 푸딩겔리스 여름이면 카페 건너편 광장에는 바닥분수가 솟구친다. 광장의 벤치도 잔디도 야외 도서관도 놀이터도 모두 트롤리버스 정거장으로부터 싱그럽게 뻗어나간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이 이미 여름으로의 입장이다. 겨울에는 대체로 광장을 등지지만 그 조차도 절반의 배반에 그친다. 그냥 앉아 있으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트롤리버스에서 굳이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카페로 온다. 창밖을 무심하게 내다보고 있는 커피가 내가 마실 커피 임에 미소 지으며 커피 한 모금에 몇 겹 너머의 광장을 덤으로 얻는 커피지런한 삶. 좋은 음악, 한 두 뼘 정도의 좋은 문장, 각자의 아침을 향해 걷는 사람들. 이른 아침부터 두 명의 바리스타가 유쾌하게 일하던 날. 주문을 착각한 남자는 의심의 여지 없는 에스프레소를 내밀고 뒤돌아 다른 커피를 주문..
Poland 14_루르끼츠카 루르끼바노바 루르끼떼 바르샤바 구시가에서 이 성당을 몇 번 지나쳤는데 성당은 자신의 어엿한 이름을 가지고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성당에 이름을 붙여줬다. 성당 파사드의 솟구치는 벽돌들이 초코하임과 더불어 지역 특산물 루르끼를 닮아서 깜찍하면서도 가냘프고 가련하게 짓는다. 성당 지기를 위해 설탕 심부름을 다녀오던 성당이 몰아치는 겨울 눈보라에 벗겨져 날아가는 스카프를 잡으러 가다 설탕을 쏟아 좌절하는 느낌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면 실제로 벽돌 성당들 파사드에는 눈들이 마치 벽돌들을 잡고 버티는 듯한 모습으로 제법 잘 엉겨붙는데 그런 겨울을 이겨내는 루르끼츠카는 아마 제법 루르끼스러울 것 같다.
에스프레소와 루르끼 지난 9월에 친구 기다리면서 바르샤바 중앙역 코스타 커피. 얘를 폴란드에서는 Rurki라고 했던 것 같다. 이 카페에 있던 모든 국제적인 녀석들 가운데 단연 국제적이지 않아서 한눈에 들어왔던 녀석. 지금 생각해 보니 이건 그나마 조금 덜 두껍고 길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먹혔던 것 같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비웃는 슬라브적 당도인데 그게 또 그냥 달기만 해서 되는 건 아니다.
2월 지나가기 전에 회상하는 연극 <아연 Cinkas> 월초에 커피와 까르토슈까(https://ashland.tistory.com/1259)로 묵직하게 당충전하고 보았던 연극 '아연 '. 화학 원소의 그 아연 맞고 리투아니아어로는 찐카스 (Сinkas)이다. 리투아니아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쉬우스의 작품이고 원작은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아연 소년들'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보내졌다가 주검이 되어 아연관에 담겨 돌아오던 소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벨라루스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구소련 국가인 리투아니아에서도 당연히 인기가 많다. 작년에 빌니우스 문학 페스티벌에서 한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러시아와 함께 전쟁의 원흉으로 취급되는 고국 벨라루스가 러시아에 점령당한 가장 억울한 식민지일 뿐이고 벨라루스의 대통령 역시 루카쉔코..
에스프레소와 스푸르기떼 트롤리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다 보면 구시가를 한 꺼풀 감싸며 돌다가 외곽으로 빠지기 전의 트롤리버스들이 정류하는 곳마다 거의 카페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미 적당히 위장을 채우고 집을 나선 나에게 이 카페들이 너의 나른한 위장을 우리집 카페인으로 깨워주겠다며 트롤리버스 창문 너머로 손짓하는데 나도 굳이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간혹 두 정거장 정도 타고 가다 내려서 잠깐 앉아서 커피로 속을 헹구고 다시 남은 다섯 정거장을 타고 가던 길을 가곤 한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우즈가베네스 축제도 지났는데 날씨가 더 추워졌다. 진눈깨비가 짙게 내리던 날, 이른 아침이지만 마치 지정석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던 사람들로 이미 반 정도 채워진 카페에 나도 자리 잡았다. 아침에 혼자 일하는 직원은 일손이 ..
에스프레소와 에그타르트 이 카페는 처음 갔던 날이 선명히 떠오르는데 2019년 7월 3일이었다. 병원 정기 검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그날 커피를 마시며 정말 오랜만에 전자서점 현금충전을 했었다. 매월 1.2.3일에 현금충전을 하면 포인트를 두 배 주던가 했는데 충전을 해도 포인트 적립이 되지 않아 규칙이 바뀐건가 하고보니 시차 때문에 한국이 이미 4일이었던 것. 그때의 날짜와 시간이 여전히 충전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전자서점은 이제 거의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 빵집은 한창 개업을 해서 사워도우빵에 진심인 컨셉으로 홍보를 많이 했는데 아침에 가면 갓 구운 빵냄새가 진동을 해서 아침마다 들러서 빵을 사게하는 베이커리로는 거듭나지 못했지만 그 후에도 지점 몇 개를 내면서 여전히 살아남았다. 당시엔 브런치 카페가 많지 않..
친구의 새싹들 친구 한 명이 새싹 장사를 시작했다며 새싹을 넘겨주고 갔다. 완두콩 왕자(완두콩 위의 공주의 패러디일텐데 완두콩이 남성명사라 그럴듯하다) 라는 이름의 새싹부터 브로콜리 형제( 브로콜리 Brokolis 와 형제 Brolis 의 어감때문이다)라는 브로콜리 새싹과 세 종류의 무순등등 여러 아이들을 이것저것 섞어 주었다. 다음에 씨를 뿌리거나 물을 주러 갈때 같이 가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숲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이런 아이들은 그 자체를 먹기보단 아직까진 장식용으로만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고민이 많다고 했다. 삼사십대때의 우리엄마는 늘 쌈만 싸서 드셨는데 가끔 문득 드는 생각이 과연 그것이 채식 취향이었을까 싶다. 어쩌면 간편하면서도 배부르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 동시에..
공연 전의 커피와 까르토슈까 빌니우스의 야우니모 테아트라스 (Jaunimo teatras)내의 카페. Jaunimas는 청춘, 젊음을 뜻하는 단어로 '청춘 극장'이 되려면 Jaunimo로 2 격 변형을 해야 한다. 이 극장은 새벽의 문과 필하모닉 근처의 구석진 곳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그 내부가 의외로 커서 속에서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극장을 빠져나와 구시가 한가운데 다시 서면 늘 어딘가로부터 툭 떨어져 나온듯한 낯선 기분이 든다. 그것은 아마 장소적 특성 때문만이 아니라 공연을 보기 전과 그 후에 빠져나가고 채워지며 대체되는 에너지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극장에든 카페가 있고 또 오랫동안 그 카페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디저트나 칵테일 같은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공유되고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