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903) 썸네일형 리스트형 더블 에스프레소와 파리 브레스트 지난겨울에 먹었던 파리 브레스트. 파리는 엄연히 낭만적이고 달콤해야 했겠지만 낯선 디저트 이름을 보는 순간 벨파스트가 몹쓸게도 가장 먼저 떠올랐다. 가본 적도 없는 벨파스트지만 몸을 덮은 얇은 헝겊조차 버거워하던 헝거의 마이클 패스빈더의 얼굴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도시이거늘. 이 모든 오해와 억측은 사실 브레스트라는 지명을 내가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파리와 브레스트 구간에서 벌어졌던 자전거 경주 대회를 기념하며 만들어진 바퀴 모양의 디저트라고 한다. 물론 아주 오랜 옛날에. 이 빵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라면 아마 이 날의 이 커피와 이 빵이었다. 늘 커다란 라떼잔에 담아주는 적은 양의 커피가 꼭 깊은 우물 바닥의 고인 물같았더랬는데 드디어 커피의 보송보송한 표면이 보이.. Vilnius 174_미지와의 조우 한참 무르익던 유니텔 영퀴방이 한산해지는 새벽녘이 되면 보통 늘 보이는 사람들만 남고 비몽사몽한 기운에 나오는 문제도 비슷해진다. 마치 가장 마지막까지 술자리에 남은 사람들이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며 이미 오래전에 바닥을 보인 어묵탕 뚝배기를 습관적으로 휘젓는것처럼. 그 중 유난히 자주 등장해서 기억나는 영화들이 몇 편 있는데 리포맨, 감각의 제국, 틴토 브라스의 영화들, 피셔킹, 피터 그리너웨이의 필로우 북 등등 어쩌면 전혀 접점이라곤 찾을 수 없는 영화들이지만 모뎀 너머로 자신과 비슷한 영화광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최대한 현학적이고 비겁한 힌트를 내밀다 결국에 초성 힌트를 주며 마무리되는 공통점이 있는 영화들이다. 그중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도 출제자들이 좋아하는 영화였다. 아무도 못 맞출거라 작.. 리투아니아어 105_노랑 Geltona 올여름 바닷가에서 발견한 자잘한 호박들과 지난여름에 주워서 말린 꾀꼬리버섯. 발트의 호박이 만들어낸 우연의 실루엣이 흡사 페루에서 칠레로 이어지는 해안선 같다. 어쩌면 여름을 맞이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해변에서 그리고 숲에서 코를 박고 찾는 이것들이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노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는다는 표현이 심히 전투적이고 상업적으로 들릴만큼 그 발견의 과정들은 차라리 여름 낮잠의 잠꼬대만큼이나 우연적이고 정적이다. 한여름에 꾀꼬리버섯을 말릴 때엔 이들이 자취를 감출 겨울이 되면 먹겠다는 생각에 입맛을 다시지만 그 타고난 철이 여름인지라 결국 여름이 되어 커스터드 빛깔의 신선한 버섯을 본 뒤에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말린 버섯은 또 유예되고 여름은 겨울로 수렴되지 못하고 돌고 돈다. 리투아니아어 104_그네 Sūpynės 소나무 숲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소련 그네. 2년 전과 변함없이 남아 있어서 반가웠다. 절대 그네 줄 돌려서 빌빌 꽈서 풀고 할 수 없는 참으로 경직되고 올곶은 그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뭐냐고 한다면 사람 없는 깜깜한 숲에서 앞뒤로 움직이다가 서서히 멈춰서는 그네이다. 리투아니아어 103_정상 Viršūnė 11일과 12일 열리는 나토 회의로 빌니우스는 바쁘다. 리투아니아어에서도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설악산 정상에도 나토 정상 회의에도 동일 단어인 비루슈네 Viršūnė 를 사용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복수2격을 써서 '정상들의 만남 Viršūnių susitikimas'이 된다. 100여 대가 넘는 비행기가 결항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항과 회의장 주위, 구시가에는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도 운행 금지이고 대통령궁이 있는 구시가 중심은 회의 당일 보행 금지 구역이 된다. 당장 9일부터 구시가는 주차금지구역이 되었다. 구시가 주민들은 최소한 다른 구역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버스나 트롤리버스는 빌니우스 전역에서 4일간 무료 운행이다. 빌니우스의 일부 지역 주민들에겐 건물 옥상에 군병력이 배.. 리투아니아어 102_Vainikai 화관 오늘은 Joninės. 요니네스를 시작으로 크리스마스이브까지 낮은 계속해서 짧아진다. 유치원에서도 이 하지 명절을 기념하려고 하니 화관을 만들어오라고 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의 놀이터에서 잡초 몇 가닥을 뽑아서 함께 만든다. 만드는 동안 조물락 거리니 대부분의 풀들이 비명횡사했으나 한 여름의 화관이 될 운명이었던 풀들은 그런대로 머리에 얹어질 수 있는 품격을 갖추어 물에 담겨 달빛이 드는 창가에서 밤을 지새웠다. 화관을 잔잔한 강 위에 띠우고 그 가운데에 촛불을 켜서 떠내려 보내는 풍습. 여름이 이제 막 겨우 이번 주 월요일에 시작된 것 같은데 주말에는 그의 절정과 대단원을 기념하는 듯한 인상. 그렇게 강물을 타고 흘러간 화환이 성탄 분위기로 가득한 따스한 가정집 현관문으로 성탄 리스가 되어 돌아오는 느낌.. 간혹 마셔야 하는 커피 오늘Bolt 택시 이용 내역을 확인하다가 올해 들어 첫 킥보드 탔던 날의 기록을 보았다. (Bolt는 택시, 킥보드, 배달 통합앱)4월 30일. 일요일. 오후 9시 01분-09시 09분. 1.4킬로미터. 8분 운행. 1.58유로. 이 날은 밖에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집에 있기로 한 날인데 저녁 늦게 마트 가려고 나왔다가 건물 나서자마자 현관 앞에 킥보드가 있길래 알 수 없는 포스에 이끌렸다고 생각하라는 포스에 사로잡혀 바로 올라타고 카페를 향했다. 어둑어둑해지려는 순간이었지만 흔치 않게 일요일 9시를 넘기고서도 일하는 카페가 약간 여전히 날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나. 8분이면 사실 꽤 긴 시간인데 정말 슝하고 순식간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주 가끔씩만 가기 위해 노력하는 카페이다. 이 집 커피가.. 빌니우스의 테이글라흐 구시가의 필리모 거리의 유태인 회관 건물에 겸한 베이글 카페. 직장에서 가까워서 오래전에 자주 가던 곳인데 뜸해졌다 요새 간혹 다시 간다. 예전부터 필리모 거리에 있는 폴리클리닉에서 아침 일찍 굶은 채로 피검사를 하고 나면 하나의 의식처럼 배를 채우러 가던 곳이 두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이다. 우선 병원에서 가장 가깝고, 딱히 맛있지는 않은 커피와 디저트가 있고 가정식에 가까운 음식을 파는 곳들. 이곳은 베이글 샌드위치나 샥슈카 같은 간단한 음식만 팔았었는데 오랜만에 가보니 뒷공간을 완전히 터서 꽤 전문적인 유대 음식점이 되어있었다. 이들의 간혹 얄미울 정도로 합리적이며 얄미움을 느꼈다는 것에 나름의 자책을 하게 만드는 알고 보면 딱히 잘못한 것 없이 그저 철두철미 한 것일 뿐인 그런 자기 확신에 찬 본..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1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