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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5센트 동전 아일랜드의 하프 뒤를 쫄래쫄래 따라 나오던 포르투갈 동전. 이들도 꽤 자주 출몰한다. 가장 중앙의 디자인은 모두 3종류이지만 EU를 상징하는 별 안쪽 원을 빙둘러싸고 있는 문양은 모든 동전에 공통으로 들어간다. 얼핏 전부 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7개의 성과 5개의 방패가 그려져 있고 이는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들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1센트와 2센트 5센트 중앙에 새겨져 있는 것은 1134년에 사용되던 왕실의 인장. 저 성과 방패들이 포르투갈 국기에도 전부 들어가 있다. 십 년 전인가 포르투갈에 다녀온 친구가 수탉이 그려진 오븐 장갑을 선물로 줬었는데 결국 태워먹긴 했지만 몇 년간 잘 썼었다. 새벽의 문 가는 길에 있는 마당이 예쁜 포르투갈 식당의 간판에도 여지없이 수탉이 그려져 있으니 이 나라를 상징..
리투아니아어 99_모과 Svarainiai 집에 탄산수가 있어서 작년에 만든 모과청과 섞어서 마셨다. 사실 모과 냄새와 그 끈적거리는 표면은 힘든 기억의 발원지. 어릴 땐 멀미가 심해서 지하철로 못 가는 곳은 잘 안 갔고 큰집이 있는 시골은 대관령이며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 각종 고개를 돌고 돌아 도착하던 강원도 양양. 아빠는 이번엔 어떤 고개를 넘어갈까 어떤 국도를 탈까 늘 고민하셨다. 추석 무렵에 보았던 멋진 단풍들, 핸들을 잡고 조용하게 운전하던 아빠의 모습,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낭떠러지 같았던 고개들, 휴게소의 가락국수, 이해하기 힘들었던 오색 약수의 맛 모두 추억으로 남았지만 멀미는 참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자동차 특유의 냄새를 없앤다고 뒷좌석에 장식처럼 놔둔 모과는 오히려 자동차 향기를 머금은 못 먹는 과일의 인상이 생겨..
여름, Vasara, Лето 새 학년이 시작되는 9월 1일은 가을의 시작이다. 단지 달 앞의 숫자가 바뀔 뿐인데 어제의 여름이 보란 듯이 지난여름으로 재빨리 치환되는 것을 보면서 늘 생각한다. 방금 끌어올린 그물 속에서 아직은 상처 나지 않은 채 팔딱거리는 이 여름의 기억들을 어떻게 하면 영원으로 지속시킬 수 있을까. 아직은 8월일 때 느긋하게 회상하고 싶었던 여름인데 가을이 급히 들이닥칠 것을 알았으면서도 또 늦어버리고 말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느낌이 유난히 그득했던 지난여름. 여름, Vasara. Лето. 타인의 기억을 열처리하고 통조림해서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감정 하나를 남겨준다는 것. 어떤 음악들. 노래하는 사람들. 어떤 영화들. 그들에겐 왕관을 씌워줘야 한다.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히페르볼레 Hi..
Cosmic Rough Riders 내가 좋아했던 글래스고우 출신의 밴드 코즈믹 러프 라이더스. 오아시스와 이들의 앨범은 지금도 전부 간직하고 있다. 아일랜드 동전 속의 하프가 켈트 음악으로 나를 데려갔고 결국 이들의 음악도 떠올리게 했다. 초창기 이들의 음반들엔 켈트 전통 음악의 느낌이 은은히 묻어 난다. 이제는 액정 속의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어떤 음악이든 재생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시디를 꺼내서 들을 일은 별로 없지만 가끔 주말 낮에 컴퓨터가 켜져 있는 순간에는 재생시켜보곤 한다. 2000년도에 유니텔 브릿동 자료실에서 이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처음 다운로드하였는데 그 당시엔 라이선스 되지 않는 음반들을 누군가 올려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었다. 이들은 널리 알려진 밴드가 아니었으므로 앨범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이집트 여행을 하다 ..
아일랜드의 유로 동전 예전에 동묘 전통 시장 갔을 때 샀던 주전자. 원래 정말 차를 우려먹을 생각으로 산 건데 구석구석 남은 세월의 흔적을 지우기가 너무 귀찮아서 마치 의도한 것처럼 돈단지로 전락시켰다. 단지의 구성원은 대부분 유로이며 러시아 동전, 옛날 리투아니아 동전, 중국 동전 등 찔끔찔끔 참 다양한 나라의 동전이 있는데 유로 동전을 제외하고 결코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동전들은 단지에서 퇴출시키고자 매번 분류하지만 그 많지 않은 개체들을 딴 곳에 보관하려니 또 애매하여 결국 다시 뒤섞기를 반복한다. 요술을 부릴 법한 외양이지만 단지로 들어간 돈이 전부 2유로로 바뀌어 나오거나 하는 일은 지금껏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혹시 폴란드 동전이 있나 찾아보려고 오랜만에 주전자를 엎는다. 하프가 그려진 2센트와 5센트를 찾았다. ..
파란 금요일 아침의 커피 예전에 마트에서 계산을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80퍼센트 할인이라는 표지가 눈에 띄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도 호기롭게 반값 할인할 뿐인데 무엇이 이들을 이리도 급하게 했을까. 알고 보니 2월이었으니 엉겁결에 퇴물이 되어버린 다이어리들을 팔아치우는 중이었던 것. 다이어리는 잘 안 쓰게 된다. 하루당 한 바닥씩이나 할애된 심지어 시간까지 예절 바르게 기입된 공책이 지금보다 바쁜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망상을 일으키기때문에. 그렇다고 한들 그 위에 또 무엇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근데 이 80센트짜리 다이어리는 하루에 아주 좁고 얇은 7줄이 배분되었을 뿐이었으니 용적률이 좋다. 자 일어서야지 하고 덮고 보니 모든 것이 파랑이었다.
랍상의 기억 - Phantom Thread (2017) 예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아마 제목과 포스터가 풍기는 오페라의 유령스런 느낌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로도 극복하기 힘들었는지 계속 손을 대지 못하다가 한 달 전에 보게 된 영화. 팬텀 스레드. 영화를 보는 내내 여타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들을 떠올리며 감춰진 스타일의 접점을 찾으려고 꽤나 애를 썼지만 그러진 못했다. 그 이유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대사나 표정 그리고 옷차림을 구경하는데 그저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미국색이 팽배한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생각하니 그저 자신의 전작을 빛내준 영국인 명배우에게 헌정한 영화란 느낌마저 들었다. 나이가 들었어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그냥 다니엘 데이 루이스일 뿐이구나. 알 파치노만큼 나이가 들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14년 전 암스테르담의 티샵에서 산 나의 첫 랍..
이런 저런 와중의 커피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친구네 시골집 마당에서 서두를 곳 없이 나른한 상태였는지 이것저것 마셔도 몸이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이따금 닭들이 울었고 고양이들은 추격전을 벌였다. 선물로 가져간 바나 탈린 리큐어를 친구 어머님이 기어코 뜯으셨다. 주어진 커피를 갈았고 커피와 번갈아 가며 마셨다. 이것이 무슨 맛일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스카치 캔디 맛이었나 싶다. 불평할 여지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습관이 되면 없었던 것 처럼 되어버릴 감정들이 문득문득 보였다. 모든 좋은 것들의 본질은 '가끔'이 부리는 기교에 불과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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