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기온이 변덕스럽긴 하지만 한겨울옷은 벗을 수 있는 날씨가 되었다. 겨울 부츠들을 깊숙이 집어넣으면서 봄가을 장화들을 앞으로 꺼냈다.
그네 아래에 파헤쳐진 물 웅덩이도 포석들이 사라져 군데군데 물이 고인 거리에서도 천방지축으로 놀도록 놔두려면 확실히 장화들이 좋다. 겨울엔 아직 라디에이터가 작동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다음날이면 마르지만 난방시즌이 끝나면 젖은 운동화를 말릴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일정연령까지 아이들의 신발치수는 매해 달라지지만 철저히 계절용품이라 몇 번만 신을 뿐인 장화는 매번 새것을 사기가 애매하다. 그걸 잘 아는 사람들은 장화를 서로서로 물려준다. 그러니 집에는 과거와 미래의 장화들이 뒤섞인다.
이미 작아진 것부터 줄을 세우고 나니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여행가방 중의 기가막힌 문단이 생각났다.
"В семь лет я уверял маму, что ненавижу фрукты. К девяти годам отказывался примерить в магазине новые ботинки. В одиннадцать - полюбил читать. в шестнадцать - научился зарабатывать деньги "
(나는 일곱 살에 엄마에게 과일을 싫어한다는 것을 믿게 했고 아홉 살 쯤엔 상점에서 새 장화 신어보는 걸 거절했고 열한 살에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열여섯 엔 돈 버는 법을 배웠다.)
신발을 몇 번 그냥 사서 신겼더니 애매하게 맞지 않아 가게로 아이를 끌고 가기 시작했을지 모를 어떤 엄마와 매번 이 신발 저 신발 신어보기가 그저 귀찮은 소년 (장화는 신어보는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도 찌뿌둥하게 치수가 맞아도 잘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발도 키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엄마를 회상하는 남자가 차례로 눈앞에 나타난다. 이토록 단순한 문장 속에 유치원생부터 소년, 청년이 되어가는 남자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인다.
지난 몇 년간 내게 일어난 행운 가운데 하나는 도블라토프, 예로페예프, 레스코프 같은 작가들을 알게 된 것이다. 수많은 드라마틱한 어록들이 인스턴트처럼 퍼져나가고 공감과 위로가 강요되는 세상이지만 진정 등을 토닥여주는 문장들은 아주 비밀스러운 곳에 아닌 척 숨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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