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943) 썸네일형 리스트형 Poland 03_구름처럼 지나가기 크라쿠프에서 아침 버스를 타고 타트라산에 오를 수 있는 도시 자코파네로 향했다. 크라쿠프에서 먹고 남은 삶은 달걀과 식빵과 소시지를 뜯어먹으며 설렁설렁 천천히 올랐다. 그리고 하산해서는 야간 기차를 타고 포즈난으로 이동했다. 슬로베니아의 트리글라우 찬양가를 듣고 있으니 갑자기 산중턱에서 만났던 수녀님들 생각이 나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슬로베니아 50센트 동전 - 슬로베니아의 상징, 트리글라우 (Triglav) 유로 동전 디자인의 몇 가지 스타일이라면,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정신이 새겨진 동전, 방문해서 구경 가능한 문화유산이 들어간 동전, '영국 말고 우리나라에도 왕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입헌 군주국의 동전, 지금보다 강성했던 역사적 부흥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나 민족의 상징을 앞세우는 동전, 그리고 국가가 끊임없이 부침을 겪는 동안에도 우직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 유산을 담은 동전. 자연 유산을 새기면 물론 그 나라의 관광 소득을 올리는데도 일조를 하겠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려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 나라가 힘이 없어 대대로 강대국들에 휘둘렸고 민족 구성원도 종교도 다양하다. 멀쩡했던 나라가 세계 지도 속에서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할머니가 살았던 나라와 손자가 살았던 .. 리투아니아어 124_Valerijonas 쥐오줌풀 얼마 전에 십자가 언덕이 있는 리투아니아의 북부도시 샤울레이에 갔었다. 50년이 넘은 약국을 겸하고 있는 식당에 들렀는데 가게이름에서부터 포스가 느껴졌다. 발레리요나스 Valerijonas. 수많은 약초 중에 발레리요나스가 굳이 가게 이름이 된 이유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타임이나 카렌듈라, 캐모마일 같은 흔한 아이들은 당당하게 '약초 찻집 Vaistažolių arbatinė'을 지향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았겠단 생각은 들었다. 발레리요나스는 일상적으로 마시는 허브차들에 비해선 그 성격과 효능이 아주 확실한 약초이고 그런 약초들 틈에선 또 비교적 대중적이다. 약국에 가면 발레리요나스가 들어간 약품들을 쉽게 살 수 있다. 5년 전 환으로된 발레리요나스를 병원에서 딱 한번 먹은 적이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무거.. 리투아니아어 123_Konteineris 컨테이너 찾는 책이 동네 도서관에 없어서 오랜만에 국립 도서관을 향하는 길. 버스 정류장 뒤로 헤드셋을 낀 여인이 온갖 전자기기에 둘러싸여 나른하게 앉아있다. Neieškok kampo, ieškok spec.konteinerio! 구석을 찾지 말고 전용 컨테이너를 찾아! 컨테이너 Konteineris는 리투아니아에서도 여러 용도로 쓰이는 단어이지만 대개 일차적으로 쓰레기 컨테이너를 떠올린다. 전자 폐기물을 애꿎은 곳에 버리려고 애쓰지 말고 전용 컨테이너를 찾아서 버리라는 내용의 벽화인데 그런 전용 컨테이너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나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 이 벽화는 이미 제 역할을 다했다. 알고 보니 이 헤드셋 여인의 원형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Portrait of Madame Récamier이라는 그림 속의 여.. 올타임페이버릿 4강- 히트 지난 겨울 집 앞에 나타난 옥외 광고. 마이클 만의 신작이었다. 알아볼 수 없이 달라진 아담 드라이버와 여전한 페넬로페 크루즈. 마이애미 바이스의 콜린 파렐과 공리 생각이 났다. 하지만 마이클만 작품 중에서 다 걷어내고 한 작품만 남겨놔야 한다면 난 결국 '히트'(https://ashland.tistory.com/m/175) 를 선택할 거고 다 날려버리고 한 장면만 남겨놔야 한다면 아마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각각 범죄자와 경찰이 되어 번잡한 레스토랑에서 독대하는 이 명장면에서 두 배우는 결코 같은 화면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알파치노의 독백을 듣고 있자면 로버트 드니로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을 들여다보게 되고 머릿속으로는 그를 쳐다보고 있는 드니로의 표정을 상상하게 된다... 나의 완소 달걀 영화들 매해 여름이 되면 자동적으로 꺼내 들게 되는 헤밍웨이의 수필이 있다. 2년 전 여름 빌니우스로 여행 오셨던 이웃님이 남겨 주고 가셨는데 작년이랑 올해 고작 다시 읽었을 뿐이라 매년 읽는 책이라고 하는 게 웃기지만 뭐 어제 막 크로스핏 시작한 사람이 '요즘 나 매일 크로스핏 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니깐... 책을 읽다 보면 헤밍웨이가 연필 깎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마로니에가 만져질 것도 같고 파리의 책방과 카페를 들쑤시고 다니는 젊은 헤밍웨이의 100년 전 허기가 내 위장을 숙주로 리플레이되는 것도 같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선택되고 강화되며 생존한 청춘의 기억들에 그때는 없었을 통찰과 회한을 더해 끄적일 때 작가는 행복하면서도 슬펐을 것 같다. 사실 헤밍웨이를 통해 듣.. 리투아니아어 122_6월 Birželis 재밌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마크 러팔로 - 지금 뭐가 지나간 거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6월 6월 1일이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것과 똑같은 어조로 여름의 시작을 축복한다. 일제히 방학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휴가를 준비하고 떠들썩한 하지 축제가 지나고 나면 폭주하던 6월이 끝이 나는데 7월에도 8월에도 여름은 지속되겠지만 여름의 시작과 절정 그리고 그 종료의 이미지가 오묘하게 공존하는 달은 6월이다. 시작과 동시에 끝이났다기 보다는 시작이 마무리된 느낌이랄까. Warsaw 17_반나절의 바르샤바 바르샤바는 나에게 '알지만 모르는 곳'이고 알고 싶은 동시에 잘 모르고 싶은 곳 이기도하다. 알고 싶은 마음을 아주 낮은 고도로 유지하고 있고 그런 마음이 들면 웬만해선 그냥 갈 수 있는 곳이다. 늘 그런 생각으로 가면 그곳은 영원히 영영 모르는 곳이자 항상 가고 싶은 곳으로 남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있다. 모르는 동안엔 모든 것이 다소 더 아름답다. 좋아하는 상태보다는 좋아함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항상 더 우아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단념할 수 있는 것은 휴지심에 반쯤 붙어있는 마지막 휴지 한 칸뿐이었으면 좋겠다. 바르샤바는 그냥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에 어떤 즐거움이 있다. 한없이 폐쇄적인 이 도시가 나에게 늘 열려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냥 지나치기엔 뭔가 아쉬운 위치, 애매모호하면서.. 이전 1 2 3 4 ··· 1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