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

Heaven knows what (2014) 책임질 수 없음에도 우리가 구원하려는 것.

Heaven knows what (2014)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봉준호 감독급의 감독은 세상에 몇 안된다고 했다는 인터뷰를 읽고 그 감독들이 이 배우가 함께 작업한 감독 중 한 명이라면 샤프디 형제일거라 생각했다.
 
 <언컷 젬스> (https://ashland.tistory.com/895)를 구상하며 귀금속 상가들이 몰려있는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를 취재하던 샤프디 형제는 지하철역에서 아리엘 홈즈를 알게 된다. 다이아몬드 디스트릭트에 러시아인들이 많으니깐 이들은 처음에 아리엘 홈즈를 러시안으로 생각하고 영화에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두절된다. 얼마 후 손목을 긋는 자살시도를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리엘의 전화를 받는다. 사실 그녀는 홈리스이자 정키였다. 샤프디 형제는 이들에 관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리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아리엘 홈즈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써 내려간 Mad love in N.Y.C라는 글을 각색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헤븐 노우즈 왓>이다.
 
이상 샤프디 형제의 인터뷰로부터

https://m.youtube.com/watch?v=bO1ZsDcLZuA&t=327s&pp=2AHHApACAcoFG2hlYXZlbiBrbm93cyB3aGF0IGludGVydmlldw%3D%3D

할리 (아리엘 홈즈)


영화는 연인인 할리(아리엘 홈즈)와 일리야(칼렙 랜드리 존스)를 중심으로 마약에 중독되어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따라간다. 할리는 일리야에게 집착하지만 할리는 늘 거부당하고 마이크(버디 듀레스)와 어울린다. 이들은 사랑을 갈구하지만 결국은 약물을 주는 대상에 매달린다. 이들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일상속에서 오토바이를 타면 사고로 죽을 수 있다며 상대를 염려한다. 바늘구멍에 실 하나를 넣지 못할정도로 환각에 시달리고 또 사랑을 갈구한다.

취해있지 않을때 이들은 공공도서관에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때우고 거리에 앉아 구걸하거나 작은 상점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훔쳐서 더 작은 상점에 팔아넘기며 푼돈을 마련한다. 이들은 오늘 저녁에 두 봉지 내일 아침에 두 봉지 받기로 했던 헤로인을 오늘 저녁에 네 봉지를 다 달라는 사람과 그럴 수 없다는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민망하지만 절박한 고성과 2+2의 정교한 덧셈을 선보이며 그들을 중재하는 또 다른 중독자를 초근접 카메라로 담담하게 담아낸다.
 

일리야(칼렙 랜드리 존스)

 
영화는 이들을 마냥 미화하지도 않고 인간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폭력을 되풀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마약 중독자들의 일상을 '적당한 수위'로 '담담하게'그려냈다고 내가 말한다면 그건 다분히 약물 중독자들에 관한 많은 영화를 통해 학습된 상대적인 관점에서일거다. 그건 어떤 관점에서 볼륨키를 조절하냐의 문제이다. 전체 출력을 높여서 이들 모두를 폭주하도록 놔둘 것인지 낮은음을 좀 더 무게감 있게 키워 그들의 내면을 담아낼 것인지 배경 사운드를 날카롭게 키울지를 선택하는 문제이다. 

 
 
나는 약물 중독자들에 관한 영화를 그런 식으로 몇 종류로 나누곤 했다. 하나는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처럼 담담하고 냉소적인 톤  <레퀴엠>처럼 유혹적이고 극단적인 붉은 톤, <뷰티풀 보이>처럼 감상적이고 가슴 아픈 톤, <쉘터>처럼 그냥 치욕스럽게 고통스러운 톤.

  헤븐 노우즈 왓은 할리와 일리야의 이야기를 다룰 땐 조금은 로맨틱한 뷰티풀 보이 (아마도 칼렙 랜드리 존스의 외양이 티모시 샬라메에 밀리지 않기 때문에)처럼 보이지만 할리와 마이크(버디 듀레스)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드럭스토어 카우보이처럼 현실적이고 긴박해진다. 나는 그저 이 영화가 제니퍼 코넬리가 나온 레퀴엠이나 쉘터 같은 식으로 무자비하게 흘러가지 않길 바랐었고 다행히 그랬다. (그러고 보니 제니퍼 코넬리도 힘든 영화를 참 많이 찍는다는 생각...) 
 
 



10년도 더 지난 샤프디 형제의 초창기 영화가 생각났던 또 다른 이유는 안드레아 아놀드의 버드(https://ashland.tistory.com/558999)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두 실패한 삶을 살게 되진 않지만  <헤븐 노우즈 왓>은 가장 돌이키기 힘든 극단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버드>가 미래가 궁금해지는 어린아이들의 현재를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다 자란 성인의 현재만 보여준다. 어떻게 자라났는지 왜 여기까지 오게됐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아리엘의 과거를 안다고 한들 이들의 이야기를 인과관계로 설명하려면 끝이 없다. 이 영화는 그런 과정들은 과감히 생략했다. 누군가는 발을 들였고 빠져나오기 힘들다. 일단 발을 들인 사람들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세상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는 이유는 아름답기만 한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견고한 생태계 때문이기에.

영화는 보란 듯이 팔목에 손을 긋는 할리를 일리야가 구해주면서 시작하고 할리는 영화 후반부에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죽을뻔한 일리야를 구해준다. 죽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인생이지만 그들은 죽음 직전의 공포를 겪고 아직 살아있음을 절절히 깨닫는다.

일리야가 피를 흘리는 할리를 위해 앰뷸런스를 불러주고 자기는 따라가지 않겠다며 유유히 등질 때 할리는 함께 할 수 없으면서 왜 구해줬냐고 소리친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타자를 향한 절규일지도 모른다. 함께 할 수 없으면서 서로를 구원하고 스스로를 도울 수도 없는 사람들을 구원했다 안도하며 무책임하게 또 뒤돌아서는 우리들 말이다. 

마이크(버디 듀레스)


영화 <굿타임>에서 로버트 패틴슨과 기막힌 콤비를 이뤘던 버디 듀레스 역시 일반인이었다. 나는 이 배우에게서 <천국보다 낯선>의 존 루리 같은 인상을 받아서 으레 천재 감독과 같이 일하는 재능있는 제작진 친구가 연기까지 하는거라고 넘겨짚었었다. 감독인 베니 샤프디가 로버트 패틴슨의 동생으로 나오는것처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배우는 약물 복용 관련해서 몇년 전 사망했다.

헤븐 노우즈 왓을  찍고나서 마약사범으로 재활 중  도망쳐서 감옥에 있었던 그의 경험은 <굿타임> 시나리오의 밑바탕이 되었다. 한편으론 약물중독자들의 극단적인 경험담이 이용됐다는 생각에 샤프디 형제가 영악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그것 역시 성공한 유대인에 대한 나의 편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샤프디 형제가 <언컷 젬스>를 들고 나타났을때 난 오지랖을 떨며 이들이 <위플래쉬>에서 <라라랜드>로 장대 높이 뛰기 하는 개구리처럼 도약한 데이미안 셔젤 같은 케이스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들은 오스카에 노미네이트 되지 조차 못했다. 요는 라라랜드와 바빌론식의 웅장한 영화를 내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선댄스에 어울리는 영화를 만들던 독특하고 기세등등한 감독들이 갑자기 유명세를 타고 뭔가 돈냄새가 나는 모범적인 영화를 들고 나오는 패턴에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예산 영화를 만들던 감독들이 평생 주야장천 짠내 나는 영화를 만들며 살길 바라는 것도 아닌데 왠지 난 그런 관점을 버리기가 힘들다.

언컷 젬스 이후 몇 년 간 작품이 없던 샤프디 형제는 각자 따로 티모시 샬라메와 드웨인 존스를 앞세워 실존 인물에 관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올해 개봉한다는데 이것도 사실 묘한 패턴이다. 나는 배우들이 전기 영화를 찍는다면 그건 그 배우 인생에 딱 한번뿐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먼훗날 티모시 샬라메가 실존했던 유태인을 연기하고  메릴 스트립이 역사상 최고령 철인 삼종 경기 선수를 연기한다고 해도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닐거다.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 인터뷰를 보니  '꽃미남 파괴자'에 대한 얘기도 있는데 사실 진정한 꽃미남 파괴자는 샤프디 형제이다. 이들은 칼렙 랜드리 존스를 머리를 산발한 약물 중독자로 만들고 로버트 패틴슨은 아픈 동생을 끌어들여 은행을 털다 보안염료팩을 뒤집어쓰는 꾀죄죄한 범죄자로 만든다. 과연 티모시 샬라메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사실 감독들이 배우를 망가뜨린다기보다는 한 번 망가져보고 싶은 배우들이 망가져도 폼나게 망가뜨려줄것 같은 좋은 감독을 찾는다는 게 맞는 말일 거다.

이상 로버트 패틴슨 인터뷰 읽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