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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아메리칸 허니 (American honey,2016)

American honey (2016)

 
 
<버드> (https://ashland.tistory.com/558999)를 연출한 안드레아 아놀드의 2016년작  <아메리칸 허니>를 뒤늦게 찾아서 봤다.  <버드>가 막 홀로서기를 시작하려는 베일리속의 희망을 보여주며 끝이 났다면  <아메리칸 허니>는 오클라호마 소녀, 스타(사샤래인)가 돌보던 어린 동생들을 놔두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과감히 집을 뛰쳐나오는것으로 시작된다.
 
아메리칸 허니는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는 로드무비이다. 짐작컨대 이들 대다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가출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작은 밴을 타고 미국 전역을 돌며 값싼 여관에 짐을 풀고 팀리더가 정해준 지역(가정집들이 모여있는 부촌이나 장거리 화물 운전기사들이 집결하는 곳 등등)에 내려 잡지 구독권을 판다. 최대한 없어 보이는 차림새를 하고 동정심을 유발할만한 불우한 가정사를 지어내고 때로는 전도유망한 대학생이 되어 미래의 구독자를 좇는다. 유능한 세일즈맨처럼 말발을 내세워 집안으로 초대받아 물건을 슬쩍하기도 하고 몇십 달러짜리 잡지 구독권을 팔려다 더 큰돈을 제안하는 성매매의 덫에 걸리기도 한다.
 

첫인상은 리사 보넷이지만 볼수록 리한나와 노라존스가 묘하게 섞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샤 레인


 
잡지를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아무도 잡지의 유용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파는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팔아야 하고 사는 사람은 몇푼안되는 잡지를 구독하며 불쌍한 아이들을 구원해준다고 생각하며 우월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낀다. 밤이 되면 이들은 자신들의 '움직이는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매일밤 숙소 마당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영원불멸의 전야제가 열린다. 술과 음악, 사랑, 향정신성 물질들과 함께 이들은 늘 똑같이 하루를 끝맺고 똑같은 내일을 맞이한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이복동생 둘을 보살피며 사는 스타(사샤 레인)는 마트에 갔다가 잡지판매원들을 만난다. 집안과 동네 곳곳에 들어찬 패배와 절망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적당한 주거지도 없이 늘 옮겨 다니는 이들의 삶은 오히려 활기로 넘쳐난다. 스타는 팀원 사이에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내뿜는 제이크(샤이아 라보프)와 몇 마디 나누다가 그의 권유로 결국 집을 나와 팀에 합류한다. 이 팀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제이크와 신입직원인 스타는 늘 붙어 다니고 결국 사랑에 빠진다.

크리스탈(라일리 키오)은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이다. 혼자서 넓은 여관방 하나를 쓰면서 남자 팀원들을 성적으로 이용하고 실적이 나쁜 팀원은 가차 없이 쫓아낸다. 제이크는 새로운 멤버를 데려올 때마다 크리스탈에게 보너스를 받는다. 스타를 좋아하지만 크리스탈과의 미묘한 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스타는 크리스탈과 제이크의 관계를 질투하고 비난할 수도 없다. 집도 주고 밥도 줄 테니 잡지만 팔고 오라는 최상위 포식자인 크리스탈에게 밉보여서 좋을게 하나도 없다. 한편으로는 팀 리더가 여자여서 오히려 여성들은 팀내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이들은 황량한 미국의 저개발 지역들을 흥분상태로 누빈다.  잡지를 팔겠다고 호기롭게 가정집의 초인종을 누르면 약에 취한 엄마와 방치된 아이들이 있을뿐이고 유전 근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순진한 소녀를 앞에 두고 자위를 하는 대가로 1000달러라는 오일 머니를 거침없이 뿌린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10대 소녀는 겁도 없이 모르는 남자들의 차에 올라타고 독주를 연거푸 들이킨다. 좁은 차속에서 대마초를 나눠 피우며 리한나의 노래를 떼창 하는 청소년들은 황량한 고속도로의 끝과 함께 시작되는 삐죽삐죽 솟은 마천루를 보자마자 환호한다. 초대형 장거리 트레일러의 운전자는 바다를 보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치밀하고 정교하게 머릿속에 주입되어온 물질적인 성공 신화들을 눈으로 확인한다. 사막 한가운데의 수영장이 딸린 집, 오픈카를 타고 내달리는 미국, 유년 시절의 거한 생일 파티, 돈만 있으면 몸도 마음도 아무런 가책없이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이 작은 집단에선 내 돈을 내고 잡지를 구독하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하는지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는다. 풍요로움과 성공의 신기루는 끊임없이 주입되지만 당장은 오늘 저녁을 즐겁게 사는것이 중요하다. 아무도 그들에게 화려하고 삐까뻔쩍한 겉모습의 이면에서 진심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반평생 열심히 일했지만 바다 한 번을 보지못한 트럭기사와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며 국경을 넘어었지만 결국 값싼 마약에 취해 아이를 굶기는 이민자들이 있을뿐이다. 스타는 처음 본 아이들에게 장을 봐다주고 트럭기사와 대화를 하다가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 되묻는다. 우리는 생각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늘 조금은 안도한다. 생각할 수 있을때 아직은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구체적으로 이들이 무엇을 꿈꾸는지 모른다. 어떤 계획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 고향을 묻는 정도가 이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유일한 질문이다. 이들은 내일 정도만 보장된 오늘을 자유롭게 산다. 팀을 위해서 일하지만 책임져야 할 것은 그 자신뿐이다.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스스로 선택한 이 작은 사회가 보장하는 안락함을 이들은 쉽게 놓지 못한다. 결국 그들에게 필요한 건 서로의 체온,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저녁이 되면 익숙하게 돌아올 울타리 그 이상은 아니다. 
 

영화 포스터로 쓰인 이 장면에서 Mazzy star의 Fade in to you가 나온다. 버그의 Yellow 에 대한 대답처럼.

 
영화를 보다보면 가출팸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 <꿈의 제인>이 생각난다. 트랜스 젠더, 장애인, 박카스 할머니, 버려진 코피노가 함께 살아가는 <죽여주는 여자>도 오묘하게 떠오른다. 이 영화들에는 자발적으로 선택한 울타리에서 서로 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사회에서 소외되었다는 공통적인 정체성을 바탕으로 다른 이를 망설임 없이 품고,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누구도 앞장서서 타인을 버리지 않는다. 아메리칸 허니와 비교해도 훨씬 어둡고 암울한 느낌이 드는 우리나라 영화들이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함께 있는 동안 최대한 서로를 품어주려는 따스함의 본질은 같다.  
 
스타는 수영장에 빠져버린 벌을 얇은 종이로 건져주고. 방에 갇힌 곤충을 창문 밖으로 날려보내주고 길 잃은 자라를 강물에 흘려보낸다. 주변의 연약한 것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동시에 구원한다. <버드>의 엔딩에서 베일리의 마음속에서 돋아나던 날개가 스타를 도약하게 하는 것이라면 버그가 두꺼비를 안고 갈구하던 그 빛과 별이 그녀의 이름처럼 스타를 환하게 비쳐줬으면 좋겠다. 그것은 반드시 성공에 관한 것은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우리가 순수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 함께 꿈꾸는 미래, 어떤 울타리, 항상 보이는건 아니지만 어디선가 늘 빛나고 있는 그런 빛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메리칸 허니는 꽤 길다. 중간중간 긴장감을 유발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그들은 마치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인것처럼 암울해질법한 상황들도 최대한 밝은 톤으로 풀어낸다.  <버드>와 마찬가지로 촬영 스타일도 음악을 쓰는 방식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감독의 또 다른 영화 피쉬탱크를 찾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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