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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말벌 (Wasp,2003) 그리고 피쉬 탱크 (Fish tank,2009)

어떻게 만들어도 항상 폼나는 크라이테리온 타이틀 커버

 
 
어떤 감독들은 같은 사람이 만들어낸 영화라고 믿기 힘들 만큼 매번 전혀 다른 주제와 스타일의 영화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어떤 감독들은 아주 끈질기게 비슷한 이야기들을 오랜 세월에 걸쳐 지치지 않고 만드는데 난 아마 후자의 경우를 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난 여전히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좋고 안드레아 아놀드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안드레아 아놀드의 최신작 버드(https://ashland.tistory.com/558999)로부터 감독의 전작들을 찾아 계속 옮겨가다 보니 한 사람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토록 끈질기게 비슷한 주제를 파고든다면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그 자신으로부터 나온것이리라 짐작하게 된다. 
 
 

Wasp (2003)

 
 
안드레아 아놀드의 2009년 작 피쉬 탱크를 보기에 앞서 2003년 작품  <Wasp>를 찾아보았다. 25분 남짓한 단편 영화이지만 보는 내내 긴장했고 화가 났지만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열 살 남짓한 첫째부터 유모차를 탄 갓난쟁이까지 아이 넷을 거느린 싱글맘은 배고픈 아이들에게 설탕 봉지를 건넬 만큼 궁지에 몰려있다. 길에서 우연히 어릴 적 알고 지내던 남자를 만난 날, 부엌에 붙어 있는 데이비드 베컴의 스티커를 보며 엄마는 골몰한다. 결국 젊은 엄마는 꽃단장을 하고 아이 넷을 데리고 동네 펍을 향한다. 있는 동전을 다 긁어서 스낵 한 봉지와 콜라를 사주며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엄마를 찾지 말라고 당부하고 펍 마당에 네 아이들을 남겨둔다.

굶주린 아이들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청년들이 먹다 버린 싸구려 립을 주워 먹는다. 유모차에서 잠이 든 갓난 쟁이 아이 입에 묻은 립 양념에 말벌이 날아와서 붙자 다급해진 아이들은 그제야 승용차에서 스킨십에 한창인 엄마를 불러낸다. 모두가 안절부절못하는 가운데 아이의 입속으로 말벌이 기어들어간다. 감독은 진정 이런 식으로 잔인하게 가난과 무지가 초래하는 비극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걸까 무기력 해질 즈음 말벌은 가까스로 아기의 입 밖으로 빠져나온다.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우리 엄마를 욕하지 말라는 듯이 해맑게 엿을 날리는 아이들 그리고 동조하는 엄마.

 
 
제대로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를 어린 나이에 어쩌다 4명씩이나 낳았을까. 누구라도 던질 이런 질문에 대해 감독은 그의 다른 모든 영화에서 그렇듯이 그 과정을 설명하거나 이해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낙태할 돈이 없어서, 아이의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함께 잘 키우자는 남자친구의 말을 순진하게 믿어서, 양육수당이라도 받으려고, 낳는 것 이외의 방법을 알지 못해서, 어쩌면 단지 '나의 아이'라서. 그저 부모가 생각했던 최선의 선택으로 이들은 차례차례 태어났을 거다.

돈이 없으면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애들 나이가 저렇게 고만고만하면 애들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어도 제대로 일을 하기란 불가능할 거다. 도움을 줄 사람이 없거나 복지수당으로도 삶이 여의치 않으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책임져 줄 파트너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부유한 축구스타의 아내는 될 수 없어도 동네 멋쟁이의 여자 친구 정도는 해볼 만한 것 같고 나의 다른 아이까지 극진히 보살펴줄 꿈의 남자가 그들 인생에 절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펍에서 당구를 치고 이성과 노닥거리는 그런 평범한 20대의 주말밤이 커다란 일탈이 되어버린 삶에서 그런 작은 부도덕함이라도 저질러서 여자는 아이들과 함께 할 힘을 조금이라도 끌어 모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이였을 때 세상에서 가장 똑똑했고 늘 진짜를 알아봤기에 어쩌면 막내 동생의 입 속에 말벌이 들어가던 그날, 뾰족구두를 신고 짙은 화장을 한채 유모차를 밀고 달리며 노래 부르며 웃어줬던 엄마의 행복한 얼굴을 평생 기억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용케 그 얼마 안 되는 아름다운 순간을 평생 간직하며 어리석은 엄마라며 분노하는 대신 단지 행복하고 싶었던 미성숙한 인간을 이해하는 아이로 자라날지도 모른다며 애써 희망을 가져본다. 꾸미고 변명하고 후회하지 않는 인물들의 현재만을 철저하게 보여주면서 저 엄마를 어떻게라도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마 이 감독의 힘이 아닐까 싶다. 
 

미아 (케이티 자비스)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은 미성년자 부모의 네 자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는 감독이 태어나자마자 이혼했으며 감독의 엄마는 이미 22살에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하니 조금의 허구가 가미되었다고 해도 이 25분짜리 단편을 통해서 감독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이 어린 싱글맘은 좀 더 어른이 되고 아이들은 엄마와 대립하는 청소년으로 자라난다. <피쉬 탱크>는 너무 분명하게도 <말벌>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 <피쉬탱크>에는 영국 에섹스 지방의 공공 임대 주택에서 엄마와 어린 여동생과 함께 사는 15살 소녀 미아(케이티 자비스)가 나온다. 미아는 시간이 날 때마다 춤에 몰두하고 집에서는 그 누구와도 따뜻한 말 한마디 섞지 않지만 동네 공터 말뚝에 묶여있는 말을 동정하는 여린 소녀이다. 엄마는 밤늦게 귀가해서 밥을 달라고 하는 딸에게 여긴 식당이 아니라고 쏘아붙이고 딸에게 무관심 하지만 감독의 다른 영화 속 엄마들에 비해선 충분히 센티멘탈하고 책임감 있어 보인다. 두 딸을 키우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사춘기 딸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지만 미아가 15살로 충분히 성장한 만큼 그 엄마도 아주 미성숙하고 어리석었던 시기는 이미 지나왔음을 보여준다.
 
 

Fish tank (2009)

 
 
미아의 엄마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미아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긴다. 코너(마이클페스벤더)는 엄마와 갈등을 겪는 미아에게 섬세한 관심을 보이며 춤을 추고자 하는 미아를 격려한다. 많은 싱글맘의 남자친구들이 그렇듯 그가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줄 거라고 미아도 관객도 순진하게 기대한다. 미아에게 코너의 존재는 단순히 아빠와 남자에 대한 환상을 넘어서 든든한 직장이 있고 자가용을 운전해서 소풍에 데려가줄 수 있으며 세련된 언어를 쓰고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는 더 정돈된 계층에 대한 동경이다. 하지만 코너는 엄마에게 청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애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는 심지어 성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춘기 소녀 미아를 세련된 방식으로 그루밍하는 속물일 뿐이다. 
 
 

Fish tank (2009)

 
 
타임지에서 잡지 판매 크루에 관한 기사를 읽고 호기심에 미국 자동차 여행을 하고 찍게 됐다는 <아메리칸 허니>를 제외하면 안드레아 아놀드 영화 속 배경은 모두 그녀의 고향인 런던 외곽 지역이다.

영국의 귀족 계층과 노동자 계층의 미묘한 악센트 차이를 편집해서 보여주는 인터넷 영상들과 유럽 평균을 훨씬 웃도는 십 대 임신율, 교육과 노동의 부재, 보수적인 영국 사회의 뿌리 깊은 계급 구조를 기름종이처럼 깔아 두고 이 영화는 황량한 콘크리트 건물과 그곳에 그득그득 들어찬 인생들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대단위 공공 임대주택이 만들어내는 획일적인 풍경, 단지와 단지 사이를 채운 척박한 놀이 공간에서 빈둥되는 아이들, 마구잡이로 자란 녹지, 어지러운 집안 풍경과 투박한 영국 악센트로 오고 가는 빈곤한 대화들이 그의 모든 영화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인간이 극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자신을 기른 결점 투성이의 부모, 작은 어장 같은 좁은 촌구석 정도만 극복하면 과연 삶은 달라질까. 인간이라면 손으로도 쉽게 잡히는 도랑 속의 민물고기와 좁은 공업 도시의 말뚝에 묶여 짧은 인생을 살다 죽는 말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하며 그들이 섣불리 자신의 불행을 결정짓기 전에  감독은 늘 주인공들을 어딘가로 떠나보내며 결말을 열어둔다. 
 

Fish tank (2009)

 
 
영화는 최대한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인물을 보여주려고 한다. 미아가 꿈을 펼치고 드라마틱하게 갈등을 극복하고 세상에 나아간다는 식의 희망적인 설정은 늘 그렇듯 자제한다. 영국의 노동 계급과 결손 가정 청소년의 성장과 갈등을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연기 경험이 없는 신예를 기용하지만 세 편의 영화에서 상대 배우는 모두 지명도 있는 남자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균형을 잡는다. 
 
미아를 연기한 배우 케이티 자비스는 <아메리칸 허니>(https://ashland.tistory.com/559005)와 <버드>의 여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인이었는데 기차역에서 남자친구와 싸우는 모습을 눈여겨본 제작진에게 섭외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피쉬 탱크에서 미아의 대사는 거의 대부분 거칠고 호전적인 톤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슈팅 라이크 베컴> 속의 키이라 나이틀리가 계속 떠올랐고 미아가 코너(마이클 패스밴더)와 한 장면에 잡힐 땐 키이라 나이틀리와 패스밴더가 함께 공연한 <데인져러스 메소드> 생각도 났다.

2009년도 영화를 지금보니깐 마치 마이클 패스밴더가 엑스맨 같은 블록버스터를 찍다가 갑자기 독립영화를 찍는 느낌이 들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그가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찍기 이전의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이 배우가 가장 인상에 남았던 영화는 셰임인데 셰임 속의 이미지는 심지어 이 피쉬탱크에서 모녀 사이에서 끼를 부리는 모습에서 이미 그 전조를 보이지 않았나 싶다. 

 

Fish tank (2009)

 
 
안드레아 아놀드의 영화 속에서 여성은 어쨌든 생명력의 근원이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남성들 대신 아이들을 길러내고 첫 경험을 빼앗아간 남성에게 매달리지 않고 엄마와 자신을 농락한 남자의 집안 바닥에 보란 듯이 소변을 갈긴다. 스트릿 댄스를 즐겨 추는 미아는 동네 공터에서 소년들 앞에서 어설픈 섹시 댄스를 추는 또래 여자들을 박치기한다. 어디에도 이젠 베컴 스티커는 없다. 잘생긴 남자들은 늘 주변에만 머물러있다. <아메리칸 허니>의 제이크가 그럴듯한 거짓말로 잡지를 팔 때 스타는 단지 돈이 필요할 뿐이라는 솔직함으로 겁 없이 낯선 남성들에게 다가간다. 그런 그녀가 처참하게 이용당하는 결말을 예측하며 구원해 주는 듯 나타나는 제이크는 결국 스타가 그렇게 벌어온 돈에 만족하고 넘어가는 남성일뿐이다.

하지만 가장 최근작인 <버드>에서는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젊은 아빠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것이 남성과의 화해를 의미한다면 그리고 안드레아 아놀드가 계속 이런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면 그의 다음 영화는 어떨지 기대된다. 
 
 

Fish tank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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