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다큐영화 <Cow>를 찾다가 우연히 다리우스 메흐르지 감독의 이란 영화 <The cow>를 보게 되었다. 이렇게 뜬금없이 보게 되는 옛날 흑백영화들은 대부분 좋은 영화다. 수십 년이 흘러서도 리마스터링 되고 회고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다.
<소>는 다리우스 메흐르지 감독이 서른살에 만든 두 번째 영화이다. 미국 유학 후 돌아와서 만든 제임스 본드 컨셉의 첫 상업영화가 실패한 후 만들어진 초기 대표작이고 이 영화를 이란 뉴웨이브의 시작이라고 본단다. 내가 극장에서 보는 행운을 누렸던 <천국의 아이들>이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같은 이란 영화가 웰메이드 제3세계 영화로 알려지기 훨씬 이전의 영화이다. 역시 뉴웨이브가 있어야 황금기도 있는 건가 보다.

조용한 이란의 시골 마을. 남성 한명이 소를 몰고 허허벌판을 지나간다. 웅덩이에서 물도 먹이고 정성스레 목욕도 시켜주며 행복한 표정으로 소를 끌고 마을에 입성한다. 마을 한가운데의 나무 기둥에 소를 묶어놓고 마을 남자들이 모여있는 노천 찻집에 앉는다. 남자는 소 곁으로 모여들어 장난치는 아이들을 내쫓는데 여념이 없다. 마을의 유일한 소이자 임신 중인 암소는 이 남자에게 거의 신적인 존재이다. 마을 사람 모두가 그에게 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하지만 그 소는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함께 지켜나가려는 이들 모두의 공동의 가치인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누군가의 소유물이고 오로지 그것을 가진 사람만이 그것과 함께인 순간에만 빛을 발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벽에 난 조그만 구멍으로 준비된 차들이 나온다. 저 검은 구멍에서 갑자기 팔이 튀어나오는데 정말 그로테스크했다. 찻집 주인과의 살가운 대화, 생동감 이런건 전혀 없다. 터키를 비롯한 중동 영화들에는 차 마시는 장면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도란도란 모여서 수다를 떠난 사람들은 거의 항상 남자들이다. 차받침 위에서 달그락 거리는 작은 찻잔, 입안에 넣자마자 피로가 가실 것 같은 각설탕, 그들의 수다들은 늘 비밀스럽다. 살갑고 끈끈한 유대감은 이들사이에 없지만 다른 마을에서 출몰하는 도적들 얘기를 할 때 잠시 한마음이 된다. 어떤 남자는 양 세 마리를 도둑맞았다. 가져갈 거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마을이기에 사람들은 더 긴장한다. 남자는 소를 도둑맞을까 위협을 느낀다.

마을은 보면 볼수록 음산하다. 마을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최대한 숨긴다. 아무도 끌지 않는 것 같은 쓸모없는 달구지, 살아남은게 기적처럼 보이는 나무 몇 그루, 의심스러운 물, 이런 장면들은 극도로 사실적이고 그 느낌은 기이하다. 인위적으로 절제하고 미학적으로 최소화하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게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걸 가지고 있다.' 이런 클리셰라도 날려보겠지만 하늘 아래 있는 거라곤 진흙집뿐이고 혹한도 전쟁도 없는데 이 모든 풍경들은 목가적인 대신 강압적이다.

이런 작은 마을이 배경일때는 얼마 없는 마을 사람들끼리 질투하고 싸우는 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에는 딱히 눈에 띄는 갈등은 없지만 경계와 통제의 느낌으로 가득하다. 차를 주는 사람은 창으로 손만 넣다 빼고 어떤 남자는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이 낮이나 밤이나 작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철창살로 막힌 작은 창문, 잎이 매달리지 않는 나무, 삐죽한 사다리처럼 사실상 이 마을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은 생기를 잃어버린 마을을 더 소외시킨다. 남자의 소와 그가 소와 함께 하는 동안 발산하는 생명력은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감도 주지 않는다.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는 남자는 임신한 암소를 애지중지 한다. 하지만 소를 부탁하고 잠시 집을 비운사이 소는 죽는다. 마을 사람들은 동요한다. 남자가 소가 죽은 걸 알면 충격을 받을 거라 생각하고 소가 집을 나갔다고 말하자고 말을 맞추고 구덩이를 파서 소를 묻는다. 돌아온 남자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는 급기야 자신의 소가 살던 외양간에서 자신이 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건초를 뜯어먹는다. 사람들은 점점 그를 두려워하고 온갖 미신과 의식을 동원해서 상황을 모면해보려 하지만 죽은 소를 외양간에서 끌어냈던 것처럼 미친 남자를 결국 밧줄로 동여매서 끌어낸다. 소는 그에게 전부였지만 소가 된 그는 완전히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려진다. 이제 마을에는 지켜야 할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소도 남자도 완벽히 파괴된 것을 확인한 옆 마을 도적들은 발길을 돌린다.

영화를 보는 동안엔 정부의 핍박 아래 산전수전 다 겪은 거장이 검열을 피해 최대한 단순하고 상징적으로 만든 말년의 걸작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떤 장면에서 멈춰도 멋있는 사진이 된다. 보는 내내 이집트에서 일주일정도 머물렀던 오아시스 마을이 생각났다. 1960년대의 이란이나 2000년대의 이집트, 그리고 어쩌면 25년이 흐른 지금도 그곳은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비슷한 모습일 것 같다. 하지만 이집트의 싼 물가를 즐기는 여행객들로 활기찼던 21세기 초반의 이집트 도시를 생각하면 이 이란의 시골 마을은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피골이 상접한 죽은 도시에 가깝다. 하지만 반세기가 흘렀어도 저 마을 사람들과 내가 휘둘리는 척박한 삶의 주제는 변하지 않은것 같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으면서 존재의 의미자체를 잃어버리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결국 구제하지 못하고 그냥 소멸하도록 놔둘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사람들이 나온다. 하지만 소란 존재가 없었더라면 그 남자의 인생이 더 나았을까 하면 또 그런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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