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uanian Language2018.01.10 08:00


리투아니아어로 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원 가입을 하거나 물건 구매를 할때처럼 다음 절차로 넘어 가야 하는 상황에서 항상 볼 수 있는 단어. Tęsti. 계속하다. 연장하다의 동사 원형이다. 오늘 마트 계산대 앞에 서 있는데 직원이 자리를 비운 옆 계산대의 모니터 속에 남아 있던 풍경이다. 괜히 눌러주고 싶다. 마우스 커서만이라도 좀 옮겨주고 싶다. 버스 앞자리에 앉은 모르는 이의 코트에 붙은 머리카락을 무의식중에 떼어주려다 멈칫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늦은 시간 마트에 가면 일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채 장을 보며 아직 근무중인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직원들을 마주칠 수 있다.  구시가지에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마트는 이곳이 유일한데 아마 이제 막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앉거나 물건을 채워넣는 직원들이라면 아마 아침이 올때까지 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이들을 생각하면 특히나 10시 이후 주류를 팔지 않는 방침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딘가에서 흥건히 취해와서는 코 앞에서 쾌적하지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이들은 항상 있겠지만. 물건들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 바코드를 찾는 직원과 그 손길을 지나쳐 온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아 넣는 손님 사이의 반경 1미터. 버스를 타고 매일매일 어디를 이동하지도 사람이 많은 곳에 갈일도 거의 없는 단조로운 빛깔의 이곳 생활에서 아마 가장 가깝게 낯선이의 눈빛과 손짓을 읽을 수 있는 순간이다.



마트 가기 3시간 전 쯤. 1월의 8일이 지난 오늘. 같은 자리 같은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아 이제 휴가가 끝났겠네 하고 뒤돌아 보니 아직 끝나지 않은 휴가. (http://ashland.tistory.com/689) 한 달이나 늘어난 휴가.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바뀐 숫자. 웃음이 나왔다. 휴가를 계속하시겠습니까? 라는 물음에 Tęsti 버튼을 눌러 휴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당연하게 연장된 것처럼 느껴진다.  갑이 을이고 을이 갑이여야 가능한 기나긴 휴가일까. 정말 주인 혼자서 일하는 가게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n Language2018.01.06 08:00


어떤 언어를 배우든 혹은 진지하게 배우기 시작하지 않더라도 어떤 외국어를 접하든 가장 처음 찾아보는 단어는 대개 '여행'이다.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세상으로의 '여행'이기도 할뿐더러 언젠가 지금 속해있는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게 될 것이라는 갈망은 '여행'이라는 단어 없이는 쉽게 성립되지 않기때문이다. 길 Kelis. 여행자 Keliautojas. 여행은 켈리오네 Kelionė 이다. 연휴 후에 찾아간 어린이 도서관에서 발견한 월리를 찾아라. 월리를 찾을 때 만큼의 에너지로 매번 월리인지 윌리인지를 뚫어져라 확인해야 했던 책. 리투아니아에서는 월리가 Jonas 로 바뀌어서 여전히 세상을 활보하고 있었다.  요나스 Jonas 는 리투아니아에서 매우 흔한 이름으로 이 이름이 붙은 교회도 있고 그렇다면 당연히 요한복음의 요한, John 의 리투아니아식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항상 같은 옷에 같은 모자를 쓰고 엉망진창 요지경의 세상을 한결같은 표정으로 여행하는 월리, 요나스. 커다란 종이 두 바닥에 함축된 각양각색의 세상 속에서 가장 평온했던 얼굴. 문득 나는 어떤 표정으로 여행했으며 다음 여행 속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여행의 본질은 어쩌면 다시 돌아와서 질주해야 할 곳과의 말랑한 타협일뿐인지도. 떠나와 만끽한 느낌에 대한 질척한 증명욕으로 반복되는 고질적인 감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항상 어딘가로 떠나야만 한다는 집착으로 훼손되어서도 새로운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다는 강박으로 어지럽혀져서도 안되는 가치, 그리고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길에도 아직 내 마음이 닿지 않은 '히든 트랙' 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여행의 일부이겠지.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n Language2017.12.23 08:00


'오늘의 런치', '점심 메뉴'. 구시가지를 걷다가도 식당 입간판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단어. 구시가지 입간판에 메뉴와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면 저렴한 점심 메뉴가 있으니 들어오세요 라는 소리일 확률이 높다. 이곳은 신시가지의 뒷골목이었다. 뒷골목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실 굵직하고 투박한 건물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듯한 이 구역은 그냥 볼 일이 있는 사람들만 끈덕지게 드나들고 아는 사람만 알면 되는 공간들로 가득 채워진 어디가 입구인지 뒷문인지 애매한 매우 배타적인 풍광을 지닌 곳이다. 흡사 영업을 끝낸 식당 아저씨가 한 밤중에 시커먼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와 담배를 꺼내 물 것 같은 풍경속에 매달려있던 오늘의 점심 광고. 무엇을 주는 지를 굳이 알려야 할 필요도 없다. 때가 됐으니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 할 것 아니겠소 라고 말하는 듯한 단도직입적인 문구. 빌니우스의 구시가지는 빌니우스시의 행정구역 중 하나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서 관광지 개념으로 특별히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냥 빌니우스 시 산하의 구 의 개념이라고 보면된다. 그런 구시가지(Senamiestis) 와 바로 맞닿아 있는 구역이 신시가지 (Naujamiestis) 인데 그 구역도 구시가지에서 전부 도보로 커버가 될만큼 밀착되어 있고 신시가지 자체도 넓지 않다. 신시가지에서는 소련시절에 지어진 4-5층짜리 대단위 주거단지 흐루쇼프카를 구경할 수 있다. 나라가 집과 보드카를 주던 시절. 주변에는 자신들의 돌아가신 할머니들로부터 이들 주택을 물려 받아 새롭게 단장해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오래된 공장 건물들도 많다. 그런 건물들의 경우 천장 높이가 5미터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2010년 정도부터 Loftas (Loft) 붐이 불어서 활동적인 젊은 예술가들이 새롭게 탈바꿈 시켜 창작 공간이나 공연 시설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건설업자들도 그 유행에 편승해서 재단장시켜 비싼 값에 팔기 시작했지만 그런 경우 이미 로프트 특유의 탁 트인 공간의 자유분방한 느낌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천장이 높은 만큼 어느정도 평수가 확보가 되어야 좀 그 느낌이 살텐데 작은 면적으로 이렇게 자르고 저렇게 자르니 천장만 높아진 좁은 방의 형태가 되고 이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곳의 분위기 자체가 마냥 밝고 건전하진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잘 안팔린다. 그럼에도 이 구역은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하고 접근성이 좋아서 직원들을 많이 수용해야 하는 기업들이나 저렴한 비지니스 호텔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시내버스를 타면 10분만에 국제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 신시가지이다. 삭막하고 때로는 음습하고 퀴퀴하기까지한 이 구역의 건물들 사이를 염탐하는 것은 겹겹의 지붕을 누른채 여기 저기 솟아 있는 성당 첨탑을 이정표로 삼아 구시가지를 배회하는 것 만큼의 재미가 있다. 구시가지가 구불구불한 길로 우리를 휘감아 은은한 파스텔톤 메타포를 유도해내는 곳이라면 이곳은 코를 킁킁거리면 놋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건물을 타고 치솟는 환기구를 허파로 장착한 무채색의 언어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구시가지가 결벽에 가까운 현악 4중주를 연주하려는 곳이라면 이곳은 오래된 타악기 연주가 악보 없이 진행되는 곳이다. 신기하게도 결국 나를 좀 더 동하고 두리번거리게 하는 것들은 이런 풍경들이다. 물론 구시가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언덕 위의 집을 마다하겠냐마는.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n Language2017.10.15 08:00



어릴 적 동네 소아과 선생님의 '어디보자아'하는 친절한 목소리와 함께 혀를 짓누르고 들어오던 스테인리스 설압자. 이 카페에서는 바닥이 얕은 커피잔에 담겨지는 커피에는 늘상 그 설압자 같은 스푼을 놓아준다. (http://ashland11.com/385). 얼마전에 우유를 작은 병에 따로 담아주던 것이 기억나서 오늘도 밀크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귀여운 스푼도 딸려 나왔다. 이곳은 생강 쿠키 하나도 함께 얹어 준다. 읽으려고 가져 간 잡지에 뜬금없이 '한국'이 제목에 들어간 기사가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언론에 한국이 등장하는 경우는 보통 북한 관련 소식이다.  인도에 가서 인도 사람들에게  카슈미르 같은 분쟁지역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노프라블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참 많다. 언론에 보도되는 북한 관련 이야기들을 진정 걱정 섞인 눈빛으로 물어오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노플라블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도를 통해 접하는 남의 나라 전쟁 관련 소식들은 현지에서 체감하는 것보다는 항상 좀 더 공포스러운 것 같다. '전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안일한 발상인데 말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탱크가 산 사람들을 짓밟고 지나간 역사가 아직 엊그제 뉴스처럼 생생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나저나 기사의 제목은 '로봇세 도입을 눈 앞에 둔 한국' 정도로 의역할 수 있겠다.  한국 자체에 대한 기사라기 보다는 로봇세 도입에 대한 전박적 경향에 대한 기사인데 우리나라 로봇세 도입도 아직 확정되지 않지 않았나? 기사에서는 내년에 도입한다고 나온다. 잘못 읽었나?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한국은 Pietų Korėja. 남한이다. 재밌는것이 리투아니아의 아침 점심 저녁이 Rytas, Pietus, Vakaras 인데 다시 말하면 동쪽 남쪽 서쪽이다.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그대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그냥 '피에투 코레야' 라고 말하는게 좋다. 코레야라고 말하면 남쪽? 북쪽? 이라고 다시 물어보는 슬픈 현실. 그건 뭐 세상 어디가도 그렇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n Language2017.10.09 08:00




주말에 버스 터미널에 마중 나갈 일이 있었다. 공항 가는 버스 타는 곳이 표시가 되있었는데 글씨가 잘 안보이네. 저렇게 작아서 안 보일줄은 몰랐다. 빌니우스 구시가지에서 국제 공항까지 엄청 가깝다.   빌니우스 시외 버스 터미널을 기준으로 하면 택시로는 10분정도 시내 버스 타고도 30분이 안걸려서 도착할 수 있다.  '공항 방면'이라고 리투아니아어 영어 러시아어 순으로 써있다. 문득 토끼님도 내일 공항가시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Oro uostas 는 날씨, 공기, 공중을 뜻하는 Oras 에 항구를 뜻하는 Uostas 가 결합된 합성 명사이다. 명사앞에 į 라는 전치사가 붙으면 동작의 주체가 그 명사를 향하고 있음을 뜻한다. 공항 가고 싶다. 마중을 위한 공항이든 떠남을 위한 공항이든. 나 조차도 낯선 어떤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보고도 싶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