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nius Chronicle2015.07.02 02:50


 




이사와서 집수리 할때 건너편에서 같이 공사하던 이 호텔. 정말 오랫동안 텅비어있던 유령부지였는데 갑자기 호텔이 들어서고 마트도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나는 어딘가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는것이 그냥 좋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도, 내가 가본적없는곳을 여행하며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도.  가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면 창 너머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단체 관광객들을 볼 수 있다.  단체 여행에서 빌니우스는 하루 혹은 반나절 코스인 경우가 많으니 보통 아침 8시 전후로 부산하게 움직이는것이다. 알록달록한 등산복 패션의 한국인 관광객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호텔은 알고보면 노르웨이 자본으로 지어진 더블룸 가격이 보통 50유로 정도인 버짓 호텔. 여행에서 숙박비 줄이기를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이기에 50유로라는 가격도 사실 저렴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의외로 젊은 학생 투숙객도 많아 보인다. 국제 공항이 도심에서 버스로 15분정도로 좁은 빌니우스, 공항에서도 버스역, 기차역에서도 가깝고 구시가지도 가까운 위치에 있으니 머물기에는 최적의 조건인듯.


http://comforthotel.lt/


    




호텔 내부에 위치한 식당 Time. 전 날 토요일, 온종일 무리해서 돌아다닌탓에 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말 커피 끓일 힘도 없었던 어떤 일요일.  식당에 브런치 메뉴가 있다는게 생각나서 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을 나왔다.  그러나 늦게 일어난탓에 브런치 시간은 진작에 끝났기에 다른 메뉴를 골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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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인테리어 자체를 식당과 호텔이 함께 공유하고 있어서 사실 이 공간은 호텔 로비로서도 정겹게 느껴진다.  호텔 사이트를 보니 호텔 스위트 룸은 록스타 컨셉으로 만들어 놨다는데  콘크리트 천장도 그렇고 개방된 환기구는 언제봐도 기분 좋다.  밖에서 보면 어두침침해 보이는데 의외로 밝고 아늑하다.







가볍게 아침을 먹으러 간것인데 그렇다고 배부르게 점심을 먹을 생각도 없어서 그냥 생선 수프와 오리고기 몇조각이 들어간 샐러드를 먹었다. 음식이 특별히 맛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집이랑 너무 가까우니 음식하기 귀찮을때 와서 아침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장소가 널찍하니 사람들이 많아도 방해받는 느낌이 없어서 편했다.




 




아직까지도 호스텔 숙박이 익숙하고 도미토리에서 내려와서 학생들이 바글거리는 호스텔 부엌에서 아침 커피를 끓이며 밖에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드는게 정겨운 우리. 여유가 있으면 가끔 편안하게 이런곳에 머물며 여독을 푸는것도 괜찮겠다 싶다.






나에게 필요한것은 커피와 함께 먹는 버터 크로와상이나 케잌 한조각이었지만 없으니 온 김에 디저트도 먹고.







Posted by 영원한 휴가
Vilnius Chronicle2015.06.30 04:57





한국처럼, 여러 아시아 국가처럼 다양한 먹거리를 가진것은 참 행운이다. 한편으로는 정말 먹기 위해 살고 일한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게다가 맛있는게 너무 많아서 항상 뭘 먹을지 고민해야 한다면. 그런데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멀리서 한국 생활을 관조하고 있자니 그렇게 많은 먹거리들중에 정작 먹던 음식은 항상 정해져있었던것 같다.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면 많은것을 먹어보겠다 다짐하지만 아마도 결국은 또 엄마가 해준 집밥만 먹고 올게 뻔하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뭘 먹을까. 특히 밖에나가서 먹을 수 있는 메뉴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그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매년 거리 분위기가 바뀌고 식당의 지형도가 바뀐다는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빌니우스가 좀 더 생기 가득찬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많은 유럽 나라들이 그렇듯 리투아니아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피자이다.  리투아니아에 피자 붐을 몰고온 칠리 피자 cili pica 라는 리투아니아 토종 브랜드가 있고  그 체인의 성공덕에 캔캔 피자 can can 니 피자 재즈 pizza jazz 라는 다른 브랜드도 생겨났다.  아늑한 인테리어에 널찍한 공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외식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무난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피자가 한창 유행하기 시작할때 동네 구석구석에 생겨나던 10000원에 피자 두판을 팔던 배달 위주의 피자집도 몇년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피자의 맛과 질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고 가격 경쟁에서도 지니 고객을 빼앗긴 저런 피자 체인들은 컨셉부터 인테리어까지 바꾸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요즘이다.








다른 피자 브랜드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고작 다섯개의 체인점을 빌니우스에 가진 '서브마린'이라는 이 피자집. 여타 피자 브랜드만큼 세련되지 않은 뭐랄까 주인의 신념이 느껴지는 그런 고집스러운 피자집이다. 6월의 빌니우스. 하지가 지났으니 낮은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여전이 해가 길어서 오후 9시 10시에 집을 나서도 대낮같기만 한데, 정작 그 시간에 나가면 거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기 직전이어서 먹을곳이 별로 없다.







역시나 게으름을 피우다 오후 10시가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선 우리, 게다가 세군데 식당을 메뉴만 보고 전전하다가 결국오랜만에 서브마린에 가기로 했다. 서브마린은 구시가지에 중심에 trattoria 컨셉으로 아침 메뉴와 얇은 도우 피자를 굽는 지점이 하나 있고 여행객들이 거의 오지 않는 조금 벗어난 주택가에 두꺼운 도우 피자를 굽는 지점이 하나 더 있다.








한 식당에 두세번 간다고 치고 항상 뭘 먹을지 몰라 고민한다면 우선 가장 싼 메뉴와 가장 비싼 메뉴를 먹어보는게 가장 좋은것 같다. 특히나 식당 이름을 포함한 메뉴가 있다면 더더욱. 리투아니아 브랜드 칠리 피자 cili pica의 영향으로 리투아니아의 피자집 그리고 레스토랑이며 바에는 보통 멕시칸 수프인 칠리가 기본적으로 있다. 그래서 어떤 레스토랑 칠리가 더 맛있을지를 생각하며 항상 먹어 보지만 저 매운표시가 걸려서 그냥 '서브마린'수프를 먹기로 했다.







다른 피자집과 다른 점이라면 사분의 일 사이즈도 친절하게 판다는것. 







이 정도 규모의 식당에서 가장 비싼 메뉴는 역시나 비트 스테이크와 비프 스트로가노프.







이렇게 낮이 길고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저녁에 정말 맛있을것 같은 맥주.  맥주 종류는 어딜가나 비슷한것 같지만 영국식 펍도 적지 않게 생겨나는 요즘 그 종류도 다양해 진다.







대성당 근처에 피자집 주인이 하는 다른 맥주집이 있다는데 거기서 만드는거라면 직원이 추천해준 맥주. 






Katedra는 cathedral 에 적합한 리투아니아어.








맥주바에서 종업원이 이 먹음직스런 빵 위에 기름을 바르고 있길래 뭘까 맛있겠다 싶었는데 종업원이 우리 테이블에 이걸 놓고 간다. 얼핏보면 속에 치즈가 잔뜩 담긴 그루지야 전통음식인 하차푸리 (Khachapuri)를 닮았는데  뭐지. 난 첨가물이 칠리에 가까운 빨그스름 해야 할 서브마린 수프를 시켰고 남편은 피자를 시켰는데.








알고보니 서브마린 잠수함 컨셉으로 저 속에 수프가 담긴 그릇이 있었던것이다.  속에 수프가 있으니 조심해서 열라는말에 그릇도 없이 그냥 밀가루 반죽위에 담긴 줄 알고 조심스레 칼로 가르지 시작했는데 속에 그라탕 접시가 숨겨져 있었던것.









맛있는 식빵 쭉쭉 찢어 먹는걸로도 행복한것처럼 화덕의 불맛이 고스란히 베인 맛있는 밀가루 반죽이 이 빵 역시 그냥 그 자체로 맛있었다. 아직 굳기 전의 치즈를 허겁지겁 먹느라 약간 입속을 데었지만. 너무 늦은시간에 배부르게 먹기 싫어서 수프를 시킨거고 그래서 남편이 일부러 사분의 일 피자대신 피자 한판을 시킨건데 또 늦은 밤에 과식을 하게 생겼다.








리투아니아에 물론 고구마 피자 같은것은 절대 없는데 이 피자는 겉보기에 노르스름한게 고구마 피자와 몹시 닮았다. 속에 든 양배추며 오이며 케챱이 뭔가 원시적이고 꼭 옛날에 동네에서 팔던 불량식품 햄버거속 양념같지만 그래서 다른 피자집에는 없는 맛이다.  도우가 두꺼워서 먹을것도 많고 아무튼 비슷한 맛의 다른 피자에 질리면 꼭 가볼만한 곳. 






Posted by 영원한 휴가
Vilnius Chronicle2015.06.14 04:45





여행중이든 일상속에서든 기분 좋은 한끼를 위해 헤매다가 이렇게 밖에서 두리번 두리번거리게라도 하는 식당이 있다면 일단 들어가보는것이 좋다. 들어갔는데 지금 땡기지도 않는 음식만 메뉴에 잔뜩 있으면 어쩌지, 직원이 영어를 못하면 어쩌지라는 고민은 개에게나 줘버리고 우선은 들어가서 두리번거리는게 낫다. 특히 빌니우스 구시가지에 인적이 드문 이런 거리에서 빛바랜 건물 외벽에 군데군데 페인트 칠이 벗겨진 레스토랑을 발견했다면, 예쁘게 꾸미려 노력한 흔적도, 옥외 메뉴판에 공들인 흔적도 없는 그런 식당을 발견했다면 말이다. 그것은 비단 여행자에게만 국한된것은 아닌것 같다. 매일매일 도시를 걸으면서도 거리 이름도 모른채 지나다니는 현지인들에게도 해당사항이다. 이런 한적한 거리속의 좁은 입구를 가진 뭔가 폐쇄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배타적으로 보이는 식당들은 내부에 야외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도만 넘어도 밖으로 나가지못해 안달나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에어컨 설비가 일반적이지 않은 식당속에서 맥주를 마시라는것같은 고문도 없다.  이웃 프렌치 식당인 발자크 (Balzac)와 함께 길지 않은 사비치어스 거리를 (Savičiaus gatvė) 지키고 있는 블루씨네 (Blusynė)도 그런 장소중 하나이다.








빌니우스 시는 상업적 목적의 건물의 인테리어나 간판 인테리어에 관련해서 꽤나 엄격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조명이 들어가는 옥외 광고나 간판 설치도 엄격하게 제한되며 식당 컨셉에 맞춘다고 주인이 임의로 도색을 할 수 있는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삼층에 가정집이 있는 식당이 굳이 도색을 해야한다면 건물에 지정된 색으로 건물 전체를 도색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어설프지만 어찌보면 요식업 종사자로써 이런저런 문제로 시청에 불려다닐일이 많았는데,  어찌보면 이러한 빌니우스 시의 엄격한 정책들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빌니우스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일조하고 있는것은 확실하다.  대중적으로 맛있는 식당이든 없는 식당이든가와는 상관없이 내가 사는 도시, 내가 여행하는 도시에서 추억이 담긴 허름한 어떤 장소를 가진다는것은 유쾌하다.  말끔하고 세련되게 칠해진 건물에 휘황찬란 번쩍거리는 그저 그런 장소에서 지갑을 가진 소비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을 지닐바에야 말이다.









식당 주인의 개한테 벼룩이 있는데에서 착안했다는 식당 이름 블루씨네 Blusynė. 벼룩이라는 명사 Blusas 를 장소화 시킨 '벼룩이 있는 곳'이라는 뜻의 장소명사이다. 현재 식당 주인이 여전히 그 주인인지 아니면 주인의 개가 여전히 벼룩을 업고 다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협소하고 어두컴컴한 식당 속에서 어깨를 맞대고 맥주를 들이키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풍성한 개털속에서 이리저리 유랑했을 벼룩들조차 정겹게 느껴진다. 여름철 많은 유럽의 관광지들이 그렇듯, 빌니우스 구시가지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광장이나 거리에서  유명 맥주 회사의 로고가 박힌 커다란 파라솔을 설치해서 운영하는 노천 식당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입구에 친절한 영어 메뉴는 말할것도 없고 관광객에게 익숙한 직원들의 환영인사에 실패할 확률이 적은 보편적인 메뉴 구성까지  그리고 노천 식당에 앉아 들이키는 시원한 맥주만큼 휴가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것은 아마 없을것이다.  







그래서 가이드북에 특별히 추천 장소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외진곳의 식당은 관광객의 입장에선 망설일법 하지만 한번쯤 들어가 보는것도 정신 건강에 좋다. 우리도 밖에 나가 한번 밥을 먹으려면 두세번씩 식당에 들어가서 앉았다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음식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직원들이 주는 아우라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게 두세번 실패한 후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눌러 앉게 되는 식당들은 보통은 깊은 인상을 남기고 단골집이라는 지위를 얻는다.







블루씨네는 빌니우스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캐쥬얼한 타파스 바이다. 좁은 식당 내부를 지나 홀보다 더 좁은 부엌이 위치한 복도를 지나면 이렇게 야외 공간으로 이어진다.  별로 가진것없지만 뭔가 있어보이는 강한 아우라의 사람들이 그렇듯 장소 역시도 자존감이란것을 가질때가 있다.  일부러라도 신경쓰지 않은듯한 무심한 인테리어, 결점을 숨기지 않는 자신감, 손님을 자유롭게 하는 아우라.








야외 테라스에 앉으면 이렇게 양옆으로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구시가지의 옛 건물들이 보인다. 이런 건물들을 복원할때에 보면 일부 벽돌 부위를 일부러 시멘트칠하지 않고 남겨두면서 문화 유산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아슬아슬하게 겨우 지탱하고 있는것 같은 건물인데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듯 보이니 식당으로서는 잘된일일지도. 구시가지에서는 식당 허가를 받는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점포 주인의 허락만으로 되는것이 아니고 건물 전체 입주자의 동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어설프지만 직업병이라고 식당에 가면 이런것들을 우선 보게 된다. 이렇게 벽전체를 뒤덮고 있는 환기구들, 환기구 시스템이 잘못되서 이웃이 진동이라도 느낀다면 연기 냄새라도 느낀다면  게다가 밤새 맥주 마시며 떠드는 손님이 있다면 식당도 이웃도 정말 쉽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식당 설비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놔둘 수 있는것도 어찌보면 자신감이다. 한편으로는 위험 설비를 이렇게 야외에 노출해 놓으면 안전 규정이라도 어기는것은 아닐까 오지랖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부가가치세 21%가 명시된 정식 영수증을 주지 않는것은 약간 아쉬웠다. 정직하게 모든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식당의 직원으로써 이렇게 장사하는 식당을 보면 약간 얄미운게 사실이다.  직원이 메뉴와 가격이 적힌 임시 계산서를 먼저 가져오고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가져오면서 정식 영수증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계산서를 받으면 팁을 포함한 음식비를 내고 그냥 나와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대부분의 식당은 아마도 굳이 정식 영수증을 만들진 않을것이다. 만약에 비용 처리 문제로 정식 영수증이 필요하다면 Fiskalinis kvitas를 요구하면 되고 영수증 아래에 부가가치세 21% (PVM 21%)가 적혀 있으면 그것이 제대로 된 영수증이다.








다 마신 와인병 데코는 이미 흔한 인테리어지만 바로 옆에 치열하게 꽂혀 있길래 어쨌든 찰칵.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보통 든든하게 배를 채우겠다는 사람보다는 맥주에 안주를 먹겠다는 사람이 많다. 일반 프랜차이즈 피자집이나 맥주집의 구태의연한 안주를 생각하면 나름 정갈하게 만든다.  빌니우스의 어떤 식당을 가도 발견할 수 있는 메뉴 칠리. 심지어 칠리 맛을 맛집의 기준으로 해도 되겠단 생각이 든다. 2015년부터 유로화를 쓰기 시작한 리투아니아이기에 6월까지는 모든 가격을 유로화와 공식 화폐였던 리타스 두가지로 표기 해야 한다.  파에야 가격이 15유로로 다른 음식보다 비싼데 두세명이 먹을 수 있는 큼지막한 파에야 팬에 나오므로 다른 메뉴는 시키지 않아도 된다.







맥주를 마실 수 없는 나이기에 오늘은 밥으로 배를 채우려고 파에야를 주문했다. 나오는데 50분이 걸린다기에 흑맥주를 시킨 남편을 위해 감자칲을 주문했는데 필요 이상으로 듬뿍 뿌려진 캐러웨이 씨를 골라내느라 애먹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보통 양배추를 절일때 첨가하거나 빵을 굽거나 때로는 그냥 씨채로 끓여 마시기도 한다.  이런저런 허브와 함께 갈아 고기를 절이기도 하는 맛있는 허브인데 저렇게 많으니 난감했다.








파에야 팬은 언제봐도 정겹다. 즉석 떡볶이나 닭갈비를 먹고나면 부스러기 김과 빨간 양념과 함께 비벼주는 그런 비빔밥을 먹는것처럼 밥이 약간 바닥에 눌러 붙었어도 싹싹 즐겁게 긁어 먹을 수 있었는데 밥을 지나치게 잘한 나머지 긁어 먹을 밥 한톨 없었다. 해산물이 귀한 리투아니아에서 이 파에야에 들어간 해산물들은 냉동 해산물일 확률이 백프로이지만

해산물 천지인 베네치아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중국인들이 팔아먹던 허접한 해산물 리조토 속 해산물보다 훨씬 맛있었다.

어쩄든 파에야는 귀하디 귀한 샤프란과 국물이 스며든 탱탱한 밥맛으로 먹는것이니 상관없다.








어느 식당엘 가든 파에야가 메뉴에 있으면 일단 시키고 보는데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파에야를 먹기 이전까지 절대 파에야 팬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금까지 꾸역꾸역 잘 지켜왔지만  빠른 시일내에 구입해서 내가 원하는만큼 쵸리죠를 듬뿍 넣고 볶아먹고 지져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Vilnius Chronicle2015.06.11 05:59






수년간 매년 임시 거주권을 갱신하며 드디어 영주권자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도 빌니우스에서도 세상 어디에도 영구적으로 정착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언젠가 한국에 가서 살 생각이 있느냐, 언제까지 리투아니아에 살꺼냐는 물음에는 그래서 딱히 해줄말이 없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고 한국도 리투아니아도 아닌 다른 어떤 곳이여도 상관없다. 보다 중요한것은 어디에서 사는것이 아닌 누구와 함께 그리고 어떤 시선으로 어떠한 삶을 사는것이니깐. 당장 떠날 생각도 언젠가 이곳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아마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본 적 있는 여행자의 그 아스라한 느낌때문일까 일을 하고 생활을 하고 이곳의 주민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매일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여행자의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는것이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렇기에 지금 보고 있는 이 평화로운 광경들이 왠지 영원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감정에 때때로 사로잡힌다.  갑자기 떠나버리게되면 그리워질까봐 혹은 선명히 기억해낼 수 없어 후회할까봐 끊임없이 쳐다보고 또 쳐다보게 된다.  몇시쯤 몇시방향에 서서 고개를 들었을때 오래된 건물위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떤 거리의 어떤 귀퉁이에 갑자기 나타나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곧바로 파악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끊임없이 두리번거리게된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Vilnius Chronicle2015.06.08 20:02




지금은 빌니우스의 몽마르뜨로 불리우기도 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동네 '우주피스 (Užupis)' 이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럴듯한 명성을 가진것은 아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구역이라는 낭만적인 이력을 품고 한껏 멋스러워지고 화려하게 소비되는 세상의 많은 구역들이 그렇듯이, 한때는 갱들의 구역이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나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던 뉴욕의 소호처럼 그리고 서울의 합정동이나 연남동, 심지어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공간들이 그렇듯이

빌니우스의 우주피스 역시 비싼 임대료를 피해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젊은이들이 자유를 누리며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지역들이 역설적이게도 돈없는 보헤미안들이 터를 잡기에는 턱없이 비싼 임대료의 핫플레이스로 변해버렸다.  빈궁한 빌니우스의 보헤미안들은 펍이나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대신 좁은 폭의 강에 삼삼오오 모여 병맥주나 싼 보드카를 들이켰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지금도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며 우리 역시도 여럿의 친구들과 모일때면 노천 카페나 식당 대신 야외에 머물기를 즐긴다. 공공장소에서 알콜 음용이 불법인 현재 대놓고 맥주를 병째 들이키거나 할 수 없지만, 가끔씩 경찰이나 혹은 근처 식당에 고용된 경비들의 제재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빌니우스 젊은이들의 포기하고 싶지 않은 권리임에는 틀림없다. 빌니우스의 여름은 너무 짧고 한여름밤은 너무 기니깐.  빌니우스 구시가지 한켠의 길고 긴 언덕을 끼고 이어지는 우주피스 역시 한때는 빌니우스 구시가지에서도 가장 싼 땅값의 지역이었다. 관광객이 모이는 동네들이 늘상 그렇듯 요즘의 우주피스는 예쁜 빵집과 레스토랑이 가득하지만

좀 더 깊은곳을 파고 들어가면 많은 버려진 건물들과 지금은 기능을 상실한 소비에트 시대의 대규모 공장 부지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미 건축 허가를 받아 접근 금지 구역으로 폐쇄되어 포크레인으로 곳곳이 깊게 패어진 장소들이 있으며

뻥뚫린 창문에 불에 탄 흔적만 지닌채 유령처럼 서있는 주인없는 건물들이 있다. 그리고 얼마후 그런 자리들에 멋스럽게 디자인된 가정집들이 들어서리란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건축업자와 부동산업자들에겐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인 구역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9년전에 여행와서 머물렀던 호스텔 주변의 풍경이 계속 바뀌는것 같아 아쉽다. 그 변화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아마도 그곳의 사진을 남기는것 뿐일것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