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uania2016.05.05 05:34






영화 솔라리스 영상을 보고 있으니 생각나는 리투아니아 노래. 'Saulės miestas'.  노래를 부른 안드리우스 마몬토바스는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가수이며 1983년에 그가 결성한 그룹 포예 ( Fojė)는 리투아니아에서는 러시아 가수 빅토르 최와 그의 그룹 키노에 견주어지기도 한다. (사실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지만 1991년 리투아니아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하던 시기 전후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룹이므로 그들의 노래가 힘든 시기에 젊은이들한테 끼친 영향을 내가 공감 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97년에 해체된 이 그룹의 마지막 공연은 지금까지도 리투아니아에서 최대 관객동원의 기록을 가지고 있음. 지금도 여전히 솔로로 왕성히 활동중이며 영화와 연극에도 지속적으로 출연함. 언젠가 그가 북한을  여행하면서 쓴  르포 형식의 기사도 읽은적이 있다.





 빌니우스에서 2007년 부터 매년 5월이면 열리는 '거리 음악 축제 Gatvės muzikos diena'는 그가 고안한 프로젝트이다. 빌니우스 올드타운 곳곳에서 콘서트가 열리며 음악을 연주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다. 보통 올드타운의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전기 끌어와서 각자 앰프 놓고 노래부르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음. 자기 집앞에서 실로폰 들고 나와서 연주해도 된다. 이 노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이고 리투아니아를 잠시 떠나있을때 그리움에 허덕이며 듣고 또 들으면서 가사를 카피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리투아니아어를 잘 모르던 때여서 그때 들으면서 받아 적은 가사를 지금 보면 가관도 아니지만. 원곡은 1995년 솔로 첫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 이 어쿠스틱 버전은 2000년도 앨범에 수록되어있다.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힘을 북돋어 주는, 너는 혼자가 아니야 류의 착한 노래이다. 개인적으로 마몬토바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목소리와 눈빛은 호소력있다고 생각한다.






Jei dar nesibaigė lietus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면


Ir jei dar oras ne toks gražus, 

아직 날씨가 그렇게 좋지 않다면


Brolau, laikykis, nenusimink, 


형제여. 힘내. 슬퍼하지마


Tu nosies dar nenukabink. 


우울해하지마 (코를 늘어뜨리지마. 이것은 아마 영어의 long face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것 같다)





Nes jeigu tu perplaukti jūrą dėl savo svajonės gali, 


네가 너의 꿈을 위해서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면


Tai žibantis saulės miestas tau švies visanakt iš toli. 


빛나는 태양의 도시가 멀리서부터 온 종일 너를 비춰줄거야.


Ir jeigu tu skrisi į dangų ištiesęs rankas lyg sparnus,


양팔을 쫙 날개처럼 펴고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면


Pasieksi planetą Soliarį ir rasi ten savo draugus, draugus. 


솔라리스 행성에 닿아서 너의 친구를 만나게 될거야. 너의 친구를




Tu nematei linksmų veidų, 


너는 기쁨에 찬 얼굴을 보지 못했지. 


Tau nesinori niekur eit iš namų.


집밖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지.  


Gal tavo nuotaika bloga, 


아마 너는 기분이 좋지 않나봐.


Tik negalvok, kad taip bus visada. 

하지만 항상 그럴거라고는 생각하지마.



Nes jeigu tu perplaukti jūrą dėl savo svajonės gali, 


네가 너의 꿈을 위해서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면


Tai žibantis saulės miestas tau švies visanakt iš toli. 


빛나는 태양의 도시가 멀리서부터 온 종일 너를 비춰줄거야.


Ir jeigu tu skrisi į dangų ištiesęs rankas lyg sparnus,


양팔을 쫙 날개처럼 펴고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면


Pasieksi planetą Soliarį ir rasi ten savo draugus, draugus. 


솔라리스 행성에 닿아서 너의 친구를 만나게 될거야. 너의 친구를




Jei tavo ašaros dar čia 


아직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Ir tavo liūdnos mintys šalia,


너의 우울한 생각들이 아직 네 곁에 남아있다면

 
Numok ranka į jas ir sustok, 


그들에게 작별 인사하고 멈춰서. 


Blogiems dalykams nepasiduok. 

나쁜것들에 포기하지마. 



Nes jeigu tu perplaukti jūrą dėl savo svajonės gali, 


네가 너의 꿈을 위해서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면


Tai žibantis saulės miestas tau švies visanakt iš toli. 


빛나는 태양의 도시가 멀리서부터 온 종일 너를 비춰줄거야.


Ir jeigu tu skrisi į dangų ištiesęs rankas lyg sparnus,


양팔을 쫙 날개처럼 펴고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면


Pasieksi planetą Soliarį ir rasi ten savo draugus, draugus. 


솔라리스 행성에 닿아서 너의 친구를 만나게 될거야. 너의 친구를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6.03.22 07:35



부활절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토요일이면 처음으로 아기와 함께 부활절을 보내러 시어머니댁에 내려간다. 리투아니아에서 부활절을 보내는것도 벌써 9번째. 여행 당시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만났던 때가 부활절이었던것까지 계산하면 10번째 부활절이다. 부활절 달걀은 벌써 8번을 삶았다. '올해에는 염색하지 말까?  그냥 삶기만 하면 편하긴 할텐데. 에이 그래도 색칠해야지 부활절인데. 염색약 어디갔지? 분명히 작년에 염색하고 이 서랍속에 넣어 놨었는데? ' 신기하게도 거의 매년 반복되는 대화들이다. 매년 김장철이 되어 욕실 가득 크고 작은 대야를 늘어 놓으시고 배추를 절이시는 엄마를 보며 했던 생각은 정말 자주 돌아오는 김장철 같은데 따지고보면 살아있는 동안 최대치로 계산해봐도 서른즈음 부터 일흔즈음까지 고작 40번정도라는것. 물론 김장의 규모와 의미를 놓고 생각해보면 끓는 물 부어서 마시기만 하면 되는 40잔의 커피와 비교 할 수 있겠냐마는 40이라는 숫자의 절대적인 크기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끌고 밀며 마치 영원할 듯 여기고 살아가는 그 시간이 우리 생각만큼 길지도 아득하지도 않게 느껴진다. 



부활절 달걀 삶기도 나에게는 같은 맥락으로 다가왔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면 습관적으로 새 달력을 넘겨 확인해보는 부활절 연휴부활절이 지나 따뜻한 봄이 되고 싱그러운 여름이 지나 다시금 매몰차게 시작되는 리투아니아의 긴 겨울의 초입에 또 다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연휴 그리고 또 부활절.  마치 계속 끌어 당기다보면 언젠가 끝을 보이는 실 덩어리처럼 닳아서 없어질때까지 우리가 굴리고 또 굴리는 인생의 바퀴. 내게는 몇번의 달걀 삶기가 남아 있을까. 혹시 달걀을 삶지 않는 다면 그 해는 내 인생에서 달걀을 삶지 않은 어느 해로 기억 될 수 있을까가까운 미래에 내 아이와 함께 삶게 될지도 모를 달걀. 혹은 언젠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그 아이의 아이들과도 삶게 될지 모를 달걀. 모든 반복되는 행위들은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조금씩 다른 빛깔의 의미를 지닌다.  새해를 훌쩍 넘긴 지금이지만 부활한 예수처럼 마치 다시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아마 매년 어떤 달걀이 탄생할까 기대하며 못이기는척 또 염색을 시작하게 되는 이유일것이다.



리투아니아 생활을 적어내려가지만 내가 경험하는 전통과 일상들을 결코 모든 리투아니아인들의 그것으로 일반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달걀을 염색하지 않는 가정도 많으며 부활절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도 음식을 먹는 방법도 각양각색일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후식으로 먹을 젤리도 올려놓고 버터나 식초에 절인 토마토, 샐러드 같은 간단한 것들을 부활절 아침 식탁에 올린다. 



여러해가 지나면서 명절 식탁은 간소해지고 또 간소해졌다. 빌니우스에서 올라오는 우리를 생각해서 이런 저런 음식을 많이 준비하셨던 시어머니셨지만 남기는 음식도 많아지고 상할것을 염려해서 먹어야 하는 음식은 맛이 없게 마련이니 이제는 그때 그때 무엇을 먹을지를 상의해서 조금씩만 준비하게 된다.  



부활절 달걀은 텅 빈 무덤, 예수의 부활을 의미한다. 일부 지역에서 달걀을 붉은색으로 염색하는것은 예수가 흘린 피를 상징하는것이라고 한다. 사실 정말 키치스럽기 그지 없는것들이지만 부활절 즈음의 이런 마트 풍경 역시도 부활절의 일부이다. 달걀을 염색하거나 삶는 풍습 대신에 플라스틱 달걀이나 달걀 모양의 초콜릿으로 편리하게 장식을 하기도 하는데 초콜릿 달걀 곁에 항상 붙어 다니는것이 부활절 토끼이다. 부활절 토끼도 역시 초콜릿이지만 사실 초콜릿을 가장한 초콜릿맛 밀가루 같은 느낌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선물로 받으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 -.-  



부활절 아침에 저 부활절 토끼가 남겨 놓고 간 부활절 달걀을 찾는 놀이도 할 수 있다. 지푸라기가 깔린 바구니에 달걀을 넣어서 집안 어딘가에 숨겨 놓으면 찾는 놀이. 그리고 달걀 깨트리기 놀이도 하는데 한 사람이 달걀의 뾰족한 부분으로 다른 사람의 뭉툭한 부분을 쳐서 깨지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뭔가 조금 무시무시하지만 언젠가 내 아이도 사달라고 조를 수 있는 물건들. 킨더 초콜릿이면 꽤 맛있을것 같기도 한데 하나에 3유로가 넘는다니 부활절 바가지가 아닐 수 없다.



부활절 기간에 지인을 방문하는데 삶은 달걀이 없다면 이런 초콜릿 상자를 가져가도 상관없다. 보고만 있어도 입에서 녹을것 같은 페레로 로쉐이다. 



 리투아니아에서 맞는 열번째 부활절을 기념해서 지금까지 달걀을 삶으며 찍어둔 사진을 다시 한번 정리 해보았다. 리투아니아에서 부활절만 되면 어김없이 받는 질문중의 하나가 한국에서 부활절에 달걀을 색칠하냐는 것이다. 어릴적에 교회에 다닌 나는 셀로판 종이로 포장된 달걀을 선물로 받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보통은 삶은 달걀에 싸인펜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셀로판 종이로 포장을 한다고 대답하지만 요즘의 교회 풍경은 어떤지 모르겠다. 부활절을 보내는 크리스쳔이라면 한번쯤 해 볼만한 달걀 염색이 아닌가 싶다.  



달걀 염색을 하는데에 필요한 재료들이다. 언젠가 감자도 삶고 스파게티면도 삶으며 헌신했겠지만 이제는 오직 달걀 염색에만 사용되는, 일년에 한번만 부엌에 빼꼼히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귀중한 냄비이다



염료로 망가질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막쓰는 냄비를 준비한다. 그리고 실. 신지 않는 스타킹. 양파 껍질. 가위 그리고 달걀. 



어느해에는 검정 스타킹 대신 분홍색 줄무늬 스타킹을 어디서 구해 놓으신 시어머니.



아주 선명하게는 아니지만 실제 달걀 표면에 줄무늬가 흐릿하게 염색이 되어 나왔었다. 



우리는 매년 대략 20개의 달걀을 삶고 연휴가 끝나면 직장으로 가져가서 염색한 달걀을 교환하기도 한다. 달걀 염색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지만 양파 껍질을 넣고 삶아내는것이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인듯 하다. 



촛농을 이용하여 삶은 달걀에 무늬를 넣는 방법도 있고, 스프용 작은 파스타들이나 나뭇잎들을 스타킹 속에 넣어서 삶기도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넣지 않거나 양파 껍질만 넣어서 염색한다. 



염색 효과를 최대화하려면 하얀 달걀이 더 좋다고 한다. 그래서 부활절이 다가올때쯤 마트 한가운데 흰 달걀이 가득한 유로 팔렛이 놓여지곤 한다. 달걀 10알이 한국에서는 얼마일까. 리투아니아에서는 1.5유로 정도이다. 참고로 리투아니아에서 달걀을 살때에는  S/M/L 으로 크기가 표시되니 눈여겨 봐야한다. 




우선 짤막하게 자른 스타킹에 달걀을 깨지지 않게 잘 넣는다. 스타킹은 아무리 버리는 스타킹이라도 깨끗하게 세탁하는게 좋다. 발냄새 나는 스타킹에 달걀을 넣을 순 없으니깐. 스타킹이 너무 길면 달걀을 넣었을때 아래로 푹 떨어져서 삶기도 전에 깨질 위험이 있다. 신축성이 있기때문에 달걀을 넣어서 최대한 잡아 당겨 실을 묶을 여유가 있을 정도의 크기로 잘라준다.



달걀과 함께 적당한 양의 양파 껍질을 넣는다. 양파 껍질을 원하는 모양대로 잘라서 조심스럽게 달걀 표면을 감싸도록 넣는다면 원하는 무늬를 얻을 수도 있다. 꼭 스타킹안에 달걀을 전부 넣을 필요는 없다.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상상력에 달려있다. 꼭 크리스챤이 아니어도 아이들과 같이 하면 참 좋을 놀이이다.



양파 껍질을 넣었다면 최대한 스타킹을 당겨서 실로 묶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양파 껍질이 움직일테고 염색 효과도 제대로 볼 수 없을테니깐.



실로 묶는 과정이 제일 번거로운데 그래서 아예 묶을 실을 왕창 잘라 놓는것이 편하다.



자르고 묶고 자르고 묶고




자 이제 삶기만 하면 된다. 염색용 냄비와 염료 준비.



가끔 달걀 상자에 야속하게 붙어 있는 달걀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부활하기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다음 부활절을 기약.




시할머니가 살아 계실때 사용하던 염색약이 들어있는 상자란다상자에 적혀있는것은 리투아니아어는 아니고 러시아어다손에 닿기만해도 뭔가 손이 부식될것 같은 염료들인데 먹는 달걀을 삶는데 써도 될까싶지만 달걀 염색용으로 나오는 염료들로 안전하다.




많이 넣을 필요는 없고 원한다면 여러개를 섞어도 된다. 그냥 염색 가루만 봤을때는 전부 검은색으로 염색될것 같은 느낌이다. 간혹 달걀 껍질을 벗겨보면 염색약이 흘러 들어가서 색이 변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먹어도 상관없다. 아까운 달걀 버리지 마시길

 


염색약이 손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으니 장갑을 꼭 낀다. 



주변에 변색될 위험이 있는 물건은 그래서 미리미리 치우는것이 좋다.



염색약을 투척하자마자 시큼한 냄새가 난다. 



색깔만 봐서는 붉은 색인데 과연 어떤 색으로 염색될까. 양파스프 끓이는 비주얼이지만 절대 먹으면 안된다. 



그리고 차곡차곡 달걀을 넣는다. 다양한 색을 기대한다면 절반의 달걀만 넣고 다른 염색약을 풀어서 또 끓이면 된다.



되도록이면 완숙으로 삶아서 조심스럽게 건져낸다. 



달걀을 건져내고 다른 염색약을 넣어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전부 건져낸 달걀. 




이제부터 제일 보람있는 작업이다. 우선 달걀이 깨지지 않게 냄비 바닥에 대고 스타킹을 잘라낸다.



달걀 껍질이 잘 벗겨지도록 찬물에 헹궈준다.



붙어있던 양파 껍질도 스타킹들도 전부 걷어낸다. 



어두운 염색약을 사용해서 껍질이 붙은 부위를 제외하고는 모두 검정색으로 염색이 되었다. 양파 껍질이 만들어낸 모양들이 제법 신기하다.



붓으로 그리려고 하면 참 그리기 쉽지 않은 그림이 아닐까. 우연의 결과물이 신기해서 보고 또 보지만 결국은 깨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말 달걀들. 달걀이 썩지만 않는다면 매년 가장 예쁜 달걀을 골라서 선반위에 진열해 놓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근데 오래된 삶은 달걀이 깨지면 그 냄새가 정말 지독하다고 한다. 교회 다니시는 한국의 엄마에게 색칠한 달걀을 보내고 싶다 멋모르고 말했던적이 있는데 남편이 극구 말렸던것이 기억난다.ㅋㅋ



무늬가 거의 비슷비슷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차이점도 보이고 각자 좋아하는 구석을 발견할 수 있다. 지구과학책에 등장할것 같은 행성의 모습이다.



그 해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달걀은 클림트의 키스 그림과 사뭇 비슷했던 달걀이었다. 홍차를 담는 작은 차 통인데. 어쩌면 클림트의 그림이 그려진 차 상자가 있었기에 연결지을 수 있었던것일지도 모르겠다. 



2006년 처음으로 리투아니아에 왔을때의 부활절. 그때는 초대 받은 손님이었기에 이미 다 차려진 부활절 식탁에 앉았었다. 옛 사진을 찾아서보니 곱게 색칠된 달걀이 담긴 큰 접시는 내가 지금 화분 받침대로 쓰고 있네. 저 날 먹은 음식들은 삶은 달걀을 제외하고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다. 한꺼번에 이 음식 저 음식을 다 같이 맛보는 나를 보고 시어머니께서 참 신기해하셨다고 훗날 말씀하셨다. 단색으로 색칠된 달걀은 그냥 염색약만 넣고 바로 삶았음이 보인다. 남편은 빌니우스에서 공부중이었으니 아마 부활절 전날 달걀 염색하라고 시킬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프훗. 




그 날 점심을 먹고 공터에 나가서 했던 게임. 나무 판대기에 색칠한 달걀을 굴려서 이미 굴러간 달걀을 맞혀서 움직이는 게임이다. 10년전 사진속의 조카는 거의 190 센티에 육박하게 자라서 올해 성년이 된다. 



몇번째 부활절 즈음 내 아이와도 달걀 굴리기 놀이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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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시어머니댁 속 한국 풍경 

없는것없는 빌니우스의 중고 옷 가게 

 리투아니아에선 출산 후 어떤 음식을 먹을까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6.02.25 05:50



지난 가을 집 근처에서 일본인 여행객이 말을 걸어왔다. 집주변에 저렴한 호스텔도 많고 괜찮은 호텔 하나가 들어서서 여행객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절반은 역에서 나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숙소를 찾으러가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이미 짐을 풀고 구시가지쪽으로 발을 옮기는 사람들이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 뭔가 곧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영감을 얻을 것 같아 상기된 표정, 그들을 보며 내가 여행했던 십년전이 떠올라 난 줄곧 기분이 좋아진다. 지도를 펼쳐들고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혹시 도움을 청해올까 싶어 일부러 가까이 지나가본다. 물론 절대 먼저 도와주겠다고 말을 걸진 않는다. 낯선곳에서 스스로 방향을 감지하고 목적지로 향하는 기분이 얼마나 즐거운것인지 알기에.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만치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알아서 말을 걸어오겠지. 그날의 일본인은 스마트폰을 내밀며 혹시 식당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을 적어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알아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정보였을텐데 모르긴해도 내가 일본인이 아닌것을 알고 약간 멋쩍어져서 급조해낸 질문 같았다. 그날 내가 그에게 적어 준 음식은 감자를 주재료로 한 일련의 음식들이었다. 리투아니아어로는 대충 이렇게 적는다.  Cepelinai, Virtiniai su varske. 



여행을 가면 요리가 가능한 숙박을 보통 한다. 현지의 식재료를 써서 해먹는 요리책속의 음식들도 물론 매력있지만 가끔은 그냥 냉동 인스턴트 식품들을 사곤했다. 가장 서민적이고 의심할 여지 없는 현지식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식은 마트의 인스턴트를 사는것이다. 한국 편의점들의 숱한 도시락들이 그렇다.  리투아니아의 이런 인스턴트 식품들은 언젠가 이웃집 할머니가 만들어준 가정식과 정말 별반 차이가 없다. 이 음식은 찐 감자를 소량의 밀가루와 반죽해서 만든 식품인데 감자 전분땜에 식감은 우리나라의 감자떡과 비슷하다. 내용물은 없다. 그냥 감자.  딴 첨가물을 찾아보려고 해도 그냥 오로지 감자. 잘게 썬 양파나 돼지비계 따위를 잘 볶아서 소스로 곁들이고 보통은 사워크림을 뿌려 먹는다. 위의 식품은 '감자 배꼽'이라고도 부른다. 



크기가 큰 것은 속에 하얀 코티지 치즈가 들어가있다. 반으로 잘라진 사진이라도 좀 찍을걸 먹느라 바빴구나. 리투아니아의 마트에 가면 백퍼센트 발견할 수 있는 냉동식품이다. 저렇게 크기가 크다면 코티지 치즈나 고기가 들어가있을 확률이 높다. 물이 끓을때 집어 넣고 크기에 따라 위로 떠오르는 시간부터 10분-15분 정도 끓이면 된다. 끓이고 나면 녹아 내릴 전분때문에 물이 걸쭉해져 있을것이다.그래서 되도록이면 큰 냄비에 물을 충분히 넣고 끓이면 훨씬 맛있다.



원래 버터에 양파를 볶으며 사워크림을 넣고 볶기를 완성하기도 하지만 볶은 양파를 따로 먹고 싶은 생각에 오늘은 섞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냉장고에 있던 딱딱한 치즈를 꺼냈다. 저 치즈들은 뭐랄까 짜장면 집 테이블 위에 놓인 고추가루와 간장 같은 존재이다.  



내가 치즈를 갈아서 뿌려 먹겠다고 하니 남편은 '오우 무슨 짓이야'라고 반응했다. 사실 파마산 치즈 같은 하드 치즈들을 뿌리면 음식 본연의 맛보다는 짭쪼롬하고 퀴퀴한 치즈 맛으로 먹는다고 해야 맞으니깐.  보통의 리투아니아인들은 후추나 소금 정도를 뿌린다. 



인스턴트를 먹을때는 눈이 즐거워야 한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막 먹게 된다...그게 인스턴트의 소울이니깐. 기억속에서 완전 잊혀진 티비판 에반겔리온을 보기 시작했다. 일본 문화 개방 되기전에 복제 테이프를 돌려보고 대학 축제 상영회를 찾아 다니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버튼 하나면 그냥 찾아 볼 수 있는 시대. 정의로움으로 가득찬 주제가 여자 목소리도 변함없다.



에반겔리온의 시대적 배경이 2015년이네. 20년전에 상상하는 2015년은 그토록 아득했었는데.  심지어 어린 시절 2010 원더키디를 보면서는 저런 우울하고 암울한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했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한참전에 지나갔고 서기 2019년 블레이드 러너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 삶은 아직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듯하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6.01.03 03:14



시어머니는 빌니우스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는 파네베지라는 도시에 살고 계신다. 인구수로 따지면 리투아니아에서 다섯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한국이라는 좁고도 큰 나라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빌니우스도 한 나라의 수도라기 보다는 지방의 소도시처럼 느껴지고 지방의 소도시 파네베지는 한적한 시골처럼 느껴지는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리투아니아의 진짜 시골에 가면 파네베지도 빌니우스도 얼마나 도시스러운지 모른다. 아기를 낳기 두달 전을 마지막으로 장장 7개월간 방문하지 않았던 시어머니댁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아기와 버스를 타고 방문했다. 내가 빌니우스를 여행할때 맸던 배낭속에 아기 기저귀를 넣고 셋이 되어 파네베지를 향하는 마음은 뭔가 감격스러웠다여행을 중단하고 리투아니아에 머물던 세달여의 기간중에 3주 남짓한 시간을 머물었던 그 곳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함께 음식도 만들고 집수리도 하며 시어머니의 손 때 묻은 부엌 찬장 속에서 거실의 서랍속에서 책장속에서 리투아니아어 수업에서 배운 단어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익히는 즐거움을 느꼈던 그 때집수리를 거쳐 모습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지금도 파네베지에 가면 여전히 그 해 여름 경험했던 풋풋함과 신선함이 떠오른다. 그런데 집의 구조나 가구의 배치 말고도 10년전과 달라진 풍경이 있다면 바로 집 곳곳에 놓여 있는 한국에서 온 물건들이다. 대부분은 결혼식 참석차 한국에 오셨을때 직접 구입하신 것들그 중에는 실제 한국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서 만든 물건들도 있는데 파네베지에 머무르는 동안 그 물건들을 찾아 보았다.



탈 수집이 취미이신 시어머니. 좋아하는 물건이 뚜렷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선물하기가 수월해서 우리도 여행을 하며 선물을 사야할때 그 나라의 전통 탈이 있는지 항상 눈 여겨보게 된다. 인사동을 걷다가 탈을 발견하시고는 눈이 반짝반짝 해지셨던 시어머니. 당시에는 두 탈 중에서 고민하시다가 결국 나무로 된 양반탈만 구입하셨는데 먼저 리투아니아로 가신 시어머니께서 아직 한국에 머무르고 있던 지금의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나 그 빨간 탈 꼭 사야지 안되겠다...돈줄께. 사오렴.' 그래서 빨간 탈 사러 총총총안동 하회탈은 한국인인 내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나머지 장식품이나 소품처럼 느껴지는데 검은 천이 박혀 있던 양주 별산대 놀이의 완보탈은 지금 봐도 뭔가 사실적이고 개성이 있다. 뭐랄까 신나게 춤추고 나서 탈을 벗는 놀이꾼의 얼굴에서 송글송글 맺힌 땀이 떨어질것 같은 느낌이다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묵직하고 장난스러운 생김새가 벽속의 많은 탈 들 사이에서도 단연 카리스마가 넘친다.

  


안동 하회탈 위의 탈은 우리나라의 탈처럼 보이지는 않고 어느 나라 탈인지 검색에 실패했다. 4년전에 남편과 한국에 갔을때 동묘의 골동품 시장에서 구입해서 선물했다. 몹시 무거웠다. 이 탈은 화려함과 위압감에 있어서라면 벽속의 탈들 사이에서 단연 일등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래의 양반탈이 그로 인해 더 돋보이는 느낌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현지인의 집에서 머무는것에 대해 상상해봤을것이다. 내 경우는 모스크바를 여행했을때 일주일간 머물었던 '갈리나의 집'이 최초의 현지인 집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카우치 서핑이었거나 내가 갈리나 아줌마와 친구가 되어서 묵었던 것이 아니라 이 다분히 개인적이고도 비밀스러운 갈리나 하우스는 신기하게도 론니 플래닛의 모스크바 숙박편에 가장 첫 줄에 적혀 있었다.  (http://www.galinasflat.hostel.com/집을 못찾아서 두번을 헛걸음을 하고 세번째 전화를 해서 꽁꽁 언 발로 찾아간 갈리나 하우스는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닌 영어에 능숙하고 고양이와 예술을 사랑하는 색다른 느낌의 러시아 중년 여성이었는데 시어머니의 냉장고를 볼때마다 그 갈리나 아줌마의 냉장고도 덩달아 생각난다. 시어머니께서 모든 자석의 나라들을 전부 방문하신것은 아니다. 여행을 다닌 지인들이 기념품으로 사오기도하고 우리도 여행을 가면 선물로 마그넷을 꼭 사다드린다. 그리고 냉장고 한 쪽 구석에 우리가 선물한 한국의 자석들이 보인다.  



위로부터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구입한 안동 하회탈 자석과 양양의 오산리 선사 유적 박물관에서 구입한 빗살무늬토기 마그넷 그리고 인사동에서 구입한 왕과 왕비 마그넷이다세종대왕과 소헌왕후 마그넷이라고 혼자 그냥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헌왕후의 본관이 내 본관이고 소헌왕후의 엄마의 본관이 공교롭게도 우리 엄마의 본관이므로. 근데 내 남편의 성은 이씨가 아니고 느낌상 폴란드쪽인것 같다하핫. 그리고 아래로 하회탈들이 줄줄줄 어디로 놀러가는 중.



좋은 마그넷은 확실히 자석의 접착력이 남다르다. 국립 중앙 박물관의 하회탈은 재질이 마음에 들어 하나에 무려 5천원이나 주고 구입했었던듯. 여행지에서의 마그넷 구입의 선택폭은 생각보다 넓다. 고민을 줄이려 가능하면 나무나 플라스틱 재질말고 메탈 재질을 사려고 하는데 그러다보면 선택의 폭이 몹시 좁아진다. 



거실 창가에 놓여 있는 이 많은 물건들 사이에서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사과 유리 장식 아래에 놓여있는 컵받침이다.



인사동에서 구입하신 십장생이 표현된 컵받침이다. 예쁘다. 외국인이 관심을 가지고 예쁘고 신기하다고 생각하는것들을 보면 내가 도리어 신기해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스쳐 보내던 풍경들과 물건들이 누군가에게는 참 색다를 수 있고 반대로 나에게 아름답고 이국적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촌스럽고 다분히 일상적일 수 있다는것을 알게되는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빌니우스에도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거리가 있는데 그래서 지날때마다 관광객의 마음으로 매번 유심히 보게 된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날, 이마트 구경에 나서신 시어머니. 애연가이신 시어머니께 목에 좋을거라며 추천해드렸던 기억이 난다. 부엌 찬장에서 꺼내서 열어보니 목캔디 대신 들어있던 것은 



작년에 베플라이라는 작은 시골에 갔을때 잡초 사이에서 함께 뜯은 타임 (thyme), 검색해보니 백리향이라고도 불린단다. 서양에서는 널리 쓰이는 허브이고 리투아니아에서도 채소를 식초나 소금물에 저장할때 넣고 차로 끓여 먹기도 한다. 녹색 목캔디속에 담겨있는 것은 민트이다. 설탕을 듬뿍넣고 식혀서 차갑게 해서 먹으면 정말 맛있는 민트차이다. 



부엌으로 가는 통로 사이에 놓여 있는 그릇장 위의 사각 나무 쟁반들.  밥을 먹고 우리 엄마가 항상 과일을 챙겨오시는 광경을 보고 몹시 신기해 하셨던 시어머니. 이것도 양주 별산대 놀이 탈과 마찬가지로 미련을 못 버리시고 꼭 사다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남대문 시장에 갔는데 요즘 잘 만들지 않는 물건이라며 구하기가 의외로 어려웠다. 서울 우리집에선 보통 부엌 찬장속에 들어있어서 필요할때 엄마가 꺼내시곤 했는데 시어머니는 그릇장 위에 가지런히 늘어 놓으신다. 



때로는 물건을 늘어 놓는것은 장식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정물화의 개념 같다. 과일 그리기를 즐겼던 세잔을 떠올려보면 그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급하게 사과며 주전자를 테이블 위에 부랴부랴 얹었을거라고 생각하면 왠지 모양이 안난다그는 그냥 오며 가며 무심코 베어 먹던 사과가 아름답게 느껴져서 사과를 그리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주변에 놓여 있는 모든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그 본연의 기능과는 상관없는 풍경속의 오브제로 아름답게 다가온다그릇장 위의 사각 소반에 시어머니는 첫번째에는 항상 과일을 두번째에는 호두통을 놓으신다. 저 호두들은 아주 천천히 사라지며 일년도 이년도 넘게 저 자리에 오롯이 놓여있다. 마치 밤이 되면 저 나무통속에서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주변의 사물들과 얘기라도 할것같은 느낌이다. 정물. still life. 뭔가 역설적인 단어이다나는 오며가며 사과를 닦아 먹고 그리시니의 먼지를 털어 깨물어 먹는다.  



자라나는 아기가 할머니 댁에서 조금이나마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물건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역사를 얘기해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침대 옆의 램프 곁에 놓여져 있던 장독. 내가 집에서 후추 통으로 사용하려고 이마트에서 살때 하나 더 사서 선물해 드렸다. 종가집 마당에 수두룩하게 놓여있는 거대한 장독들을 봤을때 어떤 인상을 받으실까. 



거실에 놓여 있는 보석함은 리투아니아에서 한식당을 운영하셨던 분이 한국을 떠나시며 남겨주시고 간것인데 우리집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서 시어머니께 드렸는데 역시 잘 드린것 같다.  



그네놀이가 그려진 부채.



지인분들께 선물하면 좋을것 같다고 인사동에서 여러개 구입하신 립스틱 보관함. 도장 보관함으로도 어울릴것 같지만 이런 형태의 도장을 잘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들을 위해 아마 립스틱 보관함으로 만든것 같다.



우리의 전통 혼례때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서 모두가 한복을 대여했지만 시어머니의 조끼만큼은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구입 해야했다. 이 조끼에 대해서 잊고 있었는데 '한국 관련 물건 다 사진 찍어보면 재밌을것 같아요' 했더니 장롱으로 달려 가더니 꺼내 오셨다. 그리고는 아기에게 입혀보셨다. 



이것 역시 마트 탐험중에 발견한 술. 술은 물론 집에 오는 손님에게 마다 한잔식 따라 주셨으므로 빈 병이다. 냉장고 위의 미니 트리 장식과 함께 놓여있었다. 



리투아니아에 초콜릿은 무궁무진하고 카카오 함유량이 80프로도 넘는 다크 초콜릿도 엄청 많지만 이런 플라스틱 통속에 담겨 있는것이 재밌다며 사셨던 기억이 난다. 열어보니 절반도 넘게 남아있다. 



이것도 지인 선물용으로 사신 젓가락이다. 여기저기 선물하시고도 아직 이렇게 많이 남아있다. 젓가락질이 서툰 외국인들을 위해서 인사동에는 나무 재질의 아래로 갈 수록 뾰족해지는 젓가락을 많이 판매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젓가락 얘기가 나오면 실제 한국인들은 무거운 금속 재질의 숟가락 젓가락을 사용한다고 서울에서 보신 그대로 열띤 설명을 하신다. 빌니우스로 돌아가는 날 버스에서 먹어야 한다며 남편은 주먹밥을 만들었다. 속에 뭔가 맛있는게 들었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오이뿐이었지만 배가 고프니 그것도 맛있었다. 



참기름을 발라 구운 김을 너무 좋아하는 남편과 시어머니. 우리집에도 없는 진짜 한국 참기름을 가지고 계시다니. 물론 유통기한은 진작에 끝났지만. 파네베지에 갈때마다 김을 한통씩 구워드리곤 한다. 싹싹히 주걱은 리투아니아 국기와 색상 배합이 똑같다. 



이것도 마트에 갔을때 예쁘다며 구입하셨다.



한국에서 써보시고 너무 좋다며 반하셨던 목욕타월. 목욕타월이 신기하다고 하시는 시어머니가 신기하셨던 우리 엄마가 세개나 사드렸다. 리투아니아에는 한국의 목욕타월처럼 시원하게 문지를 수 있는 까칠한 재질의 타월보다는 부드러운 천 재질의 타월이 많다. 거품이 잘나게 망으로 된 타월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길어서 혼자서 등을 문지를 수 있는 타월은 나도 못본 듯. 시어머니께 한국에 방문 할 기회가 또 생기길 바란다. 두번째 세번째 방문에서는 어떤 물건들과 풍경들이 그의 머릿속에 남게 될까. 심지어 이미 나에게도 외국처럼 느껴지는 그 곳.  어떤 새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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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Lithuania2015.11.30 02:31



간장 한번 찍어 먹고 천장에 걸어 둔 굴비 한번 쳐다보며 밥을 먹는다는 한국의 자린고비 이야기를 언젠가 남편에게 해준적이 있다. 부채를 가만히 들고 부채가 닳을까 아까워 부채 대신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이야기도 덤으로 해줌.  음식을 적게 먹다보니 확실히 치즈며 버터며 크림을 주로 이용하는 느끼한 음식들이 갈수록 맛있어짐을 느낀다. 이것은 뭐랄까. 고추장에 익숙치 않았던 외국인이 매운 맛이 두려워 밥을 비빌때 커피 숟가락 만큼 고추장을 넣다가 고추장의 진면목을 깨닫고 밥 숟가락으로 고추장을 퍼대기 시작하는 변화와 비슷한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외국인이 있다면 말이다. (글을 다 쓰고 네이버에서 자린고비를 검색해보니 자린고비는 심지어 간장 조차 찍지 않고 그냥 굴비를 올려다 본단다. 간장을 낭비하는 자린고비는 자린고비 축에도 못 끼나 보다.) 세상의 다양한 자린고비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목장에서 일하는 목동에게 구두쇠 목장 주인이 점심으로 버터를 바른 빵을 목동에게 가져다 주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 온 목동이 울면서 말했다. 


목동- 엉엉엉. 눈이 멀었나봐요.

주인- 아니 눈이 멀다니 대관절 (옛날 이야기 느낌을 주려 일부러 고심끝에 사용한 단어 임 -.-) 무슨 소리냐.

목동- 빵에 바른 버터가 보이지 않아요. (버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게 발랐던 것)


뜨끔한 주인은 다음 날 버터를 제 딴에는 조금 더 발라서 가져다 주었다. 여전히 울면서 돌아오는 목동.


주인- 오늘은 또 왜 우니.

목동- 빵이 너무 잘 보여서 감격스러워서요. 눈이 다 나았어요. (버터를 여전히 얇게 바른 나머지 버터 아래의 빵이 너무 잘 보인다고 비꼰것) 


한편으로는 뭐랄까 목동은 영악하고 목장 주인은 오히려 천진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자린고비 이야기이다. ㅋㅋ


이야기를 떠올리며 비스킷 위에 버터를 발라 보았다. 첫번째 비스킷에는 약간은 과장해서 최대한 얇게 펴서 발라 보았다.  버터를 미리 실온에 놔두면 두번째 비스킷 처럼 쉽게 펴 바를 수 있지만 금방 꺼낸 버터는 딱딱하니 잘라서 얹어 먹을 수 밖에 없는것도 같다. 




지방 함량 83프로의 버터를 저렇게 잘라서 얹어 먹을때가 많다. 비스킷 자체에도 적지 않은 버터가 들어 갔을테지만 어쨌든 맛있으니깐. 마치 카라멜 마끼아토에 설탕을 첨가하고 모닝시럽을 잔뜩 펌프질 하는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내 직장 동료는 식당의 식재료를 주문할때 200그램짜리 버터를 기본적으로 10개씩은 주문하곤 했는데. 그렇게 많은 버터를 유통기한 내에 다 먹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보통은 냉동실에다 넣어 놓고 필요 할때마다 하나씩 꺼내 먹지만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버터 소비량이 엄청 나다며 두 손가락으로 아버지가 발라 드시는 버터 굵기를 보여주었다. 전후세대인 우리 아빠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을게 없어서 펌프질한 물에 고추장을 타서 마시곤 했다는 보릿고개 시절 얘기를 가끔씩 해주시곤 했는데 아마도 먹을게 없던 시절에 이곳 사람들은 버터만 발라 먹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당시 버터는 왠지 첨가물 없이 훨씬 맛있었을것 같다. 친구 아버지 앞에서 버터를 바를 일이 없었던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ㅋ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