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2.01 <북촌방향> 홍상수 (2011)
  2. 2012.11.12 <오! 수정> 홍상수 (2000)
Film2013.02.01 03:39

 

 

<북촌방향>

 

내가 언젠가 거닐던 익숙한 풍경들은 흑백의 필터를 통해 시간의 정체성을 잃고 나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추억처럼 모든 이들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졌다.

영화 <오! 수정>이 그랬던것처럼 <북촌방향> 역시 타인의 눈을 통해 나의 추억을 더듬는 기분이 들어 묘했다.

은행이 노랗게 물들면 유난히 아름다웠던 이 곳 정독도서관.

 600원이면 한 그릇 뚝딱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도서관 식당의 가락국수.

전부 읽지도 못할거면서 꾸역꾸역 대출해서 결국은 그대로 반납하곤 하던 소설들.

도서관 무료 상영회에서 동생과 배꼽잡고 보았던 <스쿨 오브 락>.

그리고 그 웃음을 뒤로하고 문제집이라는 현실로 돌아와야했던 우울한 시간들. 

내 기억은 내가 보낸 시간의 일부이고 그 일부의 기억을 우리는 평생 추억하며 살아간다.

<북촌방향>을 따라가는 카메라속에 나의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그곳에는 왠지 내가 나만의 공간처럼 여겨도 되겠다 싶었던 고요함과 자유로움이 있었고

세월이 흘러 그 공간이 아무리 상업화되고 고급화되어도 내 추억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10년후에도 20년후에도 난 이 흑백장면속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분홍색 열람증따위를 떠올리겠지.

가끔은 '오늘은 도서관 휴관일입니다'라는 절망적인 푯말도 함께.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꿈과 생각으로 갈팡질팡했다.

그 숱한 오해와 엇갈림은  분명 우리가 탓 할 수 있는 '과오'같은것은 아니지만

후회도 인간이 가진 미덕이라면 우리는 그 미덕으로 그나마 덜 잊고 더 추억하는것이 아닐까.

그 추억의 깊이를 가늠해보는데에 흑백화면만큼 절묘한 장치도 없는것 같다.

차갑게 절제된 영상속에선 오히려 온기가 느껴진다.

성준(유준상)이 고갈비집에서 만난 처음보는 학생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는 장면에선 

'한번 웃어봐요'라는 재훈(정보석)의 요구에 '제가 왜요?'라며 황당해하던 수정(이은주)의 표정이 생각나 잠시 쓸쓸해졌고

경진(김보경)의 방바닥에 앉아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성준(유준상)을 보니

언젠가 수정(이은주)이 영수 (문성근)와 여관에 간 그날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돌고 돈다. 지나고나면 그저 한페이지의 일기로 가슴 한켠에 고스란히 쌓여가는것이다.

 

 

'짝'이란 프로그램을 제작년에 한국갔을때 처음 보았다.

그 전까지 포털에서 여자 2호, 남자 3호하는것을 두고 전혀 이해못하다가 프로그램을 보고났을때 아 이거였구나 했다.

그 이후로 매주는 아니어도 간혹 찾아서 보고있는데 요새 몇편의 홍상수 영화를 다시 보고는 생각했다.

이 둘은 정말 소름끼칠정도로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구나. 

인류가 사랑을 멈추지 않는 한 감정의 엇갈림과 집착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영원불멸의 과제로 남을게 분명하지만

극영화와 기록영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이 둘이 표현해내는 것들은 기가막힐 정도로 일치했다.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공통된 명령어를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들의 짝이 된 후의 달콤 쌉싸름한 여정이나 만사형통의 결말따위는 보여주지는 않는다.

남녀의 관계에서 우리가 도출하고자 하는 결론은 순정과 일편단심, 찐득한 여관방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과 같은 형상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치열한 머릿싸움과  결론없는 드라마 속의 궁상맞고 피튀기는 과정을 가만히 앉아 구경할 뿐이다.

 

호감을 표시하고 그 호의를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은 부러움에 환호하고 누군가는 우쭐해진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표현해서 일을 그르쳤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양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고 수도없이 좌절하고 안도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느끼는 슬픔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 때문에 느끼는 슬픔은 같은 종류일까?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도 나를 좋아할 때의 기쁨,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나를 누군가 좋아해 줄때에 느끼는 기쁨은?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 티비출연까지 감행해야했던 출연진들이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방법과 과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홍상수의 첫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나온 김의성이 주인공의 첫 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로 나온다.

술마시고 꼬장부리는 캐릭터는 여기서도 똑같구나.

이번 홍상수의 신작에도 출연하는것 같던데 아마도 비슷한 캐릭터일까?

하지만 김의성의 꼬장은 항상 그럴듯하다.

'별거를 했으면 여자문제때문이겠지.사귀는 사람 없어?'

성준의 의미심장한 거리감 두기에 '넌 날 꼭 '중원이'형으로 부르더라'라며 날카로운 직격탄을 날린다.

갑자기 나타난 어느 누구의 짝도 아닌, 그냥 택시에 빨리 태워서 보내야 할것 같은 걸리적 거리는 인물인 김의성은

인간관계에 대한 몇가지 날 선 분석을 내놓고 사라진다. 

 

 

서울에 올라와 술에 취해 경진의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에 있는 내내 경진의 문자를 받는 성준.

단순한 영화 팬에서부터 제자에 술집 주인에 아는 형의 동료까지

이토록 많은 여자들에 경계의 뉘앙스를 주지않으려 애쓰는 캐릭터도 없었던것 같다.

문자를 읽는 성준의 태도는 시크하기 짝이 없다. 그래 놓고서 일기를 꼭 쓰라느니 정신 바짝차리라니

겨드랑이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에서 쇼팽의 녹턴을 치는 주도면밀함까지.  

<생활의 발견>에서 '사랑한다고 말해줘요'라는 명숙의 전화를 받는 경수의 태도는 그래도 인간적이었다.

 

상대가 듣고자 하는 말만 골라서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고 그런 얘기를 믿고 감동받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솔직한 얘기에는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

호감이 있다는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은 로미오와 줄리엣에나 나오는 이야기.

모두가 운명적인 화학반응 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수학과 기술에 가까운 사랑이 더 흔한법이다.

 

 

'얘기를 해보니 통하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한번 두번이면 모르겠는데 세번째도 이렇게 되고보니 보통 인연은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우리를 엮어주는것은 변함없이 우연과 의외의 이론이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는데에 있어서 수만가지의 서로 상관없는 우연들이 작용하고

사람들은 몇가지 우연들을 편리하게 강조해서 사건화하고 극대화해서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순화시킨다. 이미 의도했고 그토록 원했던 결론이니깐.

하지만 그 우연을 가능케했던 그 이전의 우연과 그 전의 전의 우연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고

그래서 우리의 판단과 결론은 완전할 수 없다. 거기에서 불협화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해변의 여인>의 중래의 이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상이며 <짝>의 등장인물들이 빠져드는 운명론의 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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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2.11.12 03:47

 

 

영화 <오! 수정>을 다시 보았다.

영화가 개봉했을때 보고 다시 본게 처음이니 거의 12년만이네.

영화보는 틈틈이 홍상수의 또 다른 영화인 <북촌방향>을 떠올렸다.

거의 십년이라는 터울을 두고 만들어진 두 영화이지만

두 영화를 잘 편집해서 하나의 영화로 합쳐놓아도 보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을것 같다.

잠시 한 눈을 팔고 있으면 모르는 영화 두 세편을 새로이 필모그래피에 올려 놓는 감독.

그의 개봉작을 때맞춰 못봐도 별로 조바심 안나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그만큼 세월을 타지 않기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끝자락에 앉은 사람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코아아트홀에서도 가장 작은 관에서나 봐야 돈 아깝다는 생각 안드는 영화가

홍상수 영화라는 의견에 누가 뭐 반대할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것은 어떤 이들은 그런 영화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즐겨 본다는것.

  워낙에 다작을 하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관객의 입장에서도 목숨걸고 관객을 기대하는 감독같지 않아서 부담이 적다.

흥행하는 영화를 볼땐 결과적으로 그 영화가 나한테 재미있는 영화인가와는 상관없이

남이 보는 영화를 나도 본다는것에 대해 우선 만족하려는 심리가 있는게 사실이다.

만드는 영화마다 계속 실패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를 볼땐 관객들도 그들만큼 불안한 법이고.

개인적으로 홍상수나 김기덕의 영화는 감독컷으로 캐스팅비화나 촬영비화같은것을 곁들여서 한정판으로 내면 좋을것 같은데.

특히 이 <오! 수정>이라는 영화는 더욱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이은주는 스무살 꽃다운 나이였구나.

홍상수의 영화를 아무리 더봐도 이 영화만큼 노골적이고 응큼했었던 영화는 없었던것 같다.

스크린 데뷔작에서 이만큼의 노출을 감행할 수 있었을땐 이은주라는 배우도 나름의 고집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너무 어려서 그냥 제작사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가.

하지만 <은교>의 김고은도 그렇고 그런 연기를 하라고 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을것 같다.

뭐 그런연기를 했을때 신인상을 가져가는것도 불문율 같고.

아무튼 이은주에게서는 또래 배우들이 가진 발랄함이나 상큼함보다 항상 새침함과 우울함이 강조되었던것도 같고

그래서 신인 여자 배우로써는 약간 다른 길을 가게 되었던것도 같다.

위 장면은 정보석의 외제차를 타고 가면서 천장 창문을 열어주자

'나 어렸을때 엄마아빠랑 김포공항 다니면서 저 위로 얼굴내밀고 막 그랬거든요. 그땐 우리가 잘 살았었나봐요'

 라고 말하는 장면인데.

드라마 불새에서 갑자기 가난해져서 다른 삶을 살아가야했던 그녀와 오버랩되면서

무척이나 그럴듯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어찌보면 이은주가 연기했던 양수정이라는 캐릭터로부터 홍상수의 여자 캐릭터는 정립된것처럼 보인다.

송선미든 고현정이든 김보경이든 코트를 입든 야상점퍼를 입든 무용을 하든 작곡을 하든

그녀들의 취한 얼굴, 방바닥을 손으로 짚고 취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그런 모습들.

애타는 사람을 전화기 저편에 세워놓고 무심하게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뻔뻔한 수정의 아우라를 벗어날 수 없는것 같다.

상대가 무엇을 의도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모두들 각자가 원하는것이 있고 그것이 상대의 목적과 부합할때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자기 본능에 충실한 영리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동안 누군가는 뜨끔하고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영화속에서의 시간은 얽히고 섥혀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진짜 복잡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산 케이블카가 멈춘 시점부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수정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여주는것.

그렇다고해도 장소와 시간의 배열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것도 아니다.

편집실에서 수정과 영수는 서로에게 그렇고 그런 호의를 보이고

수정은 저런 얘기를 뭐하러하지 싶은 자신의 성경험까지 솔직하게 풀어놓는데 나중에 정보석이 합류하고.

수정에게 그림을 보러 가자는 영수와 화랑을 나와서 경복궁 참 작다라고 말하는 장면들은 저만치 떨어져있고.

화랑을 나와서 재훈이 운전기사한테 밥먹으라고 돈주는 장면을 보고서는

본능적으로 부유한 재훈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재훈은 영수에게 수정의 이름을 물어보고, 수정은 재훈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것을 의도적으로 확대해석하고

재훈은 수정이 자신의 장갑을 찾은 우연이 필연같기만 하고 기억력을 자랑하기 시작하고 혈액형 물어보기 시작하고.

이제부터 그것들이 일사천리로 그 누구의 밤과 낮도 아닌 불특정다수의 습관들로 쭉쭉 나열된다.

 

 

누군가는 항상 안절부절해한다.

누군가는 항상 그걸 모르는척 한다.

그 누군가는 또 모르는척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절부절해한다.

누구도 지지 않는 경기.

우이동에 좋은 호텔을 알아요 라고 말해도

어머 이 남자가 나랑 말고도 호텔을 많이 다녀봤나봐 라며 섭섭한 뉘앙스를 풍길 여자가 여기엔 없다.

 

 

-활짝 웃어봐요

-뭐요? 제가 뭔데요?

 

화면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저 막걸리는 왠지 너무 달콤할것 같다.

벼름박에 한가득 적혀진 낙서와 낮은 천장.

언젠가 우리도 머물렀던곳같은 흑백화면속 고갈비집.

살아서 흑백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배우는 나름 행운이었겠다 싶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수정이 탄 남산 케이블카가 공중에 매달려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중에 붕 뜬 모두의 감정들처럼.

케이블카가 작동되면서 뜨는 자막

'짝만 찾으면 만사 형통'

티비 프로그램 <짝>의 '둘은 통했다' 라는 나레이션이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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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