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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6.27 연극 백치 (3)
Film2018.06.27 07:00


얼마전에 본 연극. 텍스트 연극이라기보단 발레 연극. 그냥 현대 무용극이라고 해야하나. 모르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대사없이 춤동작만으로 구현해낸 연극이지만 그렇다고해서 현란한 발레 동작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리투아니아 안무가 안젤리카 홀리나의 또 다른 작품,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안나 카레리나를 8년전에 본 적이 있다. 과연 몸 동작 만으로 그 방대한 소설을 표현해내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한편으로 춤을 통한 은유를 극대화 하기 위해 완벽하게 절제된 색상과 소품 그리고 예민하게 배치된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구경하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던 공연으로 기억한다. 소설의 내러티브가 사라지고 등장 인물간의 감정적 투쟁만이 고스란히 남는 느낌. 러시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말고도 오델로, 카르멘 같은 작품이 있지만 안나 카레리나의 후광 때문인지 같은 러시아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작품은 망설임의 여지 없이 보러갔다. 항상 지나는 길목의 광고 기둥에 광고가 크게 걸려서 저녁에 바로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이미 상당수의 표가 팔린 상태 그리고 그 다음날 광고 사진을 찍으러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광고는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극장에서도 구시가지 어디에서도 더 이상의 포스터를 구경할 수 없었다. 마치 없었던 것 처럼 사라진 백치.



사진들은 그냥 인터넷에서 가져 온 이미지.  한달 반 정도 연극에 대해 상상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인물이 그리고 그가 써내려간 작품들이 얼마나 '그러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했다. 이 작가를 형용할 수 있는 별다른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그냥 어딘가에 그 인물들과 살아있는 느낌,  불멸은 어쩌면 이런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왠지 그냥 늘상 지나다니는 길목 어딘가에 미친 눈동자를 하고 쉴새없이 중얼거리며 취한채 웅크리고 있는듯한.  작가가 머릿속에서 지어낸 이야기들이 타자기를 통해 고스란히 사진으로 현상되어 손바닥에 전해지는것 같다.  2시간 가량 이어질 연극에서 소설의 어느 부분들이 등장할까 그리고 어떤식으로 표현해낼까 떠올려보는 것은 흥미로움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뻔한 되새김질 같았다. 어떤 배우들이 어떤 표정으로 연기를 해낸들 그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머리속에서 빠져 나온 그들과 결코 다른 인물일 수 없을 것 이라는 확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한 인물의 재해석 재창조라는 말은 무용하고 결국 그 소설 속 인물의 아우라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평면적임과 동시에 어쩌면 가장 깊고 입체적인 인물들이 그렇게 무채색의 배경속에 하나둘 등장했다. 연극의 시작과 동시에 줄지어선 의자들과 기차 소리. 마주 앉은 두 인물. 역시나 로고진과 뮈쉬킨이 운명적으로 조우하는 소설의 첫 장면이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옆에서 깐죽되는 레베제프는 고스란히 빠진채로. 단지 소설 속의 인물들일 뿐인데 마치 오래도록 알고 있던 인물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그들을 마주쳤을때의 느낌.  오랫동안 열광하며 듣던 어떤 이의 음악,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실제로 연주를 할 수 도 없지만 그냥 컴컴한 무대 위의 화면속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벅찬 느낌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읽었던 채로 연극을 보러 갈 수 있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고진과 뮈쉬킨은 무용수가 아닌 클라이페다 극장 소속의 연극 배우가 연기했다. 움직이는 기차속에서 의자를 통한  미미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어둡고 장중하게 깔리는 음악 속에서 두 사람이 눈을 마주한채 교감하는 장면은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이었다. 소설의 페이지를 넘기는 듯한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연극 포스터에는 로고진과 나스타샤 필립포브나, 뮈쉬킨과 아글라야 네 사람이 등장한다. 아글라야는 내 나름대로는 어느정도의 카리스마와 고집을 지닌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연극속에서 너무 가녀리기만한 인물로 그려진 것 같아 좀 아쉬웠다. 연극에 나올거라 생각했던 장면들이야 어쩌면 딱 정해져있다. 뮈쉬킨이 예판친 장군집에 먼 친척이라며 처음으로 방문하는 장면. 별다른 동작을 취하지도 않은채 가만히 서있었을뿐인데 의상과 그 엉거주춤한 모습만으로 뮈쉬킨을 맞이하는 장군댁의 시종과 가브릴라 같은 인물들이 소설속에서 방금 튀어 나온 인물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묘사해 나가던 그 순간들이 장면 하나에 모두 집약되어 있었다. 가브릴라의 집에 온갖 잡다한 사람들이 다 모인 상태에서 나스타샤가 돈뭉치를 난로에 집어 던지는 장면, 뮈쉬킨을 사이에 둔 여러번의 삼자대면.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뮈쉬킨과 로고진이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장면은 따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 장면은 어쩌면 뮈쉬킨과 로고진 나스타샤 아글라야의 감정 표현을 중심으로 극을 끌어 갈 수 밖에 없었던 이 연극의 한계상 부담스러운 장면이었을거다. 뮈쉬킨과 나스타샤가 처음으로 조우하는 장면 정확히 말해서 나스타샤가 코트를 벗어서 문앞에 서있던 뮈쉬킨에게 무심하게 넘겨주고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나스타샤의 붉은 의상과 그 외투를 들고 먼 발치에 서있는 뮈쉬킨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가득 메운 인물들의 폭주속에 붉게 타오르는 난로 같은 무대 배경도 간략하고 군더더기없이 좋았던듯. 이 연극을 보고나니 의외로 안나 카레리나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할 역시 나스타샤를 연기했던 발레리나가 맡았으니. 다시 보면 새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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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