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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0 <도쿄 스토리 > 오즈 야스지로 (1953)
Film2013.01.10 05:40

 

 

<도쿄 스토리>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서는 머리를 감았다. 갑자기 금새 졸음이 밀려올까봐 커피도 끓였다.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 해의 운명이 결정된다고들 하는데 연말에 거의 잠을 자지 않아서일까 왠만큼 늦은시각이 아니어서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작년에 현빈 탕웨이 주연의 <만추>를 보고서는 (물론 전혀 다른 만추이지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진지하게 찾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가지고 있던 영화 말고 얼마전에 <안녕하세요>와 <도쿄 스토리>를 찾아 보는데 성공했다. <도쿄 스토리>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란것을 알기 전에 난 이 영화를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디가 경마장에 함께 가기위해 윌리의 집에 오는 장면이 있는데 에디는 윌리의 사촌동생 에바에게 호감을 느끼고 에바를 함께 데려가길 원하지만 놀러온 사촌이 귀찮기만한 윌리는 거절한다. 그때 그날 출전하는 경주마에 대한 정보를 에디가 읽어주는데 그때 등장하는 경주마 중 하나가 '도쿄 스토리'이다. <천국보다 낯선>을 워낙 여러번 봤기도했었지만 일상적이고 무미건조한 대화가 주를 이루는 그 영화에서 '도쿄 스토리'라는 이름의 경주마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는데 사실 그때는 짐자무쉬도 일본을 동경하는 서양인의 정서를 이런식으로 표현하는구나 지레 짐작했었지 그것이 어느 일본 감독의 영향을 받아서일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많은 다른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이 영화도 역시 담담하게 한 가족의 일상을 담아낸다. 자신의 여러 영화에서 개별적으로 다루던 소재들을 한데 모아놓은듯한 느낌도 준다. 결혼하지 않은 딸, 말썽피우는 아이들, 얄밉게 구는 딸, 자식에 대한 애환을 얘기하는 노년의 남자들 등등. 정말 이것이 영화의 소재가 될만한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다 싶은 일들을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갈등없이도 심지어는 미묘한 긴장감까지 주며 두시간 넘게 끌어갈 수 있는것, 그 '아무것도 아닌것'같은 일들에 대해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것은 오즈 야스지로의 역량이 아닌가 싶다.

 


 

출가하지 않은 막내딸과 함께 오노미치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노부부는 도쿄에 사는 자식들을 방문할 생각에 들떠있다.

장남에게서 초등학생 손자가 있지만 도쿄에는 아직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가보다. 큰 아들과 큰 딸, 둘째 아들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가는 둘째 며느리가 도쿄에 산다. 자식들 대부분이 대도시에 자리 잡은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노부부 자신도 자랑스러워한다. 할머니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열심히 에어쿠션을 찾는다. 도쿄까지 가려면 장거리 열차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여행준비하는 부인 옆에서 무심한듯 앉아서 책을 읽는 남편도 설레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마치 싱크대부터 탁자까지는 세발자국, 현관부터 마루까지는 몇발자국이라고 동선을 계산하듯 지극히 절제된 동작으로 연기한다. 그 절제된 동작들은 흑백영화라는 틀속에서 더욱 최소화되고 정적으로 변한다. 카메라는 마치 게으름을 피우듯 고정되어있고 그런 제한된 프레임속에서 배우들은 그냥 조금씩 꿈틀거린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거리와 간판, 도시와 산들이 정물화가 되어 나타난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의 아버지를 연기한 류 치슈는 다른 영화에서보다 훨씬 덜 가부장적인 모습이다. 조금은 뭉그러져서 동글동글해진 아버지들의 모습이랄까.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것 같아 마음 졸이고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머물곳을 찾다 아내와 헤어져서 친구들을 만나지만 술에 취한 친구까지 데리고 인사불성이 되서 찾아오는곳은 다름 아닌 딸의 집이다.  미용실 의자에 고꾸라져서 딸이 중절모로 그의 머리를 때리는 장면에서는 우리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뭉클했다.


 


 

류 치슈의 큰 딸로 나오는 이 배우는 <안녕하세요>에서도 험담하기 좋아하고 친정 엄마조차  못마땅해하는 딸로 나왔었다. 남편이 장인장모를 위해 비싼 과자를 사와도 뭐하러 돈을 쓰냐고 면박을 주고 시내구경을 시켜줘야하는것 아니냐고 제안해도 오빠네가 알아서 할것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되려 무안을 준다. 남자 형제사이에서 자란 딸들은 약간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있는것 같고 그들의 남편들 또한 약간은 우유부단하다. 노부부는 딸이 결혼을 하고 나더니 이상해졌다고 말하고 막내 딸은 엄마가 돌아가셨는데도 유품 생각만 하는 언니가 못마땅하기만하다. 그래도 또 둘째며느리는 출가한 여자의 입장에서 첫째 시누이를 두둔한다. 류 치슈와 함께 오즈 야스지로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하라 세츠코가 둘째 며느리역을 맡았다. 첫째 며느리를 연기한 배우가 정숙한 고전적인 여성상을 몇차례 연기했다면 하라 세츠코는 여성적이고 섬세하면서도 똑부러진 세련된 여성상을 연기했던것 같다. 

 

 


 영화 <만춘>에서 출가하지 않은 딸과 홀아버지를 연기했던 이 두배우는 남편과 사별한 며느리와 시아버지를 연기한다.

가장 극적인 스토리를 가진 등장인물로써 시부모와 죽은 남편의 형제들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아준다. 의사가 된 든든한 장남과 미용실을 하는 천덕꾸러기같은 딸, 오사카에사는 얼굴보기 힘든 막내아들, 그 어떤 자식보다도 생각할 수록 안타깝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며느리이다. 노부부의 도쿄 여행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노리코(하라 세츠코)의 집에서 사진속의 죽은 아들을 맞닥뜨렸을때. 전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같았다.


 

 


동네 의사인 큰 아들에게 갑자기 급한 환자가 생기는 바람에 도쿄 시내 구경은 둘째 며느리가 맡게된다. 이 장면에서도 여러모로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디와 윌리, 에바가 에리호수를 방문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에디와 윌리는 도박에서 번 돈을 들고 에바가 있는 클리블랜드로 떠나는데 그때 에바가 구경시켜주겠다고 데려가는곳이 바로 꽁꽁 언 에리호수이다. 두 영화의 비슷한 점을 찾는것은 무의미할 지 모르지만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또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 또 하나의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것은 경이롭지 않은가. 섣부르게 흉내낸 스타일과 철학으로 보는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어떤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말이다. 오노미치를 떠나 도쿄에 도착해 아타미에서 오사카 다시 오노미치로 돌아오는 노부부의 여행. 헝가리에서 뉴욕으로 날아와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를 거쳐 홀연히 헝가리로 돌아가는 에바의 여행. 다 큰 조카를 어린애다루듯 하느라 티격태격하는 에바와 롯데고모. 느닷없이 찾아온 사촌 동생이 못마땅해서 괜히 까칠하게 구는 윌리와 이 모든 헝가리 이민자들 사이에서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미국인 에디. 가장 가깝지만 그래서 가장 어려운 관계이기도 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에서 이들은 때로는 푸념하고 속상해하지만 결국은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것으로 스스로를 달랜다.


 

 


자식들과 함께있는것 자체에 행복감을 느끼는 노부부이야기일것만 같지만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이 자신의 기대에 못미치는 삶을 사는것같아 속상하다. 장남의 집이 도쿄 시내에서 떨어진 교외라는것도 그냥 동네 이웃집 의사 선생님 같아 보여서도 실망한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자식이 잘되면 그것으로 보상심리를 느끼는걸지도 모르겠다. 자식덕을 보려는게 아니라 단지 당신이 항상 자식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을 하기때문인것 같다. 일본인들의 실제 성격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속의 부모 자식의 관계는 왜 그리 어렵고 대면대면해보이는지.  그나마 서로에게 부채질을 해줄때에나 가까운 사이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하듯 여행을 떠났고 여행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장례식을 계기로 이들은 도쿄가 아닌 오노미치에서 다시 한번 모인다. 큰 딸은 사실 엄마보다는 아빠가 먼저 돌아가시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혹시 모르니깐 상복을 챙겨가야겠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것도 그렇고 어머니의 임종앞에 눈물은 흘리지만 그게 설마 부모의 죽음을 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자식들이 부모 생각처럼 자라주길 바라는것은 부모의 욕심이고 자식들이 변해가는 이유는 도쿄에 사람이 많아서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부모의 모습은 씁쓸하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스쳐지나쳤을 부모님의 수만가지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