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2.01 <북촌방향> 홍상수 (2011)
  2. 2013.01.21 <다른 나라에서> 홍상수 (2011)
Film2013.02.01 03:39

 

 

<북촌방향>

 

내가 언젠가 거닐던 익숙한 풍경들은 흑백의 필터를 통해 시간의 정체성을 잃고 나만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추억처럼 모든 이들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졌다.

영화 <오! 수정>이 그랬던것처럼 <북촌방향> 역시 타인의 눈을 통해 나의 추억을 더듬는 기분이 들어 묘했다.

은행이 노랗게 물들면 유난히 아름다웠던 이 곳 정독도서관.

 600원이면 한 그릇 뚝딱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도서관 식당의 가락국수.

전부 읽지도 못할거면서 꾸역꾸역 대출해서 결국은 그대로 반납하곤 하던 소설들.

도서관 무료 상영회에서 동생과 배꼽잡고 보았던 <스쿨 오브 락>.

그리고 그 웃음을 뒤로하고 문제집이라는 현실로 돌아와야했던 우울한 시간들. 

내 기억은 내가 보낸 시간의 일부이고 그 일부의 기억을 우리는 평생 추억하며 살아간다.

<북촌방향>을 따라가는 카메라속에 나의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그곳에는 왠지 내가 나만의 공간처럼 여겨도 되겠다 싶었던 고요함과 자유로움이 있었고

세월이 흘러 그 공간이 아무리 상업화되고 고급화되어도 내 추억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10년후에도 20년후에도 난 이 흑백장면속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분홍색 열람증따위를 떠올리겠지.

가끔은 '오늘은 도서관 휴관일입니다'라는 절망적인 푯말도 함께.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꿈과 생각으로 갈팡질팡했다.

그 숱한 오해와 엇갈림은  분명 우리가 탓 할 수 있는 '과오'같은것은 아니지만

후회도 인간이 가진 미덕이라면 우리는 그 미덕으로 그나마 덜 잊고 더 추억하는것이 아닐까.

그 추억의 깊이를 가늠해보는데에 흑백화면만큼 절묘한 장치도 없는것 같다.

차갑게 절제된 영상속에선 오히려 온기가 느껴진다.

성준(유준상)이 고갈비집에서 만난 처음보는 학생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는 장면에선 

'한번 웃어봐요'라는 재훈(정보석)의 요구에 '제가 왜요?'라며 황당해하던 수정(이은주)의 표정이 생각나 잠시 쓸쓸해졌고

경진(김보경)의 방바닥에 앉아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넋두리를 늘어놓는 성준(유준상)을 보니

언젠가 수정(이은주)이 영수 (문성근)와 여관에 간 그날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돌고 돈다. 지나고나면 그저 한페이지의 일기로 가슴 한켠에 고스란히 쌓여가는것이다.

 

 

'짝'이란 프로그램을 제작년에 한국갔을때 처음 보았다.

그 전까지 포털에서 여자 2호, 남자 3호하는것을 두고 전혀 이해못하다가 프로그램을 보고났을때 아 이거였구나 했다.

그 이후로 매주는 아니어도 간혹 찾아서 보고있는데 요새 몇편의 홍상수 영화를 다시 보고는 생각했다.

이 둘은 정말 소름끼칠정도로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구나. 

인류가 사랑을 멈추지 않는 한 감정의 엇갈림과 집착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영원불멸의 과제로 남을게 분명하지만

극영화와 기록영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이 둘이 표현해내는 것들은 기가막힐 정도로 일치했다.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공통된 명령어를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들의 짝이 된 후의 달콤 쌉싸름한 여정이나 만사형통의 결말따위는 보여주지는 않는다.

남녀의 관계에서 우리가 도출하고자 하는 결론은 순정과 일편단심, 찐득한 여관방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과 같은 형상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치열한 머릿싸움과  결론없는 드라마 속의 궁상맞고 피튀기는 과정을 가만히 앉아 구경할 뿐이다.

 

호감을 표시하고 그 호의를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은 부러움에 환호하고 누군가는 우쭐해진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한편으로는 너무 표현해서 일을 그르쳤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양극단의 감정을 경험하고 수도없이 좌절하고 안도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느끼는 슬픔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 때문에 느끼는 슬픔은 같은 종류일까?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도 나를 좋아할 때의 기쁨,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나를 누군가 좋아해 줄때에 느끼는 기쁨은?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 티비출연까지 감행해야했던 출연진들이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방법과 과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홍상수의 첫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나온 김의성이 주인공의 첫 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로 나온다.

술마시고 꼬장부리는 캐릭터는 여기서도 똑같구나.

이번 홍상수의 신작에도 출연하는것 같던데 아마도 비슷한 캐릭터일까?

하지만 김의성의 꼬장은 항상 그럴듯하다.

'별거를 했으면 여자문제때문이겠지.사귀는 사람 없어?'

성준의 의미심장한 거리감 두기에 '넌 날 꼭 '중원이'형으로 부르더라'라며 날카로운 직격탄을 날린다.

갑자기 나타난 어느 누구의 짝도 아닌, 그냥 택시에 빨리 태워서 보내야 할것 같은 걸리적 거리는 인물인 김의성은

인간관계에 대한 몇가지 날 선 분석을 내놓고 사라진다. 

 

 

서울에 올라와 술에 취해 경진의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에 있는 내내 경진의 문자를 받는 성준.

단순한 영화 팬에서부터 제자에 술집 주인에 아는 형의 동료까지

이토록 많은 여자들에 경계의 뉘앙스를 주지않으려 애쓰는 캐릭터도 없었던것 같다.

문자를 읽는 성준의 태도는 시크하기 짝이 없다. 그래 놓고서 일기를 꼭 쓰라느니 정신 바짝차리라니

겨드랑이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에서 쇼팽의 녹턴을 치는 주도면밀함까지.  

<생활의 발견>에서 '사랑한다고 말해줘요'라는 명숙의 전화를 받는 경수의 태도는 그래도 인간적이었다.

 

상대가 듣고자 하는 말만 골라서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고 그런 얘기를 믿고 감동받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솔직한 얘기에는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

호감이 있다는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은 로미오와 줄리엣에나 나오는 이야기.

모두가 운명적인 화학반응 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현실에선 수학과 기술에 가까운 사랑이 더 흔한법이다.

 

 

'얘기를 해보니 통하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한번 두번이면 모르겠는데 세번째도 이렇게 되고보니 보통 인연은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우리를 엮어주는것은 변함없이 우연과 의외의 이론이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는데에 있어서 수만가지의 서로 상관없는 우연들이 작용하고

사람들은 몇가지 우연들을 편리하게 강조해서 사건화하고 극대화해서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순화시킨다. 이미 의도했고 그토록 원했던 결론이니깐.

하지만 그 우연을 가능케했던 그 이전의 우연과 그 전의 전의 우연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고

그래서 우리의 판단과 결론은 완전할 수 없다. 거기에서 불협화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해변의 여인>의 중래의 이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상이며 <짝>의 등장인물들이 빠져드는 운명론의 덫이다.


<우리 선희> 리뷰 보러가기

<오!수정> 리뷰 보러가기

<밤과 낮> 리뷰 보러가기

<자유의 언덕> 리뷰 보러가기

<다른 나라에서> 리뷰 보러가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리뷰 보러가기

<생활의 발견> 리뷰 보러가기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1.21 07:09

 

 

<다른 나라에서>

 

이번에는 '모항 해수욕장'이 배경이다.

영화 시작부터 노골적으로 팬션간판을 보여주는데 이런 팬션도 협찬받은게 아닐까 그냥 혼자 생각중.

배우들이 하도 홍상수 영화는 노개런티라고 떠들고 다닌 영향도 있고 

설상가상 김상경이 무릎팍도사에서 소주도 자비로 샀다는 얘기를 한마당에

그래도 절에서 기와에 소원 적는거는 돈내고 했겠지 또 혼자 생각해본다.

그의 영화중에서는 그래도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곳이 배경이구나 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제주도가 배경이었으니 그건 아니고 

아무리 소주에 삼겹살을 구워먹어도 외국배우가 출연을 해서인지 정서적으로 한국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나보다.

한마디로 모항 해수욕장에서 올 로케로 촬영된 <다른 나라에서>이다.

이런 시나리오로는 샤를롯 갱스부르를 섭외했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오롯이 '세명의 안느'를 연기하는 한 여배우를 위한 이런 영화.

물론 그녀의 외모는 너무 비현실적이니깐 별로 어울리지않고  줄리엣 비노쉬나 줄리델피 같은 배우도 있지만

아들 둘이 있는 엄마 역도 겸했어야하니 연령상 안맞고

여러모로 외모가 부각되었던 이런 배우들은 별로 적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이자벨 위뻬르는 별로 외국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외국배우가 출연한다고 해서 방한한 외국배우가 연예프로그램에서 상황극하는 느낌이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홍상수가 조만간 기욤까네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같은 남자배우를 섭외해서 그에게 영화학과 초빙교수역을 주고

<다른 나라에서>트릴로지나 <옥희의 영화>2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또 혼자 상상한다.

 

홍상수가 약관의 나이에 만든 첫번째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선댄스에 출품했어도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다른 영화들처럼 '구경남'식 구구절절함없이 그냥 호스텔 밖으로 나와서 맞이하던 그들의 아침처럼 청신했다. 

속을 태울일도 찔릴일도 낯뜨거울일도 없이 그냥 솔직하고 가볍고 유쾌하고 귀엽다.

한번쯤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 그들에게 왠지 한번쯤은 구원의 여지를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하지 말아야 하는것에 대한 주관식 정답에 우리 모두가 익숙해져있을뿐

소주병을 바닷가에 버리는것도 외국여자와 뽀뽀하고 싶은것도 그것이 한국인이어서 그러는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강원도에서도 경주에서도 인간의 욕망이란 장소를 초월해서 돌고 돌뿐이지.

 

 

돈문제로 엄마와 함께 모항에 와있는 정유미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짧은 시나리오를 쓰기로 한다.

팬션직원인 그녀에게 안느(이자벨 위뻬르)는 세개의 에피소드에서 매번 구경갈만 한 장소를 묻고는 등대를 찾아간다.

등대는 모항해수욕장의 명소이자 안느의 목적이며 그것없이는 소통 불가능한 안느의 언어이기도 하다.

어디 갈만한곳 있어요? 등대가 어디있어요?라는 그녀의 물음으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것이다.

심지어 어쩔때 안느는 등대가 어디있는지 알면서도 굳이 물어보는것 같다.

안전요원은 등대를 묻는 안느에게 램프를 보여주며 이것이 등대라고 농담을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안느와 안전요원이 텐트에서 잠을 잘때 램프가 켜져있는 장면에서 배꼽을 잡았다.

마치 안느가 그렇게 찾아헤매던 진짜 등대를 찾아낸것처럼

'이런 장면을 기다리신 거죠?'라듯 감독은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세개의 독립된 스토리는 반복되는 등장인물들로 인해서 때로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안느는 안전요원이 수영한것을 본적이 없지만

술을 마실때 안전요원이 등장하고 사라지자 윤여정에게 수영을 잘하냐고 묻는다.

안전요원을 보고 수영을 생각해낸것은 자연스러운것이지만 마치 안전요원을 이미 알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안느가 빌리는 우산도 그렇다. 우산을 빌리고 숨기고 잃어버리지만

마지막 이야기속에서는 다른 에피소드에서 숨겨둔 장소에서 마치 우연히 발견한듯 마냥 남의 우산을 꺼내 쓴다.

보는동안 끊임없이 상상할 수 있어서 즐겁다.

권해효도 문성근도 구경남의 연장선상에 있는것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목소리 출연만했던 문소리가 실제 구경남의 아이를 임신한채 껄떡되는 남편을 감시하는 느낌.

항상 누군가의 제자와 동창으로 나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정유미는 마치 모두를 심판하듯 작가가 되어 나왔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낯선 바닷가 도시에서 안느는 어쨋든 자신의 여행을 만끽한다.

들판의 염소를 보고 큰 소리로 염소 목소리를 흉내낸다.

무료함을 이겨보려는 그녀의 노력은 누가봐도 사랑스럽다.

 여행가고 싶다.

낯선 장소에서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지도를 펼쳐들고 어떤 장소를 찾아가고 싶다.

지도나 가이드북이 없다면 실제로 안느처럼 호스텔 직원에게 갈만한곳을 묻게 된다.

유명한 관광도시가 아니라 그냥 무심코 들른 그런 작은 도시들이라면 말이다.

지나고보면 뚜렷한 목적없이 들러서 내가 여기 왜 있지 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던 도시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가끔은 비가 내려서 호스텔에서 우산을 빌려야 할 때도 진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느에게 다음 여행에서는 접으면 손바닥만해지는 비닐우비를 지닐것을 권한다. ㅋㅋ.

 

 

임신한 아내는 술을 마실 수 없고 외국 여자는 자기보다 주량이 더 세다.

안느와 술마시는 수(문성근)는 어떤가.

문성근이 홍상수 영화에서 그렇게 술을 마셨어도 이정도로 얼굴이 뻘개져서 취한것을 본적이 없다.

심지어 그는 꿈속에서만 존재하는것처럼 보이고 키스하다가 안느에게 뺨까지 맞는다.

(이 장면은 심지어 문성근에 항상 치이던 정유미의 복수같다.)

몽블랑 아니면 아무것도 못쓴다는 소유욕 만빵의 스님은 또 왠일이냐.

다행히 안느의 무리한 요구에 순순히 만년필을 내놓았으니 스님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고 하자. 

안느가 권해효의 이름을 종수대신 '종'이란고 부른것은

아마 외국 이름을 외우기 쉽지 않았을 여배우의 실수를 감독이 살린게 아닐까 넘겨짚어본다.

그러다가 문성근의 이름은 일부러 종수도 종도 아닌 '수'로 부르게 한거고

결국은 다 같은 사람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we have a thousand monkeys in our brain. they chattering all the time'

'우리 마음속이 시끄러운것은 머릿속에 수많은 원숭이들이 떠들어대고 있기때문'

바람피운 남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안느를 절로 데려가는 민속학과 교수.

뭔가를 잊는데에 절하는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 절과 그 절이 동음이의어인것을 처음 알았다.

안느가 절을 나와서는 스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할때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김용옥이 스님으로 등장해서 팬션을 방문한다.

안느는 왜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왜 힘이 드는지 묻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장난 같은 대답만 돌아온다.

monkey 와 monk 도 그냥 우연인가.


<우리 선희> 리뷰 보러가기

<오!수정> 리뷰 보러가기

<밤과 낮> 리뷰 보러가기

<북촌방향> 리뷰 보러가기

<자유의 언덕> 리뷰 보러가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리뷰 보러가기

<생활의 발견> 리뷰 보러가기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