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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12 <오! 수정> 홍상수 (2000)
Film2012.11.12 03:47

 

 

영화 <오! 수정>을 다시 보았다.

영화가 개봉했을때 보고 다시 본게 처음이니 거의 12년만이네.

영화보는 틈틈이 홍상수의 또 다른 영화인 <북촌방향>을 떠올렸다.

거의 십년이라는 터울을 두고 만들어진 두 영화이지만

두 영화를 잘 편집해서 하나의 영화로 합쳐놓아도 보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을것 같다.

잠시 한 눈을 팔고 있으면 모르는 영화 두 세편을 새로이 필모그래피에 올려 놓는 감독.

그의 개봉작을 때맞춰 못봐도 별로 조바심 안나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그만큼 세월을 타지 않기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겠지만 끝자락에 앉은 사람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코아아트홀에서도 가장 작은 관에서나 봐야 돈 아깝다는 생각 안드는 영화가

홍상수 영화라는 의견에 누가 뭐 반대할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것은 어떤 이들은 그런 영화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즐겨 본다는것.

  워낙에 다작을 하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관객의 입장에서도 목숨걸고 관객을 기대하는 감독같지 않아서 부담이 적다.

흥행하는 영화를 볼땐 결과적으로 그 영화가 나한테 재미있는 영화인가와는 상관없이

남이 보는 영화를 나도 본다는것에 대해 우선 만족하려는 심리가 있는게 사실이다.

만드는 영화마다 계속 실패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를 볼땐 관객들도 그들만큼 불안한 법이고.

개인적으로 홍상수나 김기덕의 영화는 감독컷으로 캐스팅비화나 촬영비화같은것을 곁들여서 한정판으로 내면 좋을것 같은데.

특히 이 <오! 수정>이라는 영화는 더욱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이은주는 스무살 꽃다운 나이였구나.

홍상수의 영화를 아무리 더봐도 이 영화만큼 노골적이고 응큼했었던 영화는 없었던것 같다.

스크린 데뷔작에서 이만큼의 노출을 감행할 수 있었을땐 이은주라는 배우도 나름의 고집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너무 어려서 그냥 제작사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던가.

하지만 <은교>의 김고은도 그렇고 그런 연기를 하라고 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을것 같다.

뭐 그런연기를 했을때 신인상을 가져가는것도 불문율 같고.

아무튼 이은주에게서는 또래 배우들이 가진 발랄함이나 상큼함보다 항상 새침함과 우울함이 강조되었던것도 같고

그래서 신인 여자 배우로써는 약간 다른 길을 가게 되었던것도 같다.

위 장면은 정보석의 외제차를 타고 가면서 천장 창문을 열어주자

'나 어렸을때 엄마아빠랑 김포공항 다니면서 저 위로 얼굴내밀고 막 그랬거든요. 그땐 우리가 잘 살았었나봐요'

 라고 말하는 장면인데.

드라마 불새에서 갑자기 가난해져서 다른 삶을 살아가야했던 그녀와 오버랩되면서

무척이나 그럴듯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어찌보면 이은주가 연기했던 양수정이라는 캐릭터로부터 홍상수의 여자 캐릭터는 정립된것처럼 보인다.

송선미든 고현정이든 김보경이든 코트를 입든 야상점퍼를 입든 무용을 하든 작곡을 하든

그녀들의 취한 얼굴, 방바닥을 손으로 짚고 취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그런 모습들.

애타는 사람을 전화기 저편에 세워놓고 무심하게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뻔뻔한 수정의 아우라를 벗어날 수 없는것 같다.

상대가 무엇을 의도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모두들 각자가 원하는것이 있고 그것이 상대의 목적과 부합할때 사람들은 행복해진다.

자기 본능에 충실한 영리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동안 누군가는 뜨끔하고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영화속에서의 시간은 얽히고 섥혀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진짜 복잡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산 케이블카가 멈춘 시점부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수정의 시점에서 영화를 보여주는것.

그렇다고해도 장소와 시간의 배열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것도 아니다.

편집실에서 수정과 영수는 서로에게 그렇고 그런 호의를 보이고

수정은 저런 얘기를 뭐하러하지 싶은 자신의 성경험까지 솔직하게 풀어놓는데 나중에 정보석이 합류하고.

수정에게 그림을 보러 가자는 영수와 화랑을 나와서 경복궁 참 작다라고 말하는 장면들은 저만치 떨어져있고.

화랑을 나와서 재훈이 운전기사한테 밥먹으라고 돈주는 장면을 보고서는

본능적으로 부유한 재훈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재훈은 영수에게 수정의 이름을 물어보고, 수정은 재훈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것을 의도적으로 확대해석하고

재훈은 수정이 자신의 장갑을 찾은 우연이 필연같기만 하고 기억력을 자랑하기 시작하고 혈액형 물어보기 시작하고.

이제부터 그것들이 일사천리로 그 누구의 밤과 낮도 아닌 불특정다수의 습관들로 쭉쭉 나열된다.

 

 

누군가는 항상 안절부절해한다.

누군가는 항상 그걸 모르는척 한다.

그 누군가는 또 모르는척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절부절해한다.

누구도 지지 않는 경기.

우이동에 좋은 호텔을 알아요 라고 말해도

어머 이 남자가 나랑 말고도 호텔을 많이 다녀봤나봐 라며 섭섭한 뉘앙스를 풍길 여자가 여기엔 없다.

 

 

-활짝 웃어봐요

-뭐요? 제가 뭔데요?

 

화면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저 막걸리는 왠지 너무 달콤할것 같다.

벼름박에 한가득 적혀진 낙서와 낮은 천장.

언젠가 우리도 머물렀던곳같은 흑백화면속 고갈비집.

살아서 흑백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배우는 나름 행운이었겠다 싶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수정이 탄 남산 케이블카가 공중에 매달려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공중에 붕 뜬 모두의 감정들처럼.

케이블카가 작동되면서 뜨는 자막

'짝만 찾으면 만사 형통'

티비 프로그램 <짝>의 '둘은 통했다' 라는 나레이션이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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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