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2018.12.10 00:39


Paris_2013


'아주 오래 전' 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쓸 수 있는 말일까. 5년,10년 혹은 20년 전, 어쩌면 일주일 전, 하루 전, 한 시간 전. 똑딱똑딱 흘러가는 시간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간절할때, 단지 이미 지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없었던 것 처럼 느껴지는 어떤 순간들을 위한 말일 것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3.11.21 05:52



파리 여행 중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이들과 마주쳤다. 

그들 중 만남이 예정되어있던 이는 모나리자뿐이었다.

유리관 속에 꼭꼭 박제된 그를 혹은 그녀를 사무치게 만나보고 싶었던것은 아니었다. 

단지 세계 각국에서 배낭과 트렁크를 끌고 모여드는 로드 매니져들과 이미 은퇴한 퇴역 매니져들까지 합세해서 

'오늘은 꼭 모나리자를 만나셔야 합니다. 일단 모나리자만 만나보십시오. 

밀로의 비너스는 물론 앵그르의 목욕하는 여인들도 옵션으로 만나실 수 있어요. 참! 세계사 시간에 배우신 함무라비 법전도요'

 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었던것이다.

난 늦장을 부리다 오후 세시가 다 되어서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일곱시까지 허용되는 그(그녀)와의 면담에 늦지 않기위해 박물관 지도를 손에 꼭 쥔 채 거대한 루브르에서 앞만보고 걸었다.



그일지 모를 그녀 or 그녀일지 모를 그를 만나러가는 길은 

서울에서부터 쭉 같이 기차를 타고 온 중고딩들과 함께 부산역에 내려서 벡스코를 찾아갈 때의 기분,

낯선 동네의 웨딩홀에 겸연쩍게 들어서서 친구 이름이 적힌 푯말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때의 기분,

오후 여섯시 명동역에 내려 옛날 영화진흥공사에서 열리던 시사회를 향할 때 느꼈던 기분들과 비슷했다.

서로 모르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성실하게 함께 걷는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묘한 동지애.

예식장 안에서 무표정하게 스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어쩌면 이들이 내가 모르는 내 친구의 친구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느끼는 동질감 같은것.  

루브르의 살아 숨쉬는 수많은 전시품들 사이에서 루브르의 목적이 되어버린 모나리자는 

그렇게 외지인의 지스타나 내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내 친구의 결혼식처럼 느껴졌다.

신부가 예쁘지 않거나 결혼식 음식이 맛이 있거나 없거나 지스타가 사람으로 미어터지거나 지루하거나 해도

그건 그렇게 느끼는 나의 문제이지 모나리자의 문제는 아닌것이다.

나 개인의 가치판단이나 호불호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베네치아에서 만난 요르단인이 그랬다.

"If you don't like venice, it's your problem"

모나리자는 어떤 경로로 이렇게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받게 된것일까.



뻬쩨르부르그의 에르미따쥐에는 여느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관람객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던 미술관 감시인들이 있었다.

마티스의 그림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카메라 플래쉬 소리에 놀라 깨어나던 러시아 할머니들. 

실질적으로 그들이 자신의 직업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곧 퇴직할 연령이 다가오는 혹은 이미 퇴직했는지도 모를 풍만하고도 나른한 할머니들이 순간 부러웠더랬다.

같은 업종 종사자이지만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호위하고 있는 이 젊은 여자들의 운명은 전혀 다르다.

<사선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잔뜩 날이 선 표정의 이들에게서 가만히 앉아서 졸 수 있는 시간을 찾는것은

모나리자를 감싸고 있는 유리벽에서 유글레나나 아메바 같은 놈들이 새어 들어갈틈을 찾아야 하는것만큼 불가능해 보였다.

몰려드는 관람객들과 반복되는 실랑이를 벌인 후 집으로 돌아가는 메트로 안에서도 

이들은 내일 오전 모나리자 앞에서 조우하게 될지도 모를 숱한 관광객들을 마주 보고 앉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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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3.11.18 00:33



에드워드 호퍼 <Nighthawks>


어떤 일을 내가 상상했거나 계획했던대로 실행 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때 난 재빨리 체념하고 다음을 기약하는편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것을 하는데있어서 누군가의 동의를 얻어야한다거나 

왜 그것이 필요한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따위를 조목조목 설명해야하는것처럼 귀찮은 일은 없다. 

내 목적과 타인의 욕망이 충돌할때 난 보통 다른이들이 원하는것을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라고 영혼없이 동의한다.

어떤이들을 말한다. 고집을 부려서라도 꼭 이뤄내야 할 생각이 없는것은 그만큼 많이 원하지 않는거라고.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려는 우리의 태도가 단지 갈망의 정도에 좌지우지되는것은 아니다.  

때로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가동되는 강박관념같은것이 우리로 하여금  많은것을 더 빨리 원하게끔 재촉할때도 있다.

파리 곳곳에 흩어져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을 본다던가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빈거리를 걸어다닌다던가

파리 여행에서 난 내가 하고자 했던것의 대부분을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원한다면 다시오면 된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것은 온전히 나만의 여행을 위해 남겨두고 싶다는 고약한 폐쇄성이기도 했고 

내가 파리여행에 다시금 투자해야 할 시간과 돈이 그다지 크지 않을거라는 일종의 공간적인 해방에서 가능한것이었다.

알래스카나 베트남가서 이글루나 수상시장을 지나치며 '오늘은 귀찮고 다음에 오면 그때 들르자' 하기란 쉽지 않을거다.

아쉬움은 우리가 투자해야 할 시간과 돈에 비례하고 내 행복은 내가 얼마만큼 시간에서 해방되느냐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파리는 2주라는 시간으로도 모자라더라. 여행은 어떤 템포로 어떤 분위기속에서 뭘 보려하느냐에따라 항상 달라지지만

매일 새로운 목적지를 찍고 바쁘게 움직이는 여정속에서 내가 방해받지 않고 해나갈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엽서쓰기였다.

누군가에게 여행에서 받은 인상과 풍경들을 횡설수설 늘어놓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웹상에서 주고 받는 편지나 대화들과 달리 여행에서 쓰는 엽서는 우표를 붙이는 순간 말 그대로 완벽히 증발한다.

 같은 엽서를 두장사서 내용을 똑같이 적어서 남기거나 마치 하나의 풍경마냥 사진이라도 찍어서 남겨놔야 하는걸까. 

아니면 내가 떠나올 그 공간처럼 내 밖으로 뛰쳐나와 활자화된 단어들도 그대로 사라지도록 남겨둬야하는걸까.

우표를 달고 날아간 엽서에 대한 보상심리로 난 적어도 한 장씩은 그 나라 소인이 찍인 엽서를 스스로에게도 보내기 시작했다.

굳이 보상심리라고 여기는 이유는 엽서를 살땐 적어도 아 나도 이런 엽서 가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니깐. 

파리 여행 끝자락에 만난 에드워드 호퍼의 <Nighthawks>는 우표를 달고 도착한 놈은 아니다. 

엽서의 반대 쪽 텅빈 바닥은 누군가에게 뭐라도 적어서 날려보내야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주지만 

난 이 엽서를 에펠탑 마그넷과 함께 냉장고에 얌전히 고정시켜놓는데에 간신히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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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3.11.03 21:05



에펠탑이라는 거대한 놀이공원을 빠져나와 센강변을 걷다가 우연히 지나치게 된 Palais de Tokyo.

전시장 입구의 노천카페뒤로 바스키아가 보였다.

앤디워홀이 실크스크린으로 한참 어렸던 그의 예술적 동반자 바스키아의 얼굴을 남겼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그러지 못했더라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여기 후세의 젊은 예술가들이 빳빳하고도 끈끈하게 오려붙인 바스키아가 있으니깐.

바스키아라는 검고 빛나는 원석의 절대연령을 계산할 수 있다면 그의 나이는 몇살쯤일까.

그 원석은 28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마치 자신이 분출해낼 수 있었던 모든 방사선을 남김없이 흩뿌려놓고 떠난 느낌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절묘하게도 안에서는 키스 해링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바스키아 보다 2년 먼저 태어났고 2년 나중에 사라진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원석.

형형색색의 바스키아의 그림속에서 가장 선명한 몇가지 원색들을 마치 스포이드로 추출해내 사용한듯한 키스해링의 작품들.

수많은 예술가들이 공유하며 덧칠하고 메꿔갔던 팔렛뜨 속 색채들은

별이라는 우주의 조각에 맞서기 위해서 그들이 지상에 남겨놓고 간 또 다른 파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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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5.31 06:02

 

 

 

<파리 5구의 여인> The women in the fifth

 

이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났는데 최근 들어서야 내가 본 영화가 이 영화란것을 알았다.

가끔 그럴때가 있다. 뚜렷한 동기없이 우연히 봤는데 재밌었던 영화들에 대해 누군가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그게 무슨 영화인지, 내가 본 영화인지 아닌지 헷갈릴때가 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때 문장성분의 배열때문이었는지 엉뚱하게도 바네사 파라디가 나왔던 <걸 온더 브릿지>가 바로 떠올랐고 제목속의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영문 제목이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최종적으로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던 이유는 아마 스쳐지나간 에단 호크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이름때문이었을거다.

실제 제작년도는 2011년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는 최근에야 개봉을 했다.

나는 리투아니아어로 더빙된것을 보았는데 리투아니아에서는 이미 케이블에서 방영이 된듯하다.

한국어 제목에 친절하게 파리라는 지명을 명시한것과 <비포 미드나잇>과 상영시기가 비슷하게 겹치는 것은 우연일까?

 

 

모호함이 주제인듯한 이런 영화들.

 주어도 목적어도 술어도 불분명하고 배경도 등장인물도 모두 거짓인것 같은 이런 영화들에서 느끼는 묘한 쾌감이 있다.

나는 정말 봐도봐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영화들을 모두가 너무 명쾌하게 이해할때 절망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영화 보기가 편해지는 이유는 그 불분명함을 내 편한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해가기때문인듯.

 

 

 

헤어진 아내와 딸을 만나러 파리로 오는 톰(에단호크).

입국심사대에서 파리에 정착하러 왔다고 서슴없이 대답하지만 

정작 파리의 전부인 아파트에 도착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비밀번호를 되는대로 눌러볼 뿐 

톰은 무슨 이유인지 아내와 이혼해서 딸조차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져있다.

 

 

파리까지 찾아온 남편을 쫓아내려 인정사정없이 경찰을 부르는 여자를 보면 뭔가 대단한 잘못을 한것 같지만

영화는 딸을 만날 수 없는 아빠를 가엽게 여길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재빨리 우리의 시선을 딴곳으로 돌려버린다.

 

 

버스에서 가방을 도난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호텔방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톰에게 파리는 그저 녹회색 모노톤의 낯선 도시일뿐

낯선 사람들이 건네는 낯선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쪽지들을 통해서 톰은 파리의 이곳 저곳을 유랑하지만

그의 두꺼운 안경을 통해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속에서 그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마치 실존하지 않는듯

실재한다고해도 그와 함께있는 짧은 순간동안만, 그의 눈과 귀속에서만 존재하는듯 보인다.

마치 그가 만들어낸 소설 속 허구의 장소처럼 

낮도 밤도 없는 어두운 숲, 그와 그의 누군가만이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마술적 공간처럼. 

 

 

톰은 아내와 딸뿐만아니라 그가 떠나온 미국에서조차도 마치 삶의 모든기반을 잃은 듯하다. 

그와 비슷한 시력을 가진 여섯살 난 딸이 그가 되돌려 받고자 하는 전부이지만

프랑스인 변호사는 딸의 양육권을 돌려받는 소송을 준비하는 댓가로 10000유로의 수임료를 요구하고

호텔 맞은편방에 사는 흑인은 톰이 호텔 주인의 아내와 잔것을 폭로하겠다며 1000유로를 요구한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게 녹록한것은 글을 쓸 수 있는 펜과 종이뿐

 

 

숙박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톰에게 호텔 주인은 밤동안 정체 불명의 공간에 머무는 댓가로 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고

톰은 깜박이는 램프와 남겨져서 편지를 쓰는데 몰두한다.

 

 

마치 <비포선셋>에서 다시만난 줄리델피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결국은 그녀와 이혼을 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것처럼

비포 시리즈부터 지금 이 영화까지 에단호크가 연기하는 톰과 제시는 실제 어느 미국 작가의 이야기인것 같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톰은 호텔 식당 구석에 처박혀서 그가 마주치는 사람들을 소설의 주인공삼아

인생의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는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묘사하는 숲속과 그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은 동일한 공간이다.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의문투성이의 공간.

폐쇄회로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주지만 정작 그들은 서로를 볼 수 없다.

어쩌면 이 모든것은 그의 말처럼 그가 희망을 갖고 구상하는 그의 두번째 소설인지도 모른다. 

 

 

영화속에서 톰이 쓴  'forest life' 라는 책을 읽게 된다면 톰의 감정상태를 좀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것은 전반적인 영화의 색채와 말없는 이민자들이 토해내는 파리의 이질적인 모습.

 숲에는 세상의 모든 녹색이 존재하지만 역설적으로 영화를 채운 색채는 녹색이 되려다 만 모노톤의 옅은 회색이다.

톰의 침대 시트도 도시의 하늘도 마치 일부러 더이상 나뭇잎이 자라지 못하도록 잘라놓은듯한 도시의 나무까지

톰을 에워싼 세상은 그의 안경필터를 통해서 마치 목이 졸려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람처럼 창백하다.

 

 

영화에서 톰이 마주치는 인물들 혹은 톰이 묘사하는 인물들은 모두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나마 현실적인 인물들은 그의 프랑스인 아내나 프랑스인 변호사와 통역사 정도.

허름한 여인숙을 운영하는 세자르는 터키계 이민자이고 그의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은 이민자에 종속된 또다른 이민자들.

세자르의 아내이자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톰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인은 폴란드 이민자.

마치 저승사자처럼 나타나서 톰을 혼돈에 빠뜨리는 마르짓은 루마니아계 프랑스인이자 헝가리인 남편을 둔 번역가이다.

파리라는 공통된 공간에서 제 3의 언어로 소통하는 그들이지만 이곳 파리에 있는것이 행복해보이지 사람들.

어찌된 연유로 지금 같은 공간에 있지만 왠지 금새라도 흩어져버릴것 같은 사람들.  

그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때 왠지모르게 우울해진다.

 

 

영화에서 이곳이 파리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는 아마 이 장면인것같다.

물론 이 장면도 그냥 잘라서 가져다 붙인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다소 어설프지만. 

많은 영화들을 통해서 에펠탑은 마치 파리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기념물처럼 묘사되어있는데 실제로는 어떨까.

이 장면에서는 오히려 절반도 채 나오지 않은 에펠탑이 워낙에 거대하고 가깝게 묘사되어서

파티가 열렸던 장소나 마가릿의 느낌이 영화 속 파리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훨씬 화려하고 강렬하게 표현된것 같다.

마르짓은 톰의 눈에만 보이는 여인이고 그녀가 톰에게 건넨 명함도 톰 하나만을 위한 메세지일지 모른다.

그녀 자신이 그녀의 남편에게 그랬던것처럼 궁지에 몰린 톰의 뮤즈였던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톰은 외형적으로는 가족을 잃은 한 남자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창작의 한계에 부딪친 소설가였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는 마르짓이 이미 예전에 자살한 여인으로 밝혀지면서 톰은 헤어나올 수 없는 혼란에 갇히고 마는데

분명한것은 마르짓과의 대화를 통해서

딸을 다시 만나려하는 톰의 욕망과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좁혀지고 있다는것.

톰은 여전히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마치 숲속에서 점차 또렷해지는 딸의 실루엣처럼

그는 그가 보고자하는 현실과 그가 처해있는 현실의 차이를 점차적으로 인정해간다.

마르짓은 톰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더욱 처절하게 인식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과거의 실수를 돌이키려 발버둥치는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죽음의 전령사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슬픔과 불행을 초월해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야하는 예술가의 번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걸까?

 -넌 그들이 나에게 어떤짓을 저질렀는지 상상도 못할거야.

-너도 너 자신이 그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상상하지 못하지.

    

 

이런 종류의 색감은 아마도 톰이 밤새도록 경비를 서고 새벽이 되어 호텔로 돌아올때쯤의 모습같다.

거리에는 신호등만이 쓸쓸하게 깜박이고 새벽녘에 건물 창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은 불꺼진 도시를 더욱 도시답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 밤기차를 타고 이동할때가 많아서 아침이 되기 전에 새로이 도착한 도시는 텅 비어있기 마련이었다.

항상 따뜻한 커피를 마실곳을 찾아 헤매곤 했는데 이번 여름에도 텅 빈 파리의 골목을 걷게 될 기회가 있을까.

그러려면 아마 <영원한 휴가>속의 앨리처럼 밤을 새서 파리 거리를 걸어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톰처럼 어디 한구석에 처박혀서 나와 누군가를 위한 둘만의 장소를 갈망해야할지도.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