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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4.03.21 06:38



<밤과 낮>


<밤과 낮>과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까지 이번달에 우연찮게 홍상수의 영화를 두편이나 보았다.

수년간 인터넷 사이트에 띄엄띄엄 올라오던 그의 영화들을 운좋게 놓치지 않았던것인데 

어쩌다보니 최신작인 <우리 선희>를 빼놓고 그의 모든 영화를 본 셈이 되었다.

매번 거기서 거기인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이 그 캐릭터들 사이에서 진화하고 퇴보하는 느낌을 준다는것은 퍽이나 웃기다.

예를 들어 잠들어 있는 유정(박은혜)의 발가락을 빨다 핀잔을 듣는 김성남(김영호)의 모습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김의성이 이응경의 발가락을 빠는 장면이 오버랩되는것처럼

 어떤 지점에서 진화하고 퇴보하느냐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 따위는 없지만 혹시 그런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머릿속에 따끈하게 남은 전작의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에 현재 감상중인 영화의 캐릭터를 대입시켜 몰입하는것일 수도 있고

주인공들처럼 한때는 첫 경험을 갈구했고 철없는 연애를 경험했으며 

어쩌다 결혼을 해서 이제는 연애가 아예 불법이 되어버린 관객 자신의 넋두리 같은것인지도 모른다.

대마초를 피우고 해외 도피를 감행한 화가 김성남은 홍상수의 캐릭터 중에서 나름 가장 극적이다.

동기야 어찌됐든 최초로 한국을 떠나 낭만의 도시 파리에 당도한 주인공에게 헌정된듯한

'김성남의 감정의 기록' 이라는 부제도 그럴듯하고 감상적이다. 

하지만 지구 반바퀴를 돌아 도착한 파리의 낮과 서울의 밤이지만

감정적으로는 결국 딱 삼청동에서 북촌, 경주에서 통영, 신안에서 모항까지 만큼만 이동한 느낌이 든다.

김성남의 독백을 들으면서 이 영화가 홍상수 식 로드 무비의 절정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보았다.

영화속에서 김성남이 파리에 도착한 날짜가 8월 8월이다.

작년에 파리에 도착했던 날짜가 하루 빠른 8월 7일이었는데 

그가 말하는 '신선하고 습도도 하나 없는' 파리의 아침 공기가 느껴졌다.

영화 초반에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날짜를 집어 넣는 장면이 잦다가 그 빈도는 점차 줄어들고

김성남 역시 신변의 문제를 잊고 점점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감정에 빠져든다.

밤새 국제전화를 하면서 진퇴양난에 빠진듯 괴로움을 토로하다 나중에는 아내에게 신음 소리를 요구한다던가 하는 장면 등등. 

 파리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파리 여행중에 인상적이었던 모습들을  감독도 포착해낸것같아 신기했다.

그렇게 포착된 특징들은 약간 엉뚱해보이면서도 재치있게 영화 중간중간에 배치되었다.

파리 시내 골목길 한켠에는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이 흐른다. 분수대와 식수대도 유난히 많았던 파리. 

영화 <카페 드 플로르>와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물이 흐르는 거리 장면이 나오는데

어쩌면 파리가 배경인 모든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면일지도.

도시 환경 정화 차원에서 일까?

어딘가에서 흘려 나와 계속 길을 따라 흐르다가 다시 어딘가로 흘러 가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것인가?

영화속에서는 파리의 청소부가 그 물로 똥을 쓸어내고 김성남이 종이배를 접어 그 물에 띄운다.

그 똥을 거기 일부러 가져다 놓은것일 수도 있고 우연히 발견한것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것은 

우리가 이미 홍상수에 몹시 익숙해져서 그 단순한 장면도 의도적인 장치였겠거니 상상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는것.

그런 우연인지 의도적인지 모를 장치들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보며 꺼진 불도 다시 보는 기분으로 그냥 지나가는 행인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해변의 여인>에서 옆으로 조깅하며 지나가던 여자들과 나중에 술을 마시게되는 주인공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

유럽 어떤 도시보다 거지가 많았던 파리.파리에는 이불과 박스를 들고 다니며 주택가에서 진지하게 거주하는 거지들이 많았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임대료를 적게 낸다고 참 좋은 나라라고 치켜 세우는 유학생이 있는 한편

다른 가난한 유학생에게 샌드위치를 얻어먹는 파리의 집없는 거지를 대비시키는 센스 같은것.

다른 여자들로 부터는 돈 안쓰고 속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유정이지만 거지와 대화를 나누고  샌드위치를 사다 준다.

옆에서는 여자들이 은근슬쩍 여자 욕을 하지만 그런 장면에 감동받는 남자를 대비 시킨다. 

여자가 바라보는 여자와 남자가 바라보는 남자. 여자가 바라보는 남자와 남자가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은 항상 대조적이다.

누군가는 그녀가 굴을 좋아한다고 기억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녀가 굴은 쳐다보기도 싫어한다고 기억하는것처럼

자신이 만든 편견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몹시 이중적인 우리의 습성. 

둥지에서 떨어진 새는 우연히 성남의 어깨에 부딪혀 살아남아 성남은 마치 자신이 새를 구한것처럼 느끼지만

달려오는 자전거에 부딪혀 도자기가 깨지자 우연히 그렇게 깨질 수 없다고 온갖 욕을 해대며 몰아붙이는 습성 같은것.

한 두세번 다시 보면 모르고 놓친 장면이 아주 많을 것 같아 꼭 다시 보고 싶은 재밌는 영화였다.

2주라는 시간은 몇몇 파리의 명소들을 서두르지 않고 방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내 관심 위주로 짜여진 여행이 아니어서 가보지 못한곳도 참 많았다.

오르세 미술관도 그렇고 빌라 사보이 같은 르 코르뷔지에 관련 건축물들이 그렇다.

 믿거나 말거나 유정의 말처럼  오르세 미술관의 옥상 레스토랑의 샌드위치가 맛있다고 하니 

다음에는 꼭 오르세 미술관에 가봐야겠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앞에 서면 파랑 봉다리에 성경책을 넣어서 모텔을 빠져나오는 성남의 모습이 생각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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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