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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19 Russia 02_10년전 3월_2 (2)
Russia2016.04.19 05:43





 영화를 보다 마음에 드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수록곡이 나열되는 순간이 올때까지, 그렇게 크레딧이 다 올라가서 대부분의 경우 돌비 사운드 마크가 나올때까지 영화를 보곤 한다. 그리고 그 음악들을 찾아 듣고 나면 어쩔때는 그 노래의 특정 가사에 꽂혀 또 생각나는 어떤 이미지들이나 영화들을 검색하게되고 그러다보면  또 어떤 영화들을 찾아 보고 있고 그러다가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이나 도시들의 이미지에 사로 잡혀서는 혹시 운이 좋아서 내가 이미 가본 곳이거나 내가 먹어본 것이거나 내가 경험했던 뭔가에 상응하는 장면이 있다면 자잘한 개인사에 연결지어서 또 수많은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그렇게 있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간다.  나는 아직 내게 벌어지지 않은 새로운 삶의 바퀴를 매순간 밀고있지만 방금전에 내 손바닥에서 밀려 난 기억에 집착하면서 살아간다.  수많은 이미지와 기억들이 누군가의 창작물 속에 투영된 누군가의 기억들과 범벅되어 또 다른 기억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연결되있는 느낌이 가끔 든다. 일주일내내 찌푸린 날씨에 결국 비가 내렸고 거의 9개월만에 동네 빵집(첫 방문때 비가 왔다는 이유로 항상 비가 올때만 가게 되는 빵집)에 들렀고 우연히 거슬러 받은 이탈리아 동전을 살피다가 오랜만에 동전 얘기를 꺼냈다가 출발 직전의 버스 의자 위에 스니커즈와 거스름 돈을 놓고 사진을 찍던 10년전 기억이 떠올랐다. 라트비아 동전 얘기도 생각난김에 쓰게 됐다. 그리고 그 사진에 맞물려 모스크바의 갈리나 하우스에 머물때 찍은 사진 한장이 떠올랐다. 시기적으로는 모스크바 여행이 먼저이고 삼주쯤 지나서 라트비아를 여행했으니 어쩌면 내가 초코바를 먹기 전 부랴부랴 그 사진을 남기려고 했던 이유는 언젠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라트비아 화폐의 운명을 예감하고 라츠화로 산 마지막 초코바를 기념하기 위한것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모스크바의 숙소에서 마주친 초콜릿 한 조각에서 가슴 두근거리는 인상을 받았기에 나 역시도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에 초코바 사진을 찍었던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한 연유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왠지 그랬을것 같다. 모스크바에서 일주일 가량 머물었던 갈리나 하우스는 중심에서 다소 떨어져서 메뜨로를 갈아 타야만 돌아 올 수 있었던 일반 가정집이었다.  벽에는 오래된 양탄자가 걸려있고 몇개의 침대가 정신없이 가로질러 놓여있는 좁은 방 한구석에 소련식의 줄무늬 침대 시트와 수건들 한 가득이 유리로된 여닫이 문이 삐걱거리는 장롱속에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일부러 깔끔해 보이려 노력한 어설픈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함과 솔직함은 하루종일 정신없이 걷다가 꽁꽁 언 발로 돌아오던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꽃무늬 담요를 침대 시트에 끼워 넣을 힘도 없었다. 축축해진 양말을 군데군데 파인 홈에 먼지가 묻어나는 라디에이터에 얹고서는 침대에 몸을 구겨 넣을뿐이었다.  봄이 되면 버릴 생각으로 챙겨간 옷들은 모스크바의 날 선 바람 앞에서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한나절의 여정 끝에 좁은 방 한구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것은 빌리 코건의 가늘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그 어떤 모자름도 이미 따뜻한 침대 속에 몸을 뉘인 상황에서는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느껴졌다.  




방 한구석에 머물던 독일인으로 보였던 여자 아이는 하루 이틀 매번 우리가 잠이 든 밤늦게 돌아와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 돌아와보니 구겨진 종이위에 초콜릿 한 조각과 몇 까페이카를 남겨 놓고 떠났다. 더 이상 러시아 동전이 필요 없어진 모양이지. 아마도 아예 러시아를 떠난 모양인가 보다 생각했다. 나에게는 그 초콜릿과 까페이카 잔돈들이 퍽이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방망이로 얻어 맞은듯 띵했다. 세상에 낭만이라는 단어를 묘사해야하는 대회가 열린다면 이 꼬깃한 종이위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박제해서 내다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 어떤 외부적 요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여유로운 방어 기제로 다가왔다. 여자 아이는 어쩌면 약간의 보드카가 비밀스럽게 주입된 초콜릿에 입을 버려 모두에게 나눠주고도 오갈데없던 마지막 한 조각을 그래도 살가웠던 갈리나에게 남기듯 버리고 간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내가 침침한 방에서 맞닥뜨린 달콤한 현상이었다. 어떤 경로로 어떤 느낌과 의도들로 그 현상들이 내 망막까지 도달했는지는 언제나 중요치 않다.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릴 필요는 없는것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