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가는 빵집 건너편, 집에서 5분정도 거리에 위치한 건물에 그려지고 있는 벽화. 현재 빌니우스의 우주피스라는 동네가 파리의 몽마르뜨처럼 빌니우스의 예술가의 동네라고 불리워지고 있지만 빌니우스 토박이들의 추억이 깃든 오래된 건물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헐리고 있으며 그 자리에 세련되고 럭셔리한 주거공간들이 하나 둘 채워지며 땅값이 오르고 있는데
빌니우스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진입로이자 저렴한 호스텔이 밀집해 있는 이 곳, 이따금 마약 투여용 주사들이 길바닥 한켠으로 쓸려나간 낙엽과 함께 뒹굴고 쓰레기통에서 뒤진 빈병을 유모차 한 가득 싣고 보드카 한병을 사기 위한 돈을 바꾸러 바삐 움직이는 중독자들이 보이는, 커다란 스포츠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과 아무런 말도 유혹의 표정도 없이 구석진 거리에서 왔다 갔다 고객을 기다리며 방황하는 거리의 여인들을 만날 수 있는, 어쩌면 이것은 내가 운이 좋아 가까스로 비켜간 삶일지도, 세상의 어두운 단면을 메우고 있는 누군가의 삶일 뿐이라고 한없이 상대적이 되게하는, 빌니우스에서 가장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빌니우스의 이 구역은 어쩌면 날로 비싸지고 고급스러워지고 있는 우주피스의 지위를 대신 할 수 있지 않을까. 값싼 임대료에 매료된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이름있는 셰프들의 작은 레스토랑들이 들어서고 실리적인 힙스터들이 모이는 좁은 클럽들과 역전이라는 우범지대에 관용을 베풀 준비가 된 빌니우스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 곳,
이탈리아인 밀로의 벽화가 그려진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Kauno 거리에 폴란드 벽화 예술가 SEPE & CHAZME 가 그리기 시작한 벽화. Corest fity. 기존에 보아오던 벽화들에 사용된 선명한 색깔들과는 다른 애매한 파스텔톤 페인트를 즐겨 사용하고왜인지 우울하고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왜 벽 전체를 사용하지 않은것일까. 왠지 미완성의 느낌을 주는 이 그림들. 하지만 기존의 벽화들이 건물의 창문이나 굴뚝이나 하늘들을 벽화의 소재로 사용해 건물과 소통하는 벽화를 그리는것과 달리 이들은 그저 건물 외벽이라는 콘크리트 도화지위에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놓은 느낌이다.
펠리컨 부리 같은 마스크를 쓰고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던 중세 이탈리아의 의사들. 저 부리 끝에는 장미나 카네이션과 같은 마른 꽃이나 식초를 적신 스펀지, 박하 같은 허브들을 넣어 불쾌한 냄새를 최대한 덜 맡도록 했고 그런 허브들이 역병을 물리쳐 감염을 방지한다고 믿었다고 위키피디아에. 이것저것 연결짓기 좋아하는 나는 왜 굳이 저 마스크를 쓴 사람을 그렸을까 생각하고 생각하다. 이 건물 건너편 빵집이 100년전에는 약국 자리였다는 사실을 또 상기시키고.
아무튼 이 음울한 마스크의 사람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음침한 이 거리의 시작에 몹시나 잘 어울리는듯 하다. 역병이 돌무렵 의사들이 입고 다니는 이 마스크 복장은 죽음이 임박했음을 의미해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했다고.
우리 모두가 같은 얼굴을 가질 필요 없듯이 우리의 거리도 도시도 각자의 성격을 지녀가는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거리의 예술들이 모든이들이 수긍할만한 일반성을 가지긴 힘들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개성과 누군가의 철학이 담긴 예술들이 거리의 성격을 바꾸고 도시의 외관을 형성하며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꿔 나간다는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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