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2013.12.12 08:45





어딜 여행하든 마네킹을 만났다.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그들을 만난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포즈로 지루하게 서있지만 단 한번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자기 의무를 다하는 충실한 마네킹 서너명 정도를 친구로 두고있다. 그들 곁을 스쳐지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그 딱딱한 플라스틱 몸뚱아리에 우리의 모습을 망설임없이 구겨넣는다. 살아서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그들의 개수도 함께 늘어난다. 타인과의 접촉 면적이 넓어질수록 스스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날카로워진다.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은 나와 똑같이 생긴 말없는 마네킹과 다르지 않다.  공장을 빠져나와 폐기되는 순간까지 그들은 몇벌의 옷을 갈아 입을까.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제 자리에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지만  어제보다 더 이상적인 오늘을 꿈꾸는 우리가 존재하는 한 우리의 머릿속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무거운 코트를 걸어 둘 만한 작은 마네킹을 현관앞에 놓아두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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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3.12.02 04:58



제대로 발음도 못하는 불어 명칭을 이렇게 가끔씩이나마 써내려 가다보면 

지도 속 그 명칭을 읊조리며 걸었던 파리의 구석구석이 떠오른다. 

배우고 싶은 언어가 여럿있지만 교재를 통한 학습이 아닌 반복적인 노출로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싶은 언어가 있다면 불어이다.

우리가 세뇌된 파리의 로맨틱이 매체의 장난이 아닌 보편성이라는것을 확인 하고픈 욕망의 중심엔 불어가 가진 자존감이 있다. 

센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조르쥬 퐁피두 대로 Voie Georges Pompidou 의 끝과 함께 시작되는 거리 Av de New York.

Palais de Tokyo 를 나와 콩코드 광장 Place de ra Concorde 으로 향하는 그 여정의 끝에는

 그렇게 프랑스와 미국의 우호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뉴욕이라고 명명된 거리가 있었고 그 거리의 끝자락에는

Flame of Liberty 라는 횃불상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횃불상이 세워져 있는 그곳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알마 다리 Ponte de l'Alma 의 초입이었다.  

그녀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촛불, 짧은 메세지들로 둘러 싸인 횃불상은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녀의 사망을 추도하기 위해 세워 놓은 기념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고독할 새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강 건너편 에펠탑에서 케 브랑리 박물관 Musee du Quai Branly 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알 파치노가 있었다.

어둠이 내린 센 강변에서 방황하던 누군가가 짝사랑하듯 수줍게 뿌려 놓고간 스프레이 자국으로  

지지직거리며 꺼질듯 불안하게 타들어가는 촛불의 그을음처럼 살아남은 알 파치노를 보고 있자니 

방정맞은 소리일지 모르지만 이곳이 알 파치노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자리이거나 한게 아닌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강둑을 넘겨 흘러 온 센강의 물결이 남겨놓은 촉촉한 이끼자국처럼 

얼굴의 반을 사선으로 가려봐도 윗부분 이마를 가려봐도 아래의 턱부분을 가려봐도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는 알 파치노 모습.

요즘의 미셸 파이퍼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젊고 풋풋했던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던 

<스카 페이스>의 토이 몬타나와 <프랭키와 쟈니>의 쟈니가 먼저 떠오른다.

흔한 말로 스크린 속에서 날아다닌다는 죠니 뎁과 숀 펜을 보고 있어도 

언젠가 그들 옆에서 작지만 굵고 진하게 숨쉬고 있던 <도니 브라스코>의 벤자민의 호흡이 들리고

<칼리토>의 칼리토 브리간테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예전의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며 나이 든 그를 평가절하하는 코멘트들도 결국은 시샘이라 생각될 만큼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이 멋있다는 수식조차도 이미 어울리지 않게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여전히 초라하지 않은 그.

그의 새로운 영화를 볼 때마다 살아있는 그를 볼 수 없게 될 언젠가를 슬프게 떠올려야 하지만

그는 단지 생물학적으로 연소되고 있을 뿐 나에게는 거대한 굴착기로도 드러낼 수 없는 느릎나무의 그루터기 같은 존재이다.

언젠가 그가 세상을 떠났을때 IMDB의 그의 필모그래피 한켠에는 

그를 기억하려는 동료들의 추모사가 적혀질 공간이 마련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시 로버트 드 니로가 알 파치노보다 더 오랫동안 우리곁에 남게된다면

 그 공간의 첫줄은 로버트 드 니로를 위해 남겨졌으면 좋겠다.

언젠간 아버지와 아들이었고 한번은 적이 었고 한번은 동료였던 그 둘은 내 마음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영화적 동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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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5.31 06:02

 

 

 

<파리 5구의 여인> The women in the fifth

 

이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났는데 최근 들어서야 내가 본 영화가 이 영화란것을 알았다.

가끔 그럴때가 있다. 뚜렷한 동기없이 우연히 봤는데 재밌었던 영화들에 대해 누군가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그게 무슨 영화인지, 내가 본 영화인지 아닌지 헷갈릴때가 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때 문장성분의 배열때문이었는지 엉뚱하게도 바네사 파라디가 나왔던 <걸 온더 브릿지>가 바로 떠올랐고 제목속의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영문 제목이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최종적으로 다운로드 버튼을 눌렀던 이유는 아마 스쳐지나간 에단 호크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이름때문이었을거다.

실제 제작년도는 2011년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는 최근에야 개봉을 했다.

나는 리투아니아어로 더빙된것을 보았는데 리투아니아에서는 이미 케이블에서 방영이 된듯하다.

한국어 제목에 친절하게 파리라는 지명을 명시한것과 <비포 미드나잇>과 상영시기가 비슷하게 겹치는 것은 우연일까?

 

 

모호함이 주제인듯한 이런 영화들.

 주어도 목적어도 술어도 불분명하고 배경도 등장인물도 모두 거짓인것 같은 이런 영화들에서 느끼는 묘한 쾌감이 있다.

나는 정말 봐도봐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영화들을 모두가 너무 명쾌하게 이해할때 절망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영화 보기가 편해지는 이유는 그 불분명함을 내 편한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해가기때문인듯.

 

 

 

헤어진 아내와 딸을 만나러 파리로 오는 톰(에단호크).

입국심사대에서 파리에 정착하러 왔다고 서슴없이 대답하지만 

정작 파리의 전부인 아파트에 도착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비밀번호를 되는대로 눌러볼 뿐 

톰은 무슨 이유인지 아내와 이혼해서 딸조차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져있다.

 

 

파리까지 찾아온 남편을 쫓아내려 인정사정없이 경찰을 부르는 여자를 보면 뭔가 대단한 잘못을 한것 같지만

영화는 딸을 만날 수 없는 아빠를 가엽게 여길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재빨리 우리의 시선을 딴곳으로 돌려버린다.

 

 

버스에서 가방을 도난당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호텔방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톰에게 파리는 그저 녹회색 모노톤의 낯선 도시일뿐

낯선 사람들이 건네는 낯선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쪽지들을 통해서 톰은 파리의 이곳 저곳을 유랑하지만

그의 두꺼운 안경을 통해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속에서 그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마치 실존하지 않는듯

실재한다고해도 그와 함께있는 짧은 순간동안만, 그의 눈과 귀속에서만 존재하는듯 보인다.

마치 그가 만들어낸 소설 속 허구의 장소처럼 

낮도 밤도 없는 어두운 숲, 그와 그의 누군가만이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마술적 공간처럼. 

 

 

톰은 아내와 딸뿐만아니라 그가 떠나온 미국에서조차도 마치 삶의 모든기반을 잃은 듯하다. 

그와 비슷한 시력을 가진 여섯살 난 딸이 그가 되돌려 받고자 하는 전부이지만

프랑스인 변호사는 딸의 양육권을 돌려받는 소송을 준비하는 댓가로 10000유로의 수임료를 요구하고

호텔 맞은편방에 사는 흑인은 톰이 호텔 주인의 아내와 잔것을 폭로하겠다며 1000유로를 요구한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게 녹록한것은 글을 쓸 수 있는 펜과 종이뿐

 

 

숙박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톰에게 호텔 주인은 밤동안 정체 불명의 공간에 머무는 댓가로 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고

톰은 깜박이는 램프와 남겨져서 편지를 쓰는데 몰두한다.

 

 

마치 <비포선셋>에서 다시만난 줄리델피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결국은 그녀와 이혼을 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것처럼

비포 시리즈부터 지금 이 영화까지 에단호크가 연기하는 톰과 제시는 실제 어느 미국 작가의 이야기인것 같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톰은 호텔 식당 구석에 처박혀서 그가 마주치는 사람들을 소설의 주인공삼아

인생의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는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묘사하는 숲속과 그가 생활하는 모든 공간은 동일한 공간이다.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는 의문투성이의 공간.

폐쇄회로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주지만 정작 그들은 서로를 볼 수 없다.

어쩌면 이 모든것은 그의 말처럼 그가 희망을 갖고 구상하는 그의 두번째 소설인지도 모른다. 

 

 

영화속에서 톰이 쓴  'forest life' 라는 책을 읽게 된다면 톰의 감정상태를 좀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것은 전반적인 영화의 색채와 말없는 이민자들이 토해내는 파리의 이질적인 모습.

 숲에는 세상의 모든 녹색이 존재하지만 역설적으로 영화를 채운 색채는 녹색이 되려다 만 모노톤의 옅은 회색이다.

톰의 침대 시트도 도시의 하늘도 마치 일부러 더이상 나뭇잎이 자라지 못하도록 잘라놓은듯한 도시의 나무까지

톰을 에워싼 세상은 그의 안경필터를 통해서 마치 목이 졸려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사람처럼 창백하다.

 

 

영화에서 톰이 마주치는 인물들 혹은 톰이 묘사하는 인물들은 모두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나마 현실적인 인물들은 그의 프랑스인 아내나 프랑스인 변호사와 통역사 정도.

허름한 여인숙을 운영하는 세자르는 터키계 이민자이고 그의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은 이민자에 종속된 또다른 이민자들.

세자르의 아내이자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톰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인은 폴란드 이민자.

마치 저승사자처럼 나타나서 톰을 혼돈에 빠뜨리는 마르짓은 루마니아계 프랑스인이자 헝가리인 남편을 둔 번역가이다.

파리라는 공통된 공간에서 제 3의 언어로 소통하는 그들이지만 이곳 파리에 있는것이 행복해보이지 사람들.

어찌된 연유로 지금 같은 공간에 있지만 왠지 금새라도 흩어져버릴것 같은 사람들.  

그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때 왠지모르게 우울해진다.

 

 

영화에서 이곳이 파리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는 아마 이 장면인것같다.

물론 이 장면도 그냥 잘라서 가져다 붙인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다소 어설프지만. 

많은 영화들을 통해서 에펠탑은 마치 파리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기념물처럼 묘사되어있는데 실제로는 어떨까.

이 장면에서는 오히려 절반도 채 나오지 않은 에펠탑이 워낙에 거대하고 가깝게 묘사되어서

파티가 열렸던 장소나 마가릿의 느낌이 영화 속 파리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훨씬 화려하고 강렬하게 표현된것 같다.

마르짓은 톰의 눈에만 보이는 여인이고 그녀가 톰에게 건넨 명함도 톰 하나만을 위한 메세지일지 모른다.

그녀 자신이 그녀의 남편에게 그랬던것처럼 궁지에 몰린 톰의 뮤즈였던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톰은 외형적으로는 가족을 잃은 한 남자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창작의 한계에 부딪친 소설가였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는 마르짓이 이미 예전에 자살한 여인으로 밝혀지면서 톰은 헤어나올 수 없는 혼란에 갇히고 마는데

분명한것은 마르짓과의 대화를 통해서

딸을 다시 만나려하는 톰의 욕망과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좁혀지고 있다는것.

톰은 여전히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마치 숲속에서 점차 또렷해지는 딸의 실루엣처럼

그는 그가 보고자하는 현실과 그가 처해있는 현실의 차이를 점차적으로 인정해간다.

마르짓은 톰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더욱 처절하게 인식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과거의 실수를 돌이키려 발버둥치는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죽음의 전령사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슬픔과 불행을 초월해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야하는 예술가의 번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걸까?

 -넌 그들이 나에게 어떤짓을 저질렀는지 상상도 못할거야.

-너도 너 자신이 그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상상하지 못하지.

    

 

이런 종류의 색감은 아마도 톰이 밤새도록 경비를 서고 새벽이 되어 호텔로 돌아올때쯤의 모습같다.

거리에는 신호등만이 쓸쓸하게 깜박이고 새벽녘에 건물 창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은 불꺼진 도시를 더욱 도시답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 밤기차를 타고 이동할때가 많아서 아침이 되기 전에 새로이 도착한 도시는 텅 비어있기 마련이었다.

항상 따뜻한 커피를 마실곳을 찾아 헤매곤 했는데 이번 여름에도 텅 빈 파리의 골목을 걷게 될 기회가 있을까.

그러려면 아마 <영원한 휴가>속의 앨리처럼 밤을 새서 파리 거리를 걸어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톰처럼 어디 한구석에 처박혀서 나와 누군가를 위한 둘만의 장소를 갈망해야할지도.

 

 

 

 

 

 

 

 

 

 

 

 

Posted by 영원한 휴가
Film2013.05.27 07:31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다시 쌀쌀해진 날씨. 주말 오후 집에 틀어박혀 론니 플래닛을 뒤적여본다. 비행기표를 워낙에 일찍 사놓아서 여행까지 반년 정도면 기초 프랑스어를 배워도 남겠다고 생각했는데 밍그적거리는 사이에 여행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살 방을 구해 놓은것 말고는 해놓은것도 없다. 지도위에 표시된 축척을 따라 손가락으로 아무리 에펠탑과 개선문 사이의 거리를 재어 보아도 쉽게 와닿지 않지만 이렇게 백지상태에서 내멋대로 상상할 수 있는것이 어쩌면 현재의 나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여행을 하고나면 지금 머릿속으로 그리는 파리의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테니깐. 부록으로 딸린 지하철 노선도를 뜯어서 펼쳐놓고 보니 그나마 방향 감각이 생긴다. 예를 들면 라데팡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3호선 대화역방면의 일산쪽이고 몽마르뜨는 저기 삼청터널이나 효자동 쯤, 엘리제 궁은 경복궁 정도가 될것이고  파리의 10구와 19구의 사이쯤에 내가 어릴적 살던 동네가 있고 마라지구를 지나 라틴지구로 가는 관문인 생 미쉘 노트르담역은 왠지 지하철 3호선 옥수역같은 느낌이다. 최소한 우리가 지내게 될 5구쪽에서 에펠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을때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구나 정도의 감은 오겠지.  사실 프랑스어 철자와 실제 발음 사이의 괴리감도 어느정도 줄였고 뚜레쥬르가 '매일매일' 이란 뜻이란것도 알게됐다. 이런 느낌들이 너무 좋다. 원한다면 끊임없이 새로운것들에 노출 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파리에 관한 상상에 기름을 부어줄 수 있는것은 어쩌면 사실에 기반한 론니플래닛보다는  낭만과 낭만과 낭만의! 파리를 배경으로한 허구에 기반한 영화와 소설들일지도 모른다. 그 중에는 정말 작정하고 찍은것같은 <파리, 쥬뗌므>같은 영화들이 있을것이고, 위조된 여권으로 파리에 숨어든 비밀요원들에 관한 피튀기는 총격전 가득한 영화들이 있고,

또 다시 작가가 되어서 돌아온 에단 호크의 <파리, 5구의 여인> 같은 미스틱한 최신작부터, 내가 봐놓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들까지 전부 깡그리 몽땅 합해서 정말 많고도 많은 영화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부지런히 파리를 이야기 하고 있다. 파리는 영화속에서 어느정도 낭만과 고급스러움으로 정형화된 도시인것이 사실이다. 물론 <테이큰>같은 영화를 보면 소름이 끼치지만 사람들은 <아멜리아>속의 파리를 기억하는데 보다 익숙할테니. 3년전, 피렌체에 가기전에 일부러 <냉정과 열정사이>를 찾아보았는데 감독이 피렌체 구석구석을 샅샅이 알고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장소 섭외가 자연스럽고 완벽했던 영화였다. 우연히 골목을 걷다가 영화의 배경이 된 몇몇 장소들을 맞닥뜨리고는 얼마나 기뻤던지. 예를 들어서 준세이가 자전거에서 내려서 들어가는 두오모 근처의 화방이나 준세이의 자취방이 위치한 언덕 같은 곳. 그런 애틋한 장소들을 파리에서도 맞닥뜨릴 수 있을까. 우연히 찾아갔는데 무슨무슨 영화가 촬영된 곳이라고 붙어있으면 정말 김샐것 같지만 말이다.


 

 


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에서 제시(에단 호크)의 책 'This time'의 출판 기념으로 저자와의 대화 행사가 열린다.

실제 이 서점은 론니플래닛에도 사진까지 첨부되어있어서 바로 지도에서 찾아보았는데 생 미쉘 노트르담 역 근처 5구의 번화가에 위치해있다. 우리가 살게 될 5구의 rue poliveau 에서는 걸어서 일킬로가 넘는 거리지만 노트르담 대 성당이 가까우니깐 같은 날 둘러보면 될 듯. 영화 내내 제시와 셀린느가 대화하며 걷는 곳은 전부 5구가 배경인지 아님 마치 가까운듯 편집만 그렇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제시와 셀린느(줄리 델피)의 연대기라 이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비포 시리즈의 <비포 미드나잇>이 개봉했다고 하니 영화를 보기에 앞서 다시 한번 전작들을 찾아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비포 선셋>의 배경은 셀린느가 살고있던 파리였었고 제시와 셀린느가 나란히 걷는 파리의 모습도 다시 궁금해졌다.  <비포 선셋>이 개봉했을때는 왠지 전작의 느낌을 망칠것 같아 보기를 망설이다 꽤나 이후에 쭈뼛거리며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면 내가 지레 겁을 먹고 망칠것같다는 두려움에서 지키고자 했던 그 기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영화 속의 허구를 현실속에서 끊임없이 갈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의 이상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 같은 것. 제시와 셀린느가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은것과 할머니의 장례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셀린느가 반년후에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로부터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실제로 에단 호크는 그 사이에 책을 몇권이나 냈고 줄리델피는 각본에 감독까지 영화도 몇편을 찍었다. 제시와 셀린느가 나이를 먹은것 만큼 우리 모두도 나이를 먹었다.  젊은 남녀가 낯선곳에서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 보통 그렇게 만난 연인들의 이년 후, 칠년 후를 보여주면서 마치 확인 사살을 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들이 많지만  <비포 선라이즈>는 그 짧았던 시간과 감정을 용감하게 타임캡슐에 묻어버리고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영화였다. 그리고 그 보다도 열배는 짧아진 한시간 반의 여정을 담은 한시간 반짜리 이 영화를 플랫폼에서 이별하는 젊었던 그들을 상기시키며 불안한 마음에 봐야했던 이유는 이미 한번 헤어진 전력이 있는 모험심 충만했던 그들이 전만큼 젊고 이상적이지 않을지 모른다는 노파심때문이었다.  오랜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그들의 미세한 감정에 애틋해지기에는 나도 이미 나이가 들은걸까 하는 자괴감같은거. 마치 옛일이 기억나지 않는척 어물쩡 넘겨버리고 상대보다 솔직해 지는것을 경계하고 온갖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잡다한 이야기들을 촉박한 시간속의 대화속으로 애써 밀어넣으며 진심을 얘기할 기회를 호시탐탐노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영리하게 변해버린 그들을 마주하는것이 어색했다고 해야할까.  9년전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모자르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속마음을 말하길 주저한다. '내가 여전히 너를 좋아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필요이상으로 현실을 푸념해야하고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를 악몽 이야기를 해야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


 


 

제시와 셀린느가 서점을 나와 커피를 마시러 걸어가는 카페. 실제로 서점을 나와 카페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아서 라틴지구의 지도를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다. 카페목록을 보니 엉뚱하게도 바스티유 지역의 11구에 위치해있는데 절대로 십분만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닌듯. 다행히 론니플래닛에 '비포 선셋을 촬영했었음'  따위의 설명은 어디에도 없으니 관광객으로 붐빌 가능성은 적을듯.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제시는 미국에도 이런 카페가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하고 감탄을 하고 뉴욕에서 공부를 했던 셀린느는  미국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훨씬 행복해보인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누리고 있는 일부를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면서 뭔가를 갈망하고 만족하는것은 그 욕망의 힘을 빌어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인것 같다.


 


 

오랜시간 떨어져서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대를 갈망했던 몇년의 시간. 하지만 내가 내 자신의 열쇠구멍을 통해서 바라보는 나의 인생속에서 나와 함께 부대꼈던 수많은 인간관계들이 내가 현실을 등지고 전혀 다른것을 갈망하는 사이에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제시의 부인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등지고 각자의 길을 가는것은 자신의 감정을 희생하고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보다 훨씬 솔직하고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누가 누굴 더 사랑하고 누구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문제가 아닌 앞으로 사랑해야하고 지금 현재 갈망하는것에 대한 진실함의 문제일지도.


 

 


부인이 아름답고 똑똑하지만 임신을 해버렸고 그래서 결국은 결혼을 하게됐다고 마른 빵 씹듯 설명하는 제시의 모습은

결혼을 한 사람의 입장으로써 여전히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로맨틱한 남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9년의 사랑을 간직한 제시와 셀린느의 모습에서 정말 로맨틱한 변치 않는 사랑의 감정만을 느낄까? 또 다른 9년이 흐른 후 <비포 미드나잇>에서 그들이 나눌 이야기가 궁금한 이유는 바로 그때문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야하는 어른으로 남을까.

아니면 9년전의 솔직한 감정을 겁내지 않으며 하루보다 한시간보다 더 긴 여정을 공유하는 어른이 되어갈까. 


 

 


출판된 소설이 자전적인것이냐는 질문에 제시는 선뜻 긍정하기를 망설이면서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열쇠구멍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본다고 둘러말하며 자신의 이야기임을 인정하는데 우리의 이야기를 너무 드라마틱하고 이상적으로 써내려간것이 아니냐는 셀린느의 말에는 이건 문학작품인데 그럴 수 밖에 없다며 망설임없이 반박한다. 살면서 과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추억만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이 언제든지 꺼내놓고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들로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보통의 현실에서 아름다운 추억은 전부 과거가 되어버리니 오늘이라는 현상만으로 살아간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서점에서 제시와 셀린느가 눈을 마주친 그 짧은 순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든가와 상관없이 그들은 결국 빈의 음반가게와 공원 속 같은 그들만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밖에는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지만 이미 아무도 다른곳으로 서두르지 않는다. 제시가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9년전처럼 대책없이 헤어져버리기는 이미 불가능해보인다. 그저 가슴속에 묻어놓고 생각날때마다 꺼내보면 아름다운 추억임이 분명한 과거이지만 그런 기억을 둘만 아는곳에 묻어놓고 무작정 현실을 위로하며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하루보다 한시간보다 훨씬 더 짧은 놈이니깐.

 

 

 

 

Posted by 영원한 휴가
Paris2013.05.19 00:06

 

 


목적지를 정하고 머릿속으로 나만의 여행을 상상하기 시작하면서 여행은 이미 시작된다. 집에서 식당까지 가는 동안에는 크고작은 대여섯개의 횡단보도가 있는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멈춰서있는 짧은 시간들이나 마트 계산대 앞, 지루한 표정으로 하얀 센트를 세는 사람들 틈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 (리투아니아의 1센트 열개를 세면 40원정도로 그다지 화폐가치가 없는 이 센트를 보통은 '하얀색'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등등등의 짧고 짧은 시간들은 상상을 위한 최적화된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잡생각말고는 그다지 생산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짜투리시간에서도 쪼개지고 또 쪼개지고 남은 이 찰나의 순간들을 여행이라는 어느 미래의 한 순간에 투자할 수 있다는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나고보면 여행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음악이나 여행전에 출퇴근길을 왔다갔다하며 스쳐지났던 버스밖 풍경들이 오히려 여행 그 자체의 기억보다 더 진하고 찡한 기억으로 남을때가 있다. 거리에서 판촉행사로 나눠주는 일회용 샴푸들을 쓰지않고 모아두며 하나씩 하나씩 줄어드는 샴푸들과 함께 새로운 기억으로 채워져가는 메모리카드를 떠올리는것.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여행과 관련지으며 가슴 한 켠에 새로운 장소와 시간에 대한 공간을 남겨두는 것.  여행의 구체적인 루트를 조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기술적인 준비만큼이나 값진것은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형체없이 사라지고 생겨나는 그런 백만가지의 상상들인것 같다.


 


 

많은 미지의 장소를 여행하는 꿈을 꾸지만 신기하게도 파리라는 도시는 한번도 나의 로망이었던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파리의 멋과 낭만을 평가절하하는것은 아니고 파리는 내가 좀 더 어른이 되어서 방문해야 할 곳으로 이미 프로그램화 되었던 도시였을거라고 해두자. 파리의 공기에 전염된 여행자들이 세상 각지로 뿌려대는 이 1유로짜리 에펠탑의 도시로 나도 이번 여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이번 파리 여행은 우리가 선택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시어머니께서 가고 싶어하셔서 계획한 여행에 가까운데. 파리라는 곳을 계속 뒤로 미루고 내가 가고싶은곳만 여행 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해야하나. 한편으로는 언제쯤 내 부모님을 모시고 한국이 아닌 다른 곳을 여행할 기회가 있을까싶어 괜히 마음이 급해진다.


 


 

언제나처럼 여행 준비의 시작은 론니플래닛 구입이다. 굳이 가지 않을 나라의 론니플래닛도 갑자기 땡기면 구입해놓고 보는 나인데 막상 사고나서는 거의 지도를 보는데 치중하지 구체적은 내용은 읽기를 게을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혼자서도 아니고 둘이서도 아니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여행이므로  아무래도 가능한한 사전에 많은 정보를 숙지하고 가야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정보라는것도 사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프랑스어 단어는 알아야겠고 호기심 충만한 시어머니께 해드릴 이런저런 도시 이야기들도 알아야겠고말이다.  한편으로는 숙박비를 비롯한 파리의 비싼 물가도 어느정도의 짜임새있는 준비를 요구하는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준비랍시고 해왔던 상상에 기반한 정신적인 준비는 나만의 것으로 남겨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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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