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ce born>
최근에 부각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은 근접국인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는 나에게
90년대 구소련 국가들의 독립이 정말 아주 최근의 일이었음을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자유가 얼마나 쟁취하기 어려운 것이었느냐에 대한 감흥이 컸다기보다는
어물쩍 엉거주춤하다가는 겉보기에 멀쩡한 지금 같은 세상에서도
피지배자의 입장에 놓여 불이익을 당하고 억압받을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에 가까웠다.
영화 속의 보스니아 내전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마 최근 경험했던 그런 감정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비극은 우리가 생각하는것 보다 훨씬 더 금세 잊혀진다.
중학교 시절 내가 호출기 음성 사서함에 너바나의 음악을 지우고 저장하기를 반복하던 그때
커트 코베인의 포스터가 붙여진 아스카(사뎃 악소이)의 방은 폭탄에 휘청 거린다.
하나의 세상에서 같은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그렇게 다르다.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 마주한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의 모습은 상반적이다.
춥고 헐벗은 사라예보와는 대조적으로 젬마(페넬로페 크루즈)가 돌아온 로마는 따스하고 평온하다.
이 영화를 보고 페넬로페 크루즈가 많이 좋아졌는데 모든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 것 같다.
영어가 모국어인 배우는 에밀 허쉬나 제인 버킨뿐이었는데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이 자국어의 액센트가 섞인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때 드러나는 이질감과 낯설음은
오히려 전쟁통에 사라예보에 모인 등장인물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여주었다.
자유로운 사진가인 디에고는 사랑을 찾아 로마로 오지만 돈벌이를 위해 광고 사진을 찍으며 염증을 느낀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젬마는 피해의식을 느끼며 디에고를 불신하고 조금씩 변해간다.
음악이 하고 싶은 아스카는 돈을 벌어 런던으로 갈 꿈을 가지고 있고 낯선 이방인들의 대리모가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젬마와 디에고의 시인 친구 고히카는 아스카와 디에고가 자려고 할때 젬마를 유혹한다.
디에고는 아스카가 가진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닌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데려가려는 젬마를 저지하지 않는다.
젬마는 그 아이가 디에고의 아이라고 믿고 키운다.
젬마는 오랜 세월이 흘러 고히코의 초청으로 아들과 함께 사라예보로 돌아오고 아스카와 조우하고
젬마는 이 여행이 자신의 아들을 되찾으려는 아스카가 계획한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본능적으로 분노한다.
젬마는 디에고의 아이라고 여기며 아들을 키웠지만 디에고의 흔적을 아스카에게서 발견하는데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아들이 디에고의 아이가 아니란것을 알고는 안도한다.
오랜만에 슬픈 영화를 보고 심지어 울기까지 하며 카타르시스라나 뭐 그런 것을 느꼈다고 말해야겠지만 사실은 몹시 찝찝하다.
이 영화를 전쟁중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 같다.
전쟁의 본질과 개개인의 욕망과 이상이 충돌해서 생기는 슬픔의 본질은 같다.
모든 등장인물들을 동정했지만 모두가 조금씩은 이기적이다. 그게 인간이고 전쟁은 그래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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