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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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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85_오후 4시 12분 '날이 좀 따뜻해졌어. 좀 가벼운 신발을 신고 나가자.' 그렇게 신고 나간 가을 신발이 결국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 대략 20여 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은 안돼. 그래. 아직은 겨울이야' 라는 생각 대신 그 사실을 지각하는 데에 5분이 아닌 20여 분씩이나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봄을 향하는 급커브에 마주선다. 퇴각하는 겨울에도 심리적 저지선이 있다. 그것이 무너지는 가장 단적인 예는 하나 둘 제거되는 건물의 크리스마스 조명이다. 일년 중 세 달은 꼬박 매달려있었을 겨울 전구들이 다시 상자 속으로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Pilies kepyklėlė_지난 겨울 브랜디와 초콜릿, 스콘과 카푸치노. 버섯 수프와 녹차. 토마토 수프와 루이보스. 애플 파이위로 쏟아 부어지는 따뜻한 크림. 커피 그리고 커피. 커피 한 잔 하자고 들어간 아늑한 카페의 좁은 탁자가 각자의 입맛에 따라 채워지고 따개비처럼 붙어 앉아 잔을 비우며 하는 이야기들은 각양각색이다. 모두가 동시에 이제 좀 살것 같다 말하는 순간에도 언 발이 녹는 속도가 다르듯 긴 아침식사를 끝낸 누군가의 앞으로 느릿느릿 등장하는 마지막 커피잔이 바닥을 보일때까지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들. 지난 겨울.
Vilnius 09_빌니우스의 겨울 빌니우스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고개를 치켜들면 벌써부터 무시무시한 고드름이 달려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들이 일방통행인곳이 많아서 보도블럭보다 차도로 걸어다니는게 더 나을정도이다. 두툼한 털 양말속에 바지를 집어넣고 묵직한 등산화를 신어야 그나마 녹아서 질퍽해진 눈 사이를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혹한과 폭설에 길들여진 유전자들이라 높은 겨울 부츠를 신고도 별 문제없이 잘 걸어다니는것 같다. 곳곳이 진흙탕 물인 거리를 마구 뛰어다녀도 종아리에 꾸정물 하나 안묻히던 인도인들의 유전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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