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1.02.03 미나리 (2020)
  2. 2021.02.01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3. 2015.03.22 <자유의 언덕> 홍상수 (2014)
  4. 2013.01.21 <다른 나라에서> 홍상수 (2011)
Film2021. 2. 3. 08:05

 

미나리 2020

 

 

콩나물이 나왔으니 미나리. 콩나물 다듬는 주인집 아줌마 (ashland.tistory.com/1015),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콩나물 사러 가는 아이(https://ashland.tistory.com/1016), 그리고 딸 보러 미국에 와서 미나리 키우는 할머니. 콩나물 무침에 미나리며 쑥갓이 들어간 전골이 보글보글 끓는 밥상에 이들이 빙 둘러앉아 수다 떨며 저녁 먹는 모습을 상상해도 별로 낯설지 않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곧 드라마일진대 크게 억지 쓰지 않고 양념 치지 않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예산 영화 특유의 방식들로 서로 모두 닮은 구석이 있다.

 

잘 먹고 잘 살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잘 죽기. 그러기 위해서 인생은 많은 선택과 결정을 요구한다.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지만 왠지 그러기엔 아쉽다. 그 결정들이 매번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합리적이고 타협 가능한 결정이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때도 있다.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혹은 그것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많은 이들이 새 삶을 찾아 무언가로부터 떠난다. 어떤 이는 고향을 떠나고 나라도 떠나고 때로는 사랑도 포기하고 사람도 포기한다. 만약 내 배우자나 자식이나 부모가 내 바람과 의지와 계획과는 정말 배치되는 결정을 내려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정적인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며 모든 것을 뿌리칠 각오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결정을 내린 적이 있었던가.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했고 자연스러웠던 결정들이 누군가를 당혹스럽게 슬프게 아쉽게 한 적은 없었을까.

 

어떤 가족이 허허벌판에 놓인 길고 긴 컨테이너 앞에 도착한다. 남자는 오랫동안 병아리 감별사로 일해서 돈을 모았다. 이제 그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농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들떠있다. 여자는 이 시골에 오래 머물일이 없다며 짐도 풀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면서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는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 어린 아들은 심장이 약하다. 병원은 멀다. 여자는 불안하다. 빚은 늘어간다. 남자를 설득해보지만 남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농장을 포기할 수 없다.

 

농장에 대한 남편과 아내의 온도차를 보며 마음이 불안불안했다. 하지만 둘 모두를 이해한다. 단지 잘 살기 위해서. 흩어지지 않고 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 이것 때문에 혹은 이것이 아니면 불행해질 것 같은 불안에 둘은 갈등하지만 네가 아니면 아무도 없는 이 먼 땅에서 서로의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두려워 결국 자기 자신과 갈등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거다. 

 

병아리 공장 굴뚝에서는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피어오를 것 같은 연기가 올라간다. 알을 낳지도 못하고 닭이 되어도 맛이 없는 수컷 병아리를 태우는 것이다. 알에서 부화한 수컷 병아리는 바로 죽음을 맞이한다. 운좋게 살아남은 암컷은 사육될 것이고 누군가를 위해 알을 낳다가 때가 되면 또 죽음을 맞이할 거다. 울타리 없는 넓은 벌판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던 닭도 결국은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가는 법이다. 닭의 입장에서 가장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닭의 삶을 인간의 삶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닭과 정말 다른 것인가. 이 지점에서 난 좀 허무했다. 남자는 그리고 남편은 그리고 아버지는 알도 낳지 못하는 쓸모없는 수컷의 삶이 아닌 의미 있고 쓸모 있는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 열심히 일하고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도 그런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신에 의지하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여자도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본다. 

 

한국에서 아이들의 외할머니가 온다. 화투짝과 함께 맛있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관대하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누굴 가르치려는 생각도 별로 없다. 그저 애정의 눈초리를 지니고 있을 뿐이며 그래서인지 가끔 멋진 말들을 무심코 내뱉는다. 미나리 미나리 신기한 풀 원더풀 기적의 풀 원더풀. 미나리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와서 낯선 이국땅의 외진 시골 시냇가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의 결정을 따를 뿐이다. 그들의 갈등을 목도하며 그들의 걱정과 사랑 속에서 자라난다. 어디에서 사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삶이 어때 보이는지도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여도 살아남을 거다.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말이다. 이것은 아마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후에도 제자리에서 하늘거리고 있는 미나리 덤불처럼. 어쩌면 다 잃었을 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순간 옆을 지키고 있는 작은 것들의 거대한 의미로 우리는 또 다른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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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21. 2. 1. 07:00

 

 

 

 

찬실이는 복도많지 (2020)

 

 

신기한 제목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굉장히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운 좋게 뒷북을 친다. 서울의 풍경을 보여주는 영화가 좋다. 서울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떠나온 이후로 더 그랬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동네가 재개발로 가루가 되어버린 모습을 보고 나니 비슷한 풍경과 정취를 품고 있는 영화 속 어떤 동네들도 언젠가 사라져 버릴 운명일까 싶어 아쉬운 마음에 더 몰입하여 보게 된다. 무엇보다 찬실이가 힘차게 오르고 있는 저 햇살 가득한 오르막길의 끝과 그곳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이 궁금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짝을 이뤄 일하던 영화 감독이 갑자기 죽어버리고 졸지에 백수가 된 프로듀서 찬실이. 찬실이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고 그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믿으며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찬실은 누가 뭐래도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원칙과 자부심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한편으론 꽤나 수동적이었음을 깨닫는다. 저 감독이 계속 영화를 만드는 한 별 탈 없이 옆에 붙어있기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항상 있을 거라는 자세가 없지 않아 있었기에 그런 생각의 기둥이 뽑혀 나가자 삶이 흔들린다. 영화는 갑자기 급해진 찬실이의 마음을 쫓아간다. 찬실이가 복이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이다.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란 생각으로 전력질주 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진 다는 것은 축복인지 모른다. 동네 담벼락에 방긋방긋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여전히 뭔가를 꿈꿀 수 있는 삶에 대한 순수한 자세를 가진 다는 것, 그 자세를 지니는 것에 방해받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제공받는 것. 그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투쟁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는 복의 정의일거다. 찬실이도 찬실이의 주변 사람들도 그리고 우리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 

 

오늘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며 단지 그것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콩나물을 다듬고 한글을 공부하고 시를 쓰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삶에 대한 말랑한 자세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와닿았다. 발연기를 한다고 욕을 먹지만 여전히 불러주는 곳이 있고 여유시간에 프랑스어 수업이며 각종 취미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여배우의 삶도 나쁘지 않다. 비록 영화를 만들 여건은 되지 않아 늘 시나리오만 쓰고 있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 그럭저럭 살아가는 감독의 삶도 나쁘지 않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좋은 어떤 것에 조차 등급을 매겨 스스로 덜 좋은 상태에 놓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지만 아주 나쁘지 않으면 조금은 그냥 좋은 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또래의 찬실이를 아주 오래전에 어딘가에서 만난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20여년전의 어떤 독립영화제에서 자원봉사자 표식을 걸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어떤 영화과 막내 학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명동 방면 출구 대신 옛 영화진흥공사를 향하는 휑한 출구를 뚜벅뚜벅 먼저 오르던 누군가, 선착순 200명에게 시사권을 나눠주는 영화잡지 시사회에서 내 앞의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해본 적도 눈짓을 주고받은 적도 없지만 단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던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실상 너무나 달콤하고 배부르고 따스한 행위로 남았다. 그것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일종의 향유이고 사치이다. 그것을 업으러 삼고 이것이 아니면 안 되는 대상으로 여기며 그것과 함께 고뇌하고 좌절하며 성장하는 찬실의 삶을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찬실이 덕에 내가 볼 영화가 계속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찬실을 연기한 강말금 배우는 틸다 스윈튼과 유이, 히로스에 료코를 묘하게 섞어 놓은 느낌이 들었다. 사투리를 쓰지 않는 찬실이를 상상하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러브레터 같은 멜로에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특이한 영화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이 다채롭다. 배우 윤여정이 연기한 찬실이의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것만이 내 세상'과 '미나리' 속의 나이 든 엄마들과 오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딸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산동네에서 혼자 사는 그녀가 사실은 곧 이민 간 딸을 따라 미국행 비행기를 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콩나물을 다듬는 그녀의 얼굴에 냇가의 무성한 미나리 근처를 서성이는 할머니 얼굴이 겹쳐지는 것이다. 이 배우를 보면 자동적으로 헬렌 미렌이나 이자벨 위뻬르, 샤를롯 램플링 같은 시크하고 강단있는 비슷한 연배의 외국 배우들이 떠오른다. 아마 기억속에는 여전히 구르프를 말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사돈을 맞으러 나오던 사랑은 뭐길래의 양옥집의 세련되고 까칠한 사모님의 모습이 선명한데 심지어 그 드라마에 나왔던 젊은 배우들보다 더 왕성하게 지금까지 연기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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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5. 3. 22. 21:10




<자유의 언덕>


올해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영화제 Kino Pavasaris 에서는 홍상수의 2014년작 <자유의 언덕>도 상영이 된다.

빌니우스의 관객들이 그의 이전 다른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기를 바란다. 

그의 영화들만큼 유기적으로 연결된 영화들이 있을까도 싶고 

그 연결 장치조차 우연처럼 가장 할 줄 아는 감독의 연출 방식을 알고 볼때에야 영화가 배로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의 내러티브는 작품내에서가 아닌 오히려 작품외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든다.

그는 이미 어떤 등장인물이 참가해도 무리가 없는 자신의 이야기 하나를 가진채로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등장인물들을 비슷한 공간에 불러다 놓고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약간 버무려서 영화를 만들어낸다. 

사건의 나열은 뒤죽박죽이고 간신히 정립해놓은 인과관계도 익숙한 공간의 뜬금없는 등장으로 머릿속에서 뒤엉켜버린다.

그의 습관들은 영화속에 녹아있고 그가 영화를 정말 습관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주며 우리는 습관처럼 그의 영화를 본다.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기본 뼈대는 일본인 모리가 권을 찾아오는 여행과 기다림의 장치인데

그 기다림은 이 영화의 시작과 더불어 생겨났다기보다는 이전부터 있어오던 영화의 외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이전 작품인 <우리 선희>에서 이선균과 김상중이 그리고 정유미 조차 늘상 기다리던 정재영의 집 건너편 식당에서

백반을 먹고 있는 모리를 보고 있자면 현해탄을 건너온 그가 기다림에 임하는 자세 역시 그저 단순한 일상처럼 느껴진다.

새로운것이 없는 새로운 영화에서 감독은 또 무얼 얘기하려는걸까. 



이 영화 포스터는 뭔가 너무 가볍고 화사하고 동적이어서 기분이 좋다.

여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강원도의 힘>에서처럼 찐득거리고 질척거리는 불쾌지수 만빵의 여름이 아니라 

곧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기 직전의 적당히 뽀송뽀송한 습도의 여름이랄까.

흑백으로 찍어진 그의 몇몇 겨울 영화가 실제보다 훨씬 추워보여서 실내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상대적으로 따스한것처럼

인물들의 가벼운 옷차림과 화사한 표정처럼 이 영화는 점점 높아져가는 늦여름의 하늘색을 닮았다. 

빚더미에 앉은 남자나 집나와서 유부남과 여관에 머무르는 여학생이나 답장없는 편지를 기다리는 일본인이나

그들이 가진 고민의 무게에 의식적으로 집착하기보다는 시덥지 않은 자잘한 현상들을 보는것에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항상 때가 지났다고 밥을 주지 않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모리(카세 료)는 왜 저 사람은 이 시간에 밥을 먹느냐고 묻는다.

마루에서 밥 먹는 사람은 사업하다 큰 빚을 진 조카이지 손님이 아니라고 구차하게 설명하는 주인. 

평소 모리와 살갑게 영어로 대화하고 아부떨던 조카는 무슨 그런 얘기까지 하냐며 불만섞인 한국말을 내뱉는다.

공기밥 하나만 얹으면 오손도손 같이 먹을 수 있지만 그런 살갑고 인공적인 전개를 감독이 보여주지 않을것을 우리는 안다.

기본적인 예의범절에 의거한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인간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타인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이상적인 반응들.

자신이 기대했던 반응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보이면 인물들은 주춤하고 거리를 두기 시작하며 까칠해진다.

까칠하다거나 찌질하다는 단어는 특정 성격을 묘사한다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본능에 가까운 요소이다.

사실 자유의 언덕이라는 제목 자체도 모리가 일본어 간판인 동명의 카페를 찾는다는 설정에 의거한것일테지

거기에서 감독의 의도를 찾으려드는게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영화에서 살짝 보여지는 자유의 의미를 갖다 붙이자면 

일반적으로 그러하다고 통용되는 사실을 기반으로 형성된 편견들,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말과 타인의 의견에서의 해방같다.

현재 과거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낸 틀일뿐 실체가 아니라는 모리의 책속의 구절도 어떤 의미에서 자유를 의미하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계단에서 흩어진 편지로 뒤죽박죽된 시간처럼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술적인 장치 정도를 의미할뿐이다.



재밌었던 장면 중의 하나인데. 

<우리 선희>에서 교수님 해외 출장갔다고 뻥치던 이민우가 다시 돌아왔다. 

<다른 나라에서> 이자벨 위뻬르가 출연했을때부터 언젠간 홍상수가 외국 남자 배우도 섭외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같은 표정을 지닌 배우 정도면 무슨 영화과 초빙 교수로라 나오면 엉뚱하고 재밌겠다 생각했었다.

재밌는것은 일본인에게 필요이상의 친절과 관심을 보이는 문소리를 쳐다보는 이민우의 표정이다.

언젠가 문소리도 저런 표정을 지었더랬다. 

이자벨 위뻬를 여신대하듯 대하는 권해효를 바라보던 임신 막달의 문소리가 섬광처럼 지나갔다.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고민의 무게보다 우리가 시급히 이해해야 할것은 그것에 어떠한 자세로 대처할것인가의 문제같다.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의 삶을 사는 사람들도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객관적 잣대를 통해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데 왜 저런 고민을 할까라는 말도 안되는 편견속에서 

타인의 고민과 삶을 한창 가볍게 여기는 오류를 우리는 자주 범한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도 누군가는 블랙 코미디를 만들고 누군가는 잔혹 호러물을 그리고 휴먼 드라마를 만드는 것처럼

연인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남자의 골치아픔의 무게를 우리가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의 무게는 그가 들고 다니는 딱 저 작은 책만큼 가벼워 보인다. 

이해하기 힘든 타인의 행동.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말 따위도 알고보면 우리 스스로의 이상이 빚어낸 허상일 뿐.

흘러가는 한 마디의 말, 미세한 표정에서도 부자유스러운 우리가 과연 더 큰 자유를 열망한다는것은 허세가 아닐까.


<우리 선희> 리뷰 보러가기

<오!수정> 리뷰 보러가기

<밤과 낮> 리뷰 보러가기

<북촌방향> 리뷰 보러가기

<다른 나라에서> 리뷰 보러가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리뷰 보러가기

<생활의 발견> 리뷰 보러가기








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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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3. 1. 21. 07:09

 

 

<다른 나라에서>

 

이번에는 '모항 해수욕장'이 배경이다.

영화 시작부터 노골적으로 팬션간판을 보여주는데 이런 팬션도 협찬받은게 아닐까 그냥 혼자 생각중.

배우들이 하도 홍상수 영화는 노개런티라고 떠들고 다닌 영향도 있고 

설상가상 김상경이 무릎팍도사에서 소주도 자비로 샀다는 얘기를 한마당에

그래도 절에서 기와에 소원 적는거는 돈내고 했겠지 또 혼자 생각해본다.

그의 영화중에서는 그래도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곳이 배경이구나 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제주도가 배경이었으니 그건 아니고 

아무리 소주에 삼겹살을 구워먹어도 외국배우가 출연을 해서인지 정서적으로 한국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나보다.

한마디로 모항 해수욕장에서 올 로케로 촬영된 <다른 나라에서>이다.

이런 시나리오로는 샤를롯 갱스부르를 섭외했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오롯이 '세명의 안느'를 연기하는 한 여배우를 위한 이런 영화.

물론 그녀의 외모는 너무 비현실적이니깐 별로 어울리지않고  줄리엣 비노쉬나 줄리델피 같은 배우도 있지만

아들 둘이 있는 엄마 역도 겸했어야하니 연령상 안맞고

여러모로 외모가 부각되었던 이런 배우들은 별로 적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이자벨 위뻬르는 별로 외국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외국배우가 출연한다고 해서 방한한 외국배우가 연예프로그램에서 상황극하는 느낌이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홍상수가 조만간 기욤까네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같은 남자배우를 섭외해서 그에게 영화학과 초빙교수역을 주고

<다른 나라에서>트릴로지나 <옥희의 영화>2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또 혼자 상상한다.

 

홍상수가 약관의 나이에 만든 첫번째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선댄스에 출품했어도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다른 영화들처럼 '구경남'식 구구절절함없이 그냥 호스텔 밖으로 나와서 맞이하던 그들의 아침처럼 청신했다. 

속을 태울일도 찔릴일도 낯뜨거울일도 없이 그냥 솔직하고 가볍고 유쾌하고 귀엽다.

한번쯤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 그들에게 왠지 한번쯤은 구원의 여지를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하지 말아야 하는것에 대한 주관식 정답에 우리 모두가 익숙해져있을뿐

소주병을 바닷가에 버리는것도 외국여자와 뽀뽀하고 싶은것도 그것이 한국인이어서 그러는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강원도에서도 경주에서도 인간의 욕망이란 장소를 초월해서 돌고 돌뿐이지.

 

 

돈문제로 엄마와 함께 모항에 와있는 정유미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짧은 시나리오를 쓰기로 한다.

팬션직원인 그녀에게 안느(이자벨 위뻬르)는 세개의 에피소드에서 매번 구경갈만 한 장소를 묻고는 등대를 찾아간다.

등대는 모항해수욕장의 명소이자 안느의 목적이며 그것없이는 소통 불가능한 안느의 언어이기도 하다.

어디 갈만한곳 있어요? 등대가 어디있어요?라는 그녀의 물음으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것이다.

심지어 어쩔때 안느는 등대가 어디있는지 알면서도 굳이 물어보는것 같다.

안전요원은 등대를 묻는 안느에게 램프를 보여주며 이것이 등대라고 농담을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안느와 안전요원이 텐트에서 잠을 잘때 램프가 켜져있는 장면에서 배꼽을 잡았다.

마치 안느가 그렇게 찾아헤매던 진짜 등대를 찾아낸것처럼

'이런 장면을 기다리신 거죠?'라듯 감독은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세개의 독립된 스토리는 반복되는 등장인물들로 인해서 때로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안느는 안전요원이 수영한것을 본적이 없지만

술을 마실때 안전요원이 등장하고 사라지자 윤여정에게 수영을 잘하냐고 묻는다.

안전요원을 보고 수영을 생각해낸것은 자연스러운것이지만 마치 안전요원을 이미 알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안느가 빌리는 우산도 그렇다. 우산을 빌리고 숨기고 잃어버리지만

마지막 이야기속에서는 다른 에피소드에서 숨겨둔 장소에서 마치 우연히 발견한듯 마냥 남의 우산을 꺼내 쓴다.

보는동안 끊임없이 상상할 수 있어서 즐겁다.

권해효도 문성근도 구경남의 연장선상에 있는것이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목소리 출연만했던 문소리가 실제 구경남의 아이를 임신한채 껄떡되는 남편을 감시하는 느낌.

항상 누군가의 제자와 동창으로 나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정유미는 마치 모두를 심판하듯 작가가 되어 나왔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낯선 바닷가 도시에서 안느는 어쨋든 자신의 여행을 만끽한다.

들판의 염소를 보고 큰 소리로 염소 목소리를 흉내낸다.

무료함을 이겨보려는 그녀의 노력은 누가봐도 사랑스럽다.

 여행가고 싶다.

낯선 장소에서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지도를 펼쳐들고 어떤 장소를 찾아가고 싶다.

지도나 가이드북이 없다면 실제로 안느처럼 호스텔 직원에게 갈만한곳을 묻게 된다.

유명한 관광도시가 아니라 그냥 무심코 들른 그런 작은 도시들이라면 말이다.

지나고보면 뚜렷한 목적없이 들러서 내가 여기 왜 있지 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던 도시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가끔은 비가 내려서 호스텔에서 우산을 빌려야 할 때도 진짜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느에게 다음 여행에서는 접으면 손바닥만해지는 비닐우비를 지닐것을 권한다. ㅋㅋ.

 

 

임신한 아내는 술을 마실 수 없고 외국 여자는 자기보다 주량이 더 세다.

안느와 술마시는 수(문성근)는 어떤가.

문성근이 홍상수 영화에서 그렇게 술을 마셨어도 이정도로 얼굴이 뻘개져서 취한것을 본적이 없다.

심지어 그는 꿈속에서만 존재하는것처럼 보이고 키스하다가 안느에게 뺨까지 맞는다.

(이 장면은 심지어 문성근에 항상 치이던 정유미의 복수같다.)

몽블랑 아니면 아무것도 못쓴다는 소유욕 만빵의 스님은 또 왠일이냐.

다행히 안느의 무리한 요구에 순순히 만년필을 내놓았으니 스님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고 하자. 

안느가 권해효의 이름을 종수대신 '종'이란고 부른것은

아마 외국 이름을 외우기 쉽지 않았을 여배우의 실수를 감독이 살린게 아닐까 넘겨짚어본다.

그러다가 문성근의 이름은 일부러 종수도 종도 아닌 '수'로 부르게 한거고

결국은 다 같은 사람으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we have a thousand monkeys in our brain. they chattering all the time'

'우리 마음속이 시끄러운것은 머릿속에 수많은 원숭이들이 떠들어대고 있기때문'

바람피운 남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안느를 절로 데려가는 민속학과 교수.

뭔가를 잊는데에 절하는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 절과 그 절이 동음이의어인것을 처음 알았다.

안느가 절을 나와서는 스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할때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김용옥이 스님으로 등장해서 팬션을 방문한다.

안느는 왜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왜 힘이 드는지 묻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장난 같은 대답만 돌아온다.

monkey 와 monk 도 그냥 우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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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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