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을 읽는 경우 이전 책 주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특정 부분에 줄이 그어져 있거나. 메모가 되어있거나. 날짜와 함께 건넨 이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고 직접 산 책에 대한 기대 같은 것도 간혹 적혀 있다. 책을 팔았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책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겠지만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않는 책이란 사실 없다. 나도 이곳으로 오기 전에 많진 않지만 가지고 있던 책을 대부분 팔고 왔지만 어떤 책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거리 도서관에서 가져오는 책들도 자신들의 사정이 있다. 며칠 전 카페 가는 길에 발견해서 카페로 데려간 톨스토이의 부활은 리가에서의 추억이 담긴 책인가 보다. 반갑게도 그 속엔 뜯어서 간직한 달력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비 오는 날에 길거리에서 열어 봤으면 아마 나풀나풀 떨어져서 젖어버렸을 거다. 1985년 2월 18일. 월요일. 해는 7시 49분에 떴고 달은 15시 35분에 졌다. 그리고 뒷장엔 톨스토이가 푸슈킨의 딸인 마리아를 만난 일, 마리아의 아름다움에 대한 조카 손녀의 회상 그리고 톨스토이가 창조한 안나 카레니나의 원형이 마리아라는 그런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사실 푸슈킨의 아들은 그 부인과 함께 말년을 빌니우스의 고즈넉한 숲에 있는 저택에서 보냈고 그가 아내를 위해 지은 작은 예배당과 함께 그곳은 현재 푸슈킨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아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길지 않은 결혼 기간 동안 자식을 넷이나 낳은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게다가 자식들은 모두 20세기 초반까지 비교적 장수했다. 집안 대대로 수명이 긴 것인지. 알려진 대로 결투로 죽지 않았다면 푸슈킨도 오래오래 살았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