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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Praha 몇 컷.


여행 중이신 이웃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13년 전 프라하 사진첩을 뒤져보았다.

프라하는 사진들이 실수로 다른 폴더에 들어가 있는 건지 다녀온 곳 중 독보적으로 사진이 적다. 찍은 사진들은 충동적으로 입장한 어린이 대공원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친구들이랑 마구 찍은 듯한 느낌이다. 이집트 여행 때부터 많은 추억을 남겨주고 비로소 액정이 나간 쿨픽스를 다루는 게 좀 귀찮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온전한 사진 몇 장이 있어서 올려본다. 바르샤바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 며칠 그저 걷다가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베를린행 기차표를 사서 허겁지겁 떠났던 프라하. 아침이라고 하기에도 좀 이른 시간이었어서 사람이 정말 없었다. 주말이었을까. 지금이라면 여기저기 세워져 있을 전동 킥보드를 하나 집어타고 장애물 없는 저 거리를 휘리릭 지나가며 한 바퀴 돌 것 같다.


아침에 맥도널드에서 커피 마시면서 찍은 사진같다. 창턱이라고 하나. 흡사 아이스링크 같음. 건너편 왼쪽은 찻집이었을까


오래전 여행들은 보통 밤기차든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인지 새벽 공기 마실 일이 많았다. 심지어 인도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나라의 과밀한 캘커타 같은 도시에서도 아침의 정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이런 사진들은 나에겐 항상 영화 <영원한 휴가>의 시작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영화는 좀 더 음울하고 쓸쓸하고 한량스럽고 실제 여행지들은 그보다는 좀 더 경쾌하고 가볍고 설레는 느낌이 있다. 어떤 계절이냐에 따라서 느낌이 참 다른데 여름이어도 겨울이어도 어쨌든 좋다.


낮에 이 장소는 아마 야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로 바글바글 했으려나. 아침엔 비둘기들만 한가득 그리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저런 벤치들. 무슨 영화였지. 이런 비슷한 밤 골목에 말이 나타나서 걸어갔었는데.



어떤 이름이든 미친 척하고 크게 부르면 누구든 고개를 내밀까 싶다. 사비나? 네드베드?


그땐 지금만큼 커피를 마시지 않았어서 카페에 잘 가질 않았고 그냥 걸어 다니다가 이런 곳이 나오면 앉아서 호스텔에서 끓여 온 차를 마시곤 했다. 보온병이 1 리터 짜리니깐 홍차 티백 세네 개를 진하게 우렸던듯. 보온병도 프라하 숙소 근처 어디에 있던 등산용품 상점에서 샀었는데 처음만큼 보온력이 좋진 않지만 여전히 잘 쓰고 있다. 카페가 아니더라도 앉을 곳이 많으면 내 기준에선 좋은 도시이다. 서울엔 한편으론 어디에든 의자가 있어서 얼마든지 앉을 수 있었다. 버리려고 내다 놓은 소파부터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일 작정으로 가져다 놓은 제각각의 의자들, 동네 구멍가게 옆에 늘 앞으로 쏠린 듯이 세워진 플라스틱 의자도. 물론 구도심들에 한해서지만. 하지만 사람들 보기는 힘들었다. 상대적으로 나무나 조형물이 적어서일까.



여기는 새벽에 도착해서 맥도널드에서 커피 마시고 걸어 다니다가 정오 즈음에 들어갔던 유일한 카페이다. 놀랍게도 아직까지 영업 중이라고 한다. 무려 23년째 영업 중. 기억이란 것이 확실히 남겨진 사진에 한정되는지라 딱 이 장식과 카페 바깥에서 멀찌감치 긴 유리잔에 담긴 커피가 놓인 테이블을 찍은 사진 만이 남아 있는데. 여행 중이신 이웃님께서 놀랍게도 이 카페를 방문해주셨다. 해주시는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그때 커피를 주었던 에밀리 왓슨을 좀 닮은 듯했던 여인부터 뭔가 완전히 잊고 있던 기억들이 아주 약간 또렷해지는 신기한 현상을 경험했다. 혹시 언젠가 다시 갈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 내가 13년 전에 왔었는데 내가 왔던 얘길 내 친구가 했었거든요. 기억나세요라고 하면 에밀리 왓슨 님이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도 브라우니에 크림 얹어주기를. ㅋㅋ그리고 그땐 구구 돌즈와 펄잼, 본 조비까지 듣는 행운이 따라주기를.


이것은 당시엔 무슨 조각 인지도 모르고 찍었을 텐데 밑에 새겨진 몇 글자와 1969년을 단서로 검색해보니 분신자살을 했던 청년 얄 팔라흐의 조각이라고 한다. 분신장소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실제 어디쯤인진 모르겠다.


여전히 있으려나. 기억이 맞다면 당시 열리는 중의 전시 작품인데.


며칠 지냈던 곳. 새벽에 자려고 누우면 거리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념품 가게가 있는 긴 통로에서 이어지던 호스텔이 있던 골목. 약간 명동 메인 거리에서 옆으로 빠지는 좁은 골목의 느낌. 어떤 남자아이가 자기가 떠나는 날인데 다 못 마셨다며 필스너 우르켈 너 다섯 병을 호스텔 부엌에서 봉지째 떠넘기고 갔다. 8월이었는데 비가 종종 왔었다. 11월인 지금도 비가 추적추적 많이 왔다는 프라하. 반갑다. 안녕.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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