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여행을 가기 전에 결론이 뻔한 고민에 휩싸인다.
'카메라를 챙겨야 할까?'
나는 조금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여행이 좋다.
솔직하게 말하면 여행예산과 각종 기회비용을 따지다보면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여행을 하게 되는것이다.
예를 들어서 픽업을 나오는 호텔을 예약하거나 시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으니
보통 제발로 숙소를 찾아다니거나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닐때가 많고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기면 추가비용을 내야하니 기차시간까지 짐을 지닌채로 남은 시간 도시를 둘러본다거나 하니
여행동안 짐과 함께 하는 시간은 택시 할증처럼 늘어난다.
그렇다고 다리미며 클럽용 구두까지 챙겨넣어 마치 등에 냉장고를 업은듯한 모습으로 여행하던 유럽아이들처럼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카메라 같은 물품은 항상 귀찮은 존재이다.
충전을 하려면 충전기를 넣어야하고 충전 못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보조배터리도 두세개씩 넣어야하고
찍은 사진을 저장해야하니 컴퓨터도 챙겨야 한다. 컴퓨터에도 플러그를 챙겨야 하는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눈이 네개니깐 카메라도 각자 하나씩 챙겨야한다. 이런식으로 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온전히 내 기억과 망막에 새겨지는 풍경들에 집중하다보면 오히려 더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에도 항상 갈등한다. 기록에 대한 집착과 망각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가 얻는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서도 과거의 한순간을 추억할 수 있고 그 추억으로 더 많은것을 꿈꿀 자유를 보장받는다면
사진을 찍는것은 어쩌면 기억을 위한 만기 없는 보험에 가입하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돌아와서 들춰보는 사진들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봇따리의 기억들에 결국 그 고민은 무용지물이 되버린다.
<투스카니의 태양>에서 관광버스에서 내려 자유시간을 가지는 프란시스가 광장에 앉아서 엽서를 대신 써주는 장면이 있다.
'종소리가 이미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준다. 딩동하는 종소리가 아닌 딩댕동하는 소리로'
다행히 난 나를 잠시 내려둔 버스로 돌아가야 할 상황도 아니었고 다음 여행지로 급하게 떠나야 할 필요도 없었다.
오랜만에 코르토나의 사진들을 보니 이런 사진들은 마치 울려퍼진 종소리처럼 큰 여운을 준다.
이탈리아어로 '종'을 의미한다는 라 캄파넬라 (La Campanella)는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곡인데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던 파가니니의 바이얼린 연주곡을
리스트가 파가니니의 의한 연습곡으로 만든 피아노 곡이다.
그 피아노곡에는 '초절기교'라는 듣기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수식이 또 붙는다.
요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부르는 그런 노래들이 있더라.
또 저노래야! 싶지만 자신의 최절정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다고 믿고 선보이는 그런 노래들처럼
피아니스트들도 경쟁적으로 연주하는 그런 대표적인 작품이 있는것 같은데
예를 들면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나 헝가리안 랩소디, 쇼팽의 즉흥 환상곡 같은 곡들이 그렇다.
실제 리스트가 연주한 라캄파넬라를 들을 방법이 없으니 누가 더 정확하게 더 완벽하게 그 곡을 연주하는지
그리고 어떤방식으로 더 완벽한 연주를 평가하는지는 잘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중국인 윤디리의 연주가 제일 좋다.
근데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정말 '초절기교'보다 더 超!超!超!한 초절기교란것을 느끼게 된다.
나도 악보를 복사한적이 있는데 연주하기위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어떤 음표가 어떻게 그려져있는지를 보기 위했던것.
근데 저렇게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큰 종들이 리스트의 곡처럼 명민하고 옥구슬같은 종소리를 내지는 않을것이다.
실제 라 캄파넬라의 캄파넬라는 이런 큰 종이 아닌 작은 종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우리나라말에서 해-햇님,돌-돌맹이,꼬마-꼬맹이하는것처럼
리투아니아어도 그렇고 대부분의 유럽언어들의 명사들은 작고 예쁜 느낌을 주는 소형명사들을 가지고 있다고한다.
그래서 campana 라는 종도 campanella 라는 축소명사를 가지고 있는것.
호스텔 창문 밖으로 종이 보인다.
코르토나의 아침은 아마도 저 종소리와 저 나무위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로 맞이하게 될것 같았다.
옛 수도원이나 수녀원을 개조해서 만든것 같았다.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이런거는 정말 그때그때 호스텔 직원한테 물어봐야하는데 깜빡했다.
라일락이나 아카시아는 봄에 피는 꽃같고 올리브 꽃이 피기에도 이미 늦은것 같은데
창문에 비친 모습.
아쉽게도 종소리는 기억이 안난다.
호스텔을 나와서 걷다 마주친 또 다른 캄파넬라.
천사들의 합창의 페르민 할아버지가 뛰쳐나와 종을 울릴것 같은 기분이다.
얘들아 서둘러 이제 밥먹으러 갈 시간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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