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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Paris 01

 

 


목적지를 정하고 머릿속으로 나만의 여행을 상상하기 시작하면서 여행은 이미 시작된다. 집에서 식당까지 가는 동안에는 크고작은 대여섯개의 횡단보도가 있는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멈춰서있는 짧은 시간들이나 마트 계산대 앞, 지루한 표정으로 하얀 센트를 세는 사람들 틈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 (리투아니아의 1센트 열개를 세면 40원정도로 그다지 화폐가치가 없는 이 센트를 보통은 '하얀색'이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등등등의 짧고 짧은 시간들은 상상을 위한 최적화된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잡생각말고는 그다지 생산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짜투리시간에서도 쪼개지고 또 쪼개지고 남은 이 찰나의 순간들을 여행이라는 어느 미래의 한 순간에 투자할 수 있다는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나고보면 여행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음악이나 여행전에 출퇴근길을 왔다갔다하며 스쳐지났던 버스밖 풍경들이 오히려 여행 그 자체의 기억보다 더 진하고 찡한 기억으로 남을때가 있다. 거리에서 판촉행사로 나눠주는 일회용 샴푸들을 쓰지않고 모아두며 하나씩 하나씩 줄어드는 샴푸들과 함께 새로운 기억으로 채워져가는 메모리카드를 떠올리는것.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여행과 관련지으며 가슴 한 켠에 새로운 장소와 시간에 대한 공간을 남겨두는 것.  여행의 구체적인 루트를 조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기술적인 준비만큼이나 값진것은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형체없이 사라지고 생겨나는 그런 백만가지의 상상들인것 같다.


 


 

많은 미지의 장소를 여행하는 꿈을 꾸지만 신기하게도 파리라는 도시는 한번도 나의 로망이었던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파리의 멋과 낭만을 평가절하하는것은 아니고 파리는 내가 좀 더 어른이 되어서 방문해야 할 곳으로 이미 프로그램화 되었던 도시였을거라고 해두자. 파리의 공기에 전염된 여행자들이 세상 각지로 뿌려대는 이 1유로짜리 에펠탑의 도시로 나도 이번 여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이번 파리 여행은 우리가 선택한 여행이라기보다는 시어머니께서 가고 싶어하셔서 계획한 여행에 가까운데. 파리라는 곳을 계속 뒤로 미루고 내가 가고싶은곳만 여행 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해야하나. 한편으로는 언제쯤 내 부모님을 모시고 한국이 아닌 다른 곳을 여행할 기회가 있을까싶어 괜히 마음이 급해진다.


 


 

언제나처럼 여행 준비의 시작은 론니플래닛 구입이다. 굳이 가지 않을 나라의 론니플래닛도 갑자기 땡기면 구입해놓고 보는 나인데 막상 사고나서는 거의 지도를 보는데 치중하지 구체적은 내용은 읽기를 게을리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혼자서도 아니고 둘이서도 아니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여행이므로  아무래도 가능한한 사전에 많은 정보를 숙지하고 가야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정보라는것도 사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지만  최소한 기본적인 프랑스어 단어는 알아야겠고 호기심 충만한 시어머니께 해드릴 이런저런 도시 이야기들도 알아야겠고말이다.  한편으로는 숙박비를 비롯한 파리의 비싼 물가도 어느정도의 짜임새있는 준비를 요구하는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준비랍시고 해왔던 상상에 기반한 정신적인 준비는 나만의 것으로 남겨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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