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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비포 선셋 before sunset> 리차드 링클레이터, 2004

 

 

<비포 선셋> before sunset, 2004

 

다시 쌀쌀해진 날씨. 주말 오후 집에 틀어박혀 론니 플래닛을 뒤적여본다. 비행기표를 워낙에 일찍 사놓아서 여행까지 반년 정도면 기초 프랑스어를 배워도 남겠다고 생각했는데 밍그적거리는 사이에 여행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살 방을 구해 놓은것 말고는 해놓은것도 없다. 지도위에 표시된 축척을 따라 손가락으로 아무리 에펠탑과 개선문 사이의 거리를 재어 보아도 쉽게 와닿지 않지만 이렇게 백지상태에서 내멋대로 상상할 수 있는것이 어쩌면 현재의 나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여행을 하고나면 지금 머릿속으로 그리는 파리의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테니깐. 부록으로 딸린 지하철 노선도를 뜯어서 펼쳐놓고 보니 그나마 방향 감각이 생긴다. 예를 들면 라데팡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3호선 대화역방면의 일산쪽이고 몽마르뜨는 저기 삼청터널이나 효자동 쯤, 엘리제 궁은 경복궁 정도가 될것이고  파리의 10구와 19구의 사이쯤에 내가 어릴적 살던 동네가 있고 마라지구를 지나 라틴지구로 가는 관문인 생 미쉘 노트르담역은 왠지 지하철 3호선 옥수역같은 느낌이다. 최소한 우리가 지내게 될 5구쪽에서 에펠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을때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구나 정도의 감은 오겠지.  사실 프랑스어 철자와 실제 발음 사이의 괴리감도 어느정도 줄였고 뚜레쥬르가 '매일매일' 이란 뜻이란것도 알게됐다. 이런 느낌들이 너무 좋다. 원한다면 끊임없이 새로운것들에 노출 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파리에 관한 상상에 기름을 부어줄 수 있는것은 어쩌면 사실에 기반한 론니플래닛보다는  낭만과 낭만과 낭만의! 파리를 배경으로한 허구에 기반한 영화와 소설들일지도 모른다. 그 중에는 정말 작정하고 찍은것같은 <파리, 쥬뗌므>같은 영화들이 있을것이고, 위조된 여권으로 파리에 숨어든 비밀요원들에 관한 피튀기는 총격전 가득한 영화들이 있고,

또 다시 작가가 되어서 돌아온 에단 호크의 <파리, 5구의 여인> 같은 미스틱한 최신작부터, 내가 봐놓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들까지 전부 깡그리 몽땅 합해서 정말 많고도 많은 영화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부지런히 파리를 이야기 하고 있다. 파리는 영화속에서 어느정도 낭만과 고급스러움으로 정형화된 도시인것이 사실이다. 물론 <테이큰>같은 영화를 보면 소름이 끼치지만 사람들은 <아멜리아>속의 파리를 기억하는데 보다 익숙할테니. 3년전, 피렌체에 가기전에 일부러 <냉정과 열정사이>를 찾아보았는데 감독이 피렌체 구석구석을 샅샅이 알고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장소 섭외가 자연스럽고 완벽했던 영화였다. 우연히 골목을 걷다가 영화의 배경이 된 몇몇 장소들을 맞닥뜨리고는 얼마나 기뻤던지. 예를 들어서 준세이가 자전거에서 내려서 들어가는 두오모 근처의 화방이나 준세이의 자취방이 위치한 언덕 같은 곳. 그런 애틋한 장소들을 파리에서도 맞닥뜨릴 수 있을까. 우연히 찾아갔는데 무슨무슨 영화가 촬영된 곳이라고 붙어있으면 정말 김샐것 같지만 말이다.


 

 


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에서 제시(에단 호크)의 책 'This time'의 출판 기념으로 저자와의 대화 행사가 열린다.

실제 이 서점은 론니플래닛에도 사진까지 첨부되어있어서 바로 지도에서 찾아보았는데 생 미쉘 노트르담 역 근처 5구의 번화가에 위치해있다. 우리가 살게 될 5구의 rue poliveau 에서는 걸어서 일킬로가 넘는 거리지만 노트르담 대 성당이 가까우니깐 같은 날 둘러보면 될 듯. 영화 내내 제시와 셀린느가 대화하며 걷는 곳은 전부 5구가 배경인지 아님 마치 가까운듯 편집만 그렇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제시와 셀린느(줄리 델피)의 연대기라 이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비포 시리즈의 <비포 미드나잇>이 개봉했다고 하니 영화를 보기에 앞서 다시 한번 전작들을 찾아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비포 선셋>의 배경은 셀린느가 살고있던 파리였었고 제시와 셀린느가 나란히 걷는 파리의 모습도 다시 궁금해졌다.  <비포 선셋>이 개봉했을때는 왠지 전작의 느낌을 망칠것 같아 보기를 망설이다 꽤나 이후에 쭈뼛거리며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면 내가 지레 겁을 먹고 망칠것같다는 두려움에서 지키고자 했던 그 기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영화 속의 허구를 현실속에서 끊임없이 갈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의 이상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 같은 것. 제시와 셀린느가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은것과 할머니의 장례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셀린느가 반년후에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로부터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실제로 에단 호크는 그 사이에 책을 몇권이나 냈고 줄리델피는 각본에 감독까지 영화도 몇편을 찍었다. 제시와 셀린느가 나이를 먹은것 만큼 우리 모두도 나이를 먹었다.  젊은 남녀가 낯선곳에서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 보통 그렇게 만난 연인들의 이년 후, 칠년 후를 보여주면서 마치 확인 사살을 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들이 많지만  <비포 선라이즈>는 그 짧았던 시간과 감정을 용감하게 타임캡슐에 묻어버리고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영화였다. 그리고 그 보다도 열배는 짧아진 한시간 반의 여정을 담은 한시간 반짜리 이 영화를 플랫폼에서 이별하는 젊었던 그들을 상기시키며 불안한 마음에 봐야했던 이유는 이미 한번 헤어진 전력이 있는 모험심 충만했던 그들이 전만큼 젊고 이상적이지 않을지 모른다는 노파심때문이었다.  오랜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그들의 미세한 감정에 애틋해지기에는 나도 이미 나이가 들은걸까 하는 자괴감같은거. 마치 옛일이 기억나지 않는척 어물쩡 넘겨버리고 상대보다 솔직해 지는것을 경계하고 온갖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잡다한 이야기들을 촉박한 시간속의 대화속으로 애써 밀어넣으며 진심을 얘기할 기회를 호시탐탐노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영리하게 변해버린 그들을 마주하는것이 어색했다고 해야할까.  9년전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모자르다는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속마음을 말하길 주저한다. '내가 여전히 너를 좋아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필요이상으로 현실을 푸념해야하고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를 악몽 이야기를 해야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


 


 

제시와 셀린느가 서점을 나와 커피를 마시러 걸어가는 카페. 실제로 서점을 나와 카페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아서 라틴지구의 지도를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다. 카페목록을 보니 엉뚱하게도 바스티유 지역의 11구에 위치해있는데 절대로 십분만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닌듯. 다행히 론니플래닛에 '비포 선셋을 촬영했었음'  따위의 설명은 어디에도 없으니 관광객으로 붐빌 가능성은 적을듯.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제시는 미국에도 이런 카페가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하고 감탄을 하고 뉴욕에서 공부를 했던 셀린느는  미국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훨씬 행복해보인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누리고 있는 일부를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면서 뭔가를 갈망하고 만족하는것은 그 욕망의 힘을 빌어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인것 같다.


 


 

오랜시간 떨어져서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대를 갈망했던 몇년의 시간. 하지만 내가 내 자신의 열쇠구멍을 통해서 바라보는 나의 인생속에서 나와 함께 부대꼈던 수많은 인간관계들이 내가 현실을 등지고 전혀 다른것을 갈망하는 사이에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제시의 부인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등지고 각자의 길을 가는것은 자신의 감정을 희생하고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보다 훨씬 솔직하고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누가 누굴 더 사랑하고 누구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문제가 아닌 앞으로 사랑해야하고 지금 현재 갈망하는것에 대한 진실함의 문제일지도.


 

 


부인이 아름답고 똑똑하지만 임신을 해버렸고 그래서 결국은 결혼을 하게됐다고 마른 빵 씹듯 설명하는 제시의 모습은

결혼을 한 사람의 입장으로써 여전히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로맨틱한 남자의 모습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9년의 사랑을 간직한 제시와 셀린느의 모습에서 정말 로맨틱한 변치 않는 사랑의 감정만을 느낄까? 또 다른 9년이 흐른 후 <비포 미드나잇>에서 그들이 나눌 이야기가 궁금한 이유는 바로 그때문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야하는 어른으로 남을까.

아니면 9년전의 솔직한 감정을 겁내지 않으며 하루보다 한시간보다 더 긴 여정을 공유하는 어른이 되어갈까. 


 

 


출판된 소설이 자전적인것이냐는 질문에 제시는 선뜻 긍정하기를 망설이면서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열쇠구멍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본다고 둘러말하며 자신의 이야기임을 인정하는데 우리의 이야기를 너무 드라마틱하고 이상적으로 써내려간것이 아니냐는 셀린느의 말에는 이건 문학작품인데 그럴 수 밖에 없다며 망설임없이 반박한다. 살면서 과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추억만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이 언제든지 꺼내놓고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들로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보통의 현실에서 아름다운 추억은 전부 과거가 되어버리니 오늘이라는 현상만으로 살아간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서점에서 제시와 셀린느가 눈을 마주친 그 짧은 순간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든가와 상관없이 그들은 결국 빈의 음반가게와 공원 속 같은 그들만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밖에는 운전기사가 대기하고 있지만 이미 아무도 다른곳으로 서두르지 않는다. 제시가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9년전처럼 대책없이 헤어져버리기는 이미 불가능해보인다. 그저 가슴속에 묻어놓고 생각날때마다 꺼내보면 아름다운 추억임이 분명한 과거이지만 그런 기억을 둘만 아는곳에 묻어놓고 무작정 현실을 위로하며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하루보다 한시간보다 훨씬 더 짧은 놈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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