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에서 사온 엽서를 보고 있자니 2년전의 짧은 파리 여행이 떠올라 회상에 젖었다. 아니면 이 즈음의 온도와 습도가 파리로 떠나던때의 날씨와 오버랩되어 무의식중에 사진첩의 파리 여행 폴더를 열게 만든것일까? 정말 딱 2년전 8월의 이맘때에 우린 파리에 있었구나. 휴가철이라 주택가 깊숙한곳의 식당들과 상점들은 문을 닫은곳이 많아 아쉬웠더랬다. 반대로 파리 중심가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어쩌면 일년내내 이방인으로 북적이는 파리에서 정작 소외되는것은 파리 시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마 파리지앵들은 그토록 시크한것일지도. 프랑스 대통령 조르쥬 퐁피두의 이름이 붙여진 이 귀여운 건축물.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영국인 리차드 로저스가 설계한 이 곳. 내가 좋아하는 짙은 에메랄드 빛깔을 띤 길고 둔탁한 파이프로 무장한, 마치 건물의 안과 겉을 뒤집어 놓은듯한 설계의 퐁피두 센터이다.
이 정도 무게감의 건축물이 아니 건축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설치 미술의 포스를 내뿜고 있는 퐁피두 센터인데 그 어떤 보호장치나 제재도 없이 모두가 지나다니는 인도에 마치 지하철 역을 삐집고 나온 환기구와 같은 친근한 모습으로 위치해있었다. 더 신기했던것은 건물을 지지하는 이 철골 구조 그 어디에서도 그 어떤 그래피티나 심술궂은 낙서, 덕지덕지 붙은 전단지 따위 찾아 볼 수 없었다는것. 마치 자신들의 도시를 찾아 온 이방인들에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는 이 도시의 상징이지 라고 말하고 있는듯. 근처를 거니는 이들의 얼굴에 가득한 새침한 표정에서 훌륭한 건축물을 갖는다는것이 얼마나 행복한일인지 부러웠고 감동스러웠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내부의 전시물이나 소장품때문만이 아니라 그 건물 외관 자체로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다는것은 그 건축물 자체에도 그리고 그것이 속한 도시에도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자랑스러운일이 아닐 수 없다.파리시가 외국 건축가들에게 맡긴 최초의 프로젝트. 건물이 설계된 1970년대에 사람들의 반응은 에펠탑에 대한 그것과 마찬가지로 시큰둥했다고 한다. 하지만 파리 시민들이 자신들의 고즈넉한 도시에 나타난 알록달록 생뚱맞은 파이프 덩이를 괴물처럼 여긴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그리고 20여년이 지나서 리차드 로저스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면서 퐁피두 센터는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지만 한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만나야하는 파리 사람들은, 혹은 내가 20년전에 파리에 살다가 피씨통신 번개팅에 나갔더라면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와 '퐁피두 센터의 첫번째와 두번째 하얀 통풍구 사이에 서있을게' 라고 약속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외진 곳 혹은 몹시 개방된 장소에 위치한 여타 파리의 명소와 달리 파리 4구의 협소한 도심에 자리 잡은 이 건축물의 일상성. 지극히 미래지향적이고 전위적인 이 건축물이 의외의 일상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것은 아마도 모든 크고 작은 집과 건물들이 심장처럼 지니고 있는 기술적인 요소들이 너무나 솔직하고 친근한 색상으로 밖을 향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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