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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Berlin 22_Berlin cafe 05_Double Eye




베를린은 생각보다 큰 도시가 아니었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를 근거로 서울의 물리적 크기가 무의식 깊숙히 자리잡은 상태에서 베를린의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여기서 여기까지가 이만큼 정도이겠지 예상하면 그 예상은 항상 보기좋게 빗나갔다. 잠실에서 종로쯤일거라 생각했던 거리는 그냥 잠실에서 건대 입구 정도. 종로에서 일산까지 라고 생각했던 거리는 그냥 종로에서 대학로 정도까지였다. 지하철에 오르고 내리는것이 너무나 편한 구조여서 잦은 이동으로도 피로감을 주지 않았던 작은 베를린, 그렇지만 구역마다의 느낌은 제각각이었다.  크로이츠버그 Kreuzberg 의 옆동네이지만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을거라 생각했던 쉐네버그 Schoneberg 지역은  그냥 정말 가까운 옆동네였지만 그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좀 덜 상업적이고 역동적인것 같으면서도 구석구석 크고 작은 가게들과 카페와 식당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었고 베를린의 다른 도시들보다 한박자 정도 쉬어가는듯한 여유로움이 있었다.  가장 큰 기대를 하며 찾아갔던 카페 Double eye도 이 동네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카시아 향기가 거리를 가득 메운 Akasien 이라는 이름의 거리였다. 이 날은 이 거리에 위치한  3군데의 카페에 갔다. 이 거리를 빠져나와 큰 대로변으로 나가면 1970년대 데이빗 보위와 이기팝의 근거지였던 Neues uper 에도 다다를 수 있다. 





그리하여 이곳은 카페 더블 아이.  커피가 맛있기로 유명한 베를린의 카페들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할 수 있는 이미 15년 이상 영업을 하고 있는 카페이다.  좁디 좁은 이 카페는 커피 맛도 맛이지만 가벼운 잔을 들고 금세 휘리릭 들이키는 에스프레소 감성에 가장 최적화된 공간이 아닐까 싶다. 엉덩이 붙일 의자는 물론이거니와 발디딜틈도 없다. 그렇다고 외부에 그럴듯한 테이블이 놓여져있는것도 아니다.  카페 앞을 지나가려면 아마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기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갔던 시간에는 그랬다. 





마치 사람들때문에 시야 확보가 안되어 공연히 카메라가 천장만 향했던것 같은 느낌이다.  좁은 카페의 내부도 여타 다른 유명한 카페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느낌이 있었다.  어떤 컨셉을 의도하고 트렌드를 따랐다기 보다는 그냥 그 자신답고 싶은 욕망위에 거슬러온 세월이 더해진 작은 개인 박물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곳은 손님으로 북적이지 않아도 휑하거나 쓸쓸한 느낌을 주지 않을것이다. 카페에 오랜 공백이 생기더라도 커피 머신위에 쌓인 얕은 먼지들을 휘이 불어내며 음악 버튼을 누르는 순간 커피 그라인더가 작동하고 커피 머신은 오래도록 참고 있던 숨을 뱉어내듯 스팀을 토해낼것이다. 마치 오래된 기관차가 증기를 뿜어내며 익숙한 궤도위에서 목적지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것처럼 이곳은 길을 잃지 않을것이다.  베네치아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유리공방 같은 느낌도 주었다. 공간을 가득 메운채 한곳에 시선이 꽂힌 사람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끊임없이 유리를 불어대던 장인들을 만나는 기분. 주문도 서빙도 일사천리, 손발이 척척맞는 스탭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그날의 주어진 일을 열심히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속에 녹아있던 자존심과 여유는 그 장소를 찾아 온 사람들의 만족감과 자부심마저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런 정수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정수대가 설치된 이 선반은 여러모로 이탈리아의 작은 카페들에서 손님들이 선채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엄지와 검지를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걸고 커피를 들이키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http://ashland11.com/114)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놓인 신문과 잡지들. 곱게 갈아진 홀 케인 슈가. 누군가가 마시고 간 커피.  주문받은 커피를 들고 비스듬하게 선반에 몸을 기대어 설탕을 넣어 섞은후 스푼을 접시에 얹고 아무 잡지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기사를 읽기 시작하며 커피를 들이켰을지 모를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커피잔과 물잔. 차가운 물로 입을 헹궈낸듯 사라지랴. 누군가의 혀끝에 고스란히 남았을 커피의 촉감이 느껴진다. 





포르투갈식 레몬 타르트가 보였지만 디저트 접시까지 들고 밖으로 나가기가 번거로울것 같아서 에스프레소 한 잔만 먹었다. 고맙게도 비스킷 하나를 얹어주었다.  이들의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누구라도 그랬을거다.  커피가 쫀득하다고 느껴지기엔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바디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때 그게 어떤 느낌인지 와닿지 않았는데 이 커피를 마시고 그게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추출되어 나온 미끈한 커피에 무슨 전분가루를 탄것처럼 초미세 커피가루를 좀 섞은것처럼. 꼬깃꼬깃한 액체의 밀도와 중량감. 탄산을 품은 콜라와 며칠간 열어 놓은 콜라의 차이.  은근한 과육이 씹히는 오렌지 주스와 오렌지맛 음료라고 하는 편이 나은 대용량 2리터 오렌지 주스의 차이일거다.  근데 설탕을 넣지 않은채로 한 입 마셔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커피가 맛있다고 하는 카페들은 공통적으로  코코아 같은 질감의 흑설탕을 사용하고 있었다. 설탕의 영향일까? 그럼 나도 이 커피집의 원두를 한번 사서 그런 설탕 넣고 만들어 먹고 싶다. 다음에 가면 꼭 사와야겠다.  





이 에스프레소는 1.5유로였다.  가장 맛있었지만 가장 싼 에스프레소였는데 가격때문에라도 사람이 많은건지도 모른다. 라떼 같은 경우도 2유로가 넘지 않았다. 바깥에 아무렇게나 걸터 앉거나 서서 마셔야 할때가 많으니 아마도 이렇게 맛있는데 1.5유로 밖에 안해 하다가도 앉을 자리 때문에 수긍할만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것 같다. 이 커피가 2유로라면 먹을까. 참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2유로면 좀 덜 맛있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인 2.5유로하는 편안한 테이블이 확보된 카페로 가게 될까. 그건 다음에 가서도 똑같이 맛있다고 느끼면 그때 고민해봐야겠다. 





대략 이런 풍경이다.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카페가 워낙에 좁아서 한명이 나오면 한명이 들어가야하는 구조.  근데 주문하고 좀 서있으면 커피는 금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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