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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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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5센트 동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성 야고보와 산티아고. 나에게는 건축이란 단어를 읊조리는 순간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수십 년 전의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씻겨 내려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집트 사막 도시의 진흙집들, 시작조차 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완성되지 않은'이라는 그럴듯한 명칭을 달고 관광객을 끌어모으던 룩소르 오벨리스크의 영악한 주초이다. 없어질 수도 있었지만 기어코 살아남은 존재들,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의 운이자 타자가 부여한 숙명이 뒤섞인 결과이다. 무너진 뒤에도, 다시 세워진 뒤에도,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건축물들은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늘 후세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건축은 영리한 예술품이다. 건축물이 새겨진 동전들은 늘 내 시선을 가장 확실하게 끌어당긴다. 단지 유명해서 성스러워서 아름다..
I'm off then_Julia von Heinz_2015 한국에서는 '나의 산티아고' 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이 영화. 제목만 보고서는 칠레가 배경인 줄 알았다. 아마도 그 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배경인 영화를 봐서 더 그랬던 듯. 영화는 극심한 과로로 무대에서 쓰러진 유명 배우 한스 페터가 3달 동안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극약 처방을 받고 집에서 뒹굴 거리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는 내용. 순례길에 오른다는 그의 결심을 저지해보려는 친구에게 '그럼 나 이제 떠날게' 라는 유쾌한 말을 남기고선 짐을 꾸린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의 원제목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정에 대한 순수한 설레임의 어조라기 보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있다가는 설득당해서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릴지 모르는 여정에 대한 두려움에 가깝다. 누군가는 답을 찾아 떠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