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2020. 2. 9. 07:26

 

 

매년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전의 12월과 1월은 그해에 개봉된 따끈따끈한 수작들을 의식적으로 챙겨볼 수 있는 신나고 즐거운 시기이다. 게다가 올해는 한국 영화가 본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같이 후보에 오른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는것이 훨씬 더 재밌었다. 후보작들을 구경하다보니 딱 한군데 남우 조연상에 후보를 올린 이 영화가 눈에 띈다. 사실 그냥 '미국인 톰 행크스'가 나오는 휴먼 드라마이겠거니 두시간 멍때리고 보는데 문제 없겠지 싶어서 보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물론 조연상은 브래드 피트가 10번을 타고도 11번을 탈 것이다. 오스카를 이미 두 번이나 거머쥔 톰 행크스이지만 이번엔 그래도 좀 아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연기였다. 연기 잘하는 톰 행크스가 하는 연기가 어떤 느낌인지 보통 우리가 알지만 톰 행크스는 사실 어디로 가버렸고 미국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나는 전혀 몰랐던 프레드 로저스라는 인물이 보였다. 톰 행크스의 연기가 그다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프레드 로저스라는 인물이 쉽지 않은 연기를 필요로하는 독특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그냥 톰 행크스의 연기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이라면 포레스트 검프처럼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마치 무슨 전기 영화 같지만 사실 결코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독특한 흡입력이다. 아픈 엄마와 자신과 여동생을 놔두고 떠난 아버지로 인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잡지 기자 로이드.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증오로 평생을 살아 온 그는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고 나서도 쉽게 주변에 따뜻한 눈길 하나 줄 수 없이 메말라있다. 직장에서도 그는 날이 선 인터뷰 기사를 쓰는 문제 직원이다. 그런 그에게 편집장이 던져 준 미션 하나가 유명한 방송인 프레드 로저스를 취재하는 것이다. 만인이 존경하는 유명인, 그냥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우라를 지닌 최불암 같은 인상의 그에 대해 그는 이전처럼 어떤 날카롭고 비판적인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로저스의 방송으로 시작해서 그의 방송 촬영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나지만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그 방송인 로저스를 취재하는 와중에 스스로를 치유하고 아버지와 화해하는 잡지 기자 로이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프레드 로저스 라는 인물이 그 시기의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선하고 값진 영향을 주었는지를 잡지 기자 로이드를 대표로 삼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로저스는 유능하고 인기있는 방송인이다. 그는 유명한 아동 프로그램을 30년 가까이 진행했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화면에 잡히는 그의 눈빛은 화면 밖의 모든 이들이 마치 나만을 보고 내 이야기도 들어줄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진실하다. 과연 저런 사람도 화를 내거나 분노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높낮이 없고 조곤조곤한 말투, 조금의 나쁜 먼지도 이상한 냄새도 풍길 것 같지 않은 정갈한 움직임, 그는 나를 질투하거나 나를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타자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로이드는 늘상 사람을 만나고 그를 경청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하는 잡지 기자이지만 동생의 결혼식에 찾아 온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할말이 있다는 아버지와 결국 몸싸움을 벌이고 만다. 그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를 끝끝내 거부한다. 그렇다고 로저스가 완벽한 인격을 지닌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선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선에서 그의 인생도 자유롭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조명이 꺼진 촬영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 몇 번 쾅쾅 내려치는 방식으로 그는 어쩌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신의 어떤 부분을 게워낸다. 그것은 어쩌면 화가 나서라기 보다는 화를 다루려는 노력 자체에 지쳤을때 그가 사용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로이드가 마냥 부족하기만한 성격 파탄자인 것도 아니다.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한 사람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주변의 가족 나아가서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는 자신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그들에게 건강한 영향을 주고 스스로도 성장하기 위해 매일매일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한 명은 현재의 삶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데 쓰여야 할 에너지를 줄곧 지나가버린 것들을 분노하는데에 쓴다는 것이다.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누구나 정말로 화가 날때가 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아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때로는 상대가 능동적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올때조차도 언젠가 나를 화나게 했던 그 과거의 순간을 일부러 상기시키며 감정을 버퍼링 상태로 놓아두며 마음을 꼭꼭 닫아두면서 어떤 승리감에 젖는다. 우리의 말 한 마디, 내가 고르는 단어 하나, 표정 하나가 매사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아직 어린 아이라면 역시나 때로는 이해받아야 할 존재일뿐인 어른인 우리도 항상 상냥하고 따뜻한 말과 표정으로만 그들을 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린 우리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은데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으면 그 미숙함은 더해진다. 영화 속에서 로이드와 로저스가 식당에서 얼마간의 침묵을 유지하며 온 주변이 마치 진공상태가 되는 듯한 순간이 있다. 화가 나는 순간에 그 촛점을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돌려 완벽한 침묵의 경지에 이르러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내 인생 곳곳에 자리잡은 짧지만 부정적인 어떤 순간을 온전히 나 스스로의 영향력 안에 가두고 지배하고말겠다는 자유 의지. 나도 매순간 기억하고 싶다. 화를 내야겠다는 욕망이행복에의 의지를 압도하려는 순간의 스위치는 결국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Uncut Gems (2019)  (0) 2020.03.13
The Lighthouse (2019)  (0) 2020.03.12
Born to Be Blue (2015)  (0) 2020.02.28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  (0) 2020.02.09
Taxi driver (1976)  (0) 2020.02.06
1917 (2019)  (0) 2020.02.03
About a boy (2002)  (2) 2020.01.29
Being Flynn (2012)  (0) 2020.01.27
Posted by 영원한 휴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Film2014. 1. 6. 05:54


<Captain Phillips>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카트린느 드뇌브 같은 배우들이 한때 절대미의 기준이었고 많은 이들의 뮤즈였겠지만

더 아름답고 멋있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는 캐서린 키너나 샤를롯 램플링 같은 배우들 같다.

중성적인 생김새와 낮은 톤의 목소리, 목소리에 객관적 혹은 중립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절제된 캐서린 키너의 목소리는 항상 상황을 관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위험에 처한 남편과의 절절한 통화나 무사 귀환한 남편과 온 가족이 부둥켜 안고 조우하는 뻔한 장면은 없었고

캐서린 키너가 톰 행크스와 나누는 짧고 굵은 포옹과 남편을 내려주고는 쌩하고 사라지는 첫 장면은

마치 3인칭 관찰자의 느낌을 주는 캐서린 키너의 무덤덤한 시선까지 더해져서

이 영화가 평범한 미국 시민의 영웅담을 보여주는 감상적인 영화는 되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를 하게 했다.

그들이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나누는 짧고 일상적인 대화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은 가장의  전형적인 고민과 

그런 남편과 자식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정신적인 가장인 캐서린 키너의 담담함을 보여준다.

출항을 앞두고 긴장된 표정으로 운전을 하는 톰 행크스를 그녀가 위로한다. '모든것이 잘 될거야'라고.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고민과 문제점들이 우리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어질 수 없다는것을 알았을 때

우리가 내뱉을 수 있는 유일한 주문 같은 것.

해적인 무세도 필립스 선장도 안타깝게 되뇌이는 습관적인 주문.

거대한 바다에 위태롭게 정박한 선박. 국가라는 시스템에 조립된 작은 부품일뿐인 우리.



배에 올라탔을때의 선장은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오 마이 캡틴'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 역시도 언제까지 이짓을 해야하냐며 푸념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며 피곤한 가장일뿐이다.

생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에 달콤하게 늦잠을 즐기는 소말리아인 무세 역시 인력 시장에 내던져진 하루살이 일꾼일뿐.

 필립스 선장을 미국 네이비실이 비호하고 소말리아 해적 무세가 보스들에게 철저하게 버림당하지만

사실 그들 둘의 모습은 완벽하게 대구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하면 선장이 될 수 있었던 자기 세대와 일자리 하나에 수십명이 몰리는 현실을 비교하며 자식 걱정을 하는 필립스.

무장한 깡패들이 지프를 몰고 등장하면 이들 소말리아 사람들은 돈을 쥐어주면서까지 너도나도 배에 타려 안간힘을 쓴다.

덜 세련되고 덜 원시적인 차이가 있을뿐 생존을 위한 경쟁의 본질은 똑같다.



우리가 속한 국가라는 거대 조직과 그 수십의 조직들이 이권을 다투는 세계 정세를 우리가 속속들이 알기란 어렵다.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아프리카로 실어나르는 구호 물자와 식량들이 과연 정말 빈국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까.

강대국의 원양 어선 때문에 영세 어부들의 어획량이 줄고

잘사는 나라들에서 쏟아지는 잉여 음식들이 아프리카로 무분별하게 쏟아지면 실제 아프리카의 소농들이 살아갈 여력을 잃는다.

구호 물자라는 약물이 지속적으로 조금씩 투여되면 궁극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은 자생력을 잃을것이고

과도 정부나 테러 단체들이 강대국의 사탕 발림에 넘어가며 맺어진 불평등 조약으로 그들은 결국 불구가 될것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한 강대국들이 끼리끼리 동맹을 맺고 영토를 잠식하며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확대할 야먕을 펼치는데 가장 적합한 곳.  

백년후의 아프리카 지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직선의 큼직한 국경선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캐스트 어웨이>와 <터미널> 

그 대상이 대자연이든 고독이든 국가이든 그는 항상 홀로 싸운다. 

한 두번 잘 연기하면 비슷한 역할이 들어오는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톰 행크스도 이런 느낌의 배역이 싫진 않은 모양이다.

이 영화를 보고선 절정이라고 느껴졌는데 평범한 소시민인 톰 행크스가 멋지게 위기를 모면해서가 아니라

'혼자 죽도록 고생했는데 뭐야 이제와서 날 구해낸 척 생색내는 이것들은' 이라고 어느때보다 처절하게 말하는것 같아서였다.

톰 행크스가 조만간 국가 전복의 야망에 불타는 전직 정보 기관 요원이라던가 무정부주의자 혹은 

<인 투더 와일드>의 크리스토퍼처럼 모든것을 다버리고 알래스카로 들어가는 이상주의자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란다.

그는 정의에 불타는 강한 미국 시민이라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강한 나라에서 그들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속에

세뇌되어진 전형적인 미국인을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항상 들기때문이다.






Posted by 영원한 휴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