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11.11 A Better life (2011)
  2. 2019.02.20 La melodie (2017)
Film2019. 11. 11. 21:35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을 보다가 머릿속으로 급소환 된 프랑스 영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느 가족>의 엄마 면회 장면이 발단이었다. Guilliaume Canet. 매번 구일리아움? 귈레르메? 뭐 이렇게 저렇게 읽다가 얼굴을 봐야 아 기욤이였지 하고 뒤늦게 인식하게 되는 이 프랑스 배우. 나름 원어를 최대한 살린 한국식 표기이겠지만 왠지 프랑스 시골에 가서 당신 나라의 유명한 배우 기욤 까네 알아요 하고 현지인과 나름 친해지겠다고 이름을 내뱉으면 정말 아무도 못알아들어서 멋쩍어질 것 같은 배우 기욤 까네가 출연한 프랑스 영화이다. 헥헥. 사실 그가 요리사로 나왔던 어떤 영화를 이전에 본적이 있어서 아 혹시 이미 본 그 영화인가 긴가민가 하며 보기 시작했지만 풀죽은 월급쟁이 요리사가 자기 식당을 차려서 희망찬 삶을 시작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식당을 차리기 위해 여기저기서 무지막지하게 대출을 끌어쓰다가 폭망하고 모든게 꼬일대로 꼬여서 결국 캐나다로 도피까지 하게 되는 사실상 몹시 암울한 영화.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요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과연 행복한 삶과 더 나은 삶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것일까. 재정적인 독립은 얼마만큼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혹시 환상이 아닐까.  인간과의 끈끈한 감정적인 결속만이 결국 가장 순수한 형태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과연 그런식의 행복만으로 우리 인간은 만족할 수 있을까. 결국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은 완전치란 없이 무한히 확장되기에 끝없이 채우고 또 채워야만 하는 블랙홀 같은 것, 상대적 불만족을 합리화하는 대체어가 아닐까. 

요리사 얀은 새로운 직장을 찾아나섰다 웨이트리스 나디아를 알게 되고 둘은 연인이 된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함께라면 뭔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영감과 용기를 얻은 이들은 때마침 매물로 나온 호수 앞 건물을 운명처럼(이라고 생각하며) 마주치게 되고 자신의 식당을 차릴 꿈에 부푼다. 많지 않은 월급에 모아 둔 돈도 없는 이들에게 유일한 대안은 대출. 건물을 사기 위해 적지 않은 대출을 받고 선금을 내기 위해 또 대출을 받고 식당 인테리어를 위해 또 대출을 받으며 결국 한 달에 몇 천유로에 육박하는 대출 이자를 감당해야 할 상황이 되지만 관련 법규에 맞지 않은 식당 설비와 인테리어로 식당 영업은 불가능하게 된다. 대출 상환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 법규에 맞게 고치려면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이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 상황. 결국 업자를 만나 헐값에 식당을 되팔고 빚더미에 앉은 이들은 현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분열하기 시작하고 나디아는 자리잡을때까지만 아들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고는 캐나다 취업길에 오른다. 하지만 한 달 후를 기약한 나디아는 연락이 없고 얀은 여자친구의 아들을 건사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얀이 식당을 되파는것을 도와준 은인 행세를 한 남자는 알고보니 고리대금에 하층민으로부터 월세를 착취하고 사는 남자, 얀은 결국 그를 강도할 계획을 세우고 훔쳐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나디아의 아들 슬리만과 캐나다로 도주한다. 연락이 끊긴 나디아는 알고보니 마약 판매책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다. 나디아는 차마 아들을 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얀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그들은 눈물로 상봉한다. 얀은 변호사를 구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근처 식당에 취업한다. 이들이 얼마나 더 끔찍한 상황에 놓일지 보게 되는 것이 불안하여 영화가 끝나려면 얼만큼 남았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하지만 엄마없이 남은 소년 슬리만에 대한 진심어린 동정과 끝까지 나디아를 포기하기 않고 찾아내려는 얀의 노력은 희망적이었다. 어느 가족의 가짜 엄마와의 면회 장면과 나디아와 친아들의 조우 장면은 사실 그 상황 자체가 확연히 다른듯 보이지만 더 이상 엄마로써의 역할을 해줄 수 없음을 인정해야함에 있어서는 똑같이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서 아마 이 영화가 떠올랐을거다. 

얀과 나디아의 아들 슬리만이 잠시 머무는 카페 장면이 있는데 이곳이 탕웨이가 만추에서 갔던 카페랑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감옥에서 출소해서 탕웨이가 들어서는 카페가 우울감 가득한 영화 속에서 가장 고요하고 안정적인 정취를 불러 일으켰듯 힘든 상황이지만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길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얀이 잠시 현실에서 도피하여 바닷가에 머물며 유쾌한 웃음을 나누는 이 장면은 이들에게 더 큰 불행이 닥치는 것은 아닐까 끝없이 음울해지는 와중의 영화 속에서 잠시 한 숨 돌리며 마음을 쓸어내리게 해주는 따사로운 장면이었다. 

세상은 살기 다급한 사람들의 약점을 안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잘 살고 싶은 사람들, 모험을 하지 않으면 이 생애에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급한 사람들의 움직임에 온 촉각을 내세우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무서운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비단 고금리 대부업체나 사기꾼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불행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은 마치 모두가 그처럼 살아야할것처럼 자신의 성공담을 팔아먹고 꼭 막다른 길목에 놓인 불우한 사람들이 아니어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을 뒤돌아보며 더 나은 인생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다. 이 세상에 '더 나은 삶'보다 강력한 떡밥은 없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돈을 벌고 돈이 없으면 그런 삶은 불가능해보이는데 돈을 벌고나도 이미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기 힘드니 문제다. 어쩌면 얀은 감당하지 못할 변호사 비용을 치르고도 나디아의 무죄를 증명하지 못해서 그들은 지쳐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인생이 그렇게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때에도 최소한 함께이기에 덜 불안하고 덜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덜 불행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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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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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19. 2. 20. 21:19


La melodie_Rachid hami_2017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점점 잦아 진다. 최근 들어서 부쩍 자주 그러는듯. 심지어 배우나 감독 이름을 몰라서 영영 기억해내지 못하는 영화가 있을 정도. 영화 내용을 대충 적었을 때 검색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학창시절에는 영화를 보고나면 작은 수첩에 기본 정보 정도는 기록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때처럼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조차 잊고마니 우스울 뿐이다. 가끔 보는 프랑스 영화들은 특히나 배우나 감독의 불어 이름들이 입에 붙지 않아서 기억하는데에 더 애를 먹는다. 이렇게 한 번 정도 쓰면서 되새겨보는 이 영화는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파리의 초등학교 음악 수업에 강사로 초대 받는 어떤 바이올린 연주자. 얄미울 정도로 짖궂고 건방진 아이들에게서 그래도 말썽부릴 에너지와 의지라도 느껴지지만 이 음악 교사는 이미 너무 무기력하다. 연습실이 누전으로 불에 타버려 아파트 옥상에 모여 같이 연습을 한다거나 부모들 스스로 십시일반 연습실을 만드는 등의 드라마를 보여주며 활도 제대로 잡지 못했던 아이들이 결국 커다란 무대에서 멋진 공연을 하는 것으로 부랴부랴 결론을 맺긴 하지만 감독 자신은 따뜻하고 감동적인 드라마와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지닌 비판적 이야기 사이에서 어디에 좀 더 비중을 둬야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등장하지만 스쿨 오브 락에서의 잭 블랙의 패기나 유치원에 가서 좌충우돌하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특유의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휘어 잡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로빈 윌리엄스 같은 캐릭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 (https://ashland11.com/166)이나 마티유 카소비츠의 증오와 같은 어둡고 무거운 영화들을 보고 자란 감독이 노골적이고 불안한 선배들의 카메라 앵글을 연습하며 클래식 음악과 아이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말랑말랑하게 프랑스 사회의 분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 차라리 음악 부분을 더 강조했다거나 더 탄탄하고 무기력한 갈등 구조를 만들었으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뭔가 아슬아슬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을 주다가도 결국 여러 번 봄직한 온화한 이야기들로 급하게 끝이 나서 조금 아쉬웠다. 영화의 배경은 아마도 이민자들이 주를 이루는 중하층민들이 몰려 사는 동네의 학교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조금 더 많은 문화적 혜택을 주려고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별로 흥미가 없고 집에서는 바이올린 연습 소리가 시끄럽다고 타박을 하는 것이 부모의 문화적 수준이다. 아이들은 중년의 바이올린 교사가 자기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소통하지 못한다. 바이올린 교사가 알제리인 아빠와 프랑스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되자 노르망디 사람인 줄 알았다고 놀라워 하는 장면이 그렇다. 그 순간 그들은 일종의 동질감을 느낀다. 많은 이들이 파리의 에펠탑을 보려고 모여든다. 허름한 아파트여도 최소한 집에서 에펠탑이 보이는 위치에 살고 있다는 것으로 일종의 자조섞인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면 에펠탑이 어떤 무소불위의 원심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느껴진다. 마티유 카소비츠가 증오를 만든지 20여년이 지났는데 이 영화는 심지어 증오에 나온 인물들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 분명 오랫동안 프랑스에 살고 있고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프랑스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계속 겉도는 모습을 비추며 과연 20년이란 시간동안 우리는 어떤 변화를 이끌어 냈는가 자문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 명의  지휘자와 100명이 넘는 연주자가 화음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에서 서로 다른 악기들과 사람들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1/3이나 차지하는 바이올린 파트만 딱 떼어놓고 봐도 그렇다. 같은 악기, 같은 악보를 보는 사람들에게서도 항상 완벽한 화음을 기대하긴 어려울거다. 아이들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어쩌면 아이들이 별다른 문제없이 공통적으로 구사하는 프랑스어 같다. 때로는 철자를 틀리기도 한다. 미세한 억양도 다르겠지. 집에서는 코티드부아르의 음식을 먹고 유명한 축구 선수의 이름으로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정도만 환기시킬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같은 언어를 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사실이 완벽한 화합과 상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낯선 나라의 이방인으로 그 나라 국민들과 같은 말을 쓰며 더불어 산다는 것의 안락함과 따스함을 몸소 체험하고 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가늠해보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마트 계산대 앞에서 나에게 감자를 던지며 너네 나라로 가라고 한다면 정말 참담할 것이다. 한국에 속속들이 발을 들여놓고 있는 어떤 이방인들과 한국인으로 태어나는 어떤 아이들의 미래가 영화 속 아이들의 모습에 겹쳐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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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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