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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A Better life (2011)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을 보다가 머릿속으로 급소환 된 프랑스 영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느 가족>의 엄마 면회 장면이 발단이었다. Guilliaume Canet. 매번 구일리아움? 귈레르메? 뭐 이렇게 저렇게 읽다가 얼굴을 봐야 아 기욤이였지 하고 뒤늦게 인식하게 되는 이 프랑스 배우. 나름 원어를 최대한 살린 한국식 표기이겠지만 왠지 프랑스 시골에 가서 당신 나라의 유명한 배우 기욤 까네 알아요 하고 현지인과 나름 친해지겠다고 이름을 내뱉으면 정말 아무도 못알아들어서 멋쩍어질 것 같은 배우 기욤 까네가 출연한 프랑스 영화이다. 헥헥. 사실 그가 요리사로 나왔던 어떤 영화를 이전에 본적이 있어서 아 혹시 이미 본 그 영화인가 긴가민가 하며 보기 시작했지만 풀죽은 월급쟁이 요리사가 자기 식당을 차려서 희망찬 삶을 시작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식당을 차리기 위해 여기저기서 무지막지하게 대출을 끌어쓰다가 폭망하고 모든게 꼬일대로 꼬여서 결국 캐나다로 도피까지 하게 되는 사실상 몹시 암울한 영화.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요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과연 행복한 삶과 더 나은 삶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것일까. 재정적인 독립은 얼마만큼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혹시 환상이 아닐까.  인간과의 끈끈한 감정적인 결속만이 결국 가장 순수한 형태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과연 그런식의 행복만으로 우리 인간은 만족할 수 있을까. 결국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은 완전치란 없이 무한히 확장되기에 끝없이 채우고 또 채워야만 하는 블랙홀 같은 것, 상대적 불만족을 합리화하는 대체어가 아닐까. 

요리사 얀은 새로운 직장을 찾아나섰다 웨이트리스 나디아를 알게 되고 둘은 연인이 된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함께라면 뭔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영감과 용기를 얻은 이들은 때마침 매물로 나온 호수 앞 건물을 운명처럼(이라고 생각하며) 마주치게 되고 자신의 식당을 차릴 꿈에 부푼다. 많지 않은 월급에 모아 둔 돈도 없는 이들에게 유일한 대안은 대출. 건물을 사기 위해 적지 않은 대출을 받고 선금을 내기 위해 또 대출을 받고 식당 인테리어를 위해 또 대출을 받으며 결국 한 달에 몇 천유로에 육박하는 대출 이자를 감당해야 할 상황이 되지만 관련 법규에 맞지 않은 식당 설비와 인테리어로 식당 영업은 불가능하게 된다. 대출 상환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 법규에 맞게 고치려면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이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 상황. 결국 업자를 만나 헐값에 식당을 되팔고 빚더미에 앉은 이들은 현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분열하기 시작하고 나디아는 자리잡을때까지만 아들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고는 캐나다 취업길에 오른다. 하지만 한 달 후를 기약한 나디아는 연락이 없고 얀은 여자친구의 아들을 건사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얀이 식당을 되파는것을 도와준 은인 행세를 한 남자는 알고보니 고리대금에 하층민으로부터 월세를 착취하고 사는 남자, 얀은 결국 그를 강도할 계획을 세우고 훔쳐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나디아의 아들 슬리만과 캐나다로 도주한다. 연락이 끊긴 나디아는 알고보니 마약 판매책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다. 나디아는 차마 아들을 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얀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그들은 눈물로 상봉한다. 얀은 변호사를 구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근처 식당에 취업한다. 이들이 얼마나 더 끔찍한 상황에 놓일지 보게 되는 것이 불안하여 영화가 끝나려면 얼만큼 남았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하지만 엄마없이 남은 소년 슬리만에 대한 진심어린 동정과 끝까지 나디아를 포기하기 않고 찾아내려는 얀의 노력은 희망적이었다. 어느 가족의 가짜 엄마와의 면회 장면과 나디아와 친아들의 조우 장면은 사실 그 상황 자체가 확연히 다른듯 보이지만 더 이상 엄마로써의 역할을 해줄 수 없음을 인정해야함에 있어서는 똑같이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서 아마 이 영화가 떠올랐을거다. 

얀과 나디아의 아들 슬리만이 잠시 머무는 카페 장면이 있는데 이곳이 탕웨이가 만추에서 갔던 카페랑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감옥에서 출소해서 탕웨이가 들어서는 카페가 우울감 가득한 영화 속에서 가장 고요하고 안정적인 정취를 불러 일으켰듯 힘든 상황이지만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길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얀이 잠시 현실에서 도피하여 바닷가에 머물며 유쾌한 웃음을 나누는 이 장면은 이들에게 더 큰 불행이 닥치는 것은 아닐까 끝없이 음울해지는 와중의 영화 속에서 잠시 한 숨 돌리며 마음을 쓸어내리게 해주는 따사로운 장면이었다. 

세상은 살기 다급한 사람들의 약점을 안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잘 살고 싶은 사람들, 모험을 하지 않으면 이 생애에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급한 사람들의 움직임에 온 촉각을 내세우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무서운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비단 고금리 대부업체나 사기꾼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불행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은 마치 모두가 그처럼 살아야할것처럼 자신의 성공담을 팔아먹고 꼭 막다른 길목에 놓인 불우한 사람들이 아니어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 역시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을 뒤돌아보며 더 나은 인생에 대한 청사진을 그린다. 이 세상에 '더 나은 삶'보다 강력한 떡밥은 없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돈을 벌고 돈이 없으면 그런 삶은 불가능해보이는데 돈을 벌고나도 이미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기 힘드니 문제다. 어쩌면 얀은 감당하지 못할 변호사 비용을 치르고도 나디아의 무죄를 증명하지 못해서 그들은 지쳐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인생이 그렇게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때에도 최소한 함께이기에 덜 불안하고 덜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덜 불행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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