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영화 좋다. 누가 나왔어도 봤겠지만 매즈 미켈슨이 나와서 더욱 기다렸다 봤다. 사실 그가 이 영화에 몹시 잘 어울릴것이라는 예감 자체가 영화의 첫인상이다. 이 배우가 어떤식으로 처절하게 고생하는지 보고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즈음에서 재난 구조 영화 한 편 찍으시면 딱 좋을 것 같은데요' 라는 제안을 받은 매즈 미켈슨이 현장에 도착해서는 산악용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빨간 패딩을 입혀주는 스텝을 향해 팔을 벌린채 몇 문장 안되는 대사를 반복해서 연습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영화 내내 대사없이 누워있는 여배우를 제외하면 유일한 등장인물인 그는 단 한 벌의 의상을 입고(심지어 나중에는 그마저도 손수 불태우며)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짧은 대사를 내뱉으며 북극의 설원을 고독하게 누빈다. 북극에 조난당해서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남자와 사소한 대화를 주고받을 이렇다할 상대 배우도 없이 혼자서 영화를 끌고 나가야하는 배우. 영화보는 내내 촬영 현장의 유일한 배우로서 수많은 스탭들에 에워싸인 그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내가 영화에 이입된건지 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에 이입한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재난 영화의 문법대로 처절하게 고생하지는 않았다. 그런고로 손에 땀을 쥐게하는 흥미진진함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영화들에 익숙해져서 결국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야 말것이라 생각하며 봤기 때문인지 하루 온 종일 좌절과 희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을 인물의 심리에 철저하게 몰입되었던건지 결국은 시종일관 긴장을 하면서 보았다.
캐스트어웨이나 마션, 그래비티, 문, 127시간,식스빌로우 등등등 기후도 상황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극한 상황,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에 맞서는 고독에 대한 서사,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적극적인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조난 당한 인물의 이야기는 사실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대부분은 조난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복선을 깔아놓는 동시에 그 역경을 감당해내야하는 인물의 성격에 대해 조금 훑어주고 구조된 이후의 이야기로 훈훈하게 끝을 맺고 실화를 토대로 한 경우라면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실존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저런 악몽을 겪은 사람에게 힘겹게 쟁취한 새 삶은 어떤 모습일까 다시금 가늠하게하면서 드라마를 극대화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 모든것이 생략되어있다. 북극판 캐스트 어웨이인가 라고 생각하고 싶다가도 주인공이 낯선 상황속에서 적응해가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심지어 재미를 느끼고 대리만족을 경험하게하는 생존 에피소드는 턱없이 부족하고 톰 행크스의 배구공 윌슨처럼 조금 오그라들지만 나라도 저런 상황에선 별반 다르지 않았을거야 라고 타협하게 되는 장치들은 더더욱 없다.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다 돌아와서 후배들에게 우주 생존기를 설파하는 맷데이먼처럼 북극에서 송어를 잡아 먹고 살아남은 그의 북극 이후의 삶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물론 제발 저 북극곰과 온 몸으로 맞서서 혈투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길 바랬고 다행히 북극곰에게 그 정도 분량을 주진 않았지만 북극곰 카드는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의 드라마와 서사를 시도한 흔적은 역력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히려 사색적이다.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을 분명히 보여주지만 희망적인 자세로 현실에 맞서는 것에 이미 피로한 인간의 모습이 나에게는 오히려 더 눈에 들어온다. 하얀 설원을 마주하고 철저하게 혼자임을 인식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생각은 어떤것일까. 그의 하루는 도대체 얼마나 길었을까. 인간은 정말 저런 상황속에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오히려 이 정도면 됐어라고 미련없이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결국 살아남는 것이 인간이며 우리는 그토록 강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학습된 결과가 아닐까. 영화는 사실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영화 속의 남자가 조난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영화가 <인투더와일드>식으로 끝이난것이라면 더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모든것을 했다는 생각이 목적지에 도착한 그에게 안식과 평온온함 주었을거다. 나에게는 그것이 좀 더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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