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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tockholm (2018)

스톡홀름의 찻집에서 친척언니가 사다 준 홍차통이 있다. 그래서 부엌에 가면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 스톡홀름의 정경과 매일 마주친다. 여름인가 카페에서 읽은 커피 매거진 속의 스톡홀름의 카페들도 가끔씩 떠올린다. 아마 그래서 이 영화제목이 눈에 들어왔을거다. 하지만 영화를 봐야겠다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에단 호크 때문이었다. 브래드피트와 디카프리오, 조니뎁 혹은 크리스챤 슬레이터가 한창 젊었을때 내가 좋아했던 그 또래의 청춘 스타는 에단 호크였다. 포스터 속의 가발을 쓰고 콧수염을 붙인 저 인물이 과연 에단 호크가 맞는지 재차 확인해야했다. 여전히 많은 작품을 하고 있고 나이든 지금의 모습에 익숙해졌음에도 알아보지 못할 얼굴이었다. 영화를 보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가 심지어 은행 강도 역을 맡았다는것을 알게되었다. 과연 어울릴까? 영화 속에서 은행 강도들은 보통은 주연이다. 아무리 그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제발 은행 직원이 땅바닥을 기어다니다가 경보 장치를 누르지 않기를, 호기로운 은행 고객이 괜히 그들을 제압하겠다고 섣불리 행동하지 않기를, 제발 긴장해서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기를, 주인공은 흥분해서 사람을 죽이는 실수만은 하지말고 필요한 것만 잘 챙겨 유유히 빠져나가서 하바나든 바하마든 어디로든 가서 잘살기를 등등 바라게 된다. 은행 털이에 관한 영화들은 사실 너무나 많아서 그런 장르가 따로 있더라도 놀랍지 않을 정도이다. 영화 전체를 그들의 한탕을 보여주는데 할애하는 완전 은행 털이 영화들이 있고 은행 털이가 주인공들의 수없는 나쁜 짓 중의 하나인 에피소드처럼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내 인생 최초의 비디오 테잎이었던 제라르 드파르디유의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 아마도 가장 매력적인 은행 강도로 남을 킴 베이싱어의 리얼 멕코이,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 기저귀 강도범 니콜라스 케이지가 수줍고도 얼빵하게 들어서는 작은 마을 은행 털이는 또 얼마나 유쾌했었나. 조금 다른 방식의 은행 털이 영화 스파이크 리의 인사이드맨, 그리고 은행 씬부터 시가 총격전까지 숨막히는 리얼타임 액션씬을 보여주는 마이클 만의 히트 등등. 금방 떠오르는 은행 클래식들만 해도 수두룩하다. 영화는 그들을 좀체 악랄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오히려 할 수 있는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으로써의 그들의 삶에 연민을 느끼게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 속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식품 몇개 훔친다고 해서 동네 마트가 망하진 않을거라는게 어린 소년을 도둑질하게 하는 어른의 철학이다. 우리는 주문을 외우는 어린 소년이 슬쩍 한 물건을 들고 무사히 가게밖으로 빠져나가기를 바라지만 이제 나쁜짓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은행 털이들이 돈가방 몇개 채우고 채권을 쓸어담아도 그것은 은행이 망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왜냐면 은행은 생각보다 부자고 영리하니깐. 어쩌면 그런 무의식중의 반감이 이 은행털이들을 미화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영화들에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범죄고 그들은 범죄자일뿐이다. 그러니 우습게도 이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착잡해진다.  

제목과 은행 강도라는 설정만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게 된 스톡홀름의 은행 인질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실제 인질로 잡혀있다 풀려 난 은행 직원들이 범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에 이르렀다는데 그런 강도역에 에단 호크는 그래서 의외로 잘 어울렸다. 미화된 캐릭터인 것을 알면서도 이 영화가 그로 인해 어쩌면 조금은 지적이고 시적인 은행털이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예감했다. 아니나다를까 그들은 좁은 은행 사무실에 바닥에 앉아 밥딜런의 노래를 읊었다. 영화 속의 은행 강도에게 연민과 매력을 느끼다니 결국 세상의 무수한 은행 털이영화 제작에는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밑밥이 깔려있는걸까. 인질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라는 결론에 설득력을 심어주려고 했던건지 범인들과 대치하는 경찰과 정부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재수없다. 우리 그냥 돈 좀 챙겨서 유유히 떠나게 해달라는 강도들은 어쩌면 인질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사람들이고 그들과 대치중인 사람들은 오히려 '쟤네 말만 저렇게 하지 설마 죽이진 않을거야'라는 안일한 자세로 절대 손해보지 않겠다는 식으로 행동하니 그 모든 협상을 지켜보고 있던 인질들은 당연히 범인들에게 감화될 수 밖에 없었을거다. 만약에 인질로 잡혀있는 내가 비정규직 직원이었거나 이미 정리해고통보를 받았다거나 마음에 안드는 상사밑에서 하루하루 고통속에서 일하는 중이었다면 망할놈의 직장 될대로 되버리라지라는 을의 심정이 되어 은행을 털겠다고 들어 온 철딱서니 없는 도둑에게 혹시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는게 아닐까? 영화가 얼마나 실제에 근거했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것이 영화를 위한 과장된 허구의 감정이라고 한다면 실제 인질이었던 여자는 명예훼손으로 영화 제작사에 소송을 걸고도 남을 일이다. 누미 라파스가 연기한 인질과 에단 호크 사이에 오고가는 감정은 단지 범인에게 비합리적으로 동화되는 인질의 감정으로만은 볼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다보니 한 배를 타게 된 이들은 여자는 여자대로 강도는 강도대로 자신의 인생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목숨이 담보로 잡힌 인질의 약자로써의 일방적인 동화라기 보다는 동시에 위기에 직면한 이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는 상태로 보아야하지 않을까. 인질로 잡힌 누미 라파스는 은행으로 불려온 남편에게 냉장고에 있는 청어를 기한내에 어떻게 먹어야되는지 침착하게 설명해준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가장 잘 살린 부분이지만 실제 그런 상황에서 냉장고속의 청어가 생각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여자가 순간적인 쇼크로 죽음에 초연해진 것인지 많은 것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려놨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안부만 묻는 아내에게 남편은 서운한 기색을 비친다. 강도에게 우호적이 되어가는 그녀의 행동이 조금은 남편과의 밋밋해진 관계탓일지도 모른다는 설정을 집어넣은 것도 같다. 이들에게 본능적으로 이성간의 감정이 싹튼것인지 가장 강력하게 그들이 심리적으로 결합하는 부분은 협상에 소극적인 경찰을 자극하기 위해 방탄 조끼를 입힌 그녀에게 총을 쏘는 장면이다. 여자는 두렵지만 절대 죽지 않을거라는 말에 기꺼이 응한다. 범인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채 결국 감옥에 수감되고 여자는 해변에서 뛰어노는 남편과 아이들을 보며 범인을 회상한다. 감옥에 갇힌 남자의 일상은 오히려 평범하고 아늑해보인다. 남편과 아이들의 품으로 돌아간 그녀는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뭔가가 그녀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음이 보인다. 한편으로는 슬펐다. 그것이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한없이 일시적이고 현실도피적인 감정에서 기인한것이라면 그것이 말그대로 신드롬에 불과한것이라면 갇혀버려서 자유롭지 못한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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