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색으로 쓰인 영화 제목이 전체적으로 차갑고 엄격한 포스터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며 눈에 확 들어왔다. 난 이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가 무슨 현대판 무소르그스키 전기 영화쯤 되려나 생각했다. 레핀이 그린 빨간 코 무소르그스키와 너무 닮지 않았는가. 비록 남자는 술 대신 우유를 들고 비교적 말끔한 차림새에 또렷한 눈빛을 하고 있지만 왠지 무소르그스키의 인생 말미가 떠올라서 서글퍼졌다. 제발 우유를 든 이 남자의 삶은 순탄하기를 바랐다. 이 영화는 공항의 수화물 파트에서 일하는 남자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헤비메탈을 즐겨 듣고 금요일마다 태국 식당에 가서 팟타이를 먹고 전쟁 장면을 재연하는 미니어처들을 섬세하게 손질하며 여가를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우유에 시리얼 말아먹기를 좋아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엄마와 사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남자와 관련된 많은 사실들을 지루하게 열거했고 어떤 사실들은 이 남자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이 남자의 정체성과 성격을 가늠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팩트는 결국 가장 마지막 한 줄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성인이 된 후에도 독립하지 않는 것을 크게 문제시하지 않지만 리투아니아도 그렇고 이들 나라들에서는 나이 들어서도 아직 부모와 산다는 그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을 설명해 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한 줄이 된다. 그 한 줄의 설명은 마치 무슨 별자리처럼 그 사람의 결점과 습관 같은 것을 완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성급한 일반화를 부추기며 깨기 힘든 선입견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엄마와 사는 남자들은 히치콕의 무덤을 찾아가서 집단 소송이라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그렇게 참기 힘든 사람 아니에요' 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그 대열의 선두에는 조커를 앞세우고 말이다.
영화의 원제는 Fusi 이다. 일반 성인 남자의 두세 배는 되는 몸집을 가진 푸시는 집에서 미용일로 소일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사실 위태로워 보일 정도의 거구이긴 하지만 동여맨 꽁지머리 하며 잘 기른 수염에서 보이듯 나름의 원칙과 개성이 있으며 섬세하고 사려 깊음으로 인간적인 매력도 느껴진다. 손재주도 좋아서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은 믿음직스러운 인물이지만 그의 겉모습으로 인한 첫인상, 더 나아가 그의 모든 행동 거지의 원인이라도 되는듯한 엄마와 산다는 사실 하나가 그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는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편견을 갖지 않고 푸시를 대하는 사람들은 아랫집에 이사 온 꼬마 여자 아이, 태국 음식점의 태국인 사장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자 등에 불과하며 그들은 어찌 보면 사회적 약자들이다.
푸시는 주방에서 저 용접 고글을 쓰고 뭘 하는 걸까. 동네 아줌마의 머리를 손질해 주다 크림 브륄레의 존재를 알게 된 엄마의 부탁으로 주방을 태울 것 같은 화력의 용접 기구를 직장에서 가져와서는 크림브뤼레를 토치하는 중이다. 가장 재치 있고도 웃픈 장면이었다. 푸시의 엄마는 푸시가 집 밖으로 나가 소통하고 가정을 꾸리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늙은 아들에게 아이처럼 의지한다. 아들은 엄마를 위해 무엇이든 한다.
푸시는 엄마의 애인이 선물해 준 춤 강습권을 들고 교습소를 찾아가지만 먼발치에서만 두리번거리다 용기를 못 내고 돌아 나온다. 기습한 눈보라에 집으로 돌아갈 방도를 모르던 여인, 시요픈은 눈보라 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푸시의 자동차를 얻어 타게 되고 둘은 친구가 된다. 항상 혼자 가던 태국 식당의 태국인 주인은 여자를 데리고 온 푸시에게 말없이 디저트를 내어준다. 푸시는 예상치 못한 여자의 호의에 순수한 마음에서 삶의 용기를 얻게 된다. 우울증을 앓는 시요픈은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집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런 그녀를 말없이 보듬으며 푸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기회를 얻는다. 마음을 연 그녀와 그는 좋은 관계를 이어가지만 이런 영화에서 늘 그렇듯 푸시가 결국 상처받고 말 것 같은 분위기로 영화는 흘러간다.
직장 동료들에게 놀림과 모멸을 당하면서도 그는 평정을 잃지 않는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나에게 왜 이러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 같기도 하고 어쩌면 어쩔 방도를 몰라 그냥 스스로를 관계의 사각지대속에 방치하는지도 모른다. 분노를 표출하거나 자기 방어의 의지조차 표현할 줄 모르는 그에게 주변의 편견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가 실수로 그를 놀리는 직장 동료를 죽이거나 아랫집 여자 아이와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아주다 억울하게 아동학대 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보면서 조마조마했다. 수화물을 나르면서 늘 착륙하는 비행기를 보고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는 사람들을 마주치지만 푸시 자신은 정작 자신의 방 안에 놓인 모형 벌판 위에서 아주 오래전 이집트에서 벌어진 전투 장면을 재연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여행한다. 가족이 아닌 다른 이와 관계를 맺고 다른 삶으로 나아갈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는 과감히 모형 벌판을 자르지만 어렵게 낸 그의 용기가 무색하게 시요픈은 결국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푸시의 결함으로 보고 그를 동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삶에는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좀 더 시선을 둬야 할 곳은 푸시처럼 사회의 부적응자로 분류되는 그들이 아니라 그런 그들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영화 속에서 소위 정상적인 범주에 속한 어른들 인지도 모른다. 한창 관심이 필요한 아이를 방치하는 무책임한 부모와 푸시의 어눌함을 감싸주지 못하는 동료들 역시 몸만 자란 미성숙한 어른일 뿐이다. 그리고 그 미성숙한 우리는 소수를 변화시키는 것이 다수인 우리가 각성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익숙해진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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